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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lesiastes 2

전도서 2장 — 일의 신학

일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 (전1:12-6:9)

전도서 1장 1-11절에서 노동은 헛된 것이라고 선언한 전도자는 나아가서 삶을 잘 살기 위한 가능성을 여러 가지로 탐구한다. 그는 성취, 쾌락, 지혜, 재물, 시기, 우정 및 하나님의 선물에 담긴 기쁨을 차례로 고찰한다. 이런 것들 가운데 몇 가지에서 그는 어떤 가치를 발견하는데, 앞의 탐구에서보다는 뒤의 탐구에서 더 많이 발견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영구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으며, 각 섹션마다 일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쾌락을 추구하다(전2:1-11)

다음으로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내가 시험 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전 2:1). 그는 재물, 집, 정원, 술, 종(노예), 보석, 오락, 성적 쾌락을 얻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전 2:10a).

그는 성취에서와는 달리, 쾌락 추구에서는 약간의 가치를 발견했다.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전 2:10). 그가 성취한 것으로 알았던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이 밝혀졌으나 쾌락은 최소한 기분을 좋게 했다. 목적(이 경우에는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행한 일은 강박 상태에서 행한 일보다는 만족감이 컸다. ‘많은 처와 첩들’(전 2:8)을 두라는 건 아니나,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즐기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우리가 일 이상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를 그쳤다면, 만일 우리가 노동의 열매를 더 이상 향유할 수 없게 되었다면, 우리는 일의 주인이 아니라 일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단지 쾌락을 얻기 위해서 하는 노동은 궁극적으로 만족을 줄 수 없다. 이 섹션을 끝맺는 말씀을 보자.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

지혜를 추구하다(전2:12-17)

일 밖에서 목표를 찾는 것이 좋고, 또한 쾌락보다는 더 높은 목적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도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전 2:12). 그는 오늘날의 교수 또는 연구원과 비슷한 인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성취를 위한 성취와는 다르게, 지혜는 최소한 어느 정도는 달성이 가능하다.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전 2:13).

그러나 지혜는 머리를 고상한 생각으로 채운다는 것 외에는 사실 삶에 별 도움이 못 된다.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기(전 2:16) 때문이다. 전도자는 지혜를 추구하다가 낙담하기에 이르는데(전 1:17), 오늘날 학문에 매진하는 사람들도 흔히 겪는 상황이다. 전도자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전 2:17).

재물을 추구하다 (전2:18-26)

이번에는 노동의 결과로 얻는 재물을 언급한다. 일보다 재물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어떠한가? 이것은 쾌락을 얻기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악하다. 재물은 유산 문제를 초래한다. 당신이 죽을 때 당신의 재물 전체가 전혀 자격이 없는 이에게로 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전 2:21). 전도자가 이런 상황을 얼마나 마뜩치 않아 하는지 다음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전 2:20).

여기서 하나님의 품성 한 가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다(전 2:26). 하나님의 이 같은 품성은 전도서에서 수차례 나오는데, 그분의 선물은 음식, 음료와 기쁨(전 5:18; 8:15), 재물과 소유물(전 5:19; 6:20), 영예(전 6:2), 정직(전 7:29),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전 11:5)와 삶 자체(전 12:7)를 포함한다.

오늘날 큰 재물을 축적한 많은 사람들도 전도자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함을 깨닫는다. 재물을 모으는 사람들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혹여나 재산을 만족할 만큼 모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 재물을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물려 줄지가 견딜 수 없는 짐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앤드류 카네기는 이런 짐의 무게를 느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재물의 축적을 멈추고, 그것을 지혜롭게 분배해 주는 극히 심각하고도 어려운 과업을 시작하고자 결심했다.” [1]

하지만 만일 하나님이 나눠 주시는 분이라면, 재물을 모으는 것보다 나눠 주는 것이 보다 더 큰 만족을 가져올 게 너무나 분명하다. 그런데 전도자는 재물을 나눠 주는 것에서도 재물을 모으는 것 이상의 만족을 발견하지 못했다(전 2:18-21). 하나님이 ‘주는 일’에서 발견하신 만족도 어쨌든 해 아래에서 사는 전도자를 피해 갔다. 그는 재물을 투자하거나 더 높은 목적을 위해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보지 않은 듯하다. 참으로 전도자가 발견한 것 이상의 더 높은 목적이 없다면, 재물을 모으고 분배하는 것 역시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 되고 만다(전 2:26).

Andrew Carnegie, Autobiography of Andrew Carnegie (Boston: Houghton Mifflin, 1920), 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