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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erbs 1

잠언 1장 — 일의 신학

잠언 서론

똑똑함과 지혜로움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혜는 사실을 규합해놓은 것 이상으로, 지식의 범주를 넘어선다. 지혜란 삶에 대한 훌륭한 이해이며, 삶에 대한 실용적인 기술이고,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이다. 똑똑한 사람도 얼마든지 지혜롭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지혜는 물론 지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잠언에서 언급하는 지식에서 시작해야 한다.[1] 이 책은 그런 연관성을 확신한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잠 1:1-2).[2] 지혜를 얻으려면 이 지식과 여호와를 향한 경외심이 결합해야 한다.[3] 하나님을 경외(fear)한다는 건 구약에서 종종 “하나님께 반응하며 사는 삶”과 같은 개념으로 쓰였다. 잠언서는 이렇게 선언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여호와께 의탁하지 않는 지식은 소용이 없어서 물 없이 시멘트만 가지고 회반죽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역설적이게도, 믿음으로 잠언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주님을 향한 경외심이 생겨난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1, 5).

크리스천의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다. 특히 그분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려진 계시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여호와가 어떤 분이며, 무엇을 하셨는지, 또 그분이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바라시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력과 함께 시작된다. 주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점점 더 깊어짐에 따라, 세상을 유지하고 구속하시려는 그분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를 배운다. 그럴수록 우리가 맺는 열매는 더욱 풍성해져 우리 자신에게도 물론 유익하고, 다른 사람들도 돕게 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잠 19:23).

잠언에 의하면, 지혜를 얻는 것은 우리를 선하게 만들고,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에 그것을 적용할 때까지 우리는 그 지혜를 진정으로 얻지 못한다.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잠 14:16).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잠 10:31). 잠언서는 예수님의 훈계를 예견한다.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16).

지혜는 여호와로부터 나온다. 여호와는 “내가 지혜로운 길을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길로 너를 인도하였은즉”이라고 말씀하신다(잠 4:11). 잠언은, 정신과 도덕은 함께 다니며 지혜는 선하신 하나님이 여전히 지배하신다는 진리를 담아낸다.

잠언서는 또한 지혜가 자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지혜를 여인으로 의인화시켜 이렇게 말한다.[4]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잠 8:35-36). 지혜로우면 위대하고 더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반면에 지혜가 없으면 삶이 위축되고 궁극적으로는 사망에 이른다(잠 13:14).

지식과 지혜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성에 대해서는 Bruce K. Waltke, The Book of Proverbs: Chapters 1-15 (Grand Rapids: Eerdmans, 2004), 76-87쪽을 보라.

“알게 하며”(개역개정)에 대한 NRSV의 “learning about”이라는 번역은 히브리어 ‘da’at’(어원은 yada)가 나타내는 경험적인 성질을 간과한 것이다

Robert Laird Harris, Gleason Leonard Archer and Bruce K. Waltke,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 electronic ed. (Chicago: Moody Press, 1999), entry 907

여성 의인화에 대한 설명은 Waltke, The Book of Proverbs: Chapters 1-15, 83쪽을 보라.

잠언 개요

고대 근동 지방에서 통치자들은 전문직이나 왕궁 관리에 임명되는 젊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종종 현자들에게 국가에서 통용되는 지혜를 모으라고 명했다.[1] 인생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인간의 실제 경험에서 뽑아낸 이 지혜의 말들은 미래 세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하지만 잠언서는 솔로몬 왕이 제일 저자이지만(잠 1:1) 영감은 여호와께서 주셨다고 주장한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잠 2:6).

잠언은 인간의 경험이 아닌 여호와를 믿으라고 말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7). 다른 고대 근동 지도서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지혜에 신성한 기원이 있다고 암시하거나 추정한다. 그러나 잠언은 지혜는 오직 여호와께로부터 직접 나온다고 강조한다.[2] 참된 지혜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를 두며, 우리는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떠나서는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잠언의 중심 메시지다.

