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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5

창세기 5장 — 일의 신학

사람,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다(창1:26, 27; 5:1)

하나님의 창조를 말한 후 창세기는 사람의 일을 말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사람에게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창5:1).

만물이 하나님의 설계와 능력과 선하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사람만이 하나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온전한 신학을 다루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그저 우리에게는 독특하게 하나님을 닮은 점이 있다고만 말해 두자. 우리가 하나님과 ‘완전히’ 똑같다고 믿는다면 그건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순전한 혼돈 속에서 세상을 창조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신 대로 하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 지금까지 기술(記述)한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물질적 세상에서 일하시고, 관계 속에서 일하시는 창조주시며, 그 일하는 것의 한계를 지키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창세기 1-2장 나머지 부분에서는 사람의 일이 다섯 가지의 특정 범주로 나뉘어 전개된다. 지배(다스림), 관계, 열매 맺음/성장, 공급하심, 한계. 이런 전개는 두 가지 주기 속에서 나타난다. 하나는 창세기 1장 26절에서 2장 4절까지, 다른 하나는 창세기 2장 4절에서 25절까지다. 범주의 순서는 각기 다르지만 어쨌거나 이 범주들은 두 가지 주기에 모두 나타난다. 첫 번째 주기에서는 하나님 형상을 따라 일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전개된다. 두 번째 주기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살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준비시켜서 일하도록 해 주셨는지 설명해 준다.

첫 번째 주기에 나오는 언어는 추상적이어서 인간 노동의 원칙을 개발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두 번째 주기에 나오는 언어는 세속적이며 흙과 다른 요소로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어서 에덴 동산에서 맡겨진 일을 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실질적인 교훈을 주기에 적합하다. 이런 언어의 변동, 성경의 처음 네 책 전체에 걸쳐서 유사한 변동이 일어나는 것 때문에 학자 간에 무수한 연구, 가정, 논쟁, 심지어 분란까지 발생했다. 다른 일반 목적의 주석서는 이에 관해 풍부하고 자세한 내용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쟁의 대부분은 창세기의 일, 일꾼, 일터에 대한 이해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으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우리 논의에 관련된 것은 창세기 2장에서 앞서 전개된 다섯 가지 주제가 지배(다스림), 공급하심, 열매 맺음/성장, 한계, 관계의 순서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창세기 2장은 하나님이 우리가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받아 하게 된 일을 어떻게 완수하게 하시는지 설명한다. 이런 주제를 더 쉽게 이해하려면 우리는 창세기 1장 26절 - 2장 25절을 구절마다가 아니라 범주별로 탐구해야 한다.

타락한 피조 세계에서 일하게 되다 (창4-8장)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셨다(창 3:23-24). 그들은 깨어진 관계와 고통스런 일을 그대로 지닌 채 나와, 저항하는 땅에서 생존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셨다. 그들에게 기술이 부족할 때는 옷을 지어 입히시기까지 하셨다(창 3:21). 저주가 그들의 생육하고(창 4:1-2) 번성하는 능력을 파괴하지는 못했다(창 4:3-4).

창세기 1-2장의 일은 계속됐다. 여전히 갈아야 할 땅이 있었고 주시하고 묘사하고 명명해야 하는 자연 현상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여전히 열매를 맺어야 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통치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일의 두 번째 단면도 성취되어야 했다. 즉 그릇된 것과 저질러진 해악을 치유하고, 고치고, 회복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것을 현대의 맥락에서 보면 농부, 과학자, 조산사, 부모, 지도자 및 창조적 기업 내 모든 이의 일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악을 억제하고 재난을 방지하고 피해를 복구하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의사, 장례 지도사, 교도관, 범죄 감식가 등 전문 직업을 가진 이들의 일도 필요하다. 사실 모든 사람의 일은 창조와 복구, 격려와 좌절,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이 섞여 있다.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에덴에 있을 때보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두 배나 더 많아졌다. 일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덜 중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창세기 1-11장에 대한 결론

성경의 처음 몇몇 장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우리를 세우셔서 그분과 연합해 창조를 이어가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셔서 지배권을 행사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그분이 공급해 주신 것을 받아들이며, 그분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하고, 그분의 창조의 한계를 따르도록 하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원, 능력, 공동체를 주셔서 이런 임무를 완수하도록 하셨으며 7일 중 6일 동안 일하는 모범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것을 그분과 그분의 창조물을 향한 사랑 안에서 할 수 있게 자유를 주셨는데, 이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만드신 만물을 위해 일하지 않을 자유도 주신 것이었다. 우리가 영구적으로 손상을 입은 것은, 처음 사람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자 작심한 결과이며 사람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크든 작든 불순종을 선택해 왔다. 결과적으로 우리 일은 덜 생산적이 됐고 더욱 고단해졌으며 만족감이 덜해졌다. 우리 인간관계와 일은 위축됐고 때로는 파괴적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부르셔서 일하 게 하시며 우리를 준비시키시고 우리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 그리 고 많은 사람은 선하고 창조적이고 성취적인 일을 할 기회를 얻어 그들의 필요를 해결하며, 번영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 타락은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 일을 보다 더 필수적이게 만들었을 뿐 그 반대는 아니었다. 비록 크리스천이 가끔 이를 오해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인류의 타락 이후로 물질적인 세상에서 물러나시거나 그분의 관심을 영적인 것에만 국한하지 않으셨다. 어쨌든 물질 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리할 수는 없다. 일은 여전히 하나님의 선물이며, 일에 내재된 인간관계와 한계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비록 그것이 타락 이후의 존재의 상태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됐다 하더라도 말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자기 창조물을 타락의 영향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언제나 일하신다. 창세기 4-11장은 세상과 그 거주민에게 질서를 주고 또다시 질서를 주기 위해 하나님의 권능이 어떻게 역사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창조된 세상의 주권 자시며 살아 있는 만물과 사람의 주인이시다. 그분은 사람 속에 있는 자신의 형상을 계속해서 돌보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도한 권력을 얻으려 하거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족(自足)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인간적 노력이 “하나님과 같이 되도록”(창 3:5) 허용하지는 않으신다.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로 여기고 그분의 지시를 좇아 일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노아 같은 사람은 일하는 중에 복과 풍성함을 경험한다. 권력을 쟁취하고 자기 노력으로 성공을 얻고자 하는 바벨탑 건축자 같은 이는 폭력과 좌절을 만날 것이다. 특히 그 들의 일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으로 변할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창세기 11장까지 나오는 모든 인물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할 것인지 아니면 그분을 거역하면서 일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창조하신 만물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어떻게 전개 될 것인지를 창세기에서 설명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피조물의 일을 포함해 모든 피조 세계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의도하셨던 대로 회복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또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