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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e 1

누가복음 1장 — 일의 신학

누가복음 서론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오시는 왕이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분의 통치는 아담과 하와와 함께 시작된 인류의 타락과, 반역을 따르는 바람에 어긋나 버린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현재는 하나님의 권세에 반하는 반역자들이 세상의 상당 부분을 다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이며 (일을 포함한) 나날의 삶의 내용이 하나님 나라의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통치, 생산성, 공의, 문화에 아주 깊이 신경을 쓰신다.

가장 낮아지심으로 가장 높아지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왕이시며 모델이시다. 예수님을 왕으로 지칭하는 것이 크리스천에겐 익숙하지만, 우리 대부분에게 이 호칭은 기본적으로 실제 왕으로 언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소 종교적인 호칭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예수님이 왕이라고 말은 하지만, 흔히 그분을 제사장들의 왕으로 여긴다. 우리는 그분을 종교의 창시자로 생각하지만, 누가는 그분이 하나의 새로운 영역으로서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다시 세우는 분이라는 걸 증명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는, 심지어 사탄과 그의 앞잡이들도 그분의 통치와(눅 8:32) 능력에 도전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예수님이 잠시 하늘로 돌아가신 뒤, 예수님이 보이셨던 본은 그분을 대신해 그 나라의 시민들이 어떻게 자신의 힘과 권한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일을 포함해)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에는 일에도 적용할 점이 폭넓게 많다. 누가는 우리가 앞으로 논의하게 될 부와 권력, 경제, 정부, 갈등, 리더십, 생산성 및 공급, 투자 등 일과 관련된 주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때로는 본문 순서를 벗어나 같은 주제를 다루는 다른 본문과 함께 보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누가가 쓴 본문 순서를 따라서 살펴볼 것이다. 누가복음이 얼마나 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질병을 고치는 일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예수님 시대에도 사람을 고쳐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중요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13개의 이야기를 통해 기록되었다(눅 4:31-37, 38-44; 5:12-16, 17-26; 7:1-10, 11-17, 21; 8:26-39, 40-56; 9:37-45; 13:10-17; 17:11-19; 18:35-43).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왕의 책임을 맡으실 때 그리하시겠다고 선언하신 그대로,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건강을 가져다주셨다. 뿐만 아니라 그 치료들은 더 이상 질병 없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었다(계 21:4).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라고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능력도 덧입혀 주셨다.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님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두 단락에서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고치라고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눅 9:1-6; 10:9). 그러나 모든 병 고침은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은 이를 아름답게 요약했다. “예수님의 병 고침은 자연계에서의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다. 그것들이야말로 비자연적이며 귀신 들려 있고 상처 입은 세계에서 진실로 ‘자연적인’ 것이다.” [4]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시 올바르게 되돌리고 계신다는 하나의 가시적인 신호다.

복음서에 보고된 치유 사건은 일반적으로 기적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을 회복시키려는 크리스천들의 비(非)기적적인 노력 역시, 생명을 주시려는 예수님 사역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구속에 병 고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주목하지 못하는 건 실수다. 이 일은 의사, 간호사, 기술자, 보험 산정가, 병원 주차장 관리원 및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의료업 종사자들에 의해 매일매일 이루어진다. 누가도 의사였다 (골 4:14). 그래서 우리는 그가 병 고치는 데 특별한 관심이 있었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병 고치는 직업이 천부적으로 다른 직업보다 더 뛰어나다고 추론하는 건 잘못이다.

Jürgen Moltmann The Way of Jesus Christ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5), 69쪽.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부富의 문제

마지막 두 단락은 공급하심이라는 주제에서 부(wealth)라는 주제로 옮겨 간다. 예수님은 부에 대해 전혀 반대하지는 않으셨지만, 부를 의혹의 눈으로 보셨다. 시장 경제는 산출, 교환, 개인이 소유한 부의 축적에 기초한다. 이런 실상이 수많은 사회 속에 너무도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개인적인 부의 교환과 축적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봤던 대로, 예수님은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삼는 것을 옳게 보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랬듯이 한 개인의 일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의 표명이어야 하며, 일과 관련된 힘이나 권세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얻는 데만 쓰려고 하지 말아야 하듯 부 역시 이웃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용되어야만 한다. 누가복음의 후속편인 사도행전에서 일과 연관된 자료가 훨씬 더 많이 다루어지긴 하지만, 누가복음에서도 부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지배적인 가설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한다.

