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 — Jamieson–Fausset–Brown
21:1
1. “여호와께서 사라를 돌보셨다.” 역사가가 사용한 표현은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대한 신실하심을 높이 드러내려고 의도적으로 선택한 듯하다. 이 일이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아브라함에게 영적인 자녀들을 일으켜 주시는 것 역시 그 은혜로 이루어지며, 이 아들의 탄생은 그것을 미리 보여 주는 모형이었다[칼뱅].
21:3–4
3–4. “아브라함이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고 … 할례를 베풀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기념이 되도록 주어진 이름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했고(창세기 17:19 비교), 언약의 인장을 베풀어 아이를 바치는 행위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인정했다(창세기 17:10–12 비교).
21:8
8. “아이가 자라 젖을 뗐다.” 이 주석의 설명에 따르면 동방에서는 서방보다 아이에게 젖을 오래 먹이며, 남자아이는 보통 두세 해 동안 먹인다.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다.” 동방 나라에서는 이때를 늘 가족의 잔치로 기념하며, 갓 젖을 뗀 아이를 모인 친척과 친구들 앞에 정식으로 데려와 간단한 음식을 먹게 한다. 로젠뮐러는 이삭이 장자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옷을 입고 이때 부족의 상속자로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한다[로젠뮐러].
21:9
9. “사라가 하갈의 아들이 … 조롱하는 것을 보았다.” 이스마엘은 자신의 앞날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알았다. 그래서 짜증과 원망에 사로잡혀 어린 상속자를 비웃었고, 아마 폭력도 어느 정도 사용했을 것이다(갈라디아서 4:29). 어머니도 그런 감정에 동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21:10
10. “그러므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했다. 이 여종을 내쫓으십시오.” 이제 집안의 평화를 지키려면 두 사람을 모두 내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뜻이 알려지자 아브라함의 곤혹스러움도 풀렸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나, 인간적인 정으로는 아무리 괴롭더라도 모든 일에서 아브라함처럼 신속하게 그 뜻에 순종할 것이다. 사도가 말하듯 이 이야기는 ‘비유’다(갈라디아서 4:24). 이 주석은 이집트 여자의 아들이 가한 ‘박해’를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집트 사람들에게 당할 400년 고난의 시작으로 해석한다.
21:12
12. “사라가 네게 말한 모든 것.” 갈라디아서 4:30에서는 이 말을 성경의 말씀이라고 부른다.
21:13
13. “여종의 아들도 내가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집안의 다툼마저 주관하여, 두 크고 비범한 민족이 생겨나게 하셨다.
21:14
14.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났다.” 떠나는 사람들이 정오 전에 피할 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일찍 일어났다. ‘떡’은 모든 종류의 식량을 포함한다. ‘가죽부대’는 어린 양이나 염소의 가죽을 통째로 꿰매 만든 용기로, 다리 부분을 손잡이로 사용하며 대개 어깨에 메고 다닌다. 이스마엘은 열일곱 살의 소년이었다. 아랍 족장들이 그 나이의 아들들을 스스로 살아가도록 내보내는 것은 매우 흔한 관습이며, 며칠 먹을 식량을 자루에 담아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이 주석은 설명한다. “브엘세바 광야에서 헤맸다.” 팔레스타인 남쪽 경계에 있는 넓은 사막 지대다. 그들은 보통 다니는 길에서 벗어나 그곳에서 길을 잃었다.
21:15
15. “물이 다 떨어졌다.” 이스마엘은 피로와 갈증으로 기진맥진해 쓰러졌다. 어머니는 아이가 습기를 느끼도록 덤불 아래에 머리를 눕혀 주었다. 자신은 아이의 고통을 차마 볼 수 없어,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절망하며 슬퍼했다.
21:19
19. “하나님이 그녀의 눈을 열어 주셨다.” 그녀는 약속을 잊었을까(창세기 16:11)? 그녀가 하나님을 바라보았든 그렇지 않았든, 하나님은 그녀를 돌보시고 바로 곁에 있는 샘으로 이끄셨다. 아마 덤불에 가려져 있었을 그 샘물로 거의 죽어 가던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
21:20–21
20–21.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바란, 곧 아라비아는 이 주석이 설명하듯 그의 후손들이 줄곧 살아온 곳이다(창세기 16:12; 이사야 48:19; 베드로전서 1:25 비교). “어머니가 그를 위해 아내를 얻어 주었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아무리 어려도 어머니가 아내를 구해 준다는 관습을 이 주석은 설명한다. 이제 이스마엘은 사실상 아버지와 떨어져 있었으므로, 어머니가 혼처를 구하기 시작했다. 아마 자기 친척 가운데서 구했을 것이다.
21:22
22. “아비멜렉과 비골.” 그 땅의 통치자가 아브라함과 엄숙한 동맹을 맺고 싶어 했다는 사실은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창세기 12:2). 합리적인 제안이었고, 아브라함은 동의했다(창세기 21:24).
21:25–31
25–31. “아브라함이 우물 때문에 아비멜렉을 책망했다.” 우물은 목축 집단의 지도자에게 매우 중요했다. 새 우물을 파는 데 성공하면 소유자에게 직접 정식으로 알렸다. 그러나 우물을 방치하여 망가뜨리면 복구한 사람이 그 우물에 대한 권리를 얻었다. 주인이 없는 땅에서는 우물을 소유하면 그 땅에 대한 재산권도 생겼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게 된 침해 행위는 바로 이것을 두려워한 데서 비롯되었다. 브엘세바에 우물이 네 개 있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고, 다섯 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21:33
33. “아브라함이 나무숲을 심었다.” 히브리어로는 ‘위성류의 숲’이다. 지붕 없는 성전처럼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며 예배했다.
21:34
34. “아브라함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나그네로 지냈다.” 목축 생활을 보여 주는 한 장면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상징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