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8장 — 일의 신학
혼돈 (삿1-21장)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 이스라엘에는 항구적인 국가 지도자 직책이 없었다. 대신 위협이 생길 때마다, 예를 들면 군사 공격을 당할 때 이런저런 사람들이 리더 자리에 올랐다. 영어로 “judges”(사사)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이들이 나라 안에서 한 역할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 사사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shopet)의 뜻은 분쟁의 중재자, 군사 사령관, 지역 총독 등이다.[1] 사사는 분쟁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주변 백성에 맞서 국가의 군사 및 국정도 책임진다. 우리는 사사에 대한 전통적인 호칭을 그대로 쓰긴 하겠지만, “구원자들”(delivers)이라는 통칭이 이 지도자들을 더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사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지켜보며 여호수아서보다 더욱더 우울한 모습을 발견한다. 사사들이 대를 이어 계승될수록 차츰 자질이 떨어지고, 마침내 이스라엘은 완전한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이 책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라는 준엄한 종결부를 가지고 간음, 살인, 내전으로 끝맺는다. 그들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말은 자신의 고유한 규범에 따라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미덕을 갖췄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오늘날 표현대로 해 본다면, 일등을 차지하기 위해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던 모습을 가리킨다. 그것은 여호수아를 통해 주신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라는 하나님 계명을 순종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계명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편향되고 자기만족적인 시각에서 좋아 보이는 것을 행하는 게 아니다. 사사는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도록 이끄는 데 실패했으며, 그 때문에 나라에 공의를 행하고 국가를 다스리는 데도 실패했다.[2]
Temba L. J. Mafico, “Judge, Judging,” ed. David Noel Freedman, The Anchor Yale Bible Dictionary (New York: Doubleday, 1992), 1105쪽.
Daniel I. Block, Judges, Ruth,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3-84쪽
기드온의 양면적인 리더십 (삿6:12-8:35)
기드온은 일터나 다른 곳에서 이스라엘 사사의 인품상의 역설적 특징과 양면적인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준다. ‘기드온’이라는 이름은 문자적으로 “난도질하는 자”(hacker)라는 뜻이며[1] 그것은 사사기 6장 25-27절에서 보여 주는 대로 자기 아버지가 세웠던 우상을 기드온이 난도질할 때 이름 뜻의 긍정적인 방향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두려워서 이 일을 밤에 했다는 것은 불편한 부분이다.)[2]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표적을 구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사사기 6장 36-40절에 나오는 양털 사건이다. 하나님은 이 사건에서 기드온에게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양보하시지만, 그것은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특히 직업의 인도하심을 구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따라야 할 하나의 본으로 보기는 어렵다. 도리어 그것은 그 이야기의 마지막에 가서 결국은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는 흔들리는 헌신에 대한 하나의 표적이었다.[3] 기드온의 분별 방법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위해서는 Decision Making by the Book(책으로 하는 의사결정)[4]과 《나의 결정과 하나님의 뜻》(Decision Making and the Will of God, 생명의말씀사 역간)[5]을 보라.
물론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요점은 기드온이 미디안에게 놀라운 승리를 거둔 것이다(삿 7장). 그에 비해 기드온이 뒤이어 지도자로서 저지른 실패는 덜 알려졌다(삿 8장). 숙곳과 브누엘 거민은 그 전투 후에 그의 부하를 돕기 거부했는데, 기드온이 그 성읍들을 잔인하게 파괴한 것은 그들의 행위와 다소 어울리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기드온은 다시 그의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지만, 이제 그는 자신을 침범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단칼에 죽여 버린다.[6] 왕이 되고 싶지 않다는 그의 완강한 항거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목만 빼고는 실제로 전제 군주가 됐다(삿 8:22-26).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드온이 나중엔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가 만든 에봇이 그의 백성에게 “올무”가 됐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거기서 그것을 음란하게 예배(worshipping, NIV)했다(삿 8:27). 위대한 자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잘 보라!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위대한 사람의 은사를 우상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감사하는 법을 찾아내는 것일 수 있다. 기드온처럼 오늘날 장군도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 수는 있겠지만 평화로운 시기에는 폭군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천재는 음악이나 영화에 있어 우리에게 숭고한 통찰력을 줄 수 있지만, 부모 역할이나 정치에 있어서는 우리를 잘못 인도할 수도 있다. 기업의 총수는 위기에서 회사를 건져 낼 수도 있지만, 평안한 때에는 회사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이와 똑같은 불연속성은 우리 스스로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에서는 직급이 올라가지만 가정에서는 불화하며 살 수 있으며, 그 반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개인 업무 처리 능력은 인정받지만 관리에는 실패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 하나님을 의지할 때는 선한 것을 훨씬 많이 성취하지만, 성공 때문에 자신을 의지할 때는 거대한 파멸로 역풍을 맞을 수 있다.[7] 사사기의 사사들처럼 우리도 모순의 사람이요, 깨어지기 쉽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자 한편으로 절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용서와 변혁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점이다.
