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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erbs 12

잠언 12장 — 일의 신학

지혜로운 일꾼, 신뢰할 수 있다 (잠 3:7; 6:11-19; 8:6-7; 10:18-19; 11:1, 3; 12:22, 17-20; 13:5; 14:25; 16:11; 19:)

용감한 여인으로 의인화된 지혜의 첫 번째 특징은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잠 31:11). 신뢰는 지혜와 덕의 기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일하라 하셨는데(창 2:15), 이는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신뢰를 얻으려면 신실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윤리적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잠언에서 묘사한 신뢰성은 오늘날의 직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수탁자의 책임에 충실하다

신뢰성의 첫 번째 요건은 우리를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일이 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용감한 여인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도 일했다. 그녀의 일은 그녀의 고객(잠 31:14), 공동체(잠 31:20), 직계가족(잠 31:12, 28), 동료 일꾼들(잠 31:15)에게 유익이 되었다. 고대 근동의 경제에서 이런 책임 분야는 모두 ‘가족’이라 불리는 경제적 실체의 범주에 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살았던 것과 동일한 처지에서 일을 한다.

어떤 식구들은 요리사, 청소부, 간호사로 또는 실내에서 직물이나 금속이나 나무나 돌을 다루는 장인으로 일한다. 다른 사람들은 들이나 실외에서 농부, 목동 또는 노동자로서 일한다. ‘가족’은 생산적 기업의 전 분야뿐 아니라 대가족, 고용된 일꾼, 그리고 아마 노예들까지도 포괄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한 가족의 관리자인 이 용감한 여인은 현대적 기업가나 사장과 흡사한 사람이다. “집안일을 보살피고”(잠 31:27)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기업에 의존하는 모든 사람들의 신뢰에 합당하게 맡은 바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용감한 여인은 가족을 위해 의무를 다하고, 가족은 그녀를 위해 의무를 다한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이익 중에서 그녀의 몫을 받으며, 이는 정당하다. 이 단락에서는 그녀의 아이들, 남편, 그리고 공동체 전체에게 그녀를 귀하게 여기고 칭찬하라고 장려한다.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잠 31:28, 31).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는 우리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려고 고용주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고용주에게 투쟁할 수는 있지만, 그들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고용주의 것을 도적질하거나(잠 29:24) 파괴하거나(잠 18:9) 또는 비방하는 방법으로 불만을 토로해서는 안 된다(잠 10:18). 일하지 않은 시간에 임금을 청구하지 않아야 한다. 고용주의 재산을 파괴하거나 또는 그들을 거짓으로 고소해서도 안 된다.

이런 원칙을 깊이 생각하다 보면 더 깊은 의미 있는 질문을 만난다. 내부 경쟁자를 돕지 않아 조직의 생산성이나 조화를 깨뜨리는 것이 합당한가? 여행, 상금, 무료 상품 등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느라 고용주의 이익을 희생시키지는 않는가? 직원과 고용주가 서로에게 막중한 의무를 지고 있다.

이 상호간의 의무는 신탁의무의 관계를 맺고 있는 기관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어떤 회사가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고객과 더불어 협상하는 것은 합법적이다. 그러나 고객을 비밀리에 착취하여 이윤을 남기는 것은 불법이다. 곧 가치가 폭락할 것이 예상되는 CMO(주택담보 대출 증권의 일종)를 고객들에게 견실한 투자로 권장하면서 팔라고 직원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1]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은 수탁자 책무의 시금석이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7).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싶은 유혹에 간혹 빠진다. 그것은 인류 타락의 결과물이다. 유혹이 찾아오는 순간 잠언의 가르침을 떠올리자. 다른 사람들을 해하고자 할 때는, 여호와를 향한 경외심 즉,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선, 모든 일을 다스리시는 그분의 섭리, 그분의 공의를 기억하자.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완수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Wall Street and the Financial Crisis: Majority and Minority Staff Report” (Washington DC: United States Senate, Permanent Subcommittee on Investigations). 다음 웹 주소에서 볼 수 있다. http://hsgac.senate.gov/public/_file...isisReport.pdf

정직하게 말하고 정직하게 행동한다

정직은 신뢰의 또 다른 필수 항목이다. 정직은 진리를 말하며 진리를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잠언에서는 진리를 지혜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잠 23:23).

