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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11

창세기 11장 — Tyndale Study Notes

Gen.10.1-11.9

창세기의 다섯 번째 계보 기록(10:1; 2:4 해설 참조)은 민족들의 계보(10:2–32)와 바벨 이야기(11:1–9)를 민족들이 흩어진다는 주제로 연결한다(10:5, 18; 11:4, 8–9). 바벨 사건은 민족들의 계보에 나타난 정치·지리적 상황의 원인이지만, 본문에는 민족들의 계보가 먼저 나온다. 창세기는 순서를 이렇게 바꾸어, 땅에 다시 사람들이 퍼져 살게 된 일을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진 복과 연결한다(9:1과 해당 해설 참조). 또한 바벨 이야기(11:1–9)에 드러난,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이 아브람의 부르심(12:1–3)이었음을 보여 준다.

Gen.11.1-9

완성되지 못한 탑의 이야기는 민족들의 계보(10장)에 나타난 언어와 결속이라는 주제를 이어 간다. 탑을 쌓던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려 한 욕망은 에덴에서의 반역(3장)을 떠올리게 하며, 민족들이 혼란에 빠진 세상에 구속을 향한 아브람의 믿음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12장). 민족들의 흩어짐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면 그들 역시 흩어지고 성읍이 황폐해질 것이라는 경고를 미리 보여 준다(레 26:33; 민 10:35; 신 4:27; 28:64; 30:3 참조). 시간 순서로 보면 이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가 벨렉 시대에 민족들이 생겨난 까닭을 설명한다(창 10:25 참조).

Gen.11.1

‘한때’: 11:1–9의 사건으로 민족들이 흩어졌으며, 그 결과가 10:2–30의 계보에 나타난다. 사건의 순서를 바꾼 데에는 신학적인 목적이 있다(10:1–11:9 해설 참조).

Gen.11.2

‘동쪽으로 이동하다’: 3:24 해설을 보라.

바빌로니아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있었다. 훗날 니므롯이 제국을 세우고 도시들을 건설한 지역이다(10:10; 사 11:11; 단 1:2; 슥 5:11 참조).

Gen.11.3

가나안에는 돌이 풍부했지만 메소포타미아에는 돌이 드물었으므로, 그곳에서는 벽돌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

타르는 역청으로 만들었다. 역청은 시멘트와 비슷하고 방수성이 있는 천연 아스팔트이다(6:14; 출 2:3 참조).

Gen.11.4

처음의 동산(2:15)과는 달리, 창세기에 등장하는 초기 도시들은 오만(4:17), 폭정(10:8–12), 악행(18:20–21)을 나타낸다. 바빌로니아 평원에 세워진 도시는 인간의 교만과 우상숭배가 모여드는 곳이었다.

‘하늘에 닿는 탑’: 아마도 신전 탑인 지구라트였을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도시 문화에 흔했던 지구라트는 신들이 땅으로 내려오는 거룩한 산으로 여겨졌다. 28:12에 나오는 야곱의 꿈도 이러한 생각을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해서 유명해지자’(직역하면 ‘우리 스스로 이름을 만들자’): 탑을 쌓던 사람들은 우상숭배적인 야망으로 명성을 얻으려 했다. 반면 하나님은 겸손히 순종한 아브람에게 이름을 크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12:2).

Gen.11.5

‘내려오셨다’: 이 탑은 하나님의 영역으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시도였다(신 26:15; 시 2:4; 103:19; 115:16 참조). 하나님이 그들의 보잘것없는 수고를 보려고 ‘내려오셨다’는 표현은 그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드러낸다.

Gen.11.6

탑을 쌓던 사람들의 결속과 야망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인간의 악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번성했을 것이다.

Gen.11.7

‘자, 우리가 내려가자’: 하나님이 천사들로 이루어진 하늘의 궁정에 말씀하신다(1:26; 3:22와 해당 해설 참조).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면 죄악된 야망을 이루려는 그들의 연합도 제약을 받게 된다. 오순절에 하나님을 높이며 언어로 하나가 된 것은 바벨에서의 흩어짐이 상징적으로 뒤집힌 일이었다(행 2:5–13; 습 3:9 참조).

Gen.11.8

‘여호와께서 그들을 흩으셨다’: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려 했던 아담과 하와,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 가인에게 내려진 벌에도 이와 비슷하게 추방과 흩어짐이 포함되어 있었다(3:23; 4:12, 14; 9:19; 10:5, 25, 32).

Gen.11.9

‘바벨’: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자기 도시를 신들의 거처 또는 신들에게 이르는 문으로 여겼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나오는 말놀이는 바벨론의 영적 혼란을 정확히 드러낸다. 바벨론은 니므롯 시대(10:10)와 이후 성경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왕하 25:1–30 참조). 오만과 우상숭배의 중심지라는 역할 때문에 바벨론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나타내는 적절한 상징이 된다(예: 계 14:8; 16:19; 18:2).

탑을 쌓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역으로 올라가려고 한곳에 모였다(창 11:3–4). 하나님은 내려오셔서 그들을 온 세상으로 흩으심으로 그들의 우상숭배적인 야망을 꺾으셨다.

