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Genesis 8

창세기 8장 — 일의 신학

타락한 피조 세계에서 일하게 되다 (창4-8장)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셨다(창 3:23-24). 그들은 깨어진 관계와 고통스런 일을 그대로 지닌 채 나와, 저항하는 땅에서 생존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셨다. 그들에게 기술이 부족할 때는 옷을 지어 입히시기까지 하셨다(창 3:21). 저주가 그들의 생육하고(창 4:1-2) 번성하는 능력을 파괴하지는 못했다(창 4:3-4).

창세기 1-2장의 일은 계속됐다. 여전히 갈아야 할 땅이 있었고 주시하고 묘사하고 명명해야 하는 자연 현상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여전히 열매를 맺어야 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통치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일의 두 번째 단면도 성취되어야 했다. 즉 그릇된 것과 저질러진 해악을 치유하고, 고치고, 회복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것을 현대의 맥락에서 보면 농부, 과학자, 조산사, 부모, 지도자 및 창조적 기업 내 모든 이의 일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악을 억제하고 재난을 방지하고 피해를 복구하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의사, 장례 지도사, 교도관, 범죄 감식가 등 전문 직업을 가진 이들의 일도 필요하다. 사실 모든 사람의 일은 창조와 복구, 격려와 좌절,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이 섞여 있다.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에덴에 있을 때보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두 배나 더 많아졌다. 일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덜 중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이젠 그만!” 새로운 세상을 작정하시다 (창6:9-8:19)

어떤 상황은 구제할 수가 있지만, 또 다른 어떤 상황은 구제 범위를 넘어선다. 우리는 창세기 6장 6-8절에서 홍수 이전 세상과 문화에 대해 탄식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으며, 다시 시작하려는 그분의 결단을 듣는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아담 때부터 우리 세대까지 하나님은 필요할 때 죄악된 문화에 대항해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신다. 아담은 그 시험에서 실패했지만 노아의 계보를 생산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 자였다(창 6:9). 노아는 속죄적인 일을 행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땅으로부터 생계를 유지하기에 바쁜 다른 사람과는 달리 노아는 인류를 구원하고 자연을 파멸로부터 구해 내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노아에게서 우리는 제사장, 선지자, 사도의 원형을 발견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화해하는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이며, 환경 보호자로서 자연을 구속하는 일을 하도록 부름받은 자다. 크든 작든 노아 시대 이후 모든 일꾼은 구속하는 일은 물론 화해시키는 일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노아는 얼마나 엄청난 선박 건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했는가? 주위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노아와 그의 아들들은 수천 그루의 “고페르 나무”를 찍어다가 대패질해서 널빤지를 만들어 물에 뜨는 동물원을 축조해야 했으니 말이다. 이 3층짜리 배는 온갖 종류의 동물을 실을 만하고 무기한으로 필요한 음식과 물도 저장할 만큼 커야 했다. 그런 고난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순종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13-22).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업가는 신상품이나 공정을 내놓을 때 위험을 감수하며 통상적인 지혜에 어긋나게 일하는 데 익숙하다. 단기간의 결과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장기적인 견해가 필요하다. 노아는 때때로 불가능한 임무처럼 보이는 것에 직면했는데, 몇몇 성경학자에 의하면 그 방주를 실제로 짓는 데는 100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의심스런 눈빛과 비판자의 면전에서 믿음, 불굴의 의지, 세심한 기획도 필요했다. 아마도 우리는 노아의 개척자적인 개발 목록에 프로젝트 관리를 추가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혁신가, 기업가, 직장 내에서 우세한 의견과 시스템에 도전하는 사람은 내적인 힘과 신념이 필요하다. 우리가 반대나 낙담에 처할 때 해답은 우리 자신을 설득해 어리석게도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기도로 주의를 돌리며 하나님 안에서 현명한 사람의 조언을 듣는 것이다. 정·재계, 과학계, 학계, 예술계 및 다른 수많은 일의 영역에서 혁신가의 창의성을 격려하고 다듬는 일에 은사가 있고 훈련된 갓 피어나는 크리스천이 필요하다.

