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7장 — 일의 신학
정복 (수1-12장)
여호수아서는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의 재출발과 하나님의 임재로 시작한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수 1:2-4).
앞으로 우리가 살펴볼 여호수아, 땅, 하나님의 임재는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땅 (수2-12장)
여호수아서와 사사기 모두에서 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주요한 특징이 될 만큼 중요하다. “그 땅이 …… 평온(rest, NIV)하였더라”(삿 3:11, 30 등). 여호수아서의 주된 활동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던 땅을 정복하는 것이다(수 2:24 1:6).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공연해 나가시는 드라마의 중심 무대이며, 하나님이 그 나라에 하신 약속의 핵심이다. 모세의 율법조차 그 땅과 뗄 수 없게 얽혀 있다. 율법의 주요 조항 중 많은 것이 그 땅 안에서 이스라엘에게 의미 있으며, 그 언약 아래서 가해지는 가장 무거운 벌이 그 땅에서 쫓겨나는 것이었다.
[내가] 그 땅을 황무하게 하리니 거기 거주하는 너희의 원수들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놀랄 것이며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레 26:32-33).
그 땅, 우리가 밟고 서 있는 흙은 우리 실존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심지어 바다로 나가거나 하늘로 나가는 사람도 대부분의 시간은 땅에서 보낸다.) 자기 백성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실체 없는 추상이 아니라, 그분의 의지가 실현되고, 그분의 임재가 보이는 아주 명확한 장소다. 매 순간 우리가 있는 그 장소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요 우리가 그분의 일을 해 나가야 하는 유일한 곳이다. 창조는 선 아니면 악이 거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실제 창조물들과 문화 안에서 선하게 일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함으로써 가나안 땅을 거룩한 땅으로 만들라는 사명을 받았다.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에 합당하게 일함으로써 우리 일터를 거룩하게 만들라는 똑같은 사명을 받았다.
하나님은 땅의 정복을 허락하시는가 (수6-12장)
이스라엘의 풍성한 경제가 가나안 족속을 그 땅에서 쫓아내는 것에 기반을 뒀다는 사실은 조금은 불편한 질문을 갖게 한다. 하나님은 땅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정복을 인정해 주시는 걸까? 하나님은 종족 전쟁을 용인하시는 걸까? 이스라엘 족속이 가나안 족속보다 그 땅을 차지할 자격이 더 있었다는 말인가? 정복에 대한 자세한 신학적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1] 그렇게 야기된 무수한 질문에 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몇 가지 명심할 것은 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적해 소집된 세력이 방대하고 대단히 강하던 고대 근동의 무법천지 같은 곳에서 자기 백성 만나기를 의도하셨다.
2. 군사 정복이라는 일이 여호수아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일이지만, 그것은 그 뒤에 나오는 다른 모든 일의 모델로 제시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서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 일과 리더십의 면면을 찾아볼 수 있으나, 사람을 땅에서 쫓아내는 것은 그런 적용점의 하나가 아니다.
3.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라는 명령은(수 1:1-5) 대단히 특수한 명령이지 하나님이 이스라엘 족속이나 다른 인종에게 하시는 일반적인 성질의 명령은 아니다.
4. 가나안 족속의 멸절은 악명 높았던 그들의 사악한 생활방식 때문이었다. 가나안 족속은 어린아이 공양, 신접, 무당 및 강신술 등에 참여했는데, 그것은 온 세상을 축복하는 통로가 되길 원하셨던 하나님이 택한 백성(신 18:10-12) 가운데서는 용납하실 수 없던 것이었다. 그 땅은 우상숭배가 근절되어야 했다. 그래야만 온 세상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참되신 한 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2]
5. 라합같이 회개한 가나안 사람은(수 2:1-21 6:22-26) 살아남았다. 실제로는 가나안 족속이 완전히 멸절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6.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할 자격이 더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확실하게 답할 수 있을 만큼 이스라엘도 결국 가나안 족속 못지않게 사악한 행위를 그대로 했다. 가나안 족속처럼 이스라엘 족속도 다른 나라의 정복으로 그 땅에서 쫓겨나는 고난을 겪을 것이며, 성경은 이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대상이다(암 3:1-2).
7. 힘에 대한 완전한 크리스천 윤리는 여호수아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 전부를 구체화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부활에서 찾아야 한다. 힘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 예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여러 나라를 정복하시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목숨을 내주신 데서(막 10:42-45 요 10:11-18) 찾아볼 수 있다. 힘에 대한 성경적 윤리는 궁극적으로는 희생과 겸손을 바탕으로 한다.
정복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책을 보라. C. S. Cowles, Eugene Merrill, Daniel L. Gard, and Tremper Longman III, Stanley N. Gundry, ed., Show Them No Mercy: 4 Views on God and Canaanite Genocide (Grand Rapids: Zondervan, 2003).
J. Gordon McConville and Stephen N. Williams, Joshua: The Two Horizons OT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2010), 113-114쪽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