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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30

창세기 30장 — John Gill

30:1

“라헬은 자신이 야곱에게 자녀를 낳아 주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결혼 후 서너 해가 지났고, 언니 레아는 아들 넷을 얻은 때였다. “라헬이 언니를 시기했다.” 자신은 불임의 수치를 겪는 동안 언니가 누리는 출산의 영예와 아이들을 돌보고 기르는 기쁨을 시기했다는 뜻이다. 또는 ‘언니와 같아지기를 열망했다’(z)라고 옮길 수도 있다. 언니처럼 자녀를 갖고 싶어 했다는 뜻이라면, 그 바람 자체는 죄가 아닐 수 있고, 더구나 매우 중대한 죄인 시기라고 할 필요도 없다. “야곱에게 말했다. 자녀를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죽겠어요.” 야곱은 처음에 그렇게 이해한 듯하지만, 라헬이 야곱에게 자기 뜻대로 자녀를 주거나 불임 여성을 아이 잘 낳는 어머니로 만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었을 수는 없다. 오히려 요나단 타르굼이 풀이하듯, 이삭이 리브가를 위해 기도한 것처럼 주님께 자녀를 달라고 기도해 달라는 뜻일 수 있다. 아벤 에스라와 야르키도 그렇게 본다. 또는 적어도 자기 자녀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를 얻도록 어떤 방법이든 생각해 달라는 뜻일 수 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그녀에게는 한 방법이 마음속에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편안히 살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일부의 생각처럼 자살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너무 괴로워 삶이 짐이 되고 죽는 편이 낫게 여겨질 것이라는 뜻이다. 자녀가 없어 괴로워하다가 실제로 죽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z) 취리히역·유니우스와 트레멜리우스·슈미트: aemulata est, ‘같아지려 했다, 경쟁했다’.

30:2

“야곱이 라헬에게 화가 났다.” 몹시 사랑했지만, 겉으로 들리기에 지나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큰 불편함과 조급함을 나타낼 뿐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없는 일까지 요구하는 뜻을 담았다. “그가 말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소?” ‘나를 하나님으로 여기거나, 다른 피조물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 특별 권한을 받은 사람으로 여기오?’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런 권한을 누구에게도 주시지 않는다. 창 30:22의 예루살렘 타르굼은 불임의 열쇠가 하나님께서 천사나 스랍에게도 맡기지 않으시는 네 열쇠 중 하나라고 말한다. 자녀는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그분께 구해야 한다. 그래서 온켈로스와 요나단은 ‘왜 내게 구하느냐? 주님께 구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풀이한다. “당신에게 태의 열매를 주지 않으신 분.” 태의 열매는 자녀이다(시 127:3). 주지 않으신 분은 야곱이 아니라 주님이시다.

30:3

“그녀가 말했다.” 야곱을 달래고 자신의 뜻을 설명하려는 말이었다. 그에게 자신을 자녀의 어머니로 만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녀로 여길 아이를 얻을 방법을 생각해 달라는 뜻이었다. 아랍어역도 ‘나를 위해 아들을 얻어 주세요’라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그녀가 하나를 제안했다. “내 여종 빌하가 있으니 그녀에게 들어가세요.” 그녀를 아내로 삼아 부부의 관계를 맺으라는 뜻이다. “그녀가 내 무릎 위에서 낳을 것입니다.” 출산할 때 라헬의 무릎 위에 앉아 마치 라헬 자신이 낳는 것처럼 하라는 뜻이거나, 더 적절하게는 아이를 낳으면 라헬이 자기 아이처럼 받아 돌보고 무릎 위에서 어르겠다는 뜻이다(사 66:12 참조). “나도 그녀를 통해 자녀를 얻도록.” 여종을 통해서라도 언니처럼 자녀를 얻겠다는 뜻이다. 사라가 하갈을 통해 얻으려 한 것과 같다. 라헬은 아마 그 사례를 생각하며 같은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창 16:2의 길 주석 참조.

30:4

“그녀가 여종 빌하를 그에게 주었다.” 아내로 함께 지내게 한 것이다. 실제로는 첩이었지만 첩도 때로 아내라고 불렸다. 이들은 정식 아내 아래에 있는 둘째 지위의 아내였고, 자녀에게 상속권이 없었다. 그러나 야곱이 아내들의 여종에게서 얻은 자녀들은 다른 자녀들과 함께 상속받았다. “야곱이 그녀에게 들어갔다.” 아내 라헬의 제안에 동의한 것이다. 당시에는 여러 아내뿐 아니라 첩을 두는 일도 범죄로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묵인하셨다. 이 경우에는 야곱의 자손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사라의 요청으로 하갈을 아내로 맞았던 사례 때문에 야곱도 아내의 제안을 더 쉽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

30: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주님은 빌하에게 임신의 복을, 야곱에게 그녀를 통한 아들의 복을 주셨다는 점에서 이 일을 그만큼 허용하셨다.

