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3장 — 일의 신학
혀를 길들이라(약3:1-12)
야고보는 ‘듣기’에 대한 실천 지침을(약 1:19-21) ‘말하기’에도 적용한다. 야고보서 3장 1-12절에서 그는 자못 맹렬한 단어를 사용한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6, 8). 또 구약 잠언 말씀에서 혀가 생명을 주관하는 권세를 가졌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며(그 예로 잠 12:18 -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혀가 죽음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잘 알았다.
교회에서 가혹한 말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주의하지 않는 크리스천들도 많다. 일터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부주의를 범하지는 않는가?(약 3:9; 창 1:26-27) 직장 내 정수기 옆에 모여서 나누는 수다, 뒷담화, 희롱, 경쟁자에 대한 경멸과 같은 일로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또 상처를 안 입혀 본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이기적 욕망을 해결하는 길(약3:13-4:12)
야고보서 3장 14절 - 4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의존의 원칙과 궁핍한 자들을 섬기는 원칙을 기술한다. 늘 그렇듯이 야고보는 순서를 바꾸어서 섬김을 먼저 논하고, 신뢰는 나중에 다루었다. 여기서 야고보는 먼저 이기적 욕망(selfish ambition)을 꾸짖는 것으로 시작해, 뒤이어 하나님께 대한 복종을 권고한다.
이기적 욕망
이기적 욕망은 화평하게 하는 일을 가로막는다(약3:16-4:11). 이기적 욕망은 다른 사람을 돕는 일과 반대 개념이다. 야고보서 3장 16절 말씀에 그것을 적절하게 요약했다. “시기와 이기적인 욕망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일이 있을 뿐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야고보는 이런 이기적 욕망을 극복하는 실질적 방안으로 화평하게 하는 일(peacemaking)을 강조한다.[1]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3:18). 그 전형적인 방법으로 곡식을 수확하는 경우를 들어 강조하면서 일터를 암시하고, 몇 가지 화평하게 하는 일들을 나열한다. 피해를 입은 자들을 위해 슬퍼하는 것(약 4:9), 스스로 낮아지는 것(약 4:10), 비방과 기소와 판단을 자제하는 것(약 4:11), 그리고 자비와 진실(약 3:17)이다. 직장에서 일하는 크리스천들은 일터에서 이 모든 것을 실천할 수 있다.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이기적 욕망을 극복할 수 있다(약4:2-5). 이기적 욕망은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도 다툼과 싸움을 일으킨다. 야고보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규명한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2-3).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섬기기보다 자신의 기쁨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가지 원칙을 완전한 하나로 묶는다. 야고보는 하나님 없이 부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유혹을 ‘세상과의 간음’이라는 말로 비유한다(약 4:4-5).[2]
산상수훈을 다시 상기시킨다(마 5:9).
야고보는 구약 예언서에서 간음의 비유를 가져와, 하나님 대용품으로 자기 기쁨과 세상의 부를 추구하는 것을 종종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