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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iticus 6

레위기 6장 — 일의 신학

이스라엘 희생제사 제도 (레1–10장)

레위기는 이스라엘의 희생제사 제도에 대한 규정과 함께 시작되는데, 제사 제도를 바라보는 데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첫째는 희생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에 참여하는 평신도의 관점이다(1-5장). 둘째는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의 관점이다(6-7장). 이어서 어떻게 제사장이 임직을 받으며 성막에서 사역을 시작하는지를 배울 것이다(8-9장). 그다음 하나님이 예전(禮典) 책임과 관련된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인해 나답과 아비후라는 제사장을 죽이신 사건에 비춰서, 제사장에 대한 추가 규정이 나온다(10장). 이 자료가 현대 일의 세계와는 무관한 공허한 예전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업장과 일터에서 직면하는 여러 가지 난제들을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알아봐야 한다.

공동체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레1-10장)

희생제사의 목적은 때때로 발생하는 정결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희생제물을 ‘드린다’는 히브리어 동사는 문자대로 하면 ‘(그것을) 가까이 가지고 오다’라는 의미다. 희생제물을 성소 가까이로 가지고 오려면 예배자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예배자의 개인 비행의 정도는 주요 사항이 아니었다. 불결로 인한 오염은 고의적이든 아니든 간에 죄를 저지른 비교적 소수인 사람과 그런 악행이 그들 중에서 횡행하도록 허용한 침묵하는 다수로 구성된 전체 공동체에 영향을 미쳤다. 사회를 부패시킨 책임을 백성 전체가 집단적으로 져야 했으며, 국가 파멸에 준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소를 벗어난 것에 합당한 이유를 하나님께 아뢰어야 했다.[1]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예수님을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여전한 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신다는 건 참으로 중차대한 문제다.

직장에서 크리스천은 세상이 도대체 무엇을 ‘성공’이라고 정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거룩한 조언을 구하는 것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그분이 우리 삶 가운데 거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성공에서 거룩으로 바뀔 것이다. 이것은 일터에서 종교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우리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선 일은 우리 노동의 열매를 향유하는 한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스라엘이 드린 희생제물이 여호와께 드려진 “향기로운 제물”(레 1:9, 16)이었듯이, 바울은 크리스천에게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골 1:10)라고 일렀는데 이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직장 내에서 두루 다니며 ‘어떻게 하면 이 직장이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임재하실 장소가 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겠는가? 우리가 몸담은 직장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것 중에서 가장 선한 것이 무엇인지 표현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가? 그곳에는 모든 이를 공정하게 대우하는 특징이 있는가? 근로자들을 해(harm)로부터 보호해 주는가? 우리의 직장은 지역사회를 더욱 충만하게 번창하도록 하는데 도움될 물자와 용역을 생산해내는가?

Jacob Milgrom, Leviticus: A Book of Ritual and Ethics, A Continental Commentar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4), 15쪽.

공동체 전체를 포용하는 태도 (레1-10장)

레위기는 가끔 서로 대립하는 두 집단, 즉 제사장과 백성의 관점을 하나로 묶는다. 레위기의 목적은 하나님의 전체 백성을 그들의 신분상 차이에 상관없이 하나로 묶는 것이다. 오늘날 직장에서, 크리스천은 재물이나 직위와 상관없이 사람 사이의 반목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우리는 권력 남용이 출세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처럼 보일 경우 그것을 용인하는가? 혹은 잡담이나 빈정거림으로 직장 동료를 판단하는 데 일조하는가? 아니면 편향되지 않은 체계를 통해 고충을 해소하려고 애쓰는가? 직장에서의 따돌림과 편애로 발생하는 해악에 관심을 가지는가? 긍정적인 문화를 조장하고 다양성을 촉진하며 건전한 조직을 건설해 나가는가? 개방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은밀한 정치 공작을 최소화하고 최고의 성과를 얻으려고 노력하는가? 직장 내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고 고려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의견이 실천에 옮겨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가? 우리는 지속 가능한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가?