30:6

“라헬이 말했다.” 빌하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 말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판결하셨다.” 라헬은 이로써 여종을 남편에게 준 행동을 하나님이 승인하고, 자신이 한 일이 옳다는 것을 증언하셨다고 이해했다. “내 목소리도 들으셨다.” 기도의 목소리이다. 여종이 아이를 낳게 하거나 자신이 여종을 통해 아이를 얻도록 하나님께 기도했다. “내게 아들을 주셨다.” 빌하가 자기 종이므로 그에게서 난 아이도 자기 것이라고 여겼거나, 입양하여 자기 아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어지는 것처럼 이름을 지을 권한도 행사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라헬이 이 아이를 하나님의 선물이며 기도의 열매, 자신에게 베푸신 자비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은혜로 대하시고 자기 편에 서서 의롭게 판결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름을 단이라 불렀다.” ‘판결’을 뜻한다. 그 이유는 이 절의 첫 문장에 있다.

30:7

“라헬의 여종 빌하가 다시 임신했다.” 첫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야곱에게 둘째 아들을 낳아 주었다.” 야곱의 여섯째 아들이지만 빌하에게서 난 둘째였다.

30:8

“라헬이 말했다. 내가 언니와 크게 씨름했다.” 또는 ‘하나님의 씨름으로’(a), 곧 하나님께 기도로 씨름하며 분투했다는 뜻이다. 언니처럼 자녀를 얻으려고 하나님께 격렬하고 끈질기게 간청했다는 말이다. 일부는 ‘하나님의 꾀’, 또는 ‘언니에게 큰 꾀를 사용했다’(b)고 옮긴다. 여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 그녀에게서 자녀를 얻은 일을 말한다. “그리고 내가 이겼다.” 언니가 다시 낳기 전에 또 다른 아이를 얻으려고 소원하고 기도하며 힘썼으므로, 그 점에서 이겼거나 바람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원하던 자녀들을 얻었다. “그 이름을 납달리라 불렀다.” ‘나의 씨름’이라는 뜻이다. 애써 씨름하며 구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빌하의 두 아들 가운데 단은 엘룰월, 곧 8월로 대응시키는 달의 29일에 태어나 127년을 살았고, 납달리는 티슈리월, 곧 9월의 5일에 태어나 133년을 살았다. [날짜의 대응과 수명은 저자가 전하는 전승이다.] (a) 몬타누스·바타블루스·드루시우스·카트라이트: luctationibus Dei, ‘하나님의 씨름으로’. (b) 올레아스테르: Calliditatibus Dei, ‘하나님의 영리한 수단으로’. 슈미트: astutiis Dei, ‘하나님의 꾀로’.

30:9

“레아는 자신이 출산을 멈춘 것을 보고.” 잠시 동안이었다. 나중에 다시 낳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동생이 한 일도 보았다. “여종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아내로 주었다.” 이 일에서는 라헬보다 변명할 여지가 적었다. 자신이 낳은 자녀가 이미 넷이므로 여종을 통해 더 얻으려 하지 않고 만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산을 멈춘 지도 오래되지 않았으므로 더 낳을 희망을 포기할 이유도 없었다.

30:10

“레아의 여종 실바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라헬의 요청으로 빌하를 맞았듯, 야곱은 레아의 제안으로 실바도 아내로 맞는 데 동의한 듯하다. 한쪽의 뜻을 들어주었으므로 다른 쪽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는 실바와 동침했고 그녀는 임신했다. 이 두 일은 언급되지 않지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30:11

“레아가 말했다. 무리가 오는구나.” 자녀의 무리이다. 자신이 넷을 낳았고 이제 여종이 하나를 더 낳았으며 앞으로도 더 기대했다. 또는 군대를 이끌고 원수를 이길 무리의 지휘자가 온다는 뜻일 수 있다. 이는 야곱의 예언과 맞는다(창 49:19). “그 이름을 갓이라 불렀다.” ‘무리’를 뜻한다. 이미 얻었거나 앞으로 얻기를 바라는 많은 자녀를 자랑한 것이다.

30:12

“레아의 여종 실바가 야곱에게 둘째 아들을 낳아 주었다.” 빌하처럼 둘을 낳았고 그 이상은 낳지 않았다.

30:13

“레아가 말했다.” 여종에게서 둘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였다. “나는 행복하다.” 또는 ‘내 행복 가운데’, ‘내 행복을 위하여’(c)이다. 이 아이가 행복을 더하고 늘려 준다는 뜻이다. “여자들이 나를 복되다고 하리라.” 자신이 사는 곳의 여성들은 자기 자녀도 많고 여종에게서 얻은 자녀도 있는 그녀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시 127:5 참조). “그 이름을 아셀이라 불렀다.” ‘행복한, 복된’을 뜻한다. 유대 저술가들에 따르면(d), 실바의 두 아들 중 갓은 마르헤스완월, 곧 10월로 대응시키는 달의 10일에 태어나 125년을 살았고, 아셀은 스밧월, 곧 1월의 22일에 태어나 123년을 살았다. [날짜의 대응과 수명은 저자가 인용한 전승이다.] (c) 몬타누스: in felicitate mea, ‘내 행복 가운데’. 드루시우스: ob beatitatem meam, ‘내 행복 때문에’. 불가타: hoc pro beatitudine mea, ‘이것은 내 행복을 위한 것이다’. 슈미트: pro beatitudine mihi est, ‘내게 행복이 된다’. (d) 『샬셸레트 하카발라』 4장 앞면.

