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장 — 일의 신학
사도행전 서론
사도행전은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박해와 인력 부족과 재정 결핍, 정부 제도(나중에는 교회 제도도 포함), 내부 다툼, 심지어는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그린다. 그들의 일은 오늘날 교회와 무관한 직장에서 크리스천들이 직면하는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 준다. 적은 규모의 사람들이 온 마음을 다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일에 매진했고, 그러는 동안 그들은 자기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다. 매일 하는 일에서 이런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하는 일도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며 능력을 덧입혀 주길 원하신다.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 리더들의 ‘활동들’(acts; 사도행[行]전-옮긴이주)을 기록한 책으로서, 일이 핵심을 차지한다. 이야기는 걷고, 말하고, 병을 고치고, 넉넉히 베풀고, 결정을 내리고, 다스리고, 음식을 제공하고, 돈을 관리하고, 싸우고, 옷과 장막 및 다른 물품들을 생산하고, 세례를 주고(또는 씻기고), 토론하고, 논쟁하고, 판단하고, 쓰고, 읽고, 노래하고, 법정에서 자신들을 변호하고, 땔나무를 모으고, 불을 피우고, 적대감에 불타는 군중에게서 도망치고, 껴안고 입 맞추고, 공회를 열고, 사과하고, 항해하고, 배를 버리고, 헤엄치고, 사람들을 구조하면서 그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다양한 사람들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일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수행할 준비가된 사람들이다. 가장 높은 지위의 사람이 하지 못할 만큼 천한 일은 없으며, 가장 낮은 지위의 사람이 하기에 벅찬 일도 없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깊이는 초대 교회 사람들이 하는 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슨 이유에서, 어떻게,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지에서 나온다. 바로 섬김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동료들을 섬기고, 사회를 섬기고, 나그네들을 섬기는 것! 사도행전 전체에서 크리스천이 일하는 배후의 동기는 ‘섬김’이다. 이것은 그다지 새삼스럽지 않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두 번째 편이며, 누가복음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몰아붙인 동기는 섬김이었다.
‘왜’라는 이유에 대한 답이 섬김이라면, ‘어떻게’라는 방법에 대한 답은 뭘까? 섬김이 아니라 착취에 기반을 두고 있던 로마 사회의 구조에 지속적으로 도전을 가하는 것이다. 누가는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 방식과 로마제국 방식을 대조시킨다. 누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 제국의 관리들과 많이 상호 교류했던 사실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로마제국 내에서 작동되고 있던 권력 체계들과 그 권력 체계를 떠받쳐 주던 사회 · 경제적 요소들을 잘 알았다. 황제에서 귀족, 관리들, 토지 소유주들, 자유인들, 종과 노예에 이르기까지, 당시 사회의 각 계층은 자기 아래 계층에 권력을 휘두름으로써 존재했다. 그러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듯, 하나님의 방식은 그와 정반대다. 하나님의 사회는 섬기기 위해, 특히 더 약하고, 가난하고, 희생당하기 쉬운 취약한 지위의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
결국 사도행전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반드시 종사해야 하는 여러 활동의 종류를 보여 주는 모델이 아니라, 우리 활동의 토대가 되어야 하는 섬김에 대한 헌신의 모델이다. 우리 활동은 당시 사도들의 활동들과는 여러모로 다르지만, 섬김에 대한 헌신은 똑같다.
사도행전의 결론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일과, 일과 연관된 쟁점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세상에서 직업을 일관성 있게 다루고 있는 게 나타난다. 사도행전에서, 일에 대한 크리스천 관점은 단순히 윤리의 영역으로 격하되지 않는다. 도리어 일은 하나님의 세상 구속에 대한 적극적인 증거의 한 형태다. 사도행전의 논리는 이런 방향으로 움직인다.
1. 성령 강림(성령의 오심)이 새로운 방식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새 나라의 출발점이다. 자신의 지위를 추구하는 로마의 후견인 제도는 타인의 유익을 추구하는 사랑의 정신으로 대체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것이다.