따라서 잠언에 나오는 교훈들은 통상적 의미나 좋은 조언 그 이상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행위와 운명의 연관성을 가르칠 뿐 아니라 참된 지혜의 근원이신 여호와 휘하에서 어떻게 하면 평안하고 번영하는 공동체를 이뤄 갈 수 있는지 가르친다. 아울러 우리가 잠언이라고 부르는 이 짧고 간결한 말들은 삶에 대한 일반론이지, 세분화된 약속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지도하시지만, 우리는 그것을 점괘가 들어 있는 복주머니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잠언 중 그 어떤 한 가지가 온전한 진리를 다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책 전체 내용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3]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라는 말씀을 읽고 나서, 아이는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이라고 섣불리 결론 내린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잠언은 부모가 하는 훈육의 효과를 분명 높이 산다. 다만 각 사람이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 다른 잠언들에 비추어 이 말씀을 해석해야 한다. 이를테면,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 30:17) 같은 잠언 말이다. 잠언에 정통하려면 전체 잠언을 가지고 지혜의 옷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므로 잠언서에서 지혜를 얻으려면 평생에 걸쳐 잠언서를 연구해야 한다.

이것은 통상적인 과업이 아니다. 잠언 가운데 일부는 서로 완벽하게 대립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긴장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또 일부는 너무 모호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잠언이 누구를 향하여 말하는지 잘 관찰해야 한다.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잠 20:13)라는 경고는 하나님의 자녀 모두에게 주는 잠언이지만(잠 1:4-5),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 것이다”(잠 3:24)라는 말씀은 지혜와 근신에 너무 연연해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격려다(잠 3:21). 잠언서 내용은 시간 구애를 받지 않지만, 잠언을 적용하는 일은 욥기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시간성을 생각해야 한다. 잠언은 시간이 걸리는 덕목 개발의 시금석이므로 그것을 이해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잠 1:5-6).

잠언서는 일곱 부분으로 나뉜다. 제1집(잠 1:1-9:18)에는 이후 소개할 간결한 말들에 앞서 제자의 마음을 준비시키려고 장황한 연설을 담았다. 제2집(잠 10:1-22:16)은 “솔로몬의 잠언”이다. 제3집(잠 22:17-24:22)은 “지혜자의 말들”인데, 솔로몬이 개작한 것으로 본다.[4] 제4집(잠 24:23-34)은 “지혜자의 말들”을 추가해 놓은 것이다. 제5집(잠 25:1-29:27)은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다른 잠언들”인데 솔로몬 시대의 고대 기록에서 발췌한 것들이다(히스기야는 솔로몬 이후 약 300년 간 통치했다). 제6집(잠 30:1-33)과 제7집(잠 31:1-31)은 각각 아굴과 르무엘의 잠언인데, 이들은 다른 곳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다.[5] 잠언 전체에 걸쳐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과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주는 일련의 경구, 조언, 교훈과 경고를 준다. 더불어 여호와로부터 지혜를 구하라고 권고한다(잠 1:2-7).

잠언은 대개 짝을 지어서 기술한다. 부지런함과 게으름, 정직함과 부정직함, 계획을 세워서 하는 일과 성급히 내린 결단, 공평한 처분과 위약한 자들을 착취함, 좋은 조언을 구함과 자만 등등. 잠언은 다른 어떤 주제보다 우리에게 지혜로운 말하기를 가장 많이 언급하며, 두 번째로는 일과 상관관계에 있는 돈에 대한 것이다. 비록 일곱 부분으로 나뉘기는 하지만, 잠언서에 들어 있는 잠언들은 동일한 주제를 반복적으로 되뇐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논의에서는, 각각의 부분을 이 책에 나오는 순서대로 탐구하기보다는 일과 관련된 가르침들을 주제별로 살펴보려고 한다.