30:14

“밀을 거두는 날들에 르우벤이 나갔다.” 레아의 맏아들로, 이때 네댓 살쯤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e). 아마 놀려고 장막에서 들로 나갔을 것이다. 요나단 타르굼에 따르면 시완월, 곧 우리의 5월 일부에 해당하는 밀 수확기였고, 땅이 꽃으로 덮이는 계절이었다. “들에서 합환채를 찾았다.” 칠십인역의 표현으로는 맨드레이크의 꽃이나 열매, 곧 맨드레이크 사과이다. 이 식물은 사랑과 성욕을 일으키고 임신을 준비시키며 돕는다고 전해졌다. 그래서 라헬이 이 ‘합환채’를 원했다고 여겨진다. 두다임이라는 이름도 사랑에서 나온 듯하다. 이 단어는 여기와 아 7:13에만 나오며, 아가에서는 좋은 향기로 칭찬받는다. 그러므로 길은 이것이 자기 시대에 맨드레이크라고 부르는 식물일 수 없다고 본다. 그 식물은 좋은 향이나 좋은 열매가 없고 성질이 차므로, 앞서 말한 효과를 낼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가 들에서 따 온,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사랑스럽고 즐거운 꽃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부는 재스민, 다른 이들은 백합이나 제비꽃이라고 생각한다(f). 무엇인지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아 7:13의 길 주석 참조.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왔다.” 아이들이 흔히 하듯, 자신이 모은 고운 꽃이나 열매를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라헬이 레아에게 말했다. 아들의 합환채를 조금 주세요.” 색깔이나 향기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임신을 돕거나 불임을 없앤다는 견해에는 근거가 없다. 그것을 얻은 라헬이 그 때문에 임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라헬과 레아의 임신은 모두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들어 주신 결과로 설명된다. (e) 『샬셸레트 하카발라』 3장 뒷면. (f) 바빌로니아 탈무드 「산헤드린」 99장 뒷면과 해당 주해 참조.

30:15

“그녀가 말했다.” 레아가 라헬에게 한 말이다. 이 기회에 한동안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일을 꺼냈다.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남편의 애정을 가장 많이 받고 함께 지내는 시간도 대부분 차지했다는 뜻이다. 후자는 매우 가능성이 크며, 레아가 출산을 멈춘 뒤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레아는 이를 견디기 어려워서 이 사소한 계기에 터뜨린 것이다. “내 아들의 합환채까지 빼앗으려 하느냐?” 남편과 나란히 언급하기에는 보잘것없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라헬은 허락 없이 아이에게서 빼앗으려 하지 않고, 매우 겸손하게 허락을 구했다. “라헬이 말했다. 그러면 아들의 합환채를 받는 대신 오늘 밤에는 그가 언니와 자게 하세요.”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함께 지내는 시간을 내줄 마음이 있다는 것은 남편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고 그의 동행을 가볍게 여김을 보여 준다. 이를 보면 자매가 야곱과 번갈아 잠자리를 같이했으며, 이날 밤이 라헬의 차례여서 합환채를 얻으려고 레아에게 넘겨준 듯하다. 또는 앞의 레아의 말처럼 최근 남편을 많이 독점했다면, 어쨌든 그 대가로 이날 밤만은 언니에게 내주려 했던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레아는 합환채를 주는 데 동의했다.

30:16

“야곱이 저녁에 들에서 돌아왔다.” 양 떼를 먹이고 돌아온 것이다. “레아가 나가 그를 맞았다.” 평소 집에 오는 시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내게 들어와야 해요.” 자기 장막으로 오라는 뜻이다. 사라가 아브라함과 별도 장막을 썼듯 여자들은 남자와 따로 장막을 썼다. 야곱의 아내들도 그의 장막과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서로의 장막도 별도였다.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확실히 샀어요.” 르우벤이 들에서 가져온 합환채를 주고, 그날 밤 야곱과 지낼 권리를 라헬에게서 샀다는 뜻이다. 야곱은 반대하지 않고 동의했다. 두 아내가 서로 합의한 것을 알고 양쪽 모두를 기쁘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그가 그녀와 동침했다.” 당장은 그날 밤뿐이었다. 표현상 당시 여러 밤을 계속 함께 지낸 것이 아니라, 그날 저녁 전처럼 다시 라헬의 장막으로 간 듯하다.

30:17

“하나님이 레아의 말을 들으셨다.” 요나단 타르굼의 풀이대로 자녀를 더 달라는 레아의 기도를 들으셨다. 길은 이 선한 여성들이 남편과 함께 지내고 싶어 한 까닭이 정욕이나 애욕이 아니라 많은 자녀를 얻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여종들을 남편에게 준 사실에서 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패트릭 주교가 적절히 지적하듯,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아지고 그들에게서 메시아가 나오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룩한 역사의 품격에 맞지 않는 듯한 일들을 모세가 이처럼 자세히 기록한 참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다섯째 아들을 낳아 주었다.” 레아에게서 난 다섯째이며, 야곱에게 태어난 아들 전체로는 아홉째였다.

30:18

“레아가 말했다. 하나님이 내 품삯을 주셨다.” 라헬에게서 야곱과 하룻밤 지낼 권리를 산 합환채의 대가이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은 충분한 보상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또 다른 이유, 매우 뒤틀린 이유를 덧붙였다. 받은 복을 잘못 해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내 여종을 남편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또 다른 아들로 보상하셨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름을 잇사갈이라 불렀다.” ‘품삯, 보상’, 또는 ‘보상이 있다’, ‘보상의 사람’을 뜻한다.

