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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39

창세기 39장 — 일의 신학

야곱 (창25:19-49:33)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이름이 종종 함께 나오는데, 그들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받았고 동일한 믿음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곱은 그의 조부 아브라함과 크게 달랐다. 언제나 간교했던 야곱은 그의 생애 대부분을 그의 야만적 힘과 잔꾀에 의지해 살았다. 자주 갈등을 초래했던 야곱은 정욕에 이끌려 자기가 원하던 것을 취하고자 했다. 이런 투쟁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결국 야곱은 존재의 분수령에 도달하게 됐는데, 한 불가사의한 사람과 더불어 씨름하는 동안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했다(창 32:24, 30). 자신의 연약함 가운데 야곱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했고, 마침내 은혜를 받고 변화됐다.

목자였던 야곱의 직업은 일의 신학에서 관심사다. 이간질과 화해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던 그의 생활에 비춰 보면, 그 의미가 더해진다. 아브라함이 행했던 일들은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감지했던 목적과 뗄 수 없는 일부였다. 그 사실은 야곱에게도 적용됐으며, 그 교훈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요셉 (창37:2-50:26)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마다 핵심적인 약속을 주셨다는 점을 기억하라(창 12:2-3). 첫째, 하나님은 그의 후손을 번성시켜 큰 민족을 이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둘째,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실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크게 만드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그의 명성에 걸맞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넷째,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될 것이다. 이 마지막 항목은 미래의 아브라함의 후손과 그 울타리 너머의 사람들, 즉 지상의 모든 족속에 대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사람을 축복하실 것이고 그를 저주하는 사람을 저주하실 것이다. 창세기에서는 이 약속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삭, 야곱 및 야곱의 아들 등 선택받은 계보를 통해 부분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그들 모두 중에서 요셉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열국을 축복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나님이 직접 성취하실 때 사용한 사람이었다. 참으로 “온 세상” 사람이 요셉이 경영한 식량 제도에 의해 유지됐다(창 41:57). 요셉은 이 사명을 알았으며 삶을 하나님 의도에 맞게 살았다.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바로 그가 받은 사명이었다(창 50:20).

보디발 아내의 계략, 투옥당한 요셉 (창39:1-20)

보디발 밑에서 요셉이 맡은 일은 신임을 받은 노예로서의 책임이었다. 처음에는 요셉이 주인의 집 “안”에만 있었다. 그가 무슨 자격으로 일했는지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보디발은 요셉의 전반적인 능력을 알아보고는 승진시켜 그를 개인 비서로 삼는 한편 자기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했다(창 39:4).

얼마 후에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성(性)적인 관심을 보였다(창 39:7). 요셉은 그녀의 요구를 단호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거절했다. 그는 보디발이 그에게 보여 준 폭넓은 신뢰를 상기시키면서 그녀가 꾀하는 관계를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용어로 “큰 악”이고 “하나님께 죄”라고 묘사했다(창 39:9). 그는 사회적 및 신학적 차원에 민감했다. 더 나아가 요셉은 반복해서 반대 의사를 표시했으며 그녀 앞에 있는 것조차 거부했다. 강제로 끌려간 요셉은 굴복하기보다는 반쯤 벗은 몸으로 도망쳤다.

이 여인의 성적 괴롭힘은 요셉에게 불리한 권력 관계에서 발생했다. 그녀는 요셉을 이런 식으로 압박할 힘과 권한이 있다고 믿었으나, 그녀의 말과 접촉은 분명히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요셉은 일하기 위해 그녀가 거주하는 집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는 주인을 불러 보디발 아내의 행위를 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주인의 혼인 관계가 파탄 날 것이기 때문이다. 도망가다가 거짓된 고소로 감옥에 갇힌 뒤 요셉은 법에 의지하지 않은 듯하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직장에서 발생하는 성적 괴롭힘 문제를 세밀히 묘사한다. 부적절한 언어와 신체적 접촉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갖고 있지만, 힘 있는 자의 변덕스런 행동이 실제로는 종종 먹혀 들어간다. 잠재적인 괴롭힘을 상사에게 종종 보고해야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기를 꺼린다. 보복당할 위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괴롭힌 내용을 문서로 남길 수 있겠지만, 사건이 드러날 경우 도리어 피해자가 고통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셉의 경건함은 그를 거짓 고소와 투옥으로부터 구해 내지 못했다. 만일 우리가 비슷한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거룩함이 우리가 상처를 받지 않고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교훈을 남겼다. 우리가 여호와께 속했다는 것과 그분은 연약한 자를 지키신다는 것을 안다면, 궁지에 몰려서도 포기하지 않고 맞서 나아가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는 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케 하는 현실적인 사건이다. 허나 이것은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선이 결국은 이길 것을 기대하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셉은 우리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 줬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짓으로 고소를 당하고 그릇된 대우를 받을 때도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을 계속 수행하며 하나님이 바른 길로 마무리 지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감옥에서 꿈을 해몽하다 (창39:20-40:23)