Richard J. Clifford, S.J., “Introduction to Wisdom Literature,” The New Interpreter’s Bible, (Nashville: Abingdon Press, 1997), 3-4쪽.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공직에 관해 더 자세히 알기 원하면 Robert Banks, “The Role of the Bible in Bureaucratic Decision-Making,” Private Values and Public Policy: The Ethics of Decision-making in Government Administration (Lancer Books, 1983), 35-40쪽을 보라.

Roland Murphy, Proverbs, Word Biblical Commentary (Thomas Nelson, 1998), 289쪽.

Waltke, The Book of Proverbs: Chapters 1-15, 107-109쪽을 참조하라

같은 책, 23쪽부터 보라

같은 책, 31-37쪽을 보라

잠언과 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잠언의 주요 관심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의 부르심이다. 이 부르심이 잠언의 서두를 장식하며(잠 1:7), 도처에 스며 있고(잠 9:10), 책을 마무리 짓는다(잠 31:30). 잠언은, 좋은 일 습관은 번영으로 이어지는데, 일하는 습관은 인격에서 나오며, 인격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형성된다고 가르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과 지혜는 직접적으로 동일시된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잠 2:5-6).

다시 말해서 잠언은 잠언을 읽는 사람들 안에 하나님의 품성을 키우기 위함이다. 그래서 많은 잠언이 하나님의 품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잠 6:16).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1:1).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5:3).

경건한 품성 즉, 지혜는 일을 포함한 인생 전반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잠언을 잠깐만 들여다보아도 이 책이 일에 관련하여 기여하는 바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잠언이 농업, 가축 사육, 직물, 의류 제조, 무역운송, 군사, 행정, 법원, 가사일, 자녀 양육, 교육, 건축 등 고대 근동의 직장 활동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일과 밀접히 관련된 돈 또한 놓칠 수 없는 주제다. 많은 다른 잠언들도 근면, 정직, 공의, 통찰력, 좋은 관계 등 일에 크게 적용되는 주제들을 다룬다.

지혜로운 일꾼, 겸손하다

잠언은 겸손한 태도를 권하며(자만을 피하도록 하며) 돈을 사용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다(낭비를 피하도록 한다). 이런 덕목들은 이 용감한 여인을 묘사하는 데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잠언서 다른 곳에서는 아주 강력하게 나타나며 일에는 아주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언급하지 않고는 잠언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을 바로 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6:18-19). 특히 18절은 가장 잘 알려진 잠언이며, 다른 잠언들도 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1:2).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잠 21:4).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 29:23).

그렇다면 이런 잠언들이 자기 존중을 금하는 명령일까? 아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여호와께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권고요, 우리 자신을 적나라하게 인식하라는 권고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정직한 만큼 우리 자신을 잘 알 수 있다. 만일 여호와를 두려워한다면, 더 이상 우리의 자아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또한 우리 자신을 과장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 이 깨어진 죄와 파멸의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의인들이 직장에서 가야 하는 길도 아신다. 하나님은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높이신다.

재물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는다

잠언 마지막에서 두 번째 단원의 저자이자 고대 현자인 아굴은 지혜로운 기도문을 남겨 놓았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7-9).

직장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혜로운 말이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우리는 생계를 해결하고, 지친 몸을 위로받고 편안히 쉬며, 가족을 부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사회에 무언가 공헌하기 위해 일을 한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우리는 더 많이 얻기 위해 아등바등하는가? 아굴은 그런 모습을 하나님을 제외시킨 삶, 창조주 그리고 우리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무시한 처사와 연계시킨다. 아굴은 또한 궁핍하게 살지 않게 해 달라고, 즉,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것은 정당한 기도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

그러나 만일 끊임없이 재물을 추구한다면, 이는 지혜의 길을 버린 것이다. 재물이 자칫 성공과 자아의 가치를 나타내는 증거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자꾸만 그것을 좇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물이 주는 위로는 허상이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잠 18:11).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잠 28:11). 재물이 문제를 끝내 주지 못한다. 단지 궁핍이 주는 문제가 재물이 주는 문제로 바뀔 뿐이다.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잠 13:8). 또 재물이 불안감을 해소해 주지는 못한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 11:28).

