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장 — 일의 신학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가기 (마18-25)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마태복음 18장-25장에서 예수님은 그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보여 주신다. 많은 경우 이 모습들은 특별히 일에 적용된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 (마20:1-16)
이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이다. 포도원 주인이 하루 중 다양한 시간에 품꾼들을 고용한다. 아침 6시에 고용된 사람들은 온종일 일을 하지만, 오후 5시에 고용된 사람들은 딱 한 시간만 일한다. 그러나 주인은 모든 사람에게 하루 일당(한 데나리온)을 지급한다. 일한 시간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임금을 받았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하기 위해, 주인은 자기 방식대로 해 나간다. 당연히 맨 처음 고용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루 종일 일했는데도 늦게 일을 시작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받지 못했다고 불평한다.
주인이 그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3, 15-16).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 13:3-9; 18-23)와는 달리, 여기서 예수님은 명확하게 해석해 주지 않으신다. 그 결과 학자들은 많은 해석을 내놓았다.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일꾼들이고 관리자들이라서, 어떤 학자들은 이 비유가 일에 대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경우 그 비유는 ‘네 월급을 다른 사람의 월급하고 비교하지 말라’거나, ‘혹 다른 사람이 너와 비슷한 일을 하는데, 월급을 더 받거나 일을 덜 한다고 불평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이 내용을 직장인에게 아주 좋은 관습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버젓한 급여를 받는다면, 왜 당신은 다른 이들이 더 많이 받는다고 해서 굳이 그렇게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가?’ 그러나 비유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불공정한 근로나 노동착취 관행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어떤 근로자들은 인종이나 성별, 이주민 신분이라는 정당치 못한 이유 때문에 낮은 급여를 받는다. 우리나 다른 근로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만족해야 한다는 게 과연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였을까?
더욱이 이것은 근로 시간과는 상관없이 급여를 지급하는 의문스런 사업 관행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꾼들이 모두 오후 5시나 돼서야 인력시장에 나오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하는 건 아닐까? 모든 사람의 임금을 공개하는 것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영역에 비밀스럽게 쳐진 커튼을 확 걷어 젖힌다. 그러나 한 시간만 일하고도 똑같은 임금 받는 걸 온종일 일한 사람한테 보여 주는 게 과연 현명한 생각일까? 그것은 마치 노동 분규를 조장할 목적이 있는 듯 보인다. 이 비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하지 않은 일에 임금을 주는 건, 사업 성공을 위한 비결은 아닐 것 같다. 예수님이 정말로 이런 임금 지급 관행을 옹호하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비유는 ‘실제 일’에 관한 메시지가 아닐 수 있다. 본문의 문맥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이들, 예를 들면 법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권리도 소유하지 못하는 어린이들(마 19:14)에 관해 깜짝 놀랄 예를 보여 주신다. 예수님은 그 나라가 부자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적어도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속해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마 19:23-26). 그 나라는 그분을 따른 자들, 곧 어떤 경우엔 손해를 보면서도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속해 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30). 이 비유 바로 다음에는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라는 똑같은 내용의 또 다른 끝말이 나온다. 이는 곧 이 이야기가, 누가 그 나라에 속해 있느냐 하는 논의의 연장선 위에 있음을 뜻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 일이나 행위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후하심에 의해 얻어진다.
그 비유가 하나님 나라에서의 하나님의 후하심에 대한 메시지라는걸 이해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비유가 어떻게 일에 적용되는지 여전히 의문을 가질 것이다. 당신이 공정한 월급을 받고 있다면, 월급에 만족하라는 충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만약 다른 근로자가 예상치도 않은 상여금을 받았다면 불평할 게 아니라 도리어 은혜를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거기엔 또 폭넓게 적용할 점도 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주인은 모든 일꾼이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지급했다는 점이다.[15] 예수님 당시의 사회 상황은 많은 소규모 농부들이 로마에 세금을 내기 위해 진 빚 때문에 자기 땅을 내놓아야 했다. 이것은 땅에서 일하는 사람을 그 땅에서 몰아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었지만(레25:8-13), 로마인에겐 당연히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 결과 상당수의 실업자들이 매일 아침 모여들었고, 그날의 일당을 벌 수 있게 누군가 자신을 고용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선택을 받는 사람보다 못 받는 사람이 대다수였고, 실업자가 넘쳤으며, 하루 운 좋게 일했다고 해도 다음 날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오후 5시까지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날 하루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을 벌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그 포도원 주인은 그들에게도 하루치 임금을 다 지불해 줬다.
만약 포도원 주인이 하나님을 나타낸다면,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도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한 일을 찾게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마 10:10)라고 말씀하신 것을 봤다. 이것은 이 땅의 고용주들이 반드시 모든 피고용인의 필요를 채워 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땅의 고용주들은 하나님이 아니다. 오히려 이 비유는 적절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두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일을 찾게 될 거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또한 이 비유는 오늘날 사회에서 노동시장의 구조를 형성하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주는 하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바로 지금 하나님 나라의 이런 측면을 확장하기 위해 크리스천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1데나리온은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하루치 표준 임금이었다.
섬기는 종의 리더십 (마20:20-28)
하나님의 은혜와 후하심에 관한 이 비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전히 그 요점을 못 찾았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자신의 두 아들이 그분의 나라에서 가장 으뜸의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 두 사람도 그 자리에 있었기에,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돌아서서 이렇게 물으신다. “너희는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마실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한다. 다른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 화를 냈다. 예수님은 이 기회를 이용하셔서 그들이 가진 으뜸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5-28).
진정한 리더십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섬김의 실제 모습은 일터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것은 회사 사장도 돌아가며 회사 바닥을 쓸고 화장실을 청소해야 한다거나, 회사 직원들이 다른 누군가를 돕는다는 핑계로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일함에 있어 우리 고객들과, 직장 동료들, 주주들, 우리가 하는 일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맥스 드프리(Max De Pree)는 오랫동안 허먼 밀러(Herman Miller)의 사장이었으며 〈포춘〉지 명예의 전당 위원이었다. 그는 자신이 쓴 책 《성공한 리더는 자기 철학이 있다》(Leadership Is an Art , 북플래너 역간)에서 “지도자의 첫 번째 책무는 실상을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일은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서 지도자는 종이 되고 빚진 자가 되어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의 조합이 곧 능수능란한 리더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라고 썼다.[16]
종은 자신의 영적 궁핍을 알고(마 5:3),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의 통제 아래 주어진 힘을 사용하는 사람이다(마 5:5). 섬기는 리더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마 5:4), 다른 사람이 실패했을 때 긍휼을 보여 주며(마 5:7), 가능한 한 화평케 하고(마 5:9), 하나님을 섬기려다 당하는 무고한 비난을 진실로써(마 5:8) 감내한다(마 5:10). 예수님은 섬기는 리더십을 손수 행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고(마 20:28), 우리는 그분의 본을 따름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임을 보여 준다.
Max DePree, Leadership is an Art (New York: Doubleday, 1989), 9쪽. 맥스 드프리, 《성공한 리더는 자기 철학이 있다》(북플래너 역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