요셉의 감옥 생활은 여호와의 임재, 간수의 호의 및 요셉의 승진 등으로 특징지어진다(창 39:20b-23). 감옥에서 요셉은 감금되어 있던 바로의 신하 두 명을 만났는데 그들은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었다. 여러 애굽 문서에 의하면, 술 맡은 관원장은 술의 품질을 시험하고 독이 들었는지 검사할 뿐 아니라 정치 권력자와 가까이 지내기도 했다. 그들은 종종 왕의 친구가 되기도 했으며 지혜로움으로 인해 소중히 여김을 받기도 했다(느 2:1-4).[1] 술 맡은 관원장처럼, 떡 굽는 관원장도 신뢰받는 신하로서 정부 내 최고위 관리와 무시로 상통했으며 음식 마련 이상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을 것이다.[2] 감옥에 갇힌 요셉은 이 왕실 관리들을 위해 꿈을 해석해 줬다.

꿈 해석은 고대 세계에서 박식한 일로서, 꿈과 그 의미가 망라된 기술적 “꿈 해석서”를 가지고 푸는 것이었다. 과거의 꿈과 그에 대한 해석의 진상에 대한 기록은 해석자의 예측을 지원해 줄 경험적 증거를 제공했다.[3] 하지만 이런 전통을 교육 받은 적이 없는 요셉은 하나님이 해석을 보여 주셨다고 했는데 결국은 그것이 진실임이 밝혀졌다(창 40:8). 그 후 술 맡은 관원장은 그의 이전 직책을 회복했으나, 그는 요셉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 이야기 속에 담긴 역학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가 이르지 못할 곳까지 오른 다른 이의 성공을 돕는 것에 투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유용성이 다하면 폐기 처분될 뿐이다. 이 말은 그런 일은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지위와 승진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의미인가? 나아가, 요셉은 감옥에서 그 두 관원장의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검증할 길이 없었다.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잠 18:17). 하지만 판결이 내려지고 나면, 어떤 죄수라도 자기 무죄를 항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 투자가 결국 어떻게 우리나 우리 조직을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의심을 품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돕는 사람의 성격과 동기를 궁금하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후에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반영될지에 대해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보통 이런 문제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기도와 분별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마비시킬 것인가?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한다면, 선행을 실천해 나가기가 더 쉬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믿기 때문이다(롬 8:28).

Kenneth A. Kitchen, “Cupbearer,” New Bible Dictionary, 3rd ed., ed. I. Howard Marshall, A. R. Millard, J. I. Packer, and D. J. Wiseman (Downers Grove: InterVarsity, 1996), 248쪽.

Roland K. Harrison, “Baker,” 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ed. Geoffrey W. Bromiley (Grand Rapids: Eerdmans, 1979), 1: 404쪽.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2001), 672-673쪽.

창세기 12-50장에 대한 결론

창세기 12-50장은 하나님이 전 세계에 복을 퍼뜨리시기 위 해 택하신 한 가족의 처음 3대의 이야기를 전한다. 특별한 권 능이나 지위, 부요, 명성, 능력, 우월한 도덕성을 갖고 있지 못 하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그분이 그들 을 위해 갖고 계신 위대한 꿈을 성취하시리라고 믿었다. 하나 님은 모든 면에서 신실하셨지만, 그들은 변덕스럽고 적극성이 없으며 불안정했다. 여느 가정처럼 그들도 역기능 가정이었지 만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 속에 넣어 주신 믿음의 씨를 지켰고, 최소한 계속해서 그리로 돌아왔다.

적대적인 사람과 세력에게 둘러싸인 채 부서진 세계에서 살고 있던 그들은 믿음으로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 축복 하였으며”(히 11:20)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았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그 성에서는 우리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 일하는 자다(마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