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4장 — 일의 신학
지혜로운 일꾼, 부지런하다 (잠 6:6-11; 10:4-5, 26; 12:11, 24; 16:1; 18:9; 19:21; 21:5; 24:27, 30-34; 27:1, 23-2)
이 용감한 여인은 부지런하다. 잠언은 그녀의 근면성을 세 가지로 묘사한다. (1) 열심히 일한다. (2)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 (3) 수익을 낸다. 이렇게 부지런하게 일한 결과, 그녀는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열심히 일한다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잠 31:13).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일을 선택했고, 가정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한다.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잠 31:15).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잠 31:24). “밭을 살펴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잠 31:16). 그러므로 일의 분복이 더 커진다.
농경 사회에서는 부지런한 사람이 부유한 삶을 누렸다. 열심히 일하는 농부가 게으른 사람보다 훨씬 더 잘살 수 있다. 잠언은 게으른 사람은 결국 패망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잠 10:4-5).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 24:30-34).
고대 근동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자는 번영을 누렸지만, 추수기에 한 주(週)만 빈둥거려도 배고픈 겨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경제에서는 이런 효과가 단기간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취직을 한 호경기 시절에는, 게으른 사람도 직업을 갖게 돼 부지런한 사람 못지않게 잘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불황기에는 (그리고 신흥 경제국에서는 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이나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 것이다. 인종 차별, 노조 계약, 상사의 편애, 낙하산 인사, 그릇된 고과 제도, 관리자의 무지, 그리고 그 밖에 많은 요인들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가 있다.
그러면 열심히 일하는 근면성을 다룬 잠언이 필요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현대 경제에서도 일생을 두고 보면 부지런함은 대개 보상을 받는다. 일자리가 귀할 때도 부지런한 일꾼은 직장을 유지하거나 남들보다 빠르게 새로운 직장을 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둘째, 잠언에 나오는 다른 덕목의 경우에서와 같이 부지런함의 주요 원동력은 개인적 번영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부지런한 것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과업을 맡기셨기 때문이며, 그분을 경외할수록 우리는 더욱 부지런히 일하게 된다.
게으른 직원은 직장에서 설 자리가 없다. 게으른 직장 동료나 부하, 상사를 경험해 본 사람은 누구나 이 신랄한 잠언에 동의할 것이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 10:26). 짐을 같이 지려 하지 않는 사람과 한 팀에 속하는 건 아무도 원치 않는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
이 용감한 여인은 미리 계획을 세운다.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잠 31:14). 품질과 가격이 의심스러우면 그녀는 구매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능성을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밭을 살펴보고” 산다(잠 31:16). 그녀는 어떤 밭을 포도원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잠 31:16), 포도원은 계획 후 2-3년이 되기 전에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1] 그녀는 장기적 결과를 내다보고 결정을 내린다는 말이다. 잠언 21장 5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지혜로운 계획을 세우려면, 농업 자산 관리의 주기에서 보듯이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잠 27:23-27).
포도원을 경영하는 이 용감한 여인처럼, 지혜로운 농부는 여러 해 뒤를 내다본다.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왕이나 총독도 장기적으로 앞을 내다본다.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잠 28:2). 잠언은 또한 개미에게 가서 장기적인 근면을 배우라고 말한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 6:6-11).
직장에서 미리 계획을 세우는 데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잠언 24장 27절에서는 재정적인 계획을 언급한다.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다시 말하면, 당신의 밭에서 나는 소출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댈 수 없다면 집짓기를 시작하지 말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 28-30절에서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그 밖에 수많은 형태의 계획이 있으므로 잠언을 현대적 기업을 위한 계획 세우기의 지침서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획을 세우는 데서 나타나는 지혜와 하나님의 품성 사이의 연관성을 잠언에서 다시 한 번 주목해 볼 수 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 16: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하나님은 매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시므로 우리도 지혜를 얻어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계획을 세울 때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과 달리 우리는 계획을 성취시킬 힘이 없기 때문이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우리는 지혜롭게 계획을 세우고 겸손하게 말하되,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가 되기를 기대해야 한다.
성공을 바란다면 장기적 결과에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자기만족을 보류할 수 있는 능력 즉, 장기적인 결과에 기초하여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학업 성공에서 지능지수보다 훨씬 더 좋은 가늠자라고 한다.[2] 유감스럽게도 크리스천들은 가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라는 구절을 ‘내일을 위해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잠언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더불어 이런 해석이 제멋대로 한 잘못된 해석임을 보여 준다. 사실상, 크리스천의 삶 전체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온전케 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므로,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삶이다.