30:19

“레아가 다시 임신했다.” 자녀를 낳자 야곱은 그녀에게 더 가까워지고 거처와 침상을 더 자주 찾았다. “야곱에게 여섯째 아들을 낳아 주었다.” 레아에게서 난 여섯째이며, 레아와 두 여종에게서 난 아들을 합하면 열째였다.

30:20

“레아가 말했다. 하나님이 내게 좋은 혼인 선물을 주셨다.” 자녀가 이렇게 많기 때문이다. 남편은 결혼할 때 아무것도 줄 수 없었고 아버지도 여종 하나만 주었지만, 하나님은 많은 아들을 주셔서 풍성하게 채워 주셨다. 자녀는 주님께서 주시는 유산이다(시 127:3). “이제 남편이 나와 함께 살겠지.” 이전처럼 가끔 장막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함께 살리라는 기대이다. “내가 남편에게 아들 여섯을 낳아 주었으므로.” 이것이 그의 애정을 자신에게 붙잡아 두고, 자신에게 굳게 붙어 계속 함께 살게 하리라고 생각했다. “이름을 스불론이라 불렀다.” ‘거주’를 뜻한다. 유대 저술가들에 따르면(g), 레아의 이 두 아들 중 잇사갈은 아브월, 곧 7월로 대응시키는 달의 10일에 태어나 122년을 살았고, 스불론은 티슈리월, 곧 9월의 7일에 태어나 124년을 살았다. [날짜의 대응과 수명은 저자가 인용한 전승이다.] (g) 『샬셸레트 하카발라』 4장 앞면.

30:21

“그 뒤에 딸을 낳았다.” 아벤 에스라가 전하듯 일부 저술가는 스불론과 같은 출산에서 태어난 쌍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뒤에’라는 표현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이름을 디나라 불렀다.” ‘판결’을 뜻한다. 라헬이 여종 빌하의 맏아들에게 붙인 같은 의미의 이름 단을 염두에 두었을 수 있다. 판결이 자기 편으로 기울었다는 것이 분명하고, 자녀 수를 보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결정하셨음이 명백하다는 뜻을 담았을 수 있다.

30:22

“하나님이 라헬을 기억하셨다.” 자녀를 주지 않아 잊으신 듯했던 라헬을 자비와 친절로 기억하셨다. “하나님이 그녀의 말을 들으셨다.” 자녀를 달라고 거듭 드린 기도이다. 지금까지 응답을 늦추셨지만 이제 응답하셨다. “그녀의 태를 여셨다.” 임신하게 하고 자녀를 낳게 하셔서, 그토록 바라던 아이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다.

30:23

“그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께서 선하심을 베푸신 결과였고, 그녀는 크게 감사했다. “하나님이 내 수치를 없애셨다.” 이웃들, 어쩌면 언니 레아에게도 들었던 불임의 수치이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수치로 여겨졌다. 특히 아브라함 집안의 경건한 여성들에게는 더욱 괴로웠다. 약속에 따라 그의 자손을 늘리는 도구가 되지 못하고, 자기에게서 메시아가 나올 희망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30: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불렀다.” ‘더함’, 또는 더 정확히 ‘더해질 것’, ‘하나님이 더하실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주님께서 내게 다른 아들을 더해 주실 것이다.” 강한 믿음의 표현이다. 자녀를 낳기 시작했으니 또 낳으리라는 기대이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일부는 ‘주님께서 더해 주시기를’, 또는 ‘주님께서 더해 주시도록’이라는 소원이나 기도로 읽지만(h), 우리의 영어역이 가장 나아 보인다. 요셉이라는 이름은 두 단어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모으거나 없앤다는 뜻으로 30:23에 쓰였고, 다른 하나는 더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님이 수치를 없애시고 또 다른 아들을 더하실 일을 함께 가리킨다. 폴리히스토르가 전하듯(i), 이교 저술가 멜로도 요셉의 이름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를 아브라함의 열두째이자 마지막 아들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야곱의 열한째였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k) 그는 담무스월, 곧 6월로 대응시키는 달의 27일에 태어나 110년을 살았다. (h) 불가타·파그니누스·몬타누스·유니우스와 트레멜리우스·피스카토르: addat, ‘더하시기를’. (i) 유세비우스, 『복음의 준비』 9권 19장 421쪽에 인용. (k) 『샬셸레트 하카발라』 앞의 곳.

30: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 이때 야곱의 14년 봉사가 끝났다. 그는 라반의 집에 20년 있었는데, 14년은 아내들을 위해 일했고 나머지 6년은 가축을 위해 일했다. 문맥이 분명히 보여 주듯 그 6년은 이때 시작되었다(창 31:41 참조). 따라서 유대 저술가들이 옳게 관찰하듯(l), 7년 동안 야곱에게 열두 자녀, 곧 아들 열한과 딸 하나가 태어났다. 어느 아내든 맞아들이기 전에 이미 7년을 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셉 외에는 각 아이마다 쌍둥이가 함께 태어났다고도 주장하지만, 여기에는 근거가 없다. “야곱이 라반에게 말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집을 떠날 허락을 달라는 뜻이다. 봉사 기간이 끝났으므로 자유를 요구하고 주장할 권리가 있었지만, 허락을 받아 우호적으로 헤어지려 했다. “제 고향, 제 땅으로 가겠습니다.” 보고 싶었을 부모가 사는 브엘세바로 가려는 것이다. 그곳이 있는 가나안 땅은 태어난 나라이고, 약속으로 주어져 자손의 유산이 될 땅이었다. (l) 『피르케 데라비 엘리에제르』 36장; 『체마흐 다비드』 1부 6장 뒷면.

