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7장 — 일의 신학
시편 제5권 (시 107-150편)
시편 제5권은 시편의 다른 권들에 비해서 주제나 배경의 공통성이 적다. 하지만 일이라는 주제는 다양한 형식과 배경 가운데 시편의 다른 데서보다 더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제5권에는 경제적 창조성, 기업 윤리, 기업가 정신, 생산성, 자녀 양육과 집안 살림, 올바르게 힘 사용하기, 그리고 물질 세계에서의 하나님의 영광 등의 주제들이 모두 등장한다.
진정한 가치를 창조하고 있는가 (시 127편)
시편 107편이 대규모 경제 활동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시편 127편과 128편은 산업혁명 전까지 경제 생산의 기본 단위였던 가정에 대해 말한다. 시편 127편은 모든 좋은 일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1-2).
“집”과 “성” 모두, 주민을 위해 재화와 안전을 제공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경제 활동의 목적은 가정을 번영하게 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지런한 노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단언한다(게으름에 관해 말하는 잠언 26장 13-16절과 비교하라). 여기에는 또렷이 보이는 요점 뒤에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열심히 일함으로써 더 크고 아름다운 집을 얻을 수는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는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모든 것을 가치 있게 만드실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에서 농업 이외의 일은 일반적으로 가정이 아닌 더 큰 조직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127편의 메시지는 고대 가정에 적용한 것처럼 오늘날의 제도화된 직장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모든 일터는 번영하기 위해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창출해야 한다. 시간 투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은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해야 한다.
믿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특별히 의미 있는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다. 모든 일터에서는 지속적인 가치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고자 하는 유혹이 존재한다. 기업은 재료의 품질을 낮춤으로써 단기간에 수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 영업 판매원은 구매자가 제품 관련 지식이 부족한 점을 이용해 미심쩍은 제품과 부대용품을 판매할 수 있다. 교육기관은 지속적인 역량 개발 없이 학생들을 유인하는 강의를 열 수도 있다. 이외에도 예는 무수히 많다.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리고 우리가 생산하는 것의 진정한 가치 창출에 기여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기관이 이러한 유혹에 저항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진정한 가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겸손해야 하고, 끊임없이 경청해야 한다. 섣부른 의견을 계속 소리 높여 말해 사람들이 내 말을 듣는 데 지쳐 버리면, 결국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가정의 일은 영예로운 것 (시 127, 128, 139편)
결혼, 자녀 출산, 부모 봉양 등의 일은 시편 127, 128, 139편 전면에 다시 나타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 128:3). 자녀 출산의 일은 시편 113편에서도 중요하게 다룬다. 이 장의 “시 113편” 부분을 보라.
남편과 아내는 가장 기본적인 유형의 생산인 재생산에 함께 참여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과정에서 아내가 남편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한다. 성경에서는 이 일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 보았고,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명예롭게 여겼다. 자녀 출산 외에도 아내들은 일반적으로 가내 생산과 상업적 생산을 모두 포함한 집안일을 관리했다(잠 31:10-31).
성경은 바다로 나가는 자와 양치는 목자(전통적인 남성 직업)뿐만 아니라 집안일을 관리하는 자(전통적인 여성 직업)도 영예롭게 여겼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가정을 돌보는 일을 제외하고는[1] 오늘날에는 일의 역할을 예전만큼 성에 따라 엄격히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과 가정의 일은 여전히 영예로운 것으로 본다.
모든 형태의 일과 같이 자녀 출산도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물론 자녀를 출산하는 것도 일이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시 139:13). 다른 모든 형태의 노동과 마찬가지로, 고통이 닥쳤을 때 이것이 하나님의 징벌이나 하나님께 버림받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출산은 전 세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목적이 있으셔서 어머니의 자궁에서 우리를 만드셨다. 우리의 생득권은 하나님께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시편 127편으로 돌아가 이 주제의 마지막 요소를 살펴보자. 나이가 들어 일할 능력이 줄어든 부모를 봉양하는 일도 가정의 일이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고대에는 연금제도나 건강보험이 없었다. 늙은 부모의 부양 책임은 자연스레 아들의 몫이었다. (일반적으로 딸들은 결혼하면 남편의 가족에 편입되기 때문에 본문은 “아들들”이라고 말한다.) 사실 아들들이 부모의 노후 대책이었고, 이것이 세대 사이를 가깝게 만들었다.
자녀 양육의 가치를 경제적인 면에서 따지는 일이 좀 냉혹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자녀 양육의 감정적 보상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은 아이가 어른을 필요로 하는 것만큼이나 어른도 아이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은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가르쳐 준다. 이 구절은 또한 부모님이 우리에게 감정적, 신체적, 지적, 창의적, 경제적, 기타 많은 형태의 투자를 했음을 상기시켜 준다. 장성한 자녀가 늙은 부모를 돌보는 일은 옳다. 여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핵심은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는 하나님의 계명이 태도뿐 아니라 일과 경제적인 돌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Man Yee Kan, Oriel Sullivan, and Jonathan Gershuny, “Gender Convergence in Domestic Work: Discerning the Effects of Interactional and Institutional Barriers from Large-scale Data,” Sociology 45, no. 2 (April 2011), 234-2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