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장 — Keil & Delitzsch
26:1
약속의 갱신. ‘그 땅’, 곧 가나안에 기근이 들어 이삭은 아브라함처럼 떠나야 했다. 따라서 그는 하갈의 우물에서 이미 가나안으로 돌아와 있었을 것이다(창 25:11). 아브라함은 이집트로 갔고, 아내가 위험에 놓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만 구출될 수 있었다. 이삭도 그곳에 가려 했으나 도중의 그랄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통해 거기 머물라는 지시를 받았다. 가나안 땅을 약속받은 자손이므로 그 땅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이를 위해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맹세로 주신 모든 약속의 성취를 확언하셨다. 아브라함과 후손에게 하신 맹세(창 22:16)를 명시적으로 가리키며,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표현상 특이한 것은 ‘이 모든 땅들’이라는 복수형이다. 창세기 15:19-21에 나오는 여러 가나안 부족의 영토 전체를 뜻한다. 역대상 13:2와 역대하 11:23에서 이스라엘 또는 유다 왕국의 여러 지역을 가리키는 것과 같다. האל은 האלּה의 고형으로 모세오경에만 나온다. 아브라함의 경건을 묘사하는 말들은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대한 온전한 순종을 나타내며, 따라서 후대의 법률 표현에도 자주 나온다. יהוה משׁמרת שׁמר는 ‘여호와의 맡기심을 지키다’, 곧 여호와 자신과 뜻을 존중하고 준수한다는 뜻이다. 미슈메레트는 존중·준수·돌봄이며, ‘명령·규례·법’이 그 뜻을 더 구체화하여 하나님의 모든 계시와 지시에 대한 지속적인 순종을 나타낸다.
26:6
그랄에서 리브가를 보호하심. 아브라함이 이집트와 그랄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했듯 이삭도 그랄에서 그렇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리브가를 지키신 방식은 앞의 두 경우 사라를 보호한 방식과 매우 달랐다. 아무도 리브가를 건드리기 전에 블레셋 왕이 이삭의 말이 거짓임을 알았다. ‘리브가와 장난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왕은 그 말을 책망하고, 백성에게 죽음의 벌을 경고하며 리브가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이 아비멜렉이 창세기 20장의 인물과 같은지는 확정할 수 없다. 이름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 이집트 왕들의 바로처럼 그랄 왕들이 계속 쓰는 공식 이름이었기 때문이다(삼상 21:11; 시 34편 비교). 두 경우 모두 경건하게 행동했다는 점은 같은 사람이라는 견해에 유리하다. 사건 사이에 80년이 지났다는 것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죽은 지 겨우 5년이었고 당시 150세는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경우에는 사라를 후궁으로 데려왔지만 이번에는 그럴 생각 없이 백성으로부터 보호하려 했다는 차이도, 같은 왕이 나이가 많아졌다고 보면 오히려 쉽게 이해된다.
26:12
늘어나는 이삭의 부. 이삭은 아내의 안전에서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라는 보호의 약속을 경험했고(26:3), 그랄에 머물며 복의 약속도 받았다. 씨를 뿌려 그해 ‘백 단위’, 곧 백 배의 수확을 얻었다. 특별한 복이었다. 니부어와 부르크하르트에 따르면 매우 비옥한 지역도 보통 25–50배를 넘지 않는다. 시리아의 작고 아주 비옥한 루흐베 평원에서만 밀이 평균 80배, 보리가 100배를 낸다. 베두인들은 목축뿐 아니라 농사도 짓는다(로빈슨, 『팔레스타인』 1권 77쪽; 제첸). 그러므로 이삭의 파종만으로 여호와의 약속에 고무되어 약속의 땅에 영구 정착하려 했다고 입증할 수는 없다. 26:13–17. 여호와의 복으로 이삭은 점점 더—הלוך, 창세기 8:3 참조—커지고 강해져 매우 강력하고 부유해졌다. 블레셋 사람들은 시기하여 아버지 시대에 판 모든 우물을 막고 쓰레기로 채워 해치려 했다. 아비멜렉도 그의 힘이 두려워 떠나 달라고 했다. 이삭은 그랄 골짜기, 곧 그랄의 완만하게 기복진 땅에 진을 쳤다. 그랄에서 나오는 급류, 주르프가 남동쪽에서 흐르는 곳이다(리터, 『지리학』 14권 1084–1085쪽).