홍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으며 창세기 7장 1절 - 8장 19절에 나와 있다. 산꼭대기를 넘는 물속에서 방주를 뒤흔드는 홍수가 일렁이는 반년 이상의 기간 동안 노아와 그의 가족과 모든 동물은 방주 안에서 이리 튕기고 저리 튕겨야 했다. 마침내 홍수가 잦아들자 땅이 말랐으며 새로운 식물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방주에 탔던 자들은 다시 한 번 마른 땅을 딛었다.

본문은 창세기 1장을 회상하며 창조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깊음” 위에 “바람”을 불게 하시니 “물”이 물러갔다(창 8:1-3).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홍수의 힘에 의해 다시 생겨난 신세계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문화에 상처로부터 새로 시작하고 바로 잡을 기회를 주셨다. 기독교인에게 있어, 이것은 요한계시록 21-22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전조(前兆)가 된다. 우리가 앞에서 논의한 바대로, 사람의 생명과 일은 타락의 결과로부터 치유된 우주 안에서 완벽해진다.

아마도 사람의 이 첫 번째 대규모 토목공사는 환경 프로젝트였는지 모른다. 뱀과 모든 피조물과 사람 사이의 무너진 관계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 결과로(창 3:15),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물을 구원할 임무를 맡기셨으며 사람이 그 일을 신실하게 행하리라고 신뢰하셨다. 사람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면직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류가 타락할 때 잃어버린 것을 복구하기 위해 언제나 일하시며, 타락했으나 회복된 인간을 자신의 도구로 귀하게 사용하신다.

창세기 1-11장에 대한 결론

성경의 처음 몇몇 장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우리를 세우셔서 그분과 연합해 창조를 이어가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셔서 지배권을 행사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그분이 공급해 주신 것을 받아들이며, 그분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하고, 그분의 창조의 한계를 따르도록 하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원, 능력, 공동체를 주셔서 이런 임무를 완수하도록 하셨으며 7일 중 6일 동안 일하는 모범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것을 그분과 그분의 창조물을 향한 사랑 안에서 할 수 있게 자유를 주셨는데, 이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만드신 만물을 위해 일하지 않을 자유도 주신 것이었다. 우리가 영구적으로 손상을 입은 것은, 처음 사람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자 작심한 결과이며 사람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크든 작든 불순종을 선택해 왔다. 결과적으로 우리 일은 덜 생산적이 됐고 더욱 고단해졌으며 만족감이 덜해졌다. 우리 인간관계와 일은 위축됐고 때로는 파괴적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부르셔서 일하 게 하시며 우리를 준비시키시고 우리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 그리 고 많은 사람은 선하고 창조적이고 성취적인 일을 할 기회를 얻어 그들의 필요를 해결하며, 번영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 타락은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 일을 보다 더 필수적이게 만들었을 뿐 그 반대는 아니었다. 비록 크리스천이 가끔 이를 오해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인류의 타락 이후로 물질적인 세상에서 물러나시거나 그분의 관심을 영적인 것에만 국한하지 않으셨다. 어쨌든 물질 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리할 수는 없다. 일은 여전히 하나님의 선물이며, 일에 내재된 인간관계와 한계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비록 그것이 타락 이후의 존재의 상태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됐다 하더라도 말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자기 창조물을 타락의 영향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언제나 일하신다. 창세기 4-11장은 세상과 그 거주민에게 질서를 주고 또다시 질서를 주기 위해 하나님의 권능이 어떻게 역사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창조된 세상의 주권 자시며 살아 있는 만물과 사람의 주인이시다. 그분은 사람 속에 있는 자신의 형상을 계속해서 돌보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도한 권력을 얻으려 하거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족(自足)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인간적 노력이 “하나님과 같이 되도록”(창 3:5) 허용하지는 않으신다.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로 여기고 그분의 지시를 좇아 일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노아 같은 사람은 일하는 중에 복과 풍성함을 경험한다. 권력을 쟁취하고 자기 노력으로 성공을 얻고자 하는 바벨탑 건축자 같은 이는 폭력과 좌절을 만날 것이다. 특히 그 들의 일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으로 변할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창세기 11장까지 나오는 모든 인물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할 것인지 아니면 그분을 거역하면서 일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창조하신 만물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어떻게 전개 될 것인지를 창세기에서 설명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피조물의 일을 포함해 모든 피조 세계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의도하셨던 대로 회복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또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