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장 — John Wesley
30:1
“라헬이 언니를 시기했다.” 시기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웃과 자기 자신 모두에게 이보다 더 해로운 죄는 없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야곱에게 ‘내게 자녀를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죽겠어요’라고 말했다. 아이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레아가 여럿을 가졌으니 자신도 여럿을 가져야 했다. ‘자녀를 주세요’라는 말에 그녀의 마음이 매달려 있었다. ‘주지 않으면 죽겠어요’는 괴로워하다가 죽겠으며, 이 바람을 이루지 못하면 수명이 줄어들 것이라는 뜻이다. 라헬이 이 은혜를 구한 방식과 한나의 방식(삼상 1:10 이하)의 차이를 보라. 라헬은 시기했고 한나는 울었다. 라헬은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했고 둘째를 낳다가 죽었다. 한나는 이 아이를 달라고 기도했고, 웨슬리의 원문은 그 뒤 네 아이를 더 얻었다고 서술한다. [삼상 2:21에는 세 아들과 두 딸, 곧 다섯 자녀를 더 낳았다고 되어 있다.] 라헬은 조급하고 강압적이었으나 한나는 순종적이고 경건했다. ‘아이를 주시면 주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라헬이 아니라 한나를 본받자. 우리의 바람은 언제나 이성과 신앙의 인도와 절제 아래 있어야 한다.
30:2
“야곱이 화가 났다.” 사람 자체가 아니라 죄에 대해 화가 났다. 그는 불쾌함이 드러나도록 말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소?’라는 라헬을 향한 대답은 진지하고 경건했다. 하나님이 주지 않으시는 것을 내가 줄 수 있느냐는 뜻이다. 그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손을 인정했다. ‘그분이 태의 열매를 주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하든, 그것을 보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지극히 지혜롭고 거룩하며 의로우신 주권자이시므로 자기 것을 뜻대로 하실 수 있고 누구에게도 빚진 분이 아니다. 어떤 피조물에게도 잘못하신 적이 없으며 그러실 수도 없다. 구름의 열쇠, 마음의 열쇠, 무덤의 열쇠, 태의 열쇠는 하나님이 손에 쥐고 계신 네 열쇠이다. 랍비들은 그분이 이를 천사나 스랍에게도 맡기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야곱은 또한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바꿀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인정한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소?’ 곧 ‘나를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오?’라는 말이다. 어떤 피조물도 우리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해가 달과 별을 대신하듯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피조물도 대신하실 수 있다. 그러나 달과 모든 별을 합해도 해를 대신할 수 없다. 어떤 피조물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 두어야 할 신뢰를 피조물에게 두는 것은 우리의 죄이자 어리석음이다.
30:3
“내 여종 빌하가 있으니.” 라헬의 설득으로 야곱은 여종 빌하를 아내로 맞았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 그녀에게서 난 자녀를 여주인의 자녀로 입양하고 인정하려는 것이었다. 라헬은 전혀 자녀가 없는 것보다 이름으로나마 자녀를 갖기를 원했다. 실제로 자기에게서 나지는 않았어도 자기 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였다. 그녀는 자기 거처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지배권을 처음부터 드러내며, 언니와의 경쟁 흔적만 담긴 이름을 붙이는 것을 즐겼다. 마치 법정에서 언니를 이긴 것처럼 여종의 맏아들을 단, 곧 ‘판결’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이 나를 위해 판결하셨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셨다는 뜻이다. 다음 아들은 전투에서 이긴 것처럼 납달리, 곧 ‘씨름’이라고 부르며 ‘내가 언니와 씨름하여 이겼다’고 말했다. 시기와 다툼이 얼마나 쓴 뿌리이며, 친척들 사이에 얼마나 큰 해악을 만드는지 보라!
30:9
라헬은 자기 여종을 남편의 침상에 들이는 불합리하고 뒤틀린 일을 했다. 이제 레아도 한 해 동안 자녀를 낳지 못하자 동생과 대등해지려고 같은 일을 한다. 경쟁심의 힘을 보라. 한 남자와 한 여자만 결합하게 하신 하나님의 제정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감탄하라. 실바는 야곱에게 두 아들을 낳아 주었다. 레아는 그들에게 자기 권리가 있다고 여겼고, 그 표시로 한 아이를 갓이라 불렀다. 작은 무리의 자녀를 얻게 되리라고 기대한 것이다. 다른 아이는 아셀, 곧 ‘행복’이라고 불렀다. 이 아이 때문에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이웃들도 그렇게 여기리라고 기대했다.