30:26

“제 아내들을 주십시오.” 두 아내 레아와 라헬, 그리고 아내로 주어진 두 여종 빌하와 실바를 말한다. 이제 아내로 얻을 허락이 아니라 함께 데려갈 허락을 구한다. “제 자녀들도.” 열두 자녀이다. 장인에게 일부를 맡아 길러 달라고 하지 않고 모두 함께 데려가려 했다. 틀림없이 교육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부양할 자기 재산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실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그 약속을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적용했다. “그들을 위해 제가 섬겼습니다.” 자녀들이 아니라 아내들, 두 아내를 위해서였다. “저를 떠나게 해 주십시오.” 봉사에서 자유롭게 되어 자기 땅으로 가게 해 달라는 말이다. “외삼촌은 제가 어떻게 섬겼는지 아십니다.” 얼마나 많은 큰 일을 얼마나 부지런하고 신실하게 했는지, 또 정해 합의한 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30:27

“라반이 말했다. 내가 네 눈에 은혜를 입었다면 부디 머물러 다오.” 자신이 야곱을 대한 방식을 생각하면 많은 호의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려고 아첨하며 교묘하게 달랬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떠나지 말고 머물러 달라고 매우 겸손하게 간청하며, 큰 호의로 여기겠다고 했다. 의무나 정의를 근거로 머물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경험으로 알았다.” 지난 14년 동안 관찰한 결과이다. “너 때문에 주님께서 내게 복 주셨다.” 라반에게는 자신이 가진 좋은 것과 복의 근원이자 주시는 분을 주님으로 인정할 정도의 신앙은 있었다. 또 그것이 야곱 때문이라고 인정할 정도의 정직함도 있었거나, 적어도 그렇게 인정하는 편이 자기 이익에 더 맞는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번역된 단어는 때로 점치는 일을 뜻하며, 요나단과 예루살렘 타르굼은 ‘내가 점을 쳤다’고 옮긴다. 야르키와 아벤 에스라에 따르면 라반은 점쟁이이자 예언술을 행하는 사람이었다. 집에 있던 드라빔(창 31:19)으로 점을 쳐서 야곱 때문에 복을 받았음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슈미트가 지적하듯, 마귀가 라반에게 여호와와 야곱에 대해 그렇게 훌륭한 증언을 했으리라는 것은 믿기 어렵다.

30:28

“그가 말했다. 네 품삯을 정해 다오. 그대로 주겠다.” 원하는 것을 말하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보수를 정하면 동의하고 정확히 지급하겠다는 뜻이다. 교묘한 말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제안하지 않고 야곱에게 맡겼다. 야곱이 정직하고 겸손하여 자신이 차마 제안하지 못할 만큼 적은 보수를 말하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30:29

“그가 말했다.” 야곱이 라반에게 한 말이다. “제가 외삼촌을 섬긴 것을 아십니다.” 부지런하고 신실하게 일했을 뿐 아니라, 아내들을 얻은 것 외에는 아무 보수 없이 일했다. 그동안 노동에 다른 품삯이 없었으므로 앞으로는 이를 고려해야 했다. “제 곁에서 외삼촌의 가축이 어떠했는지도.” 가축은 언제나 그의 돌봄 아래 있었고 그는 늘 주의 깊게 지켰다. 모든 시간과 노동을 거기에 쏟아 자기 것을 얻을 기회가 없었다.

30:30

“제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것이 적었습니다.” 막내딸 라헬이 돌보았으므로, 아마 한 떼뿐이고 그것도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크게 늘었습니다.” 또는 ‘터져 나왔다’(m). 근처의 들판과 평야, 언덕과 산으로 퍼져 그곳들이 라반의 양들로 덮였다는 뜻이다. 양들은 수천 수만으로 늘어났다(시 144:13). “제가 온 뒤로 주님께서 외삼촌에게 복 주셨습니다.” 또는 ‘내 발에서’(n), 곧 집에 발을 들인 이후이다. 아벤 에스라는 이를 ‘저 사람은 좋은 발, 행운의 발을 가졌다. 어디로 가든 복과 성공이 따라간다’는 속담 같은 표현으로 본다. 또는 야곱이 어디로 양 떼를 이끌고 가 먹이든 하나님의 복이 함께하여 번성했다는 뜻일 수 있다. 온켈로스는 ‘나 때문에’라고 옮긴다. 그렇다면 라반이 관찰하고 인정한 말(30:27)과 같다. “이제 저도 언제 제 집안을 위해 준비하겠습니까?” 그것이 자기 의무이며, 부양할 큰 가족이 있으니 때가 충분히 되었다는 뜻을 내비친다(딤전 5:8 참조). (m) 유니우스와 트레멜리우스·피스카토르·드루시우스: erupit, ‘터져 나왔다’. (n) 몬타누스·피스카토르·드루시우스·슈미트: ad pedem meum, ‘내 발에’.