물질적 풍요를 위해 삶의 풍요를 희생시키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잠 28:22).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 23:4). 특히 지혜로운 이들은 은행 잔고보다는 자신들을 정직하게 평가하는 말에 더 신경을 쓴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 22:1).

잠언이 재물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재물은 복이 될 수 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 10:22). 다만 재물에 대한 집착은 분명 해롭다.

이 용감한 여인을 통해 잠언을 탐독하면 현숙함에 관한 유익한 인생 지침을 찾을 수 있다. 일에 관한 것 외에도 잠언은 깊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잠언의 유익함을 발견했다면, 잠언을 거듭 읽으면서 추가적인 의미와 적용을 찾아내고 하나님의 지혜에 비춰서 자신의 경험을 되새겨 보기를 바란다.

잠언 결론

결국 우리의 일하는 습관은 우리 인격이 만들어 간다. 그리고 인격은 여호와의 계시를 얼마나 알고 또 얼마나 경외하는가에 따라 형성된다. 주님을 더 깊이 알아 갈수록 우리 인격은 하나님을 닮아 갈 것이다. 참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지혜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을 포함해 삶의 모든 영역에 생명을 가져다준다. 지혜는 신뢰할 만한 행위, 부지런함, 건전한 영리함, 너그러움, 궁핍한 사람을 위한 공의, 말하는 습관의 변화, 겸손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지혜로워지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정하시며 우리의 영원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3).

용감한 여인 (잠 1:20-33; 31:10-31)

이 책 끝에 잠언서와 일의 세계 사이의 놀라운 연관성이 나온다. 이 책 처음 부분(잠 1:20-33; 8:1-9:12)에서 만났던 지혜로운 여인은 이 책의 마지막 22개 구절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다시 나타난다(잠 31:10-31). 이 여인은 “현숙한 여인”으로 살아서 숨 쉰다. 어떤 번역자들은 “여인”이라는 말 대신 “아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아마도 그 단락에서 여인의 남편과 아이들을 언급해서인 듯하다(“아내”와 “여인”은 모두 히브리어 ishshah에서 번역 가능한 단어들이다).

참으로 그녀는 가족에게서 성취를 발견했으며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잠 31:23). 그러나 본문은 종들과 일꾼들을 거느리면서 가내공업을 운영하는 이 여인의 일에 초점을 맞춘다(잠 31:15).[1] 잠언 31장 10-31절은 그 직장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이런 일은 어느 직장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잠언서는 직조 내지 포도주 제조 같은 다양한 기업의 지혜로운 관리자인 한 여인을 칭찬하는 하나의 시로 마무리한다. 잠언 31장 10절에서 번역자들은 “정숙한”(KJV), “유능한”(NRSV), “뛰어난”(NASB), 또는 “고상한 성격의”(NIV) 같은 여러 말들을 사용해서 이 여인의 성격을 묘사한다. 그러나 이 용어들은 해당 히브리 원어(chayil)의 강점이나 그 단어가 함축한 요소들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사람에게 적용할 경우 이 용어는 잠언 31장 3절에서처럼 “힘”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246번 나오는데, 대부분 전사들에게 적용했다. (예를 들면, 역대상 7장 2절에 나오는 다윗의 “용사들”) 번역자들은 이 단어를 여인에게 적용할 경우에, 룻의 경우처럼 힘의 요소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영어 성경에서는 룻을 “고상한”(NIV, TNIV), “정숙한”(NRSV, KJV) 또는 “뛰어난”(NASB) 사람으로 묘사할 뿐이다. 그러나 이 말을 남자에게 적용하든 여자에게 적용하든 뜻은 동일하다. 잠언 31장 10-31절에 나오는 여인을 묘사할 때, 그것의 가장 적절한 의미는 ‘강력한’ 또는 ‘용감한’이다. 잠언 31장 17절에서는 잘 번역했다.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알 월터스(Al Wolters)는 그런 군사적 표현을 언급하며 가장 적절한 번역은 “용감한 여인”이라고 주장했다.[2] 따라서 잠언 31장 10-31절에 나오는 여인을 “용감한 여인”으로 일컫고자 한다. 그 표현이 히브리 원어에 담긴 강점과 덕목을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잠언서 결론 단락에서는 이 힘의 여인을 일터에서 다섯 가지 관습을 나타낸 지혜로운 일꾼으로 묘사된다. 이 섹션의 큰 중요성은 두 가지 방향에서 나타난다. 첫째, 그것은 삼행시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시의 연들이 히브리어 알파벳 22개 글자 순서대로 시작되어 기억하기가 쉽다. 둘째, 그것은 책 전체의 클라이맥스와 요약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용감한 여인에게서 볼 수 있는 다섯 가지 관습은, 책 전체를 탐구하기 위한 틀 역할을 할 것이다.

