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장 — 일의 신학
신명기 서론
일의 신명기의 주요 주제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이슈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일의 의미와 가치: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개인과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축복. 실패의 결과와 성공의 위험. 다른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대리해야 할 책임.
일터에서의 관계: 좋은 인간관계의 중요성. 다른 사람의 위엄과 존엄성 개발. 일터에서 타인을 해하거나 그들에 대해 부당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할 필요성.
리더십: 리더십과 권위의 현명한 행사. 승계 계획과 훈련,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할 지도자의 책임.
경제적 정의: 재산과 노동자 권리와 법원 존중. 자원의 생산적인 사용. 대부와 차용, 정직한 상업적 계약 및 공정한 거래.
일과 안식: 일해야 할 의무. 휴식의 중요성. 일하든 쉬든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상업과 직업이 수 세기를 두고 변했다고 해도, 신명기는 우리가 하나님 사랑에 반응해 어떻게 우리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책의 극적이고 통일된 설명 때문에라도 신명기는 특히 돋보인다. 예수님은 신명기를 대대적으로 인용하셨다. 사실 예수님이 최초로 인용한 성구는 신명기로부터 나온 세 단락이었다(마 4:4, 7, 10). 신약은 신명기를 50번 이상 언급하는데, 이는 시편과 이사야서 다음으로 많은 인용 횟수다.[1] 그리고 신명기에는 저 위대한 계명의 최초 형태가 담겨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신명기에 나오는 이 모든 주제 근저에는 이스라엘과 진실하신 하나님 한 분과의 언약이 자리잡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은 다음 언약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 게 두지 말지니라”(신 5:6-7). 사람들이 주님만을 예배할 때 좋은 통치, 생산적인 일, 윤리적 상업, 공공선 및 모든 이에 대한 공정한 처우가 일반적으로 뒤따른다. 반면 사람이 다른 동기, 가치, 관심사를 하나님보다 앞세울 때 일과 삶은 고통으로 채워진다.
신명기는 다른 율법서(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와 동일한 내용을 다루지만, 특별히 십계명을 통해 일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킨다. 다른 책에 나오는 사건과 가르침을 반복해 말하면서 모세는 하나님 백성의 삶 속에서 일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 듯하다. 이것이 마치 전조라도 되는 듯, 크리스천들은 오늘날 일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성경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이전에 짐작했던 것보다 일을 더 중요시 하신다는 것과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에 대 해 더 많은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것을 발견한다.
Bruce K. Waltke and Charles Yu, An Old Testament Theology: An Exegetical, Canonical, and Thematic Approach (Grand Rapids: Zondervan, 2007), 479-480쪽. 브루스 월키, 《구약 신학》(부흥과개혁사 역간)
신명기의 결론
이스라엘 초기 역사와 하나님의 율법을 재론하면서 신명기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의 성취 속에서 일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 책의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 의 계명을 따르면서 그분의 도움을 구해야 할 필요성이다. 이중 그 어떤 것이든 저버린다면 우상숭배, 즉 우리가 스스로 만든 거짓 신을 예배하는 데 빠지게 된다. 비록 이런 주제가 처음에는 추상적이 거나 철학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일상의 노동과 삶 속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식으로 발현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생산 능력을 주신 그분께 좋은 것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우리 한계를 인정할 때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인도를 구하며 다른 이를 존중하게 된다. 또 한 일과 안식의 리듬을 준수하는 것을 통해 우리 자신 및 우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까지 모두에게 유익을 준다. 우리는 권한을 행사하고, 분명한 정의감을 가지고 권위 앞에 순종하며, 공공선을 위해 권세를 지혜롭게 행사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이를 해하기보다는 남을 섬기는 일, 가족과 공동체를 무너뜨리기보다는 세우는 일 을 택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원을 너그럽게 사용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속한 자원을 탈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거래할 때 정직해야 하고, 우리 자신을 잘 다스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을 행하며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을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
감사를 표하고 직장에서 너그럽게 처신하고 직장을 보다 더 공평하고 보다 더 자유롭게 만들며 보람 있게 공공선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매일매일 우리 앞에 주어진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공동체, 전 세계를 변화시켜 노동 자 착취, 부정부패 및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자원 부족에 대한 무관 심 등 우상숭배적 관습을 뿌리 뽑을 기회를 (크든 작든) 가진다.
그러나 만일 신명기가 우리 일에 적용될 ‘할 것과 하지 말 것’의 길고 시시콜콜한 목록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짐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일의 영역 하나만이라고 해도, 누가 과연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겠는가? 신명기의 핵심은 사실 규칙과 규정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라는 초청이다.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 4:29).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신 7:6). 만일 우리 일이 신명기의 그림에 전혀 못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더 열심히 일하기로 굳게 다짐할 게 아니라, 하나님과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으라는 초청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맺는 살아 있는 관계만이 그분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희망이 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이며 신명기라는 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내용이다. 예수님 말씀대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 11:30). 불가능한 요구를 나열한 목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서라는 초청인 것이다. 이 초청 속에서 예 수님은 모세의 권고를 되풀이하신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신 10:12).
반역과 안일 (신1:1-4:43)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최근에 겪은 주요사건을 되새기는 모세의 연설로 시작된다. 모세는 그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도출했으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신의에 응답할 것을 이스라엘에게 권고했다(신 4:40). 반역이나 안일 때문에 하나님과의 신뢰가 깨지는 것은 일의 신학을 살펴볼 때 특히 중요하다.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길 거부한 이스라엘 (신1:19-45)
광야에서, 사람의 두려움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실패로 이어졌다. 그 결과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해 주신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반기를 들었다(신 1:7-8).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건지셨으며, 호렙(시내)산에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고, 그들을 약속하신 땅의 변경으로 신속히 인도하셨다(신 1:19-20). 그러 자 모세는 그 땅으로 들어갈 때가 됐다고 선언하지만 백성은 그 지역을 점령한 아모리 사람을 보고 두려워했다. 그들은 계획을 신중히 세우자는 일환으로 먼저 정탐 분대를 보내자고 모세를 설득했다. 정탐 분대는 그 땅에 대한 좋은 보고를 들고 돌아왔다. 이때 백성의 진짜 마음이 드러났다. 그들은 두려웠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다’라고 모세에게 말하며 ‘낙심이 된다’(신 1:28)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성취하시리라고 신뢰하지 못했고, 결국 그분의 명령 따르기를 거부했다.
하나님의 반응은 엄중했다.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신 1:35).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은 자녀 세대로 미뤄졌으며 그 부모들은 영구히 기회를 잃고 말았다. 모세조차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아마도 정탐꾼을 보내기로 동의했을 때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뢰도 적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좋은 땅”을 차지하는 대신 평생 광야에서 살다 가야만 하는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신 1:25). 그들은 뒤늦게 아모리 사람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신 1:42).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함으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마련해 놓은 축복을 놓치고 말았다.
무엇이 옳은지를 알면서도 그것을 어기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을 향한 신뢰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길을 이탈하는 데서 지켜 줄 수 있다. 이것은 도덕적인 성품의 문제가 아니다. 모세조차도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는 데 실패했는데, 우리가 성공하리라고 진실로 자신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사실 하나님 은혜에 달린 문제다. 옳은 것을 위해 분연히 일어설 때, 우리는 우리를 강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며, 실패할 때도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인생에서 커다란 대가를 치를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실패도 하나님의 은혜로 만회될 수 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책 5장의 “민 13-14장” 부분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