정직하게 말하기

잠언 6장에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곱 가지 목록이 실려 있는데, 그중 두 가지가 부정직의 형태를 띤다. “거짓된 혀”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잠 6:16-19). 진실 말하기의 중요성은 잠언서 전체에 걸쳐 강조하는 내용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잠 8:6-7).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잠 14:25).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잠 21:6).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잠 19:5).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잠 24:28).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요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0:18-19).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잠 12:17-20).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 12:22).

자기의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이니라(잠 25:18).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잠 26:24-25).

성경에서도 거짓과 사기와 관련해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다(여호수아 2장 1절에 나오는 기생 라합의 거짓말, 출애굽기 1장 15-20절에서 히브리 산파들이 바로에게 한 거짓말, 사무엘상 21장 1-3절에서 다윗이 제사장에게 한 거짓말). 하지만 잠언은 일상적인 삶과 일에서 거짓이나 사기를 일삼아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다. 거짓은 그릇된 것이요,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거짓을 피해야 하는 것은 그것을 금하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진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파괴적이며 궁극적으로는 형벌과 사망으로 우리를 이끈다.[1] 사기를 조심하고, 도처에 있는 사기꾼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의 거짓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거짓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 흔히 널린 쉬운 잡담(종종, 진실로 포장된 거짓)처럼, 거짓은 우리가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 틈에 끼여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는 더러 비뚤어진 심성을 가진 사람은 거짓을 믿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잠언은 우리에게 거짓말하는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사랑 안에서” - 엡 4:15 참조). 진실만이 통용되는 직장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짓말하는 혀를 증오하는 사람들 중에 속하라고 명하신다.

잠언 절반에 걸쳐 거짓 증인이 되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은 특히 아홉째 계명(출 20:16)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일이며,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잠 19:5). 거짓 증언은 죄 없는 사람을 직접 공격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그 같은 거짓말이 횡행한다. 두 번째는 허위 광고다. 허위 광고는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제품에 대한 정보가 없는 외부인(고객)을 상대로 이루어진다. 이에 반해 거짓 증언은 대개 동료에 대한 공격의 형태로 조직에서 의심 없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다른 사람의 역할과 행위를 잘못 전함으로써 책임이나 공을 바꾸려고 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런 행위는 개인뿐 아니라 전체 조직까지 해친다.

어떻게 성공했는지,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정확히 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그렇게 해야 조직을 향상시킬 수 있고, 나아가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정직에 관해 더 알고 싶다면, TOW 웹사이트 핵심 주제 코너에서 ‘진실과 거짓’ 부분을 보라.

정직하게 행동하기

말뿐 아니라 행위도 진실하거나 거짓될 수 있다.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에 이르느니라”(잠 13:5). 잠언에서 언급하는 가장 두드러진 형태의 부정직한 행위는 거짓된 저울과 척도를 사용하는 일이다. “공평한 저울과 접시 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잠 16: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1:1).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잠 20:23).

상품 판매 차원에서 봤을 때, 거짓된 저울과 척도는 상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을 속이는 행위다. 제품을 틀리게 소개하는 것, 품질 상태가 약속과 다른 것, 출처나 기원을 틀리게 말하는 것, 혹은 수량을 뻔히 속이는 것이 그 예다. 하나님은 이런 관행을 싫어하신다.

정직하게 행하는 데에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부정직한 행위로 수입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고객이 눈치를 채고 거래처를 옮길 것이다. 사람을 부정직하게 대해도 무사하리라고 생각될 때에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잠 20:10).

