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장 — 일의 신학
두 나라의 충돌 속에서 (마 11-17장)
마태복음을 읽어 보면, 예수님의 메시지와 활동에 대한 반발이 점점 더 강해지는 걸 볼 수 있다. 그것은 종교 지도자들이 그분의 활동을 중단시키려는 결정을 내리는 마태복음 12장 14절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한다. 이것은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예고해 주는 지점이요, 그 이야기가 가리키는 마지막, 즉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는 것의 시발점이 된다. 자기 앞에 어떤 일이 놓여 있는지를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만약 우리가 주님의 멍에를 메고 우리 일을 한다면, 우리는 만족감도 찾고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도 경험할 것이다.[14] 하나님이 아담에게 에덴 동산에서 할 일을 주셨을 때 그 일은 쉬웠고,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그 짐은 가벼웠다. 최초의 인간 부부가 자신의 창조주에게 반역했을 때, 일의 성격이 가시와 엉겅퀴에 맞서야 하는 힘든 노동으로 바뀌었다(창 3장).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안식을 약속해 주시며, 우리더러 예수님께 와서 그분의 멍에를 메라고 부르고 계신다. [멍에를 메고 하는 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일하는 크리스천을 위한 서신서 · 요한계시록》 3장의 “고후 6:14-18” 부분을 보라.]
Frederick Dale Bruner, The Christbook, Matthew 1-12, Matthew: A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2007), 537-540쪽.
납세 문제 (마17:24-27과 22:15-22)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인 성전과 로마에 있는 이방 정부 두 곳에 다 세금을 냈다. 이런 세금 납부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를 보여 주는 두 가지 경우를 마태는 기록한다. 첫 번째 사건은 마태복음 17장 24-27절에 기록되어 있다. 거기서 성전세 수납원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시는지 물었다. 둘의 대화를 알고 계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라고 물으신다(마 17:25). 베드로는 “타인에게서니이다”라고 대답한다(마 17:26).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마 17:26-27).
로마에 세금을 납부하는 문제와 관련된 두 번째 사건은 마태복음 22장 15-22절에 나온다. 여기서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 싶어서 이렇게 묻는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의도를 아시고 폐부를 찌르는 질문으로 답하신다.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마 22:18-19). 그들이 예수님께 데나리온 하나를 드리자 그분은 이렇게 물으셨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마 22:20). 그들은 “황제의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예수님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대화를 마무리하신다(마 22:21).
우리의 진짜 시민권은 하나님 나라에 있으며, 우리는 우리의 자원을 하나님의 목적에 바친다. 그러나 이 땅의 권력자에게도 줄 만큼은 줘야 한다. 세금 납부는 어떤 문명사회에서든 우리가 제공받는 사회서비스를 위해 시민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기본 책임이다. 그런 공공서비스에는 긴급 대응 업무(경찰, 소방관, 의료인 등)는 물론, 사법체계의 확립이나, 영세민이나 노인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포함된다. 로마제국은 일반 평민에게 줄 혜택을 주된 목적으로 조세 제도를 운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도로나 용수 공급, 치안, 때로는 빈민 구제 등이 제공됐다. 우리 정부가 제공해 주는 봉사의 유형이나 범위에 우리가 항상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내는 세금이 우리 개인의 보호는 물론,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들을 돕는 데 꼭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부의 모든 활동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건 아니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는 의무를 경멸하지 말 것을 요청하신다(롬 13:1-10; 살전 4:11-12).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세금 납부는 원칙의 문제로서, 우리가 납부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가능한 한 우리는 어둠에 빛을 비추는 삶을 살면서도(마 5:13-16; 빌 2:15),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살아야 한다(롬 12:18; 히 12:14; 벧전 2:12). 직장에서 일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세금 납부를 거부해서 하나님 나라를 수치스럽게 하는 것은 평화롭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이것은 일에 직접 적용된다. 직장들은 세금뿐 아니라 법과 권력기관에 복종해야 한다. 1세기 로마 정부가 그랬듯이 기독교인의 목적이나 윤리를 위반하는 법이나 규례를 가진 정부도 있다. 정부나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이 뇌물을 요구할 수도 있고, 비윤리적인 규칙이나 규제를 가하기도 하며, 사람들을 고난과 불의로 몰아넣거나,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목적에 세금을 쓸 수도 있다. 세금 문제에서 그러셨듯이, 예수님은 이런 모든 남용에 일일이 다 저항하라고 요구하진 않으신다. 우리는 적국에 있는 스파이나 게릴라 같은 사람들이다. 적국의 모든 요새에서 전투를 벌이느라 꼼짝달싹 못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우리는 전략적으로 행동하고, 항상 무엇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가장 크게 확장시킬지를 물으며 행동해야 한다. 당연히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착취하는 행위에는 절대 참여해서는 안 된다. (이 주제도 이 책 3장의 “눅 19:1-10; 20:20-16” 부분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