“포도 재배”(Vine Growing). 2011년 11월 11일에 vinegrowing.com에서 봤다. 이 링크는 더 이상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나, https://web.archive.org/web/20111113045248/http://vinegrowing.com/에서 볼 수 있다
Angela L. Duckworth and Martin E.P. Seligman, “Self-Discipline Outdoes IQ in Predicting Academic Performance of Adolescents,” Psychological Science 16, no. 12 (2005), 939-944쪽. 이와 비슷한 결과들을 Mischel and Shoda (Science, 1989), Rosenbaum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986)과 Bialer (Journal of Personality, 1961)에서 다루었다
기업의 수익성에 기여한다
이 용감한 여인은 그녀의 일에 시장성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상인들이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지 알았고(잠 31:24) 신중하게 재료를 골랐으며(잠 31:13) 양질의 제품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잠 31:18b). 그녀는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달았으므로”(잠 31:18a), 그녀의 가족과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재료를 확보했다. 잠언은 일꾼 개개인의 부지런함이 사업 전체의 수익성에 기여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 21:5). 그 반대되는 실례도 잠언에 있다.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잠 18:9). 게으른 일꾼은 기업을 고의로 파괴하는 자나 다름없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마 25:14-30)를 듣고 배워야 한다.
수익과 관련한 이런 잠언은 하나님의 품성에 기초를 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수익성 있는 일을 하기 원하신다. 배정받은 업무를 완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의 일이 실제로 재료, 자본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증진시키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열린 경제에서는 경쟁을 통해 이윤을 내는 것이 매우 도전적인 일이 될 수 있다. 부지런하지 못한 즉, 게으른, 어리석은 또는 방탕한 자들은 신속히 손실, 파산 그리고 파멸에 빠진다. 부지런한 이들, 즉, 열심히 일하고 창조적이며 집중해서 일하는 이들은 사업을 운영할 때 이윤을 남길 수 있게 거룩히 섬긴다.
크리스천들이 이윤의 중요성을 언제나 성경적 관점에서 인식해 온 것은 아니다. 사실 사람들은 이윤을 종종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사람 대 이윤”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한다. 투자를 해서 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을 생산해 내는 일을 통해 이윤이 발생한다고 믿기보다는 구매자, 노동자 또는 공급자를 편취해서 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이는 사업과 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결과다. 사업을 진실로 성경적 기준으로 평가하려면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어떤 종류의 이윤을 남기는가?”, “어디서 이윤이 발생하는가?”, “독점, 위협 또는 사기로 얻은 이윤은 아닌가?”, “이윤이 일꾼, 관리자, 소유자, 임대업자, 공급자, 고객 그리고 세무서 사이에 어떻게 분배되는가?” 건전한 수익성을 창출하는 일은 근로자나 사업주에게 용기를 줄 뿐 아니라 축복이 된다.
자기가 하는 일에 수익성이 있는지 모든 일꾼들이 다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건 아니다. 대기업의 직원들은 각자 맡은 일이 기업의 수익성에 얼마큼 긍정적으로 기여하는지를 거의 알지 못할 것이다. 회계학적 의미에서의 수익성은 교육, 정부, 비영리 기업, 가정 등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직원들은 모두 자기가 하는 일이 조직의 임무 달성에 어떻게 기여를 하는지, 또 그들이 부가하는 가치가 그들이 얻어 가는 급여나 다른 자원보다 더 큰지 등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여호와를 섬기는 일종의 봉사다.
이 용감한 여인은 가업을 수익성 있게 경영함으로써 많은 칭찬을 받는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잠 31:10). 이것은 감상적인 찬사가 아니라, 진정한 칭찬이다. 기업을 잘 운영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보석이나 다른 재물을 쌓아 두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이윤을 발생시킬 수 있다.
부지런한 일꾼, 평온함 속에 살아간다
이 용감한 여인은 부지런했고, 부지런함을 밑거름 삼아 미래를 열망하게 되었다.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잠 31:25). 잠언이 개인의 번영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부지런함은 우리를 보다 더 나은 미래로 인도할 것이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잠 12:11).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잠 28:19).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 12:24).
부지런함이 미래의 슬픔이나 재난까지 막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앞날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부지런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들과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하라고 하신 일을 한 뒤 평온함 속에 살아갈 수 있다.
지혜로운 일꾼, 공정하다(잠 3:27-28; 8:15; 14:21, 31; 16:8, 12-13; 17:5; 21:6, 13; 22:8-9, 16, 22-23; 24:17; 25:
잠언은 관대함을 권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공의로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부자와 권력자들이 그들을 편취하거나 억압하기 때문이라고 인정한다. 더구나 가난한 이들에게서 편취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일은 더욱 쉽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혐오하시며, 그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잠 14:31).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잠 22:16).
약한 자를 그가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잠 22:22-23).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 22:8-9).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잠 28:8).