30:31

“그가 말했다. 무엇을 주면 되겠느냐?” 라반은 여전히 자신이 제안하는 것은 피하면서 야곱을 기다렸고, 보수를 정하라고 재촉했다. “야곱이 말했다. 아무것도 주실 필요 없습니다.” 라반이 매우 좋아했을 말이다. 고정된 보수를 정해 줄 필요가 없다는 뜻이며, 하나님이 야곱 때문에 복 주셔서 라반이 현재 소유한 것에서도 어느 몫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만 이 일을 해 주시면.” 곧 말하려는 일, 30:32에서 제시하는 조건이다. “제가 다시 양 떼를 먹이고 지키겠습니다.” 원문은 ‘돌아가겠습니다, 먹이겠습니다, 양 떼를 지키겠습니다’라는 아름다운 표현이다. 이를 보면 봉사 기간이 끝나자 야곱은 양 떼 돌보는 일을 내려놓았던 듯하다. 그러나 다음 조건으로 다시 맡아, 예전처럼 풀밭으로 이끌어 먹이고 밤낮으로 지키겠다고 제안한다.

30:32

“오늘 모든 양 떼를 지나겠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라반과 그의 아들들도 함께할 것이다. “점과 얼룩이 있는 모든 가축을 떼어 내겠습니다.” 검은 바탕에 흰 반점이 있거나 흰 바탕에 검은 반점이 있는 것들이다. 야르키와 벤 멜레크에 따르면 ‘점 있는’은 작은 반점, ‘얼룩 있는’은 더 큰 반점을 가진 것이다. “양 중 갈색인 모든 가축.” 적갈색 또는 일부가 옮기듯 ‘검은색’(o)이다. 아벤 에스라도 그렇게 읽고, 또 다른 종류인 barud를 언급한다. 우박 알갱이 같은 흰 반점이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 단어는 여기 본문이 아니라 창 31:10에 나오며, 앞서 묘사한 것들과도 겹친다. “염소 중 얼룩과 점이 있는 것.” 양처럼 크고 작은 반점이 있는 염소들이다. “그런 것들이 제 품삯이 될 것입니다.” 현재 떼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그와 같은 것들이다. 이상한 제안이며 야곱에게 큰 이득이 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는 무엇을 하는지 알았고, 아마 하나님께 인도받았을 것이다. 환상으로는 아니더라도 마음에 일어나는 확신으로 이런 방법이 옳고 성공하리라는 것을 알았을 수 있다(창 31:10 참조). (o) 몬타누스·파기우스: nigrum, ‘검은’. 솔로몬 우르비노도 같음, 『오헬 모에드』 98장 앞면.

30:33

“앞으로 제 의로움이 저를 증언할 것입니다.” 자신이 얻을 성공과 그것을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통해, 앞으로와 모든 후대에 자신이 매우 의롭고 신실하게 섬겼음이 드러나리라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더 적절한 뜻은 이렇다. 라반의 떼에서 점 있는 것을 모두 떼어 내고 야곱에게는 흰 것들만 남겨 돌보게 했으므로, 나중에 야곱에게 점 있는 것이 있으면 라반의 떼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섭리 가운데 복으로 얻어 정직하고 의롭게 소유하게 된 것임이 분명해진다. “외삼촌 앞에서 제 품삯을 살필 때.” 점 있는 새끼가 태어나면 그것이 자기 보수임이 라반 앞에서 명백해진다는 뜻이다. 또는 슈미트처럼, 야곱의 보수인 점과 얼룩 있는 가축에 관하여 라반에게서 부당하게 빼앗았다는 불평이 제기될 때, 지금 이렇게 구분해 둔 행동이 충분한 변호가 되어 비방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염소 중 점이나 얼룩이 없는 것, 양 중 갈색이 아닌 것이 제게 있으면 훔친 것으로 여기십시오.” 앞으로 야곱이 자기 떼라고 부를 가축 중에 점과 얼룩이 없거나 갈색이 아닌 것이 발견되면, 자신에게 권리가 없는 도난품으로 간주해도 좋다는 뜻이다.

30:34

“라반이 말했다.” 야곱의 제안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일반적으로 가축은 자기와 같은 색의 새끼를 낳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야곱이 흰 양들만 맡고 거기서 태어나는 점과 얼룩과 갈색 있는 것을 자기 몫으로 받겠다고 했으므로, 라반은 자연의 일반적인 경향에 따라 야곱의 몫이 전혀 없거나 매우 적으리라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곧바로 거래를 맺으려 했다. “좋다. 네 말대로 되기를 바란다.” 야곱이 정한 대로 하기로 동의하며, 그가 이를 지키기를 바라고 원했다. 야곱이 약속을 바꾸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30:35

“그날 줄무늬와 얼룩 있는 숫염소를 떼어 냈다.” 어깨나 넓적다리, 다리나 발, 또는 몸의 어느 부분에든 나머지와 다른 색의 줄이 있는 것들이다. 여기의 단어는 앞서 ‘점 있는’으로 옮긴 말 대신 쓰였다. 문맥이 보여 주듯 이를 행한 사람은 라반이다. 야곱의 제안이 마음에 들어 즉시 실행했다. “점과 얼룩 있는 모든 암염소도.” 섞인 색의 수컷이나 암컷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하여 그런 새끼가 태어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조금이라도 흰빛이 있는 모든 것.” 요나단 타르굼의 풀이대로 흰 반점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 곧 갈색이나 검은색 바탕에 흰색이 조금이라도 있는 가축이다. “양 중 갈색인 모든 것.” 온몸이 갈색인 것들이다. “그의 아들들에게 맡겼다.” 아벤 에스라가 전하는 일부 견해처럼 야곱의 아들들이 아니다. 맏아들 르우벤도 아직 일곱 살이 아니어서 양 떼를 맡을 수 없었다. 이제 자라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던 라반의 아들들이다.