Robert G. Boling, “Gideon (Person),” ed. David Noel Freedman, The Anchor Yale Bible Dictionary (New York: Doubleday, 1992), 1013쪽
Daniel I. Block and J. Clinton McCann, Judges, Interpretation (Louisville: John Knox, 1989), 61쪽
양털 사건에 대한 맥켄(McCann)의 주석을 참조하라(66쪽). “한마디로 기드온은 약간 우스꽝스럽게 시작하고 있다. 갈수록 믿음이 더 커지는 게 아니라, 그는 점점 더 믿음이 없어지고 더욱 겁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Haddon W. Robinson, Decision-Making by the Book (Wheaton, Ill.: Victor Books, 1991)
Garry Friesen and J. Robin Maxson, Decision Making & the Will of God: A Biblical Alternative to the Traditional View (Portland, OR: Multnomah Press, 1980). 게리 프리슨, 《나의 결정과 하나님의 뜻》(생명의말씀사 역간).
Block, Judges, Ruth, The New American Commentary, 287쪽의 “Gideon, the fearful young man, has become a brutal aggressor”을 참조하라.
Tomas Chamorro-Premuzic, “Less-Confident People are More Successful,” Harvard Business Review, July 6, 2012, accessed at http://blogs.hbr.org/2012/07/less-confident-people-are-more-su/ on May 23, 2014.
사사들의 리더십의 실패 (삿6-9장)
기드온이 저지른 실패는 그 뒤를 잇는 사사들에게서 더욱 심각해진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권력을 하나로 모으긴 했으나 자기 앞길에 장애가 되는 형제 70명을 죽여서 이뤄낸 통일이었다(삿 9장). 입다는 산적으로 출발해 백성을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구해 오지만, 자기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무서운 맹세를 함으로써 가족과 자녀를 무너뜨린다(삿 11장). 가장 유명한 사사인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이방 여인 들릴라의 유혹에 굴복하는 바람에 스스로 멸망을 초래했다(삿 13-16장).
이 모든 이야기를 오늘날 우리 일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먼저 사사기는 하나님께서는 상한 심령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명백하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등 상당수의 사사가 신약에서 라합과 더불어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히 11:31-34). 사사기는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에 직면했을 때 사사에게 구원의 행동을 하도록 하나님의 성령이 힘을 불어넣어 주셨다는 것을 주저 없이 기록한다(삿 3:10 6:34 11:29 13:25 14:6-9 15:14). 더 나아가 사사는 단순히 하나님의 손에 쓰임받은 도구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능동적으로 반응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거듭 구하셨다.
그러나 사사기의 전반적인 이야기 흐름은 사사들을 우리의 롤모델로 삼으라고 권면하지 않고 있다. 이 책에 나타난 괴로움은 나라가 엉망진창이고, 타협으로 꽉 차 있으며, 나라의 지도자들은 하나님 언약에 불순종해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는 데 있다. 성공은, 심지어 하나님이 주신 성공까지도 반드시 하나님의 호의를 선언하는 공표가 아니다. 일터에서 우리가 수고한 것이 복이 될 때, 특히 어려운 환경에서 복이 될 때, ‘음, 하나님이 이 일에 분명히 함께하시네. 내가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분이 내게 상을 주시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이 온다. 그러나 사사기 역사는 하나님은 그분이 하시고 싶을 때,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방법으로, 그분이 일하시고 싶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우리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계획에 따라 행동하신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성공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라도 있는 듯이 복을 받아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로마서 2장 1절에서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처럼, 우리가 보기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자격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들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