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장 — 일의 신학
출애굽기 & 일의 신학
일의 신학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또는 어떻게 그것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우리가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일의 신학은 우리에게 창조주와 구세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분을 닮고 따라갈 수 있는지 보여 주시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형상을 닮아 가면서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해 나가게 된다.
출애굽기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그분의 성품을 깨달으며, 자기 백성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나가시는 하나님을 본다. 크리스천이 성령의 능력으로 그분의 아들을 통해서 특별한 구속 사역을 행하시는 특정한 하나님 안에 뿌리를 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원칙에 따라서 일을 수행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성품은 그분이 하시는 일로 드러나며 그분이 하시는 일에 따라 우리 일도 정해진다. 일 자체가 출애굽기의 주안점인 것은 아니지만, 일을 통해서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출애굽기의 주요 주제 중 하나다.
출애굽기 속에는 일상적인 일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그러나 이 법과 율례는 3천 년도 더 되는 시간 이전에 존재했던 일터에서 생겨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우리 일과 환경도 변했다. “살인하지 말라”(출 20:13) 같은 구절은 모세 시대나 현대에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그 값을 반으로 나누고 또한 죽은 것도 반으로 나누려니와”(출 21:35) 같은 구절은 이 시대 대부분의 일터에서 적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출애굽기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면서도 율법주의나 오용의 덫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우리는 출애굽기가 하나의 내러티브(narrative)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이해로 이스라엘이 하 나님의 위대한 이야기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오늘날 성경이라는 보다 더 완전한 이야기에서 우리 위치를 찾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하나님 일의 목적과 형태는 그분의 백성이라는 우리 정체성을 규명해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시는 일의 방향도 제시해 준다.
출애굽기의 서론
출애굽기는 일하는 모습의 이스라엘로 시작되고 일하는 모습의 이스라엘로 끝난다. 첫 장부터 이스라엘 사람이 애굽 사람을 위해 일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성막을 건축하는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끝 장면이다(출 40:3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일로부터 해방시키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이 일을 하도록 해방시키셨다. 애굽의 이방인 왕 치하에서 억압당하며 일하는 그들을 관대하고 경건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새롭게 일하도록 이끄신 것이다.
“출애굽기”라는 책 제목은 “출”(出, 나오다)이라는 의미를 지니지만[1] 출애굽기의 전방 진행 방향을 보면 이 책은 사실상 “입”(入, 들어 가다)에 대한 것이라고 무리 없이 결론지을 수 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 모세의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는데, 이 언약은 그들이 시내 광야에서 방황할 때뿐 아니라 약속의 땅에 서 정착된 생활을 할 때에도 그들 삶을 관장하는 것이 됐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새로운 땅에서 어떻게 일하고 예배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이스라엘의 삶은 가나안의 신을 좇는 사람의 삶과는 구별되고 그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명심해야 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우리가 왜 그런 일을 하는지와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해 일을 하는지와 서로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우리는 가혹하고 억압적인 일의 사례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가 더 나은 방식으로 사업하고, 다른 사람을 더 나은 방식으로 대하기를 원하실 것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향하는 길은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로 보느냐, 무엇이 하나님의 일인지를 분별해 그분의 말씀을 따르도록 자신을 얼마나 잘 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출애굽기는 창세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400여 년이 흘러 시작된다. 창세기에서 애굽은 살기 좋은 곳이었으며, 거기서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요셉을 출세시켜 그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후손을 구원할 수 있게 하셨다(창 50:20). 이런 역사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위 대한 민족으로 만들어 그들을 축복하심으로 다른 사람도 축복하고, 아브라함의 이름을 크게 만들어 그를 통해 지상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창 12:2-3)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출애굽기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의 번성이 죽음의 위험을 키운 억압적인 곳이었다. 애굽 사람은 이스라엘을 신성한 축복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들을 노예 생활에서 풀어 주는 것은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 결국 이스라엘의 구원은 바로와 그의 많은 병사가 홍해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지면서 이뤄졌다.
아브라함의 선택받은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그 민족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에 비춰 보면, 출애굽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은 과도기에 있었다. 늘어난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냈지만 한편으로 그다음 세대의 남자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임당했다(출 1:15-16).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에 아직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모세오경 전체는 이런 언약의 부분적인 성취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후손에 대한 언약,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 들어가서 살게 될 땅은 모두 하나님의 의도를 나타냈지만, 이것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모두 위험에 처해 있었다.[2] 모세오경 중에 서 출애굽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주목을 하는데, 특히 하나님이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것, 시내산에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언약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그러하다.[3] 이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통찰력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에도 매우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출애굽기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책의 구조와 내용이 귀중하며, 이는 하나님의 의도에 맞춰 우리 삶과 일 모두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과도기에 있는 이스라엘의 성격을 파악하려면 출애굽기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이 책이 일의 신학에 시사하는 바를 평가해야 한다. 애굽에서 출발해 홍해로, 또 홍해에서 시내산으로 가는 길, 마지막으로 시내산에 이른 출애굽 여정의 지리적 단계를 따라가 보자.
히브리어로 출애굽기의 제목은 그냥 ‘셰모트’인데, “-의 이름들”에 해당하는 이 단어는 출애굽기 첫 문장에 등장한다.
David J. A. Clines, Theme of the Pentateuch, 2nd ed. (London: T&T Clark, 1997), 29쪽.
같은 책, 47쪽.