30:36

“자신과 야곱 사이에 사흘 길의 거리를 두었다.” 사람이 아니라 가축이 사흘 가는 거리이다. 라반과 아들들이 점과 얼룩과 갈색 가축을 돌보는 곳과, 야곱이 흰 양들만 돌보는 곳 사이의 거리였다. 양 떼가 섞이지 않고, 점 있는 것을 가져갈 기회도 없으며, 그것들이 야곱의 떼로 떠돌아 들어가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다. 또는 야곱의 가축이 그것들을 보고 비슷한 새끼를 낳는 것을 막으려고 이런 예방책을 썼을 수 있다.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먹였다.” 점과 얼룩과 갈색을 떼어 낸 나머지였다. 흰 양뿐이었으므로 자연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보면 야곱이 많은 보수를 얻을 가능성은 낮았다. 거기서 태어나는 점과 얼룩과 갈색인 것만 받을 수 있었고, 대개 같은 것이 같은 것을 낳기 때문이다. 유대 저술가들에 따르면(p), 맡겨진 가축은 늙고 새끼를 낳지 못하며 병들고 약한 것들이어서 이익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p) 『베레시트 라바』 73절, 64장 앞면; 요나단 타르굼과 야르키의 해당 구절 주석.

30:37

“야곱이 푸른 포플러 가지를 가져왔다.” 은백양의 가지이다. ‘푸른’은 색이 아니라 수분을 가리킨다. 나무에서 막 잘라 낸 가지였다는 뜻이다. “개암나무와 밤나무 가지도.” 사아디아 가온 등은 앞의 것을 아몬드나무로 보고, 에인즈워스 등은 뒤의 것을 플라타너스로 본다. “흰 줄무늬가 나도록 껍질을 벗겼다.” 어떤 부분은 벗기고 다른 부분은 남겨 흰 줄무늬가 생기게 했다. “가지 안의 흰 속을 드러냈다.” 껍질을 벗긴 부분은 희게 보였으며, 다른 곳에 남은 껍질 때문에 더욱 희게 보였다. 둘이 함께 가지를 여러 색으로 보이게 했고, 이것이 껍질을 벗긴 야곱의 목적이었다.

30:38

“껍질 벗긴 가지들을 양 떼 앞에 놓았다.” 양 떼가 바라볼 수 있도록 맞은편에 두었다. “양 떼가 물 마시러 오는 물도랑과 물구유에.” 물이 흘러들어 가축이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구유나 그릇을 만든 장소이다. 야곱은 여러 색의 가지들을 양 떼 바로 맞은편에 놓았다. “물 마시러 올 때 새끼를 배도록.” 가축들이 물가에 모여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리면 그런 일이 일어나기 쉬웠을 것이다. 이 단어의 뜻대로 교미 욕구로 ‘달아올라’(q) 가지들이 보이는 곳에서 새끼를 배게 하려는 것이었다. 길은 여러 색의 가축을 얻으려고 수태 때 상상에 영향을 주도록 가지들을 놓았다고 설명한다. 틀림없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고, 그 복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바라던 성공을 얻었다고 본다. [이는 저자의 당시 번식 현상 해석이다.] (q) 몬타누스·바타블루스·드루시우스: incalescebant, ‘달아올랐다’. 유니우스와 트레멜리우스: ut incalescerent, ‘달아오르게 하려고’.

