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8장 — John Wesley
28:1
이삭이 그를 축복하고 명했다. 축복을 받은 사람은 거기에 딸린 명령도 지켜야 하며, 하나님이 결합하신 것을 분리하려 생각해서는 안 된다.
28:3–4
아브라함은 두 가지 큰 약속으로 복을 받았고, 이삭은 여기서 둘 다 야곱에게 물려준다. 첫째는 상속자들에 대한 약속이다. ‘하나님이 네게 자손을 많이 주시고 번성하게 하시기를.’ 야곱을 통해 아브라함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많은 백성이 나올 것이었다. 야곱을 통해 아브라함에게서 땅의 모든 가족이 그 안에서 복을 받을 그분도 나오실 것이었다. 둘째는 그 상속자들이 받을 유산의 약속이다(창 28:4). ‘네가 나그네로 지내는 땅을 이어받게 하시기를’—히브리어 표현이 그렇다. 이로써 가나안은 에서의 씨가 아니라 야곱의 씨에게 물려질 것으로 정해졌다. 이삭은 이제 야곱을 먼 나라로 보내 얼마 동안 살게 하려 했다. 이것이 상속권을 빼앗는 일처럼 보이지 않도록 여기서 야곱에게 유산이 정해졌음을 확증한다. 이 약속은 가나안이 예표하는 하늘에까지 이른다. 야곱과 다른 족장들이 자신을 땅의 나그네와 순례자라고 고백할 때 바라본 것은 바로 그 더 나은 나라였다(히 11:16).
28:5
리브가는 여기서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야곱이 먼저 나오는 것은 늘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만 아니라, 이제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고 에서는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28:6
이 대목은 야곱의 이야기 한가운데 삽입되어 좋은 본의 영향력을 보여 준다. 에서는 이제 야곱을 더 나은 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며, 아브라함의 딸 계통에서 아내를 맞는 이 구체적인 일에서 야곱을 본받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28:11
돌이 베개이고 하늘이 덮개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에서 얻는 위로와 보호에 대한 확신은, 이렇게 노출된 채 누워 있어도 그를 평안하게 했다. 하나님이 안전히 살게 하심을 확신했으므로 돌을 베고도 누워 잘 수 있었다.
28:12
보라, 땅 위에 사닥다리가 서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으며 천사들이 오르내리고 주님께서 그 위에 서 계셨다. 이것은 첫째,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낼 수 있다. 섭리를 통해 하늘과 땅 사이의 교통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늘의 계획은 땅에서 실행되고 땅의 모든 일은 하늘에 알려진다. 섭리는 차츰 단계적으로 일한다. 천사들은 섭리의 모든 계획을 이루는 섬기는 영으로 사용되고, 하나님의 지혜는 사닥다리 위에서 이차적인 원인들의 모든 움직임을 그분의 영광으로 향하게 한다. 천사들은 활동하는 영으로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밤낮 쉬지 않는다. 한 일을 보고하고 명령을 받으려고 올라가며, 받은 명령을 실행하려고 내려온다. 이 환상은 야곱에게 때맞춘 위로를 주었다. 좋은 인도자와 좋은 보호자가 모두 있음을 알게 했다. 아버지 집을 떠나 떠돌아야 해도 섭리가 돌보고 거룩한 천사들이 지키는 사람임을 알려 준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중보를 나타낸다. 그분이 이 사닥다리다. 인성으로는 발이 땅에 있고 신성으로는 꼭대기가 하늘에 있다. 또는 앞의 것은 낮아지심이고 뒤의 것은 높아지심이다. 타락 이후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교통은 이 사닥다리를 통한다. 그리스도가 길이시다. 하나님의 모든 은총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고, 우리의 모든 섬김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간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사시고 우리가 그분과 함께 산다면 그것도 그리스도를 통해서다. 이 사닥다리 외에는 하늘에 이를 길이 없다. 천사들이 우리에게 베푸는 모든 친절한 봉사도, 땅의 것과 하늘의 것을 화해시키신 그리스도 덕분이기 때문이다(골 1:20).
