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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hronicles 26

역대하 26장 — 일의 신학

왕정 실패에서 포로기까지 (왕상11장 - 왕하25장; 대하10-36장)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3대 왕에 불과하지만 이미 그 왕국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그 뒤 400여 년 동안 악한 왕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이스라엘을 쇠퇴와 분열, 결국엔 패망으로 이끌었다.

부강했던 솔로몬 왕국, 마침내 둘로 나뉘다 (왕상11:26-12:19)

솔로몬이 죽고 나자 그의 공평하고 효과적인 국가 경영의 이면에 불안 요소가 싹트고 있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여로보암(전에 역군 감독이었던 사람)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은 솔로몬의 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인 르호보암(BC 931-914년)에게 나아와 “당신 아버지가 시행했던 무거운 노역과 세금의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라고 요청했다(왕상 12:3-16; 대하 10장). 그들은 자신이 새 왕에게 충성하기로 서약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대신에 부역과 세금을 좀 경감해 달라고 한 것이다.[1] 그러나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백성이 공급해 주던 것으로 40년 동안 호화롭게만 살아왔다. 그는 지금껏 누려 왔던 법적인 수혜의식이 너무 강해 타협할 수가 없었다. 자기 아버지가 백성에게 지운 부당한 짐을 가볍게 해 주는 대신 르호보암은 그들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하기로 작정했다.

사무엘의 예언은 더욱 성취되었다(삼상 8:18). 반역이 일어났고 왕정은 영원히 나눠지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국가를 지탱하기 위해 자신에게 부과된 공정한 노역 분담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자발적인 자세 못지않은,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기대가 표출되면서 결과적으로 반역이 일어나고 나라가 분열됐다. 북쪽의 열 지파는 따로 떨어져 나가서 여로보암을 그들의 왕으로 기름 부었다(BC 약 931-910년). 여로보암은 르호보암 밑에서 세금 경감을 추구하던 대표단 단장이었지만, 그의 왕조도 백성들에겐 딱히 더 나을 게 없었음이 판명됐다.

앗수르에 끌려가는 북이스라엘 (왕상12:25 - 왕하17:18).

200년 동안(BC 910-722년) 북 왕국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서 크게 악을 행한 왕에 의해 통치됐다. 이 기간은 끝없는 전쟁과 반역, 살해로 특징지어지다가 앗수르에 의해 철저하게 파멸당했다. 앗수르의 정복자들은 정복지 백성을 끌고 가 자기 제국 여러 곳에 흩어 놓았고, 외국인을 피정복지에 데려다 놓았다(왕하 17:5-24). 지도자의 실패는 종종 그 백성에게 재앙 같은 영향을 끼친다.

Warren W. Wiersbe, The Bible Exposition Commentary: Old Testament History (Colorado Springs, CO: Victor/Cook Communications Ministries International, 2004), 446쪽.

남유다의 포로 행진 (왕상11:41-왕하25:26; 대하10-36)

북이스라엘의 발자취를 따라가던 남유다의 통치자도 얼마 안 가서 우상숭배와 악으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르호보암의 통치 아래서 백성은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고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다’(왕상 14:23-24). 르호보암의 후계자도 하나님 보시기에 신실함과 악행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한동안 남유다에는 재앙을 간신히 모면하게 해 주던 선한 왕이 충분히 있었으나, 끝내는 북이스라엘이 빠졌던 것과 똑같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나라는 정복당했고 왕과 귀족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 사람들에게 끌려갔다(왕하 24-25장). 백성이 그토록 요구했던 왕들의 신실치 않음은 수백 년 전에 하나님이 하셨던 충고를 거부했고, 그것은 재정의 와해, 노동력 파괴, 기근, 대량 살육, 인구의 대량 유수에서 절정에 달했다. 예고됐던 재앙은 바사 고레스 왕이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의 재건을 위해 일부 유대인은 귀환하라는 조서를 내리기까지 70년이나 계속됐다(대하36:22-23).

교만과 왕국의 마지막 (대하26장)

도대체 어떻게 세워지는 왕마다 그토록 쉽게 악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일까? 웃시야 왕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통찰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웃시야는 16세에 즉위했고 초기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대하 26:4). 무엇보다 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웃시야에게 조언을 하던 스가랴가 곁에 있던 젊은 시절엔 유익이 있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대하 26:5).

흥미롭게도 여호와께서 웃시야에게 주신 성공의 상당 부분이 일상의 일과 관련이 있다. “또 광야에 망대를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파고 고원과 평지에 가축을 많이 길렀으며 또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을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었더라”(대하 26:10). “예루살렘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고안하게 하여”(대하 26:15a).

그는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해졌다’(대하 26:15b).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강성함은 태만의 요인이 됐다. 그는 여호와 대신 자신을 섬기기 시작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대하 26:16). 웃시야가 제사장들의 종교적 권위를 박탈하려 한 것이 궁중 반란으로 이어졌고, 결국 그는 권좌에서 쫓겨나 평생 추방된 외인으로 살아갔다.

웃시야의 이야기는 오늘날 리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성공에 이르는 인물, 특히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존은 그 성공을 안겨 주는 권력과 특권에 의해 침식되기 쉽다. 얼마나 많은 기업과 군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믿는 수준까지 나아갔다가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겸손과 절제, 섬김의 태도를 잃어버리고 말았는가? 어느 정도씩은 성공한 많은 이들이, 자기 힘이 커질수록 얼마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그만큼 하나님께 더 소홀히 해 왔는가? 웃시야는 (비록 그가 그들을 무시하기는 했지만) 그가 잘못했을 때 그를 반대하는 부하를 두는 은혜까지 입었다(대하 26:18). 무엇이 또는 누가 당신으로 하여금 교만으로 떠밀려가게 하고 당신의 성공을 점점 더 키워 주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해 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