직장에서 부정직하게 처신하는 경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구약에 땅 소유권 이야기가 나오는데, 경계석을 두어서 소유권을 표시하곤 했다. 부정직한 사람은 남몰래 그 경계석을 옮겨서 이웃을 희생시키는 한편, 자신의 지분을 높이곤 했다. 잠언은 그런 부정직한 행위를 정죄한다.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잠 23:10-11).

잠언은 온갖 부정직한 행위들을 일일이 다 열거하지는 않는다. 대신 하나의 원칙을 제시한다. 부정직한 행위는 부정직한 말처럼 여호와께서 증오하신다는 것이다.

말과 행위 모두에서 정직하다는 건 오늘날의 직장에서 무엇과 같은가? 정직이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 지니는 품성의 한 부분이라면, 정직의 기준은 ‘그것이 기술적으로 참된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의 언행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가 될 것이다. 꼭 노골적인 사기만이 신뢰를 뒤흔드는 것은 아니다. 가장 교묘한 변호사를 고용한 사람이 계약서를 변경하거나 무마시켜서 이익을 취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열량이 많이 들어 있을 뿐 아무것도 아닌 제품을 “에너지를 높여 준다”는 거짓된 표현을 써서 선전할 수 있다. 결국은 하나님이 사기당한 사람들을 변호하실 것이며 그런 습관을 용인하지 않으실 것이다(잠 23:11). 한편 지혜로운 즉, 경건한 일꾼은 그런 관습을 거부할 것이다.

잠언은 반복적으로 정직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잠 11:3).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잠 20:17).

잠언은 또 다른 형태의 사기를 재미있게 표현한다.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잠 20:14). 가격을 깎아내리기 위해 상품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다가 나중에는 ‘잘 샀다’고 만족하는데, 이 또한 일종의 부정직한 행위다. 가격에 정통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실랑이를 보면, 이런 관행은 이젠 악습을 넘어서 즐기는 차원이 된 듯하다. 영어 사용 유권자들에게는 이민법에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스페인계 유권자들을 그 반대말로 구슬리려고 하는 정치인들의 경우처럼 현대판 정보 조작에서 보면 그런 관행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면서 위장시킨다.

M. Scott Peck, People of the Lie: The Hope for Healing Human Evil, 2nd ed. (Touchstone, 1998)를 보라. 스캇 펙, 《거짓의 사람들》(비전과리더십 역간).

지혜로운 일꾼, 부지런하다 (잠 6:6-11; 10:4-5, 26; 12:11, 24; 16:1; 18:9; 19:21; 21:5; 24:27, 30-34; 27:1, 23-2)

이 용감한 여인은 부지런하다. 잠언은 그녀의 근면성을 세 가지로 묘사한다. (1) 열심히 일한다. (2)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 (3) 수익을 낸다. 이렇게 부지런하게 일한 결과, 그녀는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열심히 일한다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잠 31:13).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일을 선택했고, 가정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한다.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잠 31:15).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잠 31:24). “밭을 살펴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잠 31:16). 그러므로 일의 분복이 더 커진다.

농경 사회에서는 부지런한 사람이 부유한 삶을 누렸다. 열심히 일하는 농부가 게으른 사람보다 훨씬 더 잘살 수 있다. 잠언은 게으른 사람은 결국 패망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잠 10:4-5).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 24:30-34).

고대 근동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자는 번영을 누렸지만, 추수기에 한 주(週)만 빈둥거려도 배고픈 겨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경제에서는 이런 효과가 단기간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취직을 한 호경기 시절에는, 게으른 사람도 직업을 갖게 돼 부지런한 사람 못지않게 잘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불황기에는 (그리고 신흥 경제국에서는 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이나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 것이다. 인종 차별, 노조 계약, 상사의 편애, 낙하산 인사, 그릇된 고과 제도, 관리자의 무지, 그리고 그 밖에 많은 요인들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가 있다.