28:14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큰 복이시다. 복 받은 사람은 어느 가족에 속하든 모두 그분 안에서 복을 받는다. 어느 가족에 속하든 스스로 제외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분 안의 복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28:15
보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가 함께하면 안전하다. 야곱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가 외삼촌을 섬기며 겪을 어려움을 미리 아셨다. 그래서 모든 곳에서 지키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현재 일뿐 아니라 장차 일어날 일에도 맞는 은혜와 위로를 백성에게 주실 줄 아신다. 야곱은 이제 멀리 타향살이를 떠나지만 하나님은 이 땅으로 다시 데려오겠다고 약속하신다. 모든 친구에게 버림받은 듯 보였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라는 확신을 주신다.
28:16
참으로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내가 알지 못했구나. 하나님이 백성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일은 그 자체로 증거를 지닌다. 하나님은 임재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주셔서 신실한 영혼이 하나님이 참으로 함께하심을 충분히 확신하게 하실 수 있다. 남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을 만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던 곳에서 만난다. 계시리라고 생각하지 않은 곳에 계시며, 찾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신다.
28:17
그가 두려워했다. 우쭐해진 것과는 정반대였다. 하나님을 더 볼수록 그분 앞에서 거룩하게 떨고 부끄러워할 이유도 더 많이 본다.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기 기뻐하시는 사람은 스스로 보기에 매우 낮아지고 그 상태에 머무르며, 주님과 그분의 선하심 앞에서도 두려워할 이유를 본다(호 3:5). ‘이곳은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라고 말했다. 이곳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일은 오직 거룩한 경외와 존경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평생 이곳을 존중하고 이 표지를 통해 기억하겠다.” 이 장소 자체가 다른 장소보다 하나님의 환상에 더 가깝다고 여긴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여기서 본 것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집, 신적 위엄의 거처, 하늘의 문이었다. 곧 높은 세계 주민들의 일반적인 집결 장소였다. 도시 사람들이 성문에서 모이는 것과 같다. 또는 오르내리는 천사들이 도시의 문을 통하여 오가는 여행자들과 같았다는 뜻이다.
28:18
그가 돌을 기둥으로 세웠다. 돌아왔을 때 장소를 다시 알아보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을 오래 기억할 기념물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에 제단을 쌓았듯이(창 12:7) 지금 여기서 제단을 만들 시간은 없었으므로 돌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당시 제단을 봉헌할 때 쓰던 의식이었을 것이다. 이는 여건이 갖추어지면 제단을 세우겠다는 보증이었다. 뒤에 실제로 하나님께 감사하여 그렇게 했다(창 35:7). 자비를 받으면 의무로 보답해야 하며, 하나님과 나누는 달콤한 교제는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28:19
그곳은 ‘아몬드나무’라는 뜻의 루스라고 불렸지만, 야곱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이라 부르게 한다. 하나님이 은혜롭게 나타나신 일은 그곳에 무성한 모든 아몬드나무보다 그 장소를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28:20
야곱이 서원했다. 신앙의 서원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께 의존함을 인정하며, 자기 영혼을 묶어 순종을 다짐하고 북돋운다. 야곱은 지금 두려움과 고난 가운데 있었다. 어려울 때나 특별한 자비를 구할 때 서원하는 것은 적절하다(욘 1:16; 시 66:13–14; 삼상 1:11; 민 21:1–3). 야곱은 방금 하늘의 은혜로운 방문을 받았고 하나님은 그와 언약을 새롭게 하셨다. 언약은 상호적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확증하시면 우리도 그분께 한 약속을 되풀이하는 것이 마땅하다. 저와 함께하시고 저를 지키시면. 어디서든 평안하고 행복하려면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 외에 더 바랄 것이 없다. 여행할 때 낯선 길에 인도자가 있고 위험한 길에 보호자가 있으며, 잘 이끌리고 충분히 공급받고 어느 길에서나 좋은 동행이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된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가장 좋은 방식으로 가진다. 그때 주님께서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그분 곁에 머물기로 더욱 굳게 다짐하겠다는 뜻이다. 이 기둥은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단을 여기에 세우겠다는 뜻이다. 주께서 제게 주시는 모든 것에서 반드시 십분의 일을 주께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제단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는 말이다. 둘 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신해 받는 대상이다.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드리고 그분을 위해 사용하기에 매우 적절한 비율이다. 다만 형편에 따라,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시는 정도에 따라 더 많거나 적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