크리스천의 권력과 리더십

왕으로서 예수님은 하나님 왕국의 지도자시다. 그분은 누가복음에 기록된 여러 방법으로 권력을 행사하신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이따금 마치 리더십과 권력이라는 두 가지가 천부적으로 악한 것이라도 되는 양 행사하기를 주저한다. 예수님은 다르게 가르치신다. 크리스천은 이끌고 힘을 행사하라고 부름을 받았으나, 타락한 세상의 권력과는 달리 그것을 사리사욕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

누가복음의 결론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다. 세상의 진짜 왕이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충성을 바쳐야하는 통치자인 동시에, 우리 삶에 주어진 모든 권세를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본을 보여 주신 모델이다.

우리의 통치자로서 그분은 우리에게 두 부분으로 된 지상대계명을 주신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7-28). 어떤 의미에서 이 계명은 전혀 새로운 건 아니다. 모세 율법을 그냥 요약한 것이다. 새로운 것은 이 율법에 토대를 둔 그 나라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심으로써 출범되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인류가 이 나라에서 살도록 하는 게 하나님 의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줄곧, 그렇게 하지 않고 어둠과 악의 나라에서 살아왔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 땅을 하나님 나라로 되찾아서 아직 어둠의 나라가 상당히 그 힘을 발휘하긴 하지만, 그분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창조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 나라의 시민권을 얻은 사람들이 꼭 해야 할 응답은 그분의 나라의 방식에 따라 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의 모델로서 예수님은 이 목적과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은 치유, 선포, 정의, 권력, 리더십, 생산성과 공급, 투자, 정부, 너그러움, 환대 같은 과업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그분은 우리 각자의 구체적인 소명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영을 보내 주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분은 우리더러 다른 사람을 위해 공급해 주라고 명령하시는데, 그로써 일반적으로 우리 대신 다른 사람이 일하는 형태를 통해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공급하심이 이루어질 것을 암시하신다.

예수님은 부를 통해 자급자족을 추구하려는 함정에 빠지지 말것을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그런 함정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의 부를 하나님과의 관계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더 넓혀 가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관계 안에서 갈등이 유발될 때, 예수님은 그런 갈등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서 정의와 화해에 이르게 해야하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들의 종으로 일하는 걸 의미한다고 가르치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자기희생은 섬기는 리더십의 궁극적인 모델이다. 하나님 나라의 보좌에 오르신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이웃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이 영생을 사는 한길이라는걸 확실히 보여 준다.

일터에도 계신 하나님 (눅1, 2 및 4장)

일터에 찾아온 가브리엘 천사 눅 1:8-25

누가복음은 일터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여호와가 일터에 나타나신 오랜 이야기의(창 2:19-20; 출 3:1-5) 연장이다. 제사장이었던 사가랴는 자기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근무날, 즉 예루살렘 성전 성소에서 성전 업무를 수행하도록 선발된 바로 그날에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는다(눅 1:8-11). 우리 중에는 성전을 일터로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곳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짐승도 잡고, 요리도 하고, 청소하고, 회계를 보고, 그 외에도 많은 일에 종사했다. 당시 성전은 단순한 종교 중심지가 아니라, 유대인의 경제생활 및 사회생활의 중심지였다. 사가랴는 여호와 하나님과 만난 뒤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증거하기 전까지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일상 한복판을 뚫고 들어오시다 눅 2:8-20

