사무엘상 25장 — 일의 신학
권좌에 오르기까지 오래 기다리다(삼상 17-30장)
사무엘이 기름 부은 뒤 바로 통치를 시작했던 사울과 달리(삼상 11:1), 다윗은 헤브론에서 왕위에 오르기까지 길고도 어려운 도제 기간을 거쳤다. 다윗의 공적인 첫 성공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안정을 위협하던 골리앗을 죽인 것이었다. 군대가 귀환하는 길에 여인들이 기쁨으로 맞이하며 노래했는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사울을 노하게 했다(삼상 18:8). 다윗의 능력 때문에 자신과 나라가 얼마나 큰 혜택을 입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사울은 다윗을 하나의 위협으로 간주했다. 사울은 초기에 다윗을 없애야겠다고 결심했다(삼상 18:9-13). 그래서 사울은 결국 다윗이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힘들게 사울을 피해 다니며 유랑 길에 오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경쟁을 시작했고, 사울은 추적대를 데리고 10년 동안 유다 광야를 헤매고 다녔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주어졌을 때도 다윗은 권좌는 자신이 취할 자리가 아닌 것을 알고 그를 죽이길 거부했다. 권좌는 하나님이 주셔야 할 하나님의 권한이었다.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 75:7). 다윗은 사울이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행동할 때조차도 하나님이 사울에게 주신 권위를 존중했다. 이것은 오늘날 까다로운 상사 밑에서 일하거나, 또는 자신의 리더십이 인정받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교훈을 준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특정한 일이나 자리로 부름받았을지라도, 이것이 곧 우리가 기존 권위를 부정함으로써 권력을 잡아도 된다고 공적으로 인정해 주신 게 아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이 보스가 되기를 바라신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자기 힘으로 그 과정을 서둘러서 권력을 쥐려고 한다면, 권력이 승계될 때마다 혼란이 따라올 것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니 우리도 다윗이 한 것처럼 오래 참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길 원하시는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권위를 그분의 시간에 주실 것을 신뢰하는가? 일터에서는 더 큰 권위를 갖는 데 필요한 일을 완수하는 게 소중하다. 상사를 찍어 내거나 자기 동료를 밀어냄으로써 조기에 그런 권위를 쥐는 것은 동료와 신뢰를 쌓지 못할뿐더러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 증명해 보이지 못한다. 때로는 당신에게 필요한 권위를 받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느낌이 들 땐 절망스러울 수도 있으나, 진정한 권위는 우리가 쥘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허락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권위를 그의 손에 쥐어 주실 때까지 기꺼이 기다렸다.
다윗과 나발 간의 위기를 해결한 아비가일 (삼상25장)
다윗의 힘이 커져 감에 따라 그는 나발이라는 부유한 지주와 갈등을 빚는다. 우연히 사울의 통치에 반대하는 무리와 다윗의 부하가 나발이 거하는 지역에 한동안 진을 쳤다. 다윗의 부하는 나발의 목동을 인자하게 대해 주며, 그들을 위해로부터 보호해 주고, 최소한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삼상 25:15-16). 이것을 두고 다윗은 나발이 뭔가 자신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해 사절단을 보내 나발에게 다윗의 군사를 위해 양을 좀 기증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어쩌면 다윗은 자기 요구에 허점이 있음을 깨달았는지, 사절단에게 나발을 더욱 공손하게 대하라고 지시했다.
나발은 다윗의 요구대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윗의 잔치를 위해 아무것도 안 주겠다며 거부한 것은 물론이고, 다윗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다윗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다윗을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는 역적으로 몰아 다윗의 정직성을 공격했다(삼상 25:10). 나발의 종조차 그들의 주인을 “성질이 너무 고약해 어느 누구도 그에게 말하려 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정도였다(삼상 25:17). 다윗은 즉각 400명의 무장한 군사와 함께 나발과 그 집안 모든 남자를 죽이겠다고 나섰다.
나발이 자기 일꾼이나 가족을 돌보기보다 자만에만 신경을 쓰는 사이, 다윗은 대량 살상을 감행할 참이었다. 이 두 교만한 사람은 수백 명의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고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런데 현명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이 싸움에 발 벗고 나섰다. 그녀는 다윗과 그의 부하를 위해 신속하게 잔치를 준비한 다음, 나귀를 타고 다윗을 맞아 사과하려고 나갔는데, 이것은 구약에서 정중한 호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었다(삼상 25:26-31). 그러나 정중함을 갖춘 말에 담긴 내용은 다윗이 꼭 들어야 했던 진실이었다. 자칫하면 다윗은 자신이 절대로 지워 버릴 수 없는 평생의 죄가 될 수 있는, 아무 명분도 없는 피를 흘릴 찰나에 있었던 것이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에 감동했고 나발과 그의 모든 남자와 소년을 죽이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그는 심지어 아비가일에게 자신의 무모한 계획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 준 것에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라(삼상 25:33-34).
이 사건은, 자신의 리더들이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사람들이 붙들어 줄 필요가 있다는 걸 보여 준다. 비록 그렇게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당신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부름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권세 있는 지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용기는 가져야 한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용기를 구하고 받을 수 있다. 아비가일의 개입은 한편으로는 어떤 비판의 요점이 담겨 있긴 하지만, 존경을 보이면서도 권위자에게 도전하는 하나의 모델을 보여 준다. 나발은 사소한 갈등을 개인적 모욕이라는 포장지로 싼 바람에 하찮은 논쟁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만들고 말았다. 반면 아비가일은 대단히 중요한 책망을 정중한 대화로 옷 입혀 생명을 위협하는 위기를 해결했다.
고위직에 있는 권세자가 책임을 지도록 하게끔 당신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당신을 부르실 것 같은가? 어떻게 당신은 흔들리지 않고 분명하게 진리를 말하면서도 동시에 존중하는 신실한 태도를 기를 수 있겠는가? 실제로 그렇게 하는 데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용기를 받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