30:39

“양 떼가 가지들 앞에서 새끼를 배었다.” 가지 곁에서 그것들을 바라보며 그랬다는 뜻이다. 길은 상상력의 힘과, 이 방책을 인도하고 성공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통해 가지들이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줄무늬와 점과 얼룩 있는 가축을 낳았다.” 야곱이 보수로 받을 종류였다. 이 일에는 틀림없이 보통 이상의 하나님의 섭리적 협력이 있었지만, 길은 상상력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난 특이한 일들도 많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임신한 여성의 생각이 아이에게 어떤 표지를 남긴다는 이야기, 또는 마음에 그린 사람과 같은 아이를 임신하여 낳는다는 이야기를 든다. 방에 있는 흑인의 그림을 자주 보아 흑인 아이를 낳았다는 여성의 사례와, 같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흰 피부의 아이를 낳자 간음한 사람으로 여겨질까 두려워 아이를 버렸다는 에티오피아 왕비의 이야기도 인용한다(r). [이것들은 저자가 인용한 역사적 설화와 당시의 잘못된 유전 설명이다.] 이 본문에 더 가까운 사례로, 히에로니무스는 스페인에서 암말이 교미할 때 아름다운 수말을 앞에 두어 같은 일을 했다고 전한다(s).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t), 독특한 반점이 있는 이집트의 소 아피스도 같은 방식으로 얻어져, 늘 같은 모양과 색의 소가 대를 이었다. 일부 저술가들은(u) 양이 교미할 때 마시는 물에 따라 색이 달라지며, 어떤 강물은 흰 양을 검게, 검은 양을 희게 하고, 다른 강물은 붉거나 노랗게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 방법을 지시하셨다면 그것으로 그의 정당성은 충분하다고 길은 말한다. 자연에 이런 결과를 낳을 요소가 무엇이든, 성공은 하나님의 복과 섭리에 달려 있었다. 라반에게 크게 해를 입은 야곱이 자기 권리를 되찾으려 한 것이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시로 이집트 사람들에게 보석 등을 요구하여 고된 봉사의 대가를 받은 것과 똑같이 정당하고 의로운 일이었다. [영어 배포본 편집자 주] 이 글은 유전 법칙이 발견되기 100여 년 전에 쓰였다. 우리는 그 결과가 야곱의 계책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안다. (r) 헬리오도로스, 『에티오피아 이야기』 4권 8장. (s) 히에로니무스, 『창세기의 히브리어 문제들』 70장, L–M. (t)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18권 5장. (u) 아일리아노스, 『동물에 관하여』 8권 21장; 플리니우스, 『박물지』 2권 103장.

30:40

“야곱이 어린양들을 따로 떼었다.” 줄무늬와 점과 얼룩 있는 것들이다. “양 떼의 얼굴을 돌려놓았다.” 모두 흰 양들을 말한다. “라반의 양 떼 중 줄무늬 있는 것과 모든 갈색인 것을 향해.” 그것들을 흰 양들 앞서 가게 하여, 바라보면서 새끼를 배고 같은 종류를 낳도록 했다는 뜻이다. 자기 양을 늘리기 위한 또 하나의 방책이었다. 또는 물구유의 한쪽에는 흰 양을, 맞은편에는 점 있는 것들을 놓아 가지들과 점 있는 어린양들이 함께 같은 효과를 더 잘 내게 했을 수 있다. “자기 양 떼를 따로 두고 라반의 가축과 함께 두지 않았다.” 한편으로 서로 섞이지 않게 구분하여 자기 소유와 라반의 소유를 식별하려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길의 설명에 따르면, 자기 점 있는 양들이 라반의 흰 양들과 섞여 계속 바라보다가 흰 새끼를 낳아 자기 떼가 줄어드는 일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30:41

“튼튼한 가축이 새끼를 밸 때마다.” 사지가 다부지고 강하며 건강한 가축들이다. “야곱은 물도랑에서 가축의 눈앞에 가지들을 놓았다. 가지들 사이에서 새끼를 배게 하려는 것이었다.” 자기들처럼 튼튼하고 강한 여러 색의 새끼를 낳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도 가장 좋은 가축을 얻으려는 야곱의 또 다른 방법이었다. 아벤 에스라는 양 떼가 새끼를 배는 두 계절을 가리킨다고 본다. 하나는 봄인 니산월이다. 그때 배어 태어나는 새끼는 튼튼하므로, 야곱은 가장 좋은 가축을 얻으려고 그 시기에 물도랑에 가지들을 놓았다는 것이다. 요나단 타르굼도 여기의 가축을 ‘이른 것들’이라 부르고, 30:42에서 영어로 ‘약한’이라고 옮긴 것은 ‘늦은 것들’이라 부른다. 아벤 에스라에 따르면 후자는 티슈리월, 곧 9월에 새끼를 배며, 태어난 새끼가 약하고 허약했다. [영어 배포본 편집자 주] 유전 법칙에 따르면 야곱이 가장 좋은 가축들을 번식시킨 일은 더 우수한 새끼를 낳게 했을 것이다.

30:42

“가축이 약할 때에는 가지들을 놓지 않았다.” 또는 메나헴처럼 ‘덮여 있을 때’라고 이해할 수 있다. 털로 덮여 수컷과 교미하려는 욕구가 덜하고 번식에 적합하거나 강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야곱은 물도랑에 가지를 넣지 않았다. 자기 떼에 약한 것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이유도 있었고, 강한 것이든 약한 것이든 라반의 떼 전체를 빼앗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었다.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되었다.” 야곱의 떼는 라반의 것보다 수가 많아졌을 뿐 아니라 질도 더 좋았다.

30:43

“그 사람이 매우 크게 번성했다.” 야곱이 매우 부유해졌다는 뜻이다. “많은 가축을 가졌다.” 라반의 떼 대부분이 점과 얼룩과 갈색 새끼를 낳았고, 그것들은 합의에 따라 야곱의 것이었다. “여종과 남종도.” 집안일을 돌보고 양 떼를 지키는 일을 돕게 하려고 구한 사람들이다. “낙타와 나귀도.” 야르키의 설명처럼 양 떼가 매우 많이 늘어나자 양을 좋은 값에 많이 팔아 낙타와 나귀를 샀다. 이것들은 고향으로 옮겨야 하거나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매우 유용했다. 그는 그 이동을 생각하고 있었고, 다음 장에 나오듯 주님께 지시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