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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5

여호수아 5장 — 일의 신학

정복 (수1-12장)

여호수아서는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의 재출발과 하나님의 임재로 시작한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수 1:2-4).

앞으로 우리가 살펴볼 여호수아, 땅, 하나님의 임재는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땅 (수2-12장)

여호수아서와 사사기 모두에서 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주요한 특징이 될 만큼 중요하다. “그 땅이 …… 평온(rest, NIV)하였더라”(삿 3:11, 30 등). 여호수아서의 주된 활동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던 땅을 정복하는 것이다(수 2:24 1:6).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공연해 나가시는 드라마의 중심 무대이며, 하나님이 그 나라에 하신 약속의 핵심이다. 모세의 율법조차 그 땅과 뗄 수 없게 얽혀 있다. 율법의 주요 조항 중 많은 것이 그 땅 안에서 이스라엘에게 의미 있으며, 그 언약 아래서 가해지는 가장 무거운 벌이 그 땅에서 쫓겨나는 것이었다.

[내가] 그 땅을 황무하게 하리니 거기 거주하는 너희의 원수들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놀랄 것이며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레 26:32-33).

그 땅, 우리가 밟고 서 있는 흙은 우리 실존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심지어 바다로 나가거나 하늘로 나가는 사람도 대부분의 시간은 땅에서 보낸다.) 자기 백성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실체 없는 추상이 아니라, 그분의 의지가 실현되고, 그분의 임재가 보이는 아주 명확한 장소다. 매 순간 우리가 있는 그 장소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요 우리가 그분의 일을 해 나가야 하는 유일한 곳이다. 창조는 선 아니면 악이 거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실제 창조물들과 문화 안에서 선하게 일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함으로써 가나안 땅을 거룩한 땅으로 만들라는 사명을 받았다.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에 합당하게 일함으로써 우리 일터를 거룩하게 만들라는 똑같은 사명을 받았다.

땅을 경작하다 (수5장)

그 땅은 고대 근동의 기준에 의하면 당연히 윤택한 땅이었다. 그러나 그 땅의 축복은 창조주의 손길로 공급되던 온화한 기후, 풍부한 물, 그 외 천연 혜택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이 잘 갖춰 놓은 사회 기반시설도 물려받을 것이다.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수 24:13 신 6:10-11 참조). 심지어는 그 땅을 묘사하는 표시도 일정 수준의 가축 관리와 양봉업을 짐작하게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수 5:6 출 3:8)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땅과 노동 간에는 뗄 수 없는 연결 고리가 있다. 우리 생산 능력은 우리 자신의 능력이나 근면함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쓸 수 있는 자원에서도 나온다. 반대로 땅은 그 자체가 일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땀을 흘리면서 빵을 생산해 내야 한다(창 3:19). 이 점은 여호수아 5장 11-12절에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다.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이스라엘은 광야 유랑 기간 동안 하늘로부터 온 선물인 만나로 살아남았으나, 하나님은 이것을 식량 공급을 위한 항구적 해결책으로 삼으실 의도가 전혀 없으셨다. 이제는 땅에서 일해야 했다. 풍부한 자원과 결실을 맺게 하는 노동은 약속의 땅의 빠질 수 없는 구성 요소였다.

그 요점은 아주 당연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강조할 가치가 있다. 하나님은 때로 기적적인 방법으로 우리 물리적 필요를 공급해 주실 수도 있으시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노동한 결실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