첫 번째 기본적인 원리가 잠언 16장 8절에 나와 있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두 번째, 비록 당신이 가난한 사람들을 편취하거나 억압하지 않았다고 해도,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서 당신은 그들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채워 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 21:13).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 14:21).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잠 3:27-28).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잠 17:5).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에서 지혜가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관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공의를 좇아서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일 또한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혜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 그분이 바라시는 바를 행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때 생겨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 주어 궁핍함을 없애려 하신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들을 돌보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궁핍을 없애는 일은 공의의 문제다.
이 잠언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직접적 접촉을 가정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관대함이란 기부금을 내는 것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는 것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또한 주거, 쇼핑, 교육, 일, 정치 등과 관련해서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 및 부유층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일을 의미할 수도 있다. 당신은 다양한 사회 · 경제적 수준의 사람들과 매일 접촉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세계는 너무 편협한 것일지 모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대함과 공의는 근로자 개개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덕목이 우리 회사에도 적용이 가능할까? 대부분의 잠언은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용감한 여인 부분에서는 그녀를 한 가업의 관리자로 묘사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아 온 대로, 그녀의 관대함은 그녀의 일에 방해 요소가 아니라 필수 요소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주주들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유익이 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상상력이나 기능이 부족한 듯 보인다. 예를 들어서, 신문의 금융 면을 잠깐 훑어보기만 해도 많은 회사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편취하거나 억압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재산을 정가 이하로 팔도록 하는 것이나, 그들의 무지를 이용한다거나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여 의심스러운 제품을 팔려 한다거나, 취약한 사람이나 다른 삶의 대안이 없는 이들로부터 과도한 단기 이윤을 짜내려 하는 일 등 말이다. 왜 그런 회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재물을 탈취하는 것이 이윤을 내는 유일한 (또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믿는 것일까? 제로섬 접근법을 써서 기업이 실제로 이해관계자의 투자 이익을 향상시킨다는 증거가 있던가? 이런 관습 중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진실로 더 높은 장기적 수익성이나 권력으로 연계되는 것일까? 아니, 그와는 정반대다.
최고의 기업은 고객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직원과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훌륭한 수익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공한다.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기업과 조직들은 경제적 · 정치적 · 경쟁적 위협으로부터 공동체 차원의 지원, 일꾼들의 헌신, 사회적 보호가 필요할 경우 보다 유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다.
공의를 추구하는 정부 정책
잠언은 기업 이외의 다른 조직에게도 공의를 요구한다. 특히 왕을 언급하는 많은 성구에서는 정부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정부에도 기업과 같은 메시지를 준다. 정부는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공의를 행할 경우에만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다.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잠 29:14).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잠 29:4).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잠 25:5).
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잠 16:13).
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잠 16:12).
지혜로운 정부의 기초 역시 여호와께 대한 경외심이다.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잠 8:15). 왕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잠언들은 현대 사회의 정치 지도자와 공무원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 사회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정부 및 공공 정책에 참여한다. 대표자들과 접촉하고 후보자를 위해 투표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한 사람들에게 공의를 가져다주는 참정권 문제는 오늘날 지혜에서 기인한 공의를 입법화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모두가 번성하기 위한 경쟁
잠언은 경쟁과 투쟁에도 관대함과 공의를 요구한다.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잠 25:21-22).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20절에서 이 잠언을 문자 그대로 인용하면서 전할 말을 결론짓는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더 나아가서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 24:17). 원수에게도 너그러워야 한다고? 사도 바울과 잠언 저자들은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여호와께서 보상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이 개인적이든(예를 들면 승진 경쟁자) 집단적이든(예를 들면 경쟁사) 간에 경쟁자를 향한 우리의 태도에도 적용될까? 잠언에 현대적 경쟁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만일 원수에 대한 섬김까지도 장려한다면, 경쟁자에 대한 섬김 역시 장려하게 된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것은 공모나 과두정치와는 다르다.
시장 경제가 거의 전 세계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은 경쟁 때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기업, 정치 그리고 다른 형태의 경쟁은 중대한 경쟁적 국면을 띠고 있지만, 실은 협력의 형태들이다. 사회가 경쟁을 촉진하는 것은 모두가 번성하기 위함이다. 경쟁에서 실패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응은 궁핍으로 내몰리는 게 아니라, 더 생산적인 일로 전환되는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도산하기도 하지만, 성공적인 경쟁자들이 반드시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기는 하지만, 승자가 헌법을 개정하여 패자를 유폐시키는 것은 아니다. 경력에 부침이 있겠지만, 실패에 대한 정당한 보응은 “당신은 이 도시에서 다시는 일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당신의 재능에 더 맞는 일을 찾도록 도우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다.
지혜로운 개인이나 조직은 경쟁에 참가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경쟁은 각자의 참여를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오늘 실패한 사람을 연착륙시켜서 내일 값진 기여를 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