2. 크리스천의 사명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선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영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그리스도 나라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3. 크리스천의 소명은 단지 개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공동체 전체에 주어진 것이다. 신자들의 행함이 완전하진 않고 때로는 완전하고는 거리가 너무도 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4. 공동체는 일과, 일에 관련된 자원들(권력, 부, 지위)을 다른 사람과 공동체 전체를 위해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 나라를 증거한다. 공동체 일원의 자격은 사랑과 섬김으로 이끄는 변화된 삶이다. 모든 종류의 자원을 가지고 급진적 베풂을 실천하는 것이 좋은예다.
5. 이런 식으로 일이 행해질 때, 모든 직업은 하나님 나라에서 오는 정의와 의, 아름다움들을 실천함으로써 증인의 행위가 될 수 있다.
6. 따라서 크리스천 공동체는 타락한 세상 구조에 도전장을 던지고, 때로는 세상의 권력을 쥔 자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가 의도하는 바는 세상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다.
7. 리더십은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과 섬김의 새 영이 활성화 되는 중요한 무대다. 권위는 공유되고, 리더십은 공동체의 모든 단계마다 고무된다. 리더들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는 부담을 떠안으며, 그들이 이끄는 사람들의 지혜와 권위를 존중해 준다. 용기, 고난, 존중, 타인에 대한 관심을 포함해 리더십 속성들은 사도바울의 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우리의 노동과 노동에서 얻는 열매를 비롯한 인간 삶의 모든 것이, 도래할 하나님 나라 가운데 이미 나타난 성령의 권능으로 참여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사도행전 덕분에 이해하게 됐다. 일은 인간의 증인의 소명에 위엄을 줄뿐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듯이 일은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 크리스천 일꾼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땅과 문화, 가족, 사업, 교육, 정의 및 다른 모든 영역을 개척하고 연구하고 양성하는 자요, 변혁자가 되는 소명을 받았다.
사도행전의 핵심 구절들과 주제들
구절
주제
행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크리스천의 삶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직업을 가지고 지향하는 공동체에서 이루어진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크리스천 공동체는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증인으로의 방향이 정해진다.
행 2:17-21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크리스천의 삶은 새로운 하나님의 세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행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크리스천의 삶은 새로운 하나님의 세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행 2:42-47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4:18-21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하나님께서는 권력 체계를 초월하시는 절대 주권자시다
행 4:25-26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하나님께서는 권력 체계를 초월하시는 절대 주권자시다
행 4:32-38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구르보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5:1-1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5:27-32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권력 체계를 초월하시는 절대 주권자시다
행 6:1-7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8:18-24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8:26-40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체시키는 것들이 아니다.
행 9:36-42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9: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10: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11:27-30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12:20-23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모든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권력 체계를 초월하시는 절대 주권자시다
행 13: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특별한 직업의 분별은 크리스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행 13: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크리스천의 삶은 권력자들과의 정면대결을 초래한다.
행 16:11-15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16:16-24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복음은 억압적 경제 관행 안에서 현저히 드러나는 악에서 벗어나게 한다.
행 17: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교회는 경제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행 18:3-4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19: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어떤 특정 직업들은 복음에 적대적이다.
행 19:23-41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크리스천의 삶은 권력자들과의 정면대결을 초래한다.
행 20:33-35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21: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행 27: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권력, 지위, 그리고 자원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사명을 받은 공동체 (행1:6)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모습 그대로 세상을 회복시키려는 예수님의 사명은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사명으로 전환된다.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주변 세상과는 다르게 일하고 일과 관련된 힘과 부를 다르게 사용하는 그룹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구성하는 동안 그들의 공동체 생활을 추적한다. 이 작업은 교회라 불리는 독특한 공동체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누가는 “그들이 모였을 때” 그 공동체로 시작하며,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려는’(행 1:6) 임무를 계속해 나간다. 이 일의 성취를 위해 그 공동체는 먼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소명을 지향하고,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증인을 자기 정체성으로 붙들어야 한다.