한 여인을 지혜로운 기업가의 모범으로 그리는 것은 고대 근동에 살던 몇몇 사람들에게 그리고 심지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도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에게 동일하게 일이라는 선물을 주셨다는 사실(창 1-2장)에도 불구하고, 여자들 일을 남자들 일에 비해 종종 폄하하고 경시해 왔다. 잠언에 나온 내용을 좇아 우리는 이 지혜로운 일꾼을 하나님의 지혜가 남자나 여자에게 동일하게 주어졌다는 것을 이해하는 여인으로 보고자 한다. 그녀는 잠언에서 모든 사람의 일이 존귀하다고 긍정해 주는 역할을 감당한다.

지혜의 길은 여호와를 향한 경외심에서 흘러나온다. 이 용감한 여인의 모든 능력과 덕목을 묘사하고 존중하자 마침내 그녀가 가진 지혜의 근원이 드러났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 31:30).

Waltke, The Book of Proverbs: Chapters 15-31, 528쪽을 보라.

Al Wolters, “Proverbs XXI 10-31 as Heroic Hymn: A Form-critical Analysis,” Vetus Testamentum 38 (1988): 446-457쪽을 보라.

지혜로운 일꾼, 영리하다(잠 1:4; 15:22; 19:14; 20:18; 21:30; 31:13-14, 17, 21-23)

이 용감한 여인은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는 일꾼의 실례다. 잠언은 이 덕목을 ‘슬기롭다’(잠 19:14, NRSV) 또는 ‘분별 있다’(잠 1:4, NRSV)로 묘사한다. 영리한 사람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을 편취하는 자로 생각할 수 있지만, 잠언에서는 자원과 상황을 가장 잘 쓰는 사람으로 해석한다. 만일 우리가 영리함을 “재치 있고 분별력 있는 의식과 빈틈없는 총기”로 이해한다면,[1] 잠언을 통해 하나님이 일꾼들에게 원하시는 종류의 영리한 지혜를 깨닫게 될 것이다.

예리한 인식과 판단력을 갖고 있다

이 용감한 여인은 예리한 통찰력으로 재료를 분석함으로써 슬기로움을 드러냈다.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잠 31:13-14). 오늘날의 제조업자나 장인들은 재료 선택에 슬기로울 것이며, 지혜롭지 못하게 내구성이 약한 재료를 택하지 않을 것이다.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 시장 분석, 물류, 전략적 제휴 그리고 공동체 형성은 장차 큰 보상을 가져다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판단력이 매우 귀중하다. 온갖 형태의 투자가 가져올 위험이나 보상을 고객의 필요에 연계시킬 수 있는 투자 고문은 신성한 섬김을 행하는 것이다.