그러면 열심히 일하는 근면성을 다룬 잠언이 필요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현대 경제에서도 일생을 두고 보면 부지런함은 대개 보상을 받는다. 일자리가 귀할 때도 부지런한 일꾼은 직장을 유지하거나 남들보다 빠르게 새로운 직장을 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둘째, 잠언에 나오는 다른 덕목의 경우에서와 같이 부지런함의 주요 원동력은 개인적 번영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부지런한 것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과업을 맡기셨기 때문이며, 그분을 경외할수록 우리는 더욱 부지런히 일하게 된다.

게으른 직원은 직장에서 설 자리가 없다. 게으른 직장 동료나 부하, 상사를 경험해 본 사람은 누구나 이 신랄한 잠언에 동의할 것이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 10:26). 짐을 같이 지려 하지 않는 사람과 한 팀에 속하는 건 아무도 원치 않는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

이 용감한 여인은 미리 계획을 세운다.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잠 31:14). 품질과 가격이 의심스러우면 그녀는 구매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능성을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밭을 살펴보고” 산다(잠 31:16). 그녀는 어떤 밭을 포도원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잠 31:16), 포도원은 계획 후 2-3년이 되기 전에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1] 그녀는 장기적 결과를 내다보고 결정을 내린다는 말이다. 잠언 21장 5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지혜로운 계획을 세우려면, 농업 자산 관리의 주기에서 보듯이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잠 27:23-27).

포도원을 경영하는 이 용감한 여인처럼, 지혜로운 농부는 여러 해 뒤를 내다본다.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왕이나 총독도 장기적으로 앞을 내다본다.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잠 28:2). 잠언은 또한 개미에게 가서 장기적인 근면을 배우라고 말한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 6:6-11).

직장에서 미리 계획을 세우는 데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잠언 24장 27절에서는 재정적인 계획을 언급한다.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다시 말하면, 당신의 밭에서 나는 소출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댈 수 없다면 집짓기를 시작하지 말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 28-30절에서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그 밖에 수많은 형태의 계획이 있으므로 잠언을 현대적 기업을 위한 계획 세우기의 지침서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획을 세우는 데서 나타나는 지혜와 하나님의 품성 사이의 연관성을 잠언에서 다시 한 번 주목해 볼 수 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 16: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하나님은 매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시므로 우리도 지혜를 얻어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계획을 세울 때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과 달리 우리는 계획을 성취시킬 힘이 없기 때문이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우리는 지혜롭게 계획을 세우고 겸손하게 말하되,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가 되기를 기대해야 한다.

성공을 바란다면 장기적 결과에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자기만족을 보류할 수 있는 능력 즉, 장기적인 결과에 기초하여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학업 성공에서 지능지수보다 훨씬 더 좋은 가늠자라고 한다.[2] 유감스럽게도 크리스천들은 가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라는 구절을 ‘내일을 위해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잠언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더불어 이런 해석이 제멋대로 한 잘못된 해석임을 보여 준다. 사실상, 크리스천의 삶 전체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온전케 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므로,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삶이다.

“포도 재배”(Vine Growing). 2011년 11월 11일에 vinegrowing.com에서 봤다. 이 링크는 더 이상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나, https://web.archive.org/web/20111113045248/http://vinegrowing.com/에서 볼 수 있다

Angela L. Duckworth and Martin E.P. Seligman, “Self-Discipline Outdoes IQ in Predicting Academic Performance of Adolescents,” Psychological Science 16, no. 12 (2005), 939-944쪽. 이와 비슷한 결과들을 Mischel and Shoda (Science, 1989), Rosenbaum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986)과 Bialer (Journal of Personality, 1961)에서 다루었다

기업의 수익성에 기여한다

이 용감한 여인은 그녀의 일에 시장성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상인들이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지 알았고(잠 31:24) 신중하게 재료를 골랐으며(잠 31:13) 양질의 제품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잠 31:18b). 그녀는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달았으므로”(잠 31:18a), 그녀의 가족과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재료를 확보했다. 잠언은 일꾼 개개인의 부지런함이 사업 전체의 수익성에 기여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 21:5). 그 반대되는 실례도 잠언에 있다.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잠 18:9). 게으른 일꾼은 기업을 고의로 파괴하는 자나 다름없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마 25:14-30)를 듣고 배워야 한다.

