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7장 — John Wesley
27:1
여기에는 에서를 상속자로 선언하려는 이삭의 계획이 나온다. 메시아와 가나안 땅에 관한 약속은 처음 아브라함에게 맡겨진 중대한 사명이었다. 그 약속은 영적이고 영원한 복을 포함하며 그것을 예표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를 이삭에게 넘겨주었다. 이제 늙은 이삭은 두 아들에 관해 큰아들이 작은아들을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있었거나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약속에 담긴 모든 영예와 권세를 맏아들 에서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한다. 그가 에서를 불렀다. 에서는 결혼으로 부모에게 큰 근심을 끼쳤지만 부모는 그를 내쫓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상당히 화해한 듯하다.
27:2
나는 늙었고 내가 죽을 날을 알지 못한다. 곧, 내가 얼마나 빨리 죽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27:3
나를 위해 사냥감을 잡아 와서 내가 너를 축복하게 하여라. 에서는 사냥을 나가 고기를 가져와야 했다. 이삭은 자기 기운을 북돋우려 하기보다는, 이 은혜를 베풀기 전에 아들이 보여 주는 효성과 애정을 다시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죽기 전에 내 영혼이 너를 축복하게 하여라. 기도는 입술만의 일이 아니라 영혼의 일이다. 하나님을 송축하는 데 영혼을 쏟아야 하듯이(시 103:1), 자신과 다른 사람의 복을 구하는 데도 그래야 한다.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 축복은 마음에 닿지 못한다.
27:6
리브가는 에서에게 주려던 축복을 야곱이 받도록 꾀하고 있다. 목적이 좋았다 해도 수단은 나빴으며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에서가 장자권을 팔아 스스로 축복받을 자격을 버렸으므로 그에게서 축복을 빼앗는 일이 부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삭의 약함을 이용해 속인 것은 이삭에게 잘못한 일이었다. 야곱의 입에 거짓말을 넣어 속이는 법을 가르친 것은 야곱에게도 잘못한 일이었다. 리브가가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약속하는 말을 듣고 그에게 가서, 하나님이 두 아들에 대해 하신 말씀을 겸손하고 진지하게 상기시켰다면 어땠을까? 에서가 장자권을 팔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함으로써 축복받을 자격을 잃었다는 점까지 설명했다면, 이삭은 아마 설득되어 야곱에게 축복을 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속여서 축복하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 길은 명예롭고 칭찬할 만했으며 역사에도 아름답게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를 자기 생각에 맡겨 이런 우회적인 길을 택하게 두셨다. 악에서 선을 이끌어 내는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27:19
야곱이 ‘저는 에서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소박한 사람이 이런 연기를 할 줄 누가 생각했겠는가? 어머니가 그 길로 이끌자 야곱은 전에는 익숙하지도 않았고 늘 혐오하던 방법에 몰두한다. 그러나 거짓말은 금방 배운다. 정직한 야곱이 어떻게 그리 쉽게 혀를 돌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라고 말했는지 놀랍다. 아버지가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라고 물었을 때(창 27:24) 어떻게 ‘그렇습니다’라고 답했을까? 아버지에게서는 아무 명령도 받지 않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어떻게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라고 할 수 있었을까? 들이 아니라 우리에서 가져온 고기인 줄 알면서 어떻게 ‘제가 사냥한 것을 드십시오’라고 했을까? 무엇보다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럽게 하나님을 끌어들여 그 일을 하나님께 돌리고, 속임수에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했는지 놀랍다.
27:20
아버지의 하나님 주님께서 제게 가져다주셨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야곱인가? 이 기록은 분명 모방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경고하기 위해 주어졌다.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제 이삭이 어떻게 야곱에게 축복했는지 보자.
