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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22

창세기 22장 — Jamieson–Fausset–Brown

22:1

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죄를 짓도록 부추기셨다는 뜻이 아니라(야고보서 1:13), 그의 믿음이 자라나고 드러날 기회를 주어 검증하셨다는 뜻이다(베드로전서 1:7). “그가 말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르시면 즉시 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22:2

2. “지금 네 아들을 데려가라.” 말씀에 덧붙은 모든 설명은 아버지의 마음을 더 깊이 찌르는 것이었다. 외아들을 잃는 것도 모자라 자기 손으로 그 일을 해야 한다니, 이 명령이 얼마나 많은 상충하는 감정을 불러일으켰겠는가! 그러나 그는 듣고도 불평 없이 순종했다(갈라디아서 1:16; 누가복음 14:26).

22:3

3.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지체하거나 주저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도록, 그는 출발하기 전에 제사에 필요한 재료와 칼, 그것을 운반할 종들까지 모두 준비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까지 이틀 동안 가면서, 그는 이 고통스러운 비밀을 가슴에 묻어 두었다. 그렇게 먼 곳을 정하신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곳은 훗날 위대한 희생 제사가 드려진 예루살렘의 산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본다.

22:4

4. “사흘째 되는 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종들은 산 아래에 남겨 두고(창세기 22:5), 아버지와 아들은 산을 올랐다. 한 사람은 칼을, 다른 한 사람은 제물을 태울 나무를 지고 있었다(22:6). 그러나 제물은 없었다. 이삭이 당연히 할 만한 질문을 하자(22:7),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하나님이 친히 번제로 바칠 어린양을 마련하실 것이다”라는 대답만 했다. 이 특별한 사건은 땅의 모든 가문이 어떤 방식으로 복을 받게 될지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아브라함도 이삭에게 대답할 때 대체 제물을 예상했으리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결과는 알지 못한 채 아들에게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면서도, 아들이 희생되더라도 어떤 기적적인 방법으로 다시 돌아오리라는 무한한 신뢰를 표현했다는 설명이 더 그럴듯하다(히브리서 11:19).

22:9

9.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행한다는 확신이 아브라함을 붙들어 주지 않았다면, 이 일은 사람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스무 살이 넘었을 이삭도 이에 복종하는 동일한 믿음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이 큰 시험을 끝까지 치를 수 없었을 것이다.

22:11–12

11–12. “천사가 불렀다.” 그 제사는 사실상 이미 드려진 것이었다. 제사를 드리려는 의도와 결심이 진실하고 온전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증인은 최고의 찬사를 담아 그것을 받으셨다고 선언하셨다. 사도들 역시 실제로 바친 일로 말한다(히브리서 11:17; 야고보서 2:21).

22:13–19

13–19.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숫양이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을 아브라함에게 뚜렷하게 이해시키는 데 이처럼 눈앞에서 펼쳐진 모형보다 더 적절한 방법은 없었다. 우리 주님도 이 일을 가리켜 말씀하셨다(요한복음 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