수익과 관련한 이런 잠언은 하나님의 품성에 기초를 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수익성 있는 일을 하기 원하신다. 배정받은 업무를 완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의 일이 실제로 재료, 자본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증진시키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열린 경제에서는 경쟁을 통해 이윤을 내는 것이 매우 도전적인 일이 될 수 있다. 부지런하지 못한 즉, 게으른, 어리석은 또는 방탕한 자들은 신속히 손실, 파산 그리고 파멸에 빠진다. 부지런한 이들, 즉, 열심히 일하고 창조적이며 집중해서 일하는 이들은 사업을 운영할 때 이윤을 남길 수 있게 거룩히 섬긴다.

크리스천들이 이윤의 중요성을 언제나 성경적 관점에서 인식해 온 것은 아니다. 사실 사람들은 이윤을 종종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사람 대 이윤”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한다. 투자를 해서 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을 생산해 내는 일을 통해 이윤이 발생한다고 믿기보다는 구매자, 노동자 또는 공급자를 편취해서 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이는 사업과 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결과다. 사업을 진실로 성경적 기준으로 평가하려면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어떤 종류의 이윤을 남기는가?”, “어디서 이윤이 발생하는가?”, “독점, 위협 또는 사기로 얻은 이윤은 아닌가?”, “이윤이 일꾼, 관리자, 소유자, 임대업자, 공급자, 고객 그리고 세무서 사이에 어떻게 분배되는가?” 건전한 수익성을 창출하는 일은 근로자나 사업주에게 용기를 줄 뿐 아니라 축복이 된다.

자기가 하는 일에 수익성이 있는지 모든 일꾼들이 다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건 아니다. 대기업의 직원들은 각자 맡은 일이 기업의 수익성에 얼마큼 긍정적으로 기여하는지를 거의 알지 못할 것이다. 회계학적 의미에서의 수익성은 교육, 정부, 비영리 기업, 가정 등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직원들은 모두 자기가 하는 일이 조직의 임무 달성에 어떻게 기여를 하는지, 또 그들이 부가하는 가치가 그들이 얻어 가는 급여나 다른 자원보다 더 큰지 등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여호와를 섬기는 일종의 봉사다.

이 용감한 여인은 가업을 수익성 있게 경영함으로써 많은 칭찬을 받는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잠 31:10). 이것은 감상적인 찬사가 아니라, 진정한 칭찬이다. 기업을 잘 운영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보석이나 다른 재물을 쌓아 두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이윤을 발생시킬 수 있다.

부지런한 일꾼, 평온함 속에 살아간다

이 용감한 여인은 부지런했고, 부지런함을 밑거름 삼아 미래를 열망하게 되었다.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잠 31:25). 잠언이 개인의 번영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부지런함은 우리를 보다 더 나은 미래로 인도할 것이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잠 12:11).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잠 28:19).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 12:24).

부지런함이 미래의 슬픔이나 재난까지 막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앞날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부지런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들과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하라고 하신 일을 한 뒤 평온함 속에 살아갈 수 있다.

지혜로운 일꾼, 혀를 지킨다(잠 6:2, 17; 10:20, 31; 11:12-13; 12:18-19, 25; 15:1-2, 4, 18; 16:1, 27-28, 32; 17:4,

이 용감한 여인은 자신의 언행을 늘 조심했다. 잠언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잠 21:23). 가끔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잠 17:28).

