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장 — 일의 신학
야고보서와 일
야고보서는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과 궁핍한 자들을 돕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행동(실천) 중심의 관점’을 보여 준다. 진정한 믿음이 있고 진실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 믿음은 궁핍한 자들을 돕는 다양한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바로 이 관점 덕분에 야고보서가 탁월한 실용적 지침으로 돋보인다.
전체 본문 보기
당신의 믿음은 진짜인가(약 1:1-3)
야고보는 하루하루의 삶과 영적 성장 사이의 깊은 관계를 강조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하나님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고난과 역경들을 우리의 신앙 성장에 특별히 활용하신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일터에서의 문제와같은 “여러 가지 시험”은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지만, 야고보는 특별히 앞서 말한 극심한 고난과 역경들이 “믿음의 시련”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우리 일터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시련으로 이어지는도전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그중 하나는 종교에 대한 반감이다. 각자처한 상황에 따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일터에서 편견, 구직 제한, 해고, 신체적 상해, 죽음에까지 노출될 수 있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압박을 가하지 않더라도, 신자로서의 정체성이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에 신앙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종류의 시련은 윤리적인 것이다. 우리는 도둑질, 사기, 정직하지 못함, 불공정 거래, 내 배를 채우기 위해 또는 내 앞길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행위 등을 통해 믿음을 저버릴 수 있다. 직장생활에서의 실패가 또 다른 시련이 될 수 있는데, 이는 너무 충격이 커 자칫 신앙이 흔들릴 수도 있다. 예컨대 정리해고나 일반적인 해고를 당하고 나면 너무도 황당하여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믿고 의지한 모든 것들을 회의적으로 보게 된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터로 부르셔서 큰 성공을 약속하시지 않았는가’ 혹은 ‘우리가 그분께 충실했으니 성공시켜 주시는 것은 마땅하지 않은가’ 하고 물을 수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결국 믿을 수 없고 심지어 존재하시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하나님이 과연 우리의 필요를 계속 채워주실지 의심할 수도 있다. 일과 관련된 이 모든 도전들이 믿음의 시련이될 수 있다.
일터에서 우리의 믿음이 시련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될까? 인내하라!(약 1:3-4) 야고보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고 말한다(약 1:5). 위기를 넘기면 넘길수록 우리는 단단해지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기쁨을 느낀다.
채워 주시는 하나님 의지하기 (약 1:5-18)
야고보서는 지혜를 논하면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원칙에서 시작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우리가 업무상의 결정, 기회에 대한 평가, 동료나 고객에 대한 신뢰, 자원 투자 등에서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가? 심지어 야고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주실 것을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치 말라’고까지 일러 준다(약 1:6). 즉, 우리의 문제는 일터에서 하나님께 너무 많은 도움을 기대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너무 적게 기대한다는 데 있다(약 1:8).
바로 이 점을 반드시 포착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의심한다면, 당신은 야고보가 말하는 “두 마음”을 품은 자다. 어쩌면 아직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것인지 아닌지를 결단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것은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약 1:8) 것이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기여할 수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약 1:7).
야고보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광대한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져 사는 수신자들이 이미 겪는 시련을 너무나 잘 알았다(약 1:1-2). 그러나 그는 신자의 삶이란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야고보서 1장 9-11절에서 야고보는 이를 경제 영역에 즉각 적용한다. 당신이 부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노력으로 그것을 얻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자기 능력에 의지한다면, 비록 한창 사업을 진행하는 도중일지라도 당신은 이내 쇠진해질 것이다. 반대로 혹 당신이 가난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냉대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도리어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실 것’을 기대하라.
실패나 성공의 원인은 당신이 어쩔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다. 불경기, 기업 매각, 재배치, 흉작, 차별대우, 태풍 피해, 혹은 다른 온갖 요인으로 생계를 위협받게 된 사람들이 그 증인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직장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하리라고 약속하지도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실패하도록 만드시지도 않는다. 오히려 실패와 성공을 모두 다 사용하셔서 악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인내력을 기르길 바라신다. 야고보서 2장 1-8절이 역경의 시기에 하나님을 찾도록 우리에게 당부하는 구절이라면, 9-11절은 성공의 때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되새겨 준다.
비록 야고보가 하나님의 선과 세상의 악을 대비시키기는 해도, 우리는 천사 편에 있고 세상 사람들은 마귀 편에 있다는 식의 상상을 하게 하지는 않는다.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대신 선과 악을 나누는 것은 크리스천의 마음 중심에서 비롯된다고 밝힌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
그는 지금 교우들을 향해 말한다. 이에 따라서 우리는 교회는 선하고 세상 일터는 악하다는 정의를 섣불리 해서는 안 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사기 행각 따위가 벌어지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교회에도 추문이 생기곤 한다. 이처럼 악은 양쪽 영역에 모두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두 영역에서 모두 선을 나타낼 수 있다.
크리스천 공동체는 가난한 자들을 돕는 하나님의 도구 가운데 하나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의 후하고 너그러우심을 직접 경험한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모든 후하고 너그러운 베풂과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약 1:17, NRSV). 이것은 하나님이 곧 우리를 채워 주시는 궁극적 근원이시며, 또한 신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궁핍한 자들을 채워줄 책임이 있다는 두 가지 진리를 확인시켜 준다.
잘 듣는 훈련을 하라 (약1:19-21)
야고보는 ‘경청’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크리스천들은 사람들(약 1:19)과 하나님의(약 1:22-25) 말을 모두 경청해야 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무슨 기술이라도 습득하려는 양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는’(약 1:21) 하나의 길로써 경청해야 옳다.