일터에서 하나님을 만난 또 다른 만남이 성전에서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다. 들판에서 양 떼를 돌보던 한 무리의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들이 방문한다(눅 2:9). 당시 목자들은 대개 평판이 좋지 않았고, 그들을 깔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 그들을 돌아보셨다. 제사장 사가랴를 방문하셨던 때처럼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목자들의 일을 중단시키셨다. 누가는 여호와와 만나는 일을 주일, 수련회, 또는 선교 여행 때로 미루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휘젓는다. 하나님은 어느 순간에든 친히 나타나실 수 있다. 마치 롯이 살던 시대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지은 것이” 그들의 성읍에 닥쳐오던 심판에 눈멀게 했듯이(눅 17:28-30), 하루하루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은 우리의 영적 감각을 무디게 할 수 있다.[1]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심과 영광을 지니시고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의 한복판으로 뚫고 들어오실 수 있다.

왕이신 예수님 눅 1:26-56; 4:14-22

만약 두 일터의 한복판에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그분의 계획을 선언하는 것이 이상해 보인다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예수님의 직무설명서와 함께 소개하는 건 더더욱 이상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그녀가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할 때, 분명 하나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이렇게 예수님을 소개하신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우리가 예수님의 직업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누가복음에 의하면 왕 되심은 틀림없이 그분의 일이었다. 왕으로서의 그분의 일은 더 자세하게 기술된다.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교만한 자를 흩으시며, 통치자들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며, 가진 것이 없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 주시고, 부자를 빈손으로 보내시며,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눅 1:51-55) 등이다. 흔히 마리아의 찬가로 불리는 이 유명한 구절들은 예수님을 정치, 경제, 어쩌면 군사 권력까지 행사하는 왕으로 그린다. 타락한 세상의 부패한 왕들과는 달리, 그분은 자신의 권력을 가장 희생되기 쉬운 자기 신하들을 위해 행사하신다. 그분은 자기 왕조를 세울 때 권력자들과 뒤가 든든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신다. 자기 백성을 압제하거나 자신의 사치스런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세금을 거두지 않으신다. 땅이 모든 백성을 위해 좋은 것들을 내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며, 악함을 회개하는 자에겐 긍휼을 베풀어 주는 올바른 통치가 이루어지는 영역을 세워 나가신다. 그분은 이스라엘에 한 번도 없었던 진정 위대한 왕이시다.

나중에 예수님은 이사야서 61장 1-2절을 자신에게 적용하시면서 이 직무설명서를 확증하신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이것은 정치권과 정부가 해야 할 과업이다. 따라서 누가복음에서는 적어도 예수님의 직업이 오늘날의 목회적인 직업이나 종교적인 직업보다는 정치인의 일에 훨씬 더 가깝다.[2] 예수님은 제사장과,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그들이 하는 역할을 대단히 존중하셨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을 제사장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않으셨다(눅 5:14; 17:14).

예수님이 스스로 주장하신 과업들은 궁핍한 자들에게 유익을 준다. 타락한 세상의 통치자들과 달리 그분은 가난한 자들, 갇힌 자들, 눈먼 자들, 압제당하는 자들, 빚에 허덕이는 자들(주의 은혜의 해에는 그들의 땅이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 레 25:8-13) 편에서 다스리신다. 물론 예수님의 관심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만을 위한 건 아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그분은 모든 상황, 모든 처지의 사람을 돌보신다. 그러나 그분이 특히 가난한 자들과 고난받는 자들, 힘없는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셨다는 것은 다른 통치자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다.

비유에 나오는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이 초청을 거절한 까닭은, 최근에 산 자기 밭(눅 14:18)과 소(눅 14:19)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라. 그들은 일과 일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발견되도록 자신들을 열어 놓는 대신, 하나님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일을 활용했다.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부르는 책들, 즉 에베소서(4:15; 5:23)와 골로새서(1:18)조차도 그분을 “만물 위의 머리”(엡 1:22, NIV),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골 2:10)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국가의 수장이시며, 만물의 머리시다. 또한 세상의 구속이 완전히 이루어졌을 때, 즉 교회가 그 특별한 일부가 될 때도 그렇게 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