Gen.11.10

셈의 가문에 관한 이 기록은 10:21–32의 셈 계보를 다시 이어 가되, 이제는 아브람으로 이어지는 계통에 초점을 맞춘다. 셈의 하나님을 유업으로 받는 이들은 아브람과 이스라엘뿐이다(9:26–27; 신 32:8–9 참조). 바벨 이야기는 아브람이 떠나도록 부름받은 문화를 생생하게 부정한다(창 12:1; 24:6–7). 셈의 계통에 관한 이 두 번째 기록은 데라의 후손에 관한 기록(11:27–32)과 함께, 1–11장의 인류 전체 역사와 12장에서 시작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연결한다. 아브람은 바벨의 혼란한 세상에서 남겨진 사람이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은 은혜의 행위였으며, 이를 통해 바벨에서 갈라진 세상이 복을 받게 된다(12:3).

‘누구의 아버지가 되었다’: ‘누구의 조상이 되었다’로 옮길 수도 있다. 히브리인의 계보가 반드시 모든 세대를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Gen.11.18

‘벨렉’: 10:25 해설을 보라.

Gen.11.27

‘이것은 데라 가문의 기록이다’(히브리어 톨레도트; 2:4 해설 참조): 이어지는 11:28–25:11은 데라에게서 나온 가문의 구체적인 이야기다. 특히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그와 맺으신 언약, 그리고 가계와 복을 다음 세대로 이어 간 약속의 자녀 이삭을 다룬다.

Gen.11.27-32

이 짧은 단락은 데라의 생애를 전체적으로 요약하고, 그의 다른 아들들과 그들의 혼인 관계를 설명한다. 또한 훗날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아브람의 조카 롯을 소개한다. 데라와 그의 가족을 비롯한 조상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이었다(수 24:2).

Gen.11.27

나홀은 라반의 할아버지였다. 라반의 딸들은 훗날 야곱의 아내가 되었다(29–31장).

‘롯’: ‘롯’ 인물 해설을 보라.

Gen.11.28

아브람은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부르심을 받았다(15:7; 행 7:2–4). 우르는 페르시아만 어귀 부근에 있던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의 주요 도시였다. 그의 가문은 부르심을 받기 여러 세대 전에 그곳으로 이주했을 수도 있다. 그들의 본래 고향(창 12:1의 ‘고향 땅’)은 셈의 후손들이 살던 지역(11:10–26), 곧 하란 부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르를 떠났을 때 그곳에 정착했으며(11:31), 나중에는 ‘아람 사람’으로 불렸다(신 26:5).

‘그가 태어난 땅’: 같은 히브리어 표현이 12:1의 ‘고향 땅’에도 나온다. 이 표현은 아브람이 부르심을 받은 곳이 하란이 아니라 우르였음을 보여 준다(15:7; 느 9:7; 행 7:2 참조).

Gen.11.29

사래는 히브리어로 ‘공주’를 뜻한다. 사래의 부모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는 사래가 아브람의 이복 누이임을 밝히는 아비멜렉 이야기(20:9–12)에 긴장감을 더하려는 것일 수 있다. 훗날 율법은 이런 혼인을 금했다(레 18:9; 20:17; 신 27:22).

‘나홀의 아내는 밀가였다’: 밀가는 하란의 딸이자 나홀의 조카였다(창 11:29 참조). 밀가의 아들 브두엘은 아브람의 아들 이삭과 결혼한 리브가의 아버지였다(24:10, 15, 24). 밀가라는 이름은 ‘여왕’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관련이 있다. 아카드어에서는 달의 신의 딸인 여신 이슈타르의 칭호이기도 하다. 데라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달’을 뜻하는 말과 관련이 있다. 그의 온 가족은 달의 신 신(Sin)을 섬겼던 것으로 보인다(수 24:14 참조).

Gen.11.30

사래와 리브가(25:21), 라헬(29:31)은 모두 아이를 갖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사래의 처지는 눈앞의 현실과 수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12:2)이 서로 모순되어 보인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인들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기적적으로 자녀를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그 민족의 정체성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삼상 1:2; 2:5; 시 113:9; 사 54:1도 참조).

Gen.11.31

‘데라가 데리고 나왔다’: 본문은 아브람이 우르를 떠난 까닭이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11:28 해설 참조). 그러나 고대 근동 문화의 가부장적 질서에 맞추어, 이 사건을 데라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당시 아브람이 혼자 가나안으로 계속 나아가지 않은 것도 집안의 가장 연장자인 남성을 존중하는 이 문화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행 7:2–4 참조).

하란은 우르에서 북서쪽으로 약 550마일(약 885킬로미터) 떨어진, 오늘날 시리아와 튀르키예의 국경 부근에 있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우르에서 죽은 데라의 아들 하란과는 관련이 없다(11:28).

하란이라는 이름은 ‘대상(상인들의 무리)’을 뜻한다. 고대의 여러 교역로가 이곳에서 만났으므로 중요한 무역 거점이 되었다.

하란은 데라의 가족이 열심히 따랐던 것으로 보이는 달 숭배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11:29 해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