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4장 — 일의 신학
불의한 방법으로 일하는가(호4:1-10; 요엘2:28-29)
선지자들은 매춘을 일의 한 맥락으로만 보지 않는다. 하나님 언약에 불충하는 불의를 암시하여 표현할 때 “음행”을 쓴다(호 4:7-10). 불의한 수입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상기시키기 위해 아모스는 질이 낮은 제품을 만들고, 무게를 속이며, 취약한 고객들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 여러 속임수를 쓰는 상인들을 고발한다. 그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암 8:5-6).
합법적인 생계 수단이라 해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불의해질 수도 있다. 사진사는 그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나 그 사진의 대상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사진이라면 뭐든지 찍어 주어야만 하는가? 환자가 얼마든지 돈을 지불하겠다고 하면, 의사는 무슨 수술이든지 해 주어야 하는가? 모기지론 중개사는 부당한 어려움을 겪지 않고 대출금을 되갚을 수 있도록 대출자의 능력을 보증해 줄 책임을 져야 하는가? 만일 우리가 하는 일들이 하나님 뜻에 따라 섬기는 것이라면, 위와 같은 질문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일마다 위상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선지자들이 하는 말은 어떤 일이 다른 일들보다 더 경건하다는 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일이 세상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다”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신다(욜 2:29).
일과 예배 (미6:6-8; 암5:21-24; 호4:1-10)
공의는 선지자들이 보았던 대로 단순한 세속의 이슈가 아니다. 미가는 6장 8절에서 공의를 요구한다. 이는 공의가 화려한 종교적 제사보다 더 낫다는 관찰에서 나왔다(미 6:6-7). 호세아와 아모스는 이 요점을 더 확장시킨다. 아모스는 종교적 의식 준수와 윤리적 행동을 연결시키지 않는 것에 반대한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1-24).
호세아는 영적으로 좌초된 상태와 선한 일들 간의 연결점 안으로 우리를 더 깊이 이끌어 간다. 선한 일은 하나님 언약을 향한 신실함에서 우러나오며, 반대로 악한 일은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1-3, 6).
일의 세계는 삶의 영역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말해 주는 구절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가치와 우선순위들을 하나님 언약의 토대 위에 두지 않는다면, 그때 우리의 삶과 일은 윤리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일관성을 잃을 것이다. 일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하면, 예배에서도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