27:27–31
그가 입을 맞추었다. 이는 특별한 애정을 표시한 것이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은 그분의 입맞춤을 받으며, 사랑과 충성으로 아들에게 입 맞춘다(시 2:12). 2. 이삭은 그를 칭찬했다. 옷의 향기를 맡고 ‘보아라, 내 아들의 냄새가 주님께서 복 주신 들의 냄새와 같구나’라고 말했다. 가장 향기로운 꽃과 향료 같다는 뜻이다. 야곱은 여기서 세 가지 복을 받는다. 첫째, 풍요다(창 27:28). 하늘과 땅이 함께 그를 부유하게 한다. 둘째, 권세다(창 27:29). 특히 형제들, 곧 에서와 그 후손을 다스리는 권세다. 셋째,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하늘의 큰 호의를 누리는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저주받기를’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네 모든 친구의 친구가 되고 네 모든 원수의 원수가 되시기를 바라는 뜻이다. 이 축복에는 분명 첫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그것은 메시아에 관한 약속을 물려주는 데까지 이른다. 족장들의 언어에서 ‘그 축복’은 바로 그것이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영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 땅에서 최고 통치권을 가지실 메시아가 야곱에게서 나오실 것이다. ‘다스릴 이가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다’(민 24:19). 그분은 별과 홀이시다(민 24:17). 야곱이 에서를 다스리는 일은 이것의 예표일 뿐이다(창 49:10). 둘째, 하늘이 특별히 자기 것으로 인정하고 은혜를 베푸는 교회가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다. 아브라함이 처음 믿는 이들의 아버지로 부름받았을 때 받은 복에도 ‘너를 축복하는 이들을 내가 축복하겠다’라는 약속이 있었다(창 12:3). 그러므로 이삭은 나중에 야곱의 축복을 확증하며 이를 ‘아브라함의 복’이라고 불렀다(창 28:4).
27:33
이삭이 몹시 크게 떨었다. 하나님의 뜻이 명하는 것보다 자기 애정의 선택을 따르는 사람은 이처럼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이삭은 곧 정신을 가다듬고 야곱에게 준 축복을 확증한다. ‘내가 그를 축복했다. 그는 복을 받을 것이다.’ 이삭이 그것을 거둘 수도 있었지만, 이제야 에서에게 주려 한 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했거나, 야곱을 축복할 때 평소보다 훨씬 충만하게 성령으로 채워졌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말하자면 그 축복에 ‘아멘’ 하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27:39
에서도 축복을 얻었지만 야곱의 축복에는 훨씬 못 미쳤다. 야곱의 축복에서는 그가 가장 귀하게 여기고 갈망한 하늘의 이슬이 먼저 나온다. 에서의 축복에서는 그가 주로 마음을 두었던 땅의 기름짐이 먼저 나온다. 에서도 이것들을 얻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손에서 얻는다. ‘하나님이 하늘의 이슬을 네게 주시기를’(창 27:28). 에서에게는 소유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야곱은 약속에 따라 받기를 원했다. 야곱은 형제들을 다스릴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에돔을 여러 차례 다스렸다. 에서도 지배권을 얻어 어느 정도 권세를 가지겠지만 아우를 다스리지는 못할 것이다. 유대인들이 에돔의 손에 팔렸거나 에돔이 그들을 압제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에서의 축복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없고, 그 자신이나 후손을 교회 안으로 이끄는 것이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이 없다면 땅의 기름짐과 들에서 얻는 약탈물은 그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처럼 이삭은 믿음으로 두 아들이 각각 받을 몫에 따라 축복했다.
27:45
어찌 내가 너희 둘을 모두 잃어야 하겠느냐? 살해당한 아들뿐 아니라 살인한 아들까지 잃는다는 뜻이다. 살인자는 관헌에게든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에든 공의의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27:46
야곱이 헷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으면. 에서가 한 것처럼 말이다. 여전히 또 다른 술책이다. 실제로 그녀가 두려워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번 속임수를 쓰면 다시 쓰기도 매우 쉬워진다. 반드시 주의해서 볼 점이 있다. 야곱의 비열한 거짓말과 위장에도 불구하고 후손에게 복이 왔지만, 그 자신에게는 오랜 세월 동안 무거운 고난이 닥쳤다는 것이다. 선한 결과를 얻으려고 악을 행한 야곱을 하나님은 이처럼 엄하게 징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