흥미롭게도 야고보는 성경 말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것까지도 자신의 악을 제거하는 한 수단임을 시사한다. 그는 남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경우에 잘 듣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못하게 막는 오만과 분노를 없애 준다고 말한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약 1:20-21).
달갑지 않은 말들, 곧 거슬리는 말, 비판의 말, 묵살의 말을 남들이 건네면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넘치는 일터에서 분노로 응수하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입지가 더 나빠지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증거를 믿지 못할 것이다. 화를 내거나 직설적인 말로 자신을 방어하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우리의 입지를 지켜야 한다.
이런 조언은 모든 유형의 일과 일터에 적용된다. 경청은 비즈니스 서적에서도 중요한 리더십 기술 가운데 하나다.[1] 사업체들은 고객, 직원, 투자자, 공동체, 주주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를 채워 주려면, 조직체는 자신들이 채워 주길 바라는 그 필요 대상자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옳다. 이 사실은 마치 로마제국이 그랬듯, 곤경과 박해 속에서도 우리의 일터가 하나님의 일을 위한 옥토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2009년 9월 18일에 ‘Harvard Business School Publications’ 웹 사이트(www.harvardbusiness.org)에서 “대인관계 기술”이라는 주제로 검색했더니, 첫 번째 결과가 “사람들 경청하기”였다.
궁핍한 이웃을 위해 일하라(약1:22-28)
위의 진리는 충성된 일의 두 번째 원칙, 곧 궁핍한 이웃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것을 다루게 해 준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이것은 첫 번째 원칙, 곧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남들의 유익을 위해서도 자유롭게 일하게 된다. 반대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서 궁핍한 이웃을 돕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을 진정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야고보는 지적한다. 야고보가 말했듯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다(약 1:27). 신앙은 신뢰를 뜻하며, 신뢰는 행동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께서 여러 소외계층에게 직접 실천해 보이신 모습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야고보는 하나님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특별한 자리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약 2:5; 눅6:20)을, 보물을 “땅에 쌓아” 썩혀 버림에 대한 경고(약 5:1-5; 마 6:19)와 결부시킨다.
이 진리는 우리의 일터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왜냐하면 남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성공적인 일터의 으뜸가는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 일터가 기업이든, 교육의 장이든, 건강 관리든, 행정 공무든, 전문직이든, 비영리직 또는 다른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성공적인 조직체는 그 소비자, 직원, 투자자, 시민, 학생, 고객 또는 다른 주주들의 필요를 채우기 마련이다. 물론 이것이 야고보의 중점 사안은 아니다. 그는 빈민과 약자들의 필요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기는 하되, 그럼에도 여전히 실용적이다.한 조직이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를 채울 때,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것이다.
야고보는 두려움을 계속 직시하고 믿음의 시련을 직접 맞닥뜨리라고 요청한다. 당신이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시련에 직면한다면, 하나님은 그 시련을 통해서 궁핍한 자들을 돌보는 당신의 역량을 배가시켜 주신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되지 말라”(약 1:22).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궁핍한 자들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신을 속이는 거라고 야고보는 풀이한다. 그건 진정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있다면, 아마 당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느라 너무 바쁘기 때문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일한다면, 아마도 하나님이 당신을 돌볼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서이리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아서다. 혹은 야고보가 말하듯,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야고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특별히 다양한 소외계층과 가난한 자들을 실제로 돌보신 것을) 경험했기에 이런 통찰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특별히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그들의 것이라고 가르친 사실(약 2:5; 눅 6:20)이며, 아울러 “이 땅”의 썩어질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약 5:1-5; 마 6:19)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야고보의 암시를 발견할 수있다.
이것은 성공적인 조직의 첫째 조건을 충족시키기 때문에 우리 일에도 직접 적용할 수 있다. 성공적인 조직은 손님, 고용인, 주주, 주민, 학생, 고객과 다른 주주들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야고보는 사실 처음부터 이런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주요대상으로 삼았다. 그래도 이 원칙은 적용할 만하다. 어떤 조직이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를 채워 줄 때가 바로 하나님이 함께 역사할 때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기업의 고객 서비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천들이 ‘기업에게 고객 대접을 받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줄 때 오히려 더 큰 창조력이 필요하며, 하나님의 베푸시는 손길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어떤 크리스천 그룹이 베트남에서 사회 ·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그곳에 가구 공장을 설립했다. 그 공장을 통해 하나님은 가구가 필요한 해외 고객들과 전에 실직자였던 지역 노동자들의 필요를 동시에 채워 주셨다.[1]
이와 비슷한 사례로, 글로리아 닐런드(Gloria Nelund)가 이끄는 트릴링크 글로벌(TriLinc Global)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발도상국 내 창업을 돕는 투자회사다.[2]
크리스천들의 의무는 각자의 직업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 구조와 정치 · 경제적 시스템은 빈민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크리스천들도 이런 구조와 시스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까지, 우리에게는 빈궁한 사람들의 필요뿐만 아니라 부유층과 권력자들의 필요도 채워 줄 책임이 있다.
TOW 프로젝트 팀 편집장인 윌리엄 메신저(William Messanger)가 2010년 7월 29일 홍콩에서 인터뷰한 내용이다. 본인 요청으로 실명은 밝히지 않겠다
Al Erisman, “Gloria Nelund: Defining Success in the Financial World,” Ethix 80 (March/April 2012), available at http://ethix.org/category/archives/issue-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