잠언은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혀에 대해 많이 다룬다(잠 6:17, 24; 10:20,31; 12:18, 19; 15:2, 4; 16:1; 17:4, 20; 18:21; 21:6, 23, 25:15, 23; 26:28; 28:23; 31:26). 의롭고 부드러운 혀는 지혜(잠 10:31), 치유(잠 12:18), 지식(잠 15:2), 생명(잠 15:4;18:21)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잠 16:1)을 가져다준다. 사악하고 부주의한 혀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하고(잠 6:17), 기분을 상하게 하며(잠 15:4), 악을 조장하고(잠 17:4), 재난(잠 17:20), 고통(잠 21:23), 분노(잠 25:23)를 초래하며, 뼈를 상하게 하며(잠 25:15), 파멸을 가져오고(잠 26:28), “사망의 덫”이 되기도 한다(잠 21:6).

의사 소통은 거의 모든 직장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게다가 직장에서 나누는 친교적 대화는 업무 관계를 개선시키기도 하고 망치기도 한다. 잠언은 말을 지혜롭게 하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까?

험담을 피한다

직장에서 험담은 진실로 문제가 되는가, 아니면 무죄한 수다일 뿐인가? 잠언은 그 위험성을 지적한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잠 20:19).

험담은 다툼을 낳는다.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 18:6-8).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잠 26:20-21).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잠 16:27-28).

험담은 신뢰, 즉, 지혜로운 사람의 기본적인 덕목을 파괴시킨다.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잠 11:12-13).

험담은 다른 사람들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게 하고, 어떤 사람의 정직성이나 어떤 사람이 내릴 결정이 정당한지 의심하게 만든다. 험담은 다른 사람의 동기에 악한 의도를 불어넣으며, 따라서 스스로 거짓의 아비가 되기도 한다. 험담은 전후 맥락을 무시한 채 다른 사람의 말을 전달하고, 화자의 의도를 왜곡하며, 비밀로 유지했어야 할 것을 드러내고, 그 자리에 없어서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누군가를 희생시키면서 험담하는 사람을 높이려 한다. 험담이 직장에서 얼마나 파괴적이 될 수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험담이 사람의 평판이나 프로젝트의 가치, 또는 상사의 지위에 의문을 가지게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험담하는 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의심하게 만든다. 험담은 직장에서 근로자들 사이에 분란만 일으킬 뿐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구역질나게 만드는 죄 목록에 남을 두고 수군대는 일을 포함시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롬 1:29).

친절한 어조로 말한다

이 용감한 여인은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한다’(잠 31:26). 누군가 자기 앞에서 분노를 분출하는 일을 누가 반기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잠언에서 경계하는 위험성을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 15:18).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분노를 성공적으로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을 묘사해 내기에 잠언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죄를 마주하면 당연히 ‘분노해야’(도덕적으로 화가 나야)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격노)에 지배당해서는 안 된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 4:26). 지혜로운 사람은 부드럽게 대답하고 과오를 너그럽게 봐주며 다툼을 잠재운다. 이 용감한 여인의 혀는 친절한 가르침을 베푼다. 이런 사람들은 “용사보다도 낫다.” 짜증이 나고 성이 날 때 직장에서 이런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생활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우리의 언어를 통제하고 화나게 하는 말을 피할 뿐 아니라, 가끔 다툼이 발생하더라도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말을 한다

지혜로운 혀에서 나오는 축복은 다음과 같은 현실에 기초를 둔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잠 25:11-12).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동료들이 종종 화를 내는 일이 있다. 그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친절한 한마디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잠 12:25). 언제나 좋은 말을 해 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기(잠 15:4) 때문이다. 진실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전자기기로 무장한 오늘날의 직장에서는 다양한 수단이 “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이메일, 블로그, 트위터, 언론 매체 등으로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 하며, 사망과 생명이 진실로 직장에서 우리가 서로 나누는 말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Ronald A. Heifetz and Martin Linsky, Leadership on the Line (Boston: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2002); 이 주제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을 보려면 특히 5장의 “갈등 조화시키기”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