증인의 사명, 성령으로만 감당할 수 있다 (행1:8)
사도행전은 부활 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시작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신다(행 1:3). 그들은 사회적 · 정치적 나라를 세우는 것에 대한 질문으로 반응한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행 1:6).[1] 예수님의 반응은 일꾼으로서의 우리 삶과 아주 긴밀하게 연관된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7-8).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제자들의 호기심을 막아 버리신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대하면서 살아야 하지만,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정확한 시간에 집착해 계속해서 의문을 품으며 살아서는 안 된다. 둘째, 예수님은 사회적 · 정치적인 나라, 곧 제자들이 물었던 ‘이스라엘에 회복시키실 나라’를 하나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 이스라엘의 성경을 잘 알았다. 그들은 선지자들에 의해 그려진 나라가 또 다른 하나의 현실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새로워진 이 세상에서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는 참다운 나라라는 것을 알았다. 예수님은 다가올 이 나라의 실체를 부인하지 않으셨으나, 기대하는 그 나라 속에 모든 피조 세계를 포함시키심으로 제자들의 기대의 범위를 확장시키신다.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영토를 위한 새로운 나라가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행1:8) 이르는 나라다. 이 나라의 완성은 (“이때까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미 여기 이 세상에 와 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계 21:2-3).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임한다. 하나님이 여기, 구속된 이 세상에 거하신다. 그런데 왜 아직 여기에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분의 제자들이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그 답의 일부임을 암시한다. 에덴 동산에서도 하나님의 창조를 완성하는 데는 인간의 일이 필요했지만(창 2:5), 우리의 일은 타락으로 무능력해지고 말았다.
사도행전 1-2장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일에 힘을 불어넣으시기 위해 그분의 영을 보내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도래에 필수적인 사명을 주셨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활동영역에 성령의 능력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이 인간의 일에 위임하신 필수적인 역할과 그 역할을 완수할 수 있는 우리 능력 사이의 간극을 메워 준다. 타락 이후 처음으로 우리의 일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기여할 능력을 갖췄다. 대체로 학자들은 이 사도행전 1장 8절을 누가의 두 번째 책(사도행전)의 표제적인 진술로 본다.
실제로 사도행전 전체는 (때로는 비틀거리기도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라는 크리스천의 사명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증언한다는 것은 전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 각 개인이 자기 말을 통해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나누는 일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해다.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은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원칙과 관습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효과적인 증인의 형태는 종종(더 정확히 말하면 주로)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는 공동체의 삶을 나누는 것임을 우리는 볼 것이다.
증인이 되는 사명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성령님은 개인과 공동체를 변혁시켜서 인간 노동의 결실, 특히 능력, 자원, 영향력을 지역 공동체 및 주변의 문화와 나누게 하신다.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도와줄 때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된다. 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문화에 더 폭넓은 유익을 끼치기 위해 자신들의 자원을 사용할 때 증인이 된다. 정의, 선, 아름다움의 방식으로 일해 더 충만한 삶에 이르는것을 주변 사람들이 볼 때 공동체는 예수의 증인이 된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지역들을 보면 제자들의 증언이 그들을 사회적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곳들이다. 유대인으로 이루어진 예수님의 제자 그룹은 로마제국의 원수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한 자로서 최근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한 사람을 위해 대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그들의 스승이 죽임을 당한 도시와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의 인종적 원수들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들, 넓게는 로마제국까지 이 부르심을 가져가라는 사명을 받았다.[2]
한마디로, 사도행전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증인’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위해 부르신, 즉 목적이 분명한 부르심으로 시작된다. 무엇보다 증인이 된다는 건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합당하게 사는 삶을 뜻한다. 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인의 유익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다. 이 사명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며, 사회적 장벽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이행되어야 한다. 목적이 분명한 이 부르심은 인간의 노동이나, 오직 말씀으로 예수님을 전파하는 제자들의 노동자로서의 삶을 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도행전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 나라의 근본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것이다.
누가가 사용했던 회복 동사인 ‘Apokathistēmi[아포카티스테미]’를 국가적 회복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망을 설명하기 위해 70인역과 요세푸스가 사용했다. (출 4:7; 호 11:11,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11.2, 14를 보라.) 또한 David L. Tiede, “The Exaltation of Jesus and the Restoration of Israel in Acts 1,” Harvard Theological Review 79, no. 1 (1986): 278-286쪽과 James D. G. Dunn, Acts of the Apostles, Epworth Commentaries (Peterborough, UK: Epworth Press, 1996), 4쪽을 보라.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적대감에 대한 참고 자료는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18:30; Jewish War 2:32 이하를 보라. “땅끝”에 대한 언급은 로마제국의 사람들과 장소의 최대 범위를 암시한다. David W. Pao, Acts and the Isaianic New Exodus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2), 91-96쪽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