출애굽기의 결론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억압적 노동에서 구원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스러운 자유로 나아가게 하시는 모습을 본다. 그것은 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삶의 모든 일을 통해 여호와를 사랑하고 섬길 수 있게 하는 자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복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삶과 노동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임재를 위한 처소를 제공해,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복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출1:1–13:16)
이스라엘에 대한 애굽인들의 학대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는 배경과 동력을 제공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 광야로 들어 가 여호와를 예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들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초점은 애굽의 경제 체제에서 억압받는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이스라엘인의 모습에 맞춰져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일을 행하셨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이 괴로워한 것은 통상적인 일 그 자체의 어려움보다는 그들의 일이 엄하고 가혹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지만 이는 그들에게 완전히 안락한 삶을 주신 것이 아니라 억 압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신 것이다.
가혹한 노예 노동에 시달리다 (출1:8-14)
애굽이 이스라엘인에게 강요한 일은 그 동기가 악했으며 그 본질도 잔혹했다. 출애굽기의 처음은 애굽 땅에서 엄청나게 불어나고 번창한 이스라엘인의 수를 서술한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의도와 어울렸고(창 1:28; 9:1), 아브라함과 그의 선택된 후손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도 부합했다(창 17:6; 35:11; 47:27). 그들은 전 세계에 복의 통로가 될 민족이었다. 이전의 통치 체제에서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 거주하며 일할 수 있도록 왕에게 허락 받았다. 그러나 애굽의 새로운 왕은 이스라엘인의 수가 늘어나자 그들을 국가 안위의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기민하게’ 대하기로 결심했다(출 1:10). 실제로 이스라엘인이 역사적으로 그런 위협이 됐는지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어쨌든 중요한 건 바로의 파괴적인 두려움은 이스라엘인의 작업 환경을 열악하게 만들었고, 영아를 살해해 이스라엘인의 인구를 통제하려는 시도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일이 사람에게 신체 및 정신적 부담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애굽에서의 상황이 처절했던 것은 노예 생활 때문이기도 했지만 극도의 가혹함 때문이었다. 애굽 관리는 “엄했고”(befarekh - 출 1:13, 14) “괴로웠고”(marar - 출 1:14) “어렵고 가혹했다”(qasheh; 잔인하다 - 출 1:14; 6:9). 이스라엘은 “비참함”과 “고통”(출 3:7, NIV)과 “마음의 상함”(출 6:9) 가운데서 괴로워했다. 인간 존재의 목적과 기쁨의 주요 원천이 되어야 할 일(창 1:27-31; 2:15)이 가혹한 압제에 의해 비참한 것으로 변질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한 산파와 요게벳 (출1:15-2:10)
가혹한 대우를 받는 중에서도 이스라엘인은 하나님의 계명을 신실하게 지켰으며 그 결과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창 1:28). 생육하고 번성한다는 것은 곧 자녀 출산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또한 산파의 수고와 연결되어 있었다. 산파의 역할은 성경뿐만 아니라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의 기록에서도 충분히 입증되어 있다. 산파는 여인의 출산을 도와주었으며 영아의 탯줄을 잘라 냈고 아기를 씻긴 후 부모에게 아이를 건네주는 일까지 맡았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히브리 여인이 낳은 남자 아기를 모두 죽이라는 왕의 명령을 거역했다(출 1:15-17). 일반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에 대한 경외”(fear of the Lord) 및 이와 유사한 표현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YHWH - 히브리어)에 대한 건강하고 순종적인 관계를 말한다.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애굽 왕이 그들에게 준 그 어떤 두려움보다 강했다. 그들의 용기는 그들의 일에서 우러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매일 돕고 보살피는 사람으로서 그들은 생명을 매우 가치 있게 여겼을 터이니, 설령 왕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살인이라는 건 생각할 수도 없지 않았겠는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출 6:20)도 불가능해 보이는 선택의 기로에서 독창적인 해법을 창안했다. 남자 아이를 비밀리에 성공적으로 출산한 기쁨도 잠시, 생명을 건질 수 있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갈대 상자에 담아 강물로 떠내려 보내야만 했던 그녀의 고통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모세 이야기에 나오는 “상자”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는 성경에서 단 두 번, 즉 노아의 “방주”를 나타낼 때와 여기서 쓰였는데, 모세 이야기는 한 남자 아기를 구원하기 위해서만 아니라 한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아가 모세와 이스라엘을 통해 모든 피조물을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면에서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하나님은 산파에게 보상해 주셨던 것처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에게도 호의를 베푸셨다. 그녀는 자기 아들 모세를 되찾아 그가 바로의 딸의 양자가 될 때까지 그를 키울 수 있었다.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거룩한 일은 복잡하고 힘들고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잠 31:10-31).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무명의 여장부 요게벳이 경험했던 내적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다. 모세의 삶이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가 어떻게 그들의 믿음을 행위로 옮겼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나중에 그들을 칭찬한다(히 11:23).
출산과 양육이라는 일은 너무나 자주 경시된다. 특히 어머니들은 자녀 양육은 다른 일만큼 중요하거나 칭찬받을 만하지 못하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법을 이야기하는 출애굽기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첫 번째 내용은 자녀의 출산, 양육, 자녀를 보호하고 돕는 일의 비할 데 없는 중요성이다. 용기 있는 행위로 가득 찬 출애굽기에서 첫 번째 용감한 행위는 한 어머니와 가족, 산파가 한 남자 아이를 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