생길 수 있는 우발적 사건에 대해 대비한다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잠 31:21-22). 그녀는 재료를 준비할 때 다가오는 겨울 날씨의 모든 우발적 상태에 대비했다. 그녀는 계절에 따라 가족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의복과 침구류(“덮을 것들”)를 준비했다. 묘사한 재료를 보면 화려하거나 비싼 재료(“세마포와 자색 옷”)인데, “홍색 옷”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sanim)는 ‘여러 겹으로 되어 따뜻한 옷’ 즉 “이중 옷”(shenayim)을 필사자가 오역(誤譯)한 듯하다.[2]

이 여인은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경계하면서 그런 문제가 생기기 이전에 해법을 찾아서 애쓴다. 남편을 위한 그녀의 준비성을 보라. 의복과 침구를 마련하는 중에 그녀는 남편의 공적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잠 31:23).

그녀의 남편이 공무를 보는 중에 눈이 온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녀의 모든 식구’가 이미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하게 의복을 갖춰 입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적 이야기에 비유하면 의미가 조금 더 명백해질 것이다. 한 저명한 정치가가 갑자기 눈보라를 만났다고 상상해 보라. 그는 즉시 날이 선 중절모를 쓰고 그에 어울리는 외투와 장화도 갖춰 착용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신문지를 찾아 헤매며, 젖은 신발 속으로는 진눈개비가 흘러들어 발이 금세 젖어 버릴 것이다.

유익이 되는 조언을 구한다

어떤 부류에서 인구에 회자되는 신화와 같은 얘기가 있는데, 극히 영리한 지도자는 조언을 우습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명민함은 바로 ‘너무 약해서 다른 사람들은 잘 볼 수 없는 기회’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많은 사람이 조언을 해 주지만 그것이 현명하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잠 21:30). 만일 어떤 생각이 나쁘거나 잘못되었다면 (“여호와의 뜻에 어긋나면”) 아무리 예스맨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성해도 그 생각을 좋거나 지혜롭게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충고에 귀를 닫고 반대하는 천재에 대한 신화는 현실에서는 드물다. 창의력과 빼어남은 여러 가지 관점 위에서 성립된다. 혁신은 알려진 것에 주목하면서 미지의 것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전통적인 지혜를 거부하는 위대한 지도자는 대개 먼저 그것을 통달한 다음에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이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잠 15:22). 잠언 20장 18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지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보완적 강점을 이용한다. 심지어 새로운 분야로 진출할 때에도 그렇게 한다.

자신의 기능과 지식을 계속 업그레이드한다

이 용감한 여인은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한다(잠 31:17). 그녀는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애를 쓴다. 그녀는 팔을 강력하게 만들며 힘으로 허리를 묶는다.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의 기능과 지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행동한다.

선진국에서는 산업경제가 기술경제에 자리를 내어줌에 따라, 고용주와 직원 모두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교육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많은 신흥 경제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당신이 오늘 하는 일을 앞으로 10년 후에도 동일하게 하고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기민한 일꾼은 이것을 인식하여 직장에서 다음 기회를 위해 재훈련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고용주가 오늘날 여러 직책에 필요한 기능을 가진 근로자들을 만나기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평생 학습을 위해 효과적인 체계를 개발하는 개인, 조직, 사회가 가장 큰 성과를 내게 될 것이다.

Merriam-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제11판, s.v. “shrewd.”

Murphy, Proverbs, Word Biblical Commentary, 247쪽. 비록 마소라 학자들(Masoretic; 마소라는 유대교 성경의 권위 있는 히브리어 본문이다. 7-10세기에 걸쳐 활약한 마소라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구약 성경 헤브라이어 교정본이다–편집자 주)은 아니었지만, 칠십인역(LXX; BC 300년경에 번역되거나 집필된 고대 그리스어인 코이네 그리스어[헬라어]로 쓰인 구약성경이다–편집자 주)과 불가타 성경(Vulgate; 가톨릭교회에서 공적으로 쓰는 라틴말 번역 성경이다. 성 제롬이 4세기 말엽에 번역했다–편집자 주)은 이 해석을 채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