26:18
우물의 복구와 발견. 이삭은 골짜기에서 아브라함 때부터 있던 우물을 다시 파고 옛 이름을 붙였다. 종들은 새로운 우물도 셋 팠다. 그러나 아비멜렉의 사람들이 둘을 두고 다투어 에섹과 싯나, 곧 ‘다툼’과 ‘대적’이라 불렀다. 셋째는 다툼이 없어 르호봇, ‘넓은 자리들’이라 했다. 이삭은 ‘참으로 이제—כּי־עתּה, 창세기 29:32 등과 같음—여호와께서 넓은 자리를 마련하셨으니 이 땅에서 번성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삭이 그랄에서 옮겼으므로 이 우물은 아마 그랄 땅 밖, 이름이 르호봇을 연상시키는 와디 루하이베에 있었을 것이다. 가자와 헤브론에서 오는 두 길이 만나는 지점으로, 엘루사 남쪽 약 3시간, 브엘세바 남쪽 8시간 20분 거리이다. 높은 지대에 같은 이름의 성읍의 넓은 폐허와 우물 흔적이 있다(로빈슨, 『팔레스타인』 1권 289쪽 이하; 슈트라우스, 『시내산과 골고다』). 싯나라는 이름도 루하이베와 훌라사, 곧 엘루사 사이 북쪽 언덕의 유적이 있는 와디 슈테인에 남은 듯하다.
26:23
이삭의 브엘세바 여행. 아브라함이 오랫동안 살았던 이곳에서(창 21:33 이하) 여호와께서 밤에 나타나 이전의 약속을 새롭게 하셨다. 이삭은 제단을 쌓고 엄숙히 예배했다. 종들도 장막 가까이에 우물을 팠다.
26:26
아비멜렉과 이삭의 조약. 이 동맹의 체결은 본질적으로 아브라함과 맺은 동맹의 반복 또는 갱신이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일이므로 실제 사건을 부정하거나 이전 동맹의 또 다른 서술일 뿐이라고 가정할 근거가 전혀 없다. 주요 사건이 비슷한 것 외에 부수적인 상황은 독특하며 앞선 사건들과 잘 맞는다. 아비멜렉은 군대 지휘관 비골뿐 아니라—비골도 직함이 아니라면 창세기 21:22의 같은 인물로 추정된다—מרע, ‘친구’ 곧 측근 고문인 아훗삿도 데려왔다. 이삭이 적대적으로 대한 일을 언급하자, 아비멜렉은 자신과 백성이 그를 치지 않았고(נגע), 곧 강제로 쫓아내지 않고 평안히 떠나게 했다고 답하며 서로 맹세하기를 원했다. אלה는 어길 때 저주를 받겠다는 맹세로서 새 언약의 기초가 될 것이었다. 여기서 이 말은 맹세로 확증한 언약도 뜻하게 되었다(신 29:11, 13). אם תּעשׂה는 ‘행하지 않도록’이다. אם은 맹세에서 부정의 뜻을 갖는 불변화사이다(창 14:23 등). 체레 모음이 있는 동사에 관해서는 게제니우스 75절 주 17 및 에발트 224절을 보라. 바로 그날 종들이 판 우물의 소식을 전하자, 이삭은 맹세로 맺은 조약을 기념하여 세바(שׁבעה, ‘맹세’)라 이름 붙였다. ‘그러므로 성읍을 브엘세바라 불렀다.’ 이 어원 설명은 창세기 21:31의 다른 설명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확증한다. 아비멜렉과 이삭의 맹세 조약이 이전에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갱신이듯, 브엘세바라는 이름도 세바 우물로 새롭게 확인되었다. 두 우물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사건의 실제성을 뒷받침한다(21:31 참조).
26:34
에서의 결혼.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에게 준 여러 고난은 하나님의 복으로 오히려 부와 영향력을 늘리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제 가정의 십자가가 더해져 크고 오래가는 슬픔을 주었다. 에서는 40세, 이삭은 100세였을 때 두 아내를 맞았다(창 25:26). 메소포타미아의 친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버리신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서 맞았다. 이름에 관해서는 원문이 창세기 34:2-3을 참조하라고 한다. [번역자 주: 에서의 아내들 이름은 창세기 36:2-3에서 비교할 수 있다.] 이들은 부모에게 ‘마음의 쓰라림’, 곧 깊은 근심의 원인이 되었다. 가나안적인 성향이 족장들의 부르심과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에서는 이 혼인들로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철저히 땅의 것에 놓였는지 다시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