30:14
대여섯 살의 어린 르우벤이 들에서 놀다가 합환채를 찾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학자들의 의견도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매우 향기로운 귀한 열매나 꽃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아 7:13). 일부는 이 합환채가 재스민 꽃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었든 라헬은 그것이 레아의 손에 있는 것을 보고 탐내지 않을 수 없었다.
30:17
“하나님이 레아의 말을 들으셨다.” 야곱의 아내들이 그와 함께 지내려고 경쟁하고 여종들을 아내로 준 까닭은, 아브라함에게 하시고 최근 야곱에게 새롭게 하신 약속을 이루려는 간절한 바람이었을 수 있다.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고, 한 후손인 메시아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이다. 이제 레아는 두 아들의 복을 받았다. 첫째는 잇사갈, 곧 ‘품삯’이라고 불렀다. 합환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여겼다. 더 나아가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준 보상을 받았다고 여겼는데, 이것은 섭리에 대한 이상한 해석이다. 다른 아이는 스불론, 곧 ‘거주’라고 불렀다. ‘하나님이 내게 좋은 혼인 선물을 주셨다’며 그분의 후하심을 인정했다. 야곱은 결혼할 때 그녀에게 재산을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녀가 가득한 가족을 좋은 혼인 선물로 여겼다.
30:21
디나가 언급되는 것은 뒤에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창 34:1–16 이하). 기록되지는 않았어도 야곱에게 다른 딸들이 있었을 수 있다.
30:22
하나님은 잊으신 듯했던 라헬을 기억하시고, 오랫동안 응답되지 않았던 그녀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러자 그녀가 아들을 낳았다. 라헬은 아들을 요셉이라 불렀다. 히브리어에서 이 이름은 서로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 두 단어와 관련된다. 아사프(Asaph)는 abstulit, 곧 ‘그가 없애셨다’이다. ‘내 수치를 없애셨다’는 말로, 마치 이 아들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은혜가 체면을 지킨 것인 듯하다. 요셉(Joseph)은 addidit, 곧 ‘그가 더하셨다’이다. ‘주님께서 내게 다른 아들을 더해 주실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것은 믿음의 언어로 볼 수 있다. 이 은혜를 앞으로 주실 은혜의 보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 은혜를 주셨는가? 그렇다면 이것을 요셉이라 부르며 ‘그분이 더 많은 은혜를 더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30:34
라반은 이 거래에 기꺼이 동의했다. 현재 점과 얼룩이 있는 적은 수의 가축을 즉시 나머지에서 떼어 놓으면, 야곱이 돌볼 양 떼의 본체는 모두 검거나 모두 흰 단색이어서 섞인 색의 새끼를 거의 또는 전혀 낳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짜나 거의 공짜로 야곱의 봉사를 받을 수 있었다. 합의대로 여러 색이 섞인 소수의 가축을 떼어 라반의 아들들에게 맡기고 사흘 길 떨어진 곳으로 보냈다. 그것들이 나머지 양 떼와 섞여 야곱에게 유리해지는 것을 라반이 이토록 경계한 것이다.
30:37
여기에는 예상보다 거래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야곱의 방책이 나온다. 스스로 돕는 방법을 취하지 않았다면 참으로 불리한 거래가 되었을 것이다. 야곱은 라반이 자기 이익 외에는 누구의 이익도 생각하지 않으므로 그런 불리함을 고려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야곱의 방법은 이러했다. 가축에게 물을 먹이는 곳에 껍질 벗긴 막대기를 놓았다. 웨슬리는 가축이 이 낯선 여러 색의 막대기를 계속 보면 상상 작용의 힘으로 비슷하게 색이 섞인 새끼를 낳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아마 가나안 목자들은 가축에게 이런 얼룩무늬가 생기기를 바라며 이 방법을 흔히 사용했을 것이다. [이는 주석 저자의 당시 번식 현상에 대한 설명이다.] 줄무늬와 갈색이 있는 자기 양 떼가 생기자, 야곱은 같은 목적으로 그것들을 앞에 놓고 나머지 가축의 얼굴이 그쪽을 향하게 했다. 이것이 정직한 방책이었는지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창 31:7–16을 읽으면 그 의문이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