이스라엘의 희생제사 제도는 사람의 종교적인 필요를 다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심리적이며 정서적인 필요도 다루었다. 따라서 모든 사람과 공동체 전체를 포용했다. 크리스천들은 사업이란 본질상 대개 종교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사람의 존재를 그들의 직업이나 제품과 동등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우리 다짐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로 감싸 안으셨으므로 우리는 모두를 배려하고 모두에게 공정하고 관대해야 할 이유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더 많다(눅 7:47 엡 4:32 골 3:13).

속건제의 의미 (레6:1-7)

이스라엘의 희생제사 제도에 속한 각각의 제사는 그 나름대로 다 필요성이 있으나, 속건제(배상 제사)는 그 특성으로 보건대 일의 세계와 특히 관련 있다. 레위기에 나오는 속건제는 회개에 대한 성경적 교리의 기원이 된다 (민수기 5장 5-10절이 그 직접적인 병행 구절이다).[1] 레위기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맡겨 둔 물건이나 전당물과 관련해서 다른 사람을 속였을 때, 도둑질이나 착취를 저지르고도 사실을 부인했을 때, 남이 잃은 물건을 줍고도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 맹세했을 때 하나님은 언제나 제사를 요구하셨다(레 6:2-3). 그것은 법원에서 부과한 형벌이 아니라 범과를 저지른 후 무사히 지내오다가 나중에 자기 범과를 ‘깨닫자’ 죄의식을 느낀 자가 바치는 배상금이었다(레 6:4, 5). 당국에 의한 기소가 아니라 죄지은 자의 회개가 속건제의 기초가 됐다.

종종 그런 죄가 상거래나 다른 업무적인 상황에서 저질러졌을 것이다. 속건제는 가책을 느낀 죄인에게 그릇되게 취한 것에다가 20퍼센트를 추가해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레 6:4-5). 인간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죄인은 제사장에게 제물을 가져가 제사장의 제사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었다(레 6:6-7).

속건제는 재정 오용으로 파괴된 대인관계를 치유하는 것과 관련된 몇 가지 원칙을 특히 강조한다.

1. 사과하는 것만으로는 그릇된 관계를 바로잡는 데 충분하지 못했으며 취한 것을 전부 반환하는 것도 충분하지 못했다. 따라서 오늘날 징벌에 의한 손해 배상 개념과 유사한 것이 추가됐다. 그러나 속건제를 드릴 때는 법원에서 부과하는 징벌에 의한 손해 배상과는 다르게 제물을 드리는 자가 능동적으로 해당 손실에 참여함으로써 피해자가 입은 고통에 동참하게 되어 있었다.

2. 다른 사람에게 끼친 피해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모든 사항은 피해자에게만 공평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해자에게도 유익했다. 속건제는 자기 범죄와 그 파괴적인 효과를 인식한 사람의 양심을 사로잡는 고통을 인정했다. 그러므로 속건제에서는 죄를 진 사람이 그 문제를 충분하고도 완벽하게 처리해 종결짓고 평안을 얻을 수 있도록 방책을 마련해 놓았다. 이 제사는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 보이는 조치였다. 고통과 상처가 중화됨으로써 곪거나 폭발해 보다 더 심각한 범죄가 되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피해자(또는 피해자의 가족)로 하여금 그 문제에 대해 보상을 받기 위해 스스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없애는 조치기도 했다.

3. 십자가 위에서 이룬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이 율법의 요구의 핵심이며(레 19:18 롬 13:9), 보상해 준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에 필수적인 표현이다. 예수님은 율법이 요구한 것보다 더 많이 보상해 준 부요한 세리장 삭개오에게 구원을 허락하심으로써, 용서가 무엇인지를 이해한 사람의 실례로 그를 내세우셨다(눅 19:1-10).

4. 마태복음 5장 23-24절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도 사람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필수 선결 조건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는 것은 보상을 초월하는 구속의 단계지만, 그것이 보상을 대치할 수는 없다.

속건제는 하나님이 우리의 비행으로 손해를 입거나 피해를 당한 사람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용서의 권한을 행사하지는 않으실 것임을 강력하게 보여 주는 제도였다. 하나님은 우리가 끼친 손해와 손상을 보상해 주기 위해 값싼 대체물을 바침으로써, 심리적인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Jacob Milgrom, Leviticus 1-16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8), 3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