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 — Matthew Henry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미 말씀하신 바가 있었다. ‘네 나라와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며 네 이름을 크게 하겠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이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 땅의 모든 가족이 너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여기에는 아브람을 태어난 땅에서 약속의 땅으로 옮기신 부르심이 나온다. 이는 그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위해 그를 구별하며, 앞으로 계획하신 특별한 봉사와 은혜를 위해 따로 세우려는 것이었다. 이 부르심의 정황은 스데반의 설교(행 7:2)를 통해 얼마간 알 수 있다. 1.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이 부르심을 주셨다. 아브람이 그 부르심의 신적 권위를 의심할 여지가 없을 만큼 영광을 드러내며 나타나셨다. 그 뒤로는 여러 방식으로 말씀하셨으나, 교통을 시작하시는 이 첫 만남에서는 영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말씀하셨다. 2. 이 부르심은 하란에 살기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주어졌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미 말씀하셨다’고 읽는 것이 옳다. 곧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말씀하셨다는 뜻이다. 스데반의 계속되는 설명대로(행 7:4), 그는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갈대아 땅을 나와 하란, 또는 카란에서 약 오 년을 살았다. 아버지가 죽자 하나님은 앞선 명령을 잇는 새 명령으로 그를 거기서 가나안 땅으로 옮기셨다. 어떤 이들은 하란이 갈대아에 있어 여전히 아브람의 고국에 속했다고 보거나, 아브람이 오 년 동안 머물면서 그곳을 고향이라 부르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기에 하나님이 그를 위해 정하신 곳은 여기가 아니라고 알려 주셨다고 생각한다. 명심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베푸실 자비를 준비해 두셨다면, 가나안에 이르기 전 어느 곳에서도 안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시작하신 선한 일이 이루어지고 우리 영혼이 오직 하나님 안에서 쉴 때까지 은혜롭게 거듭 부르신다. 부르심 자체에는 명령과 약속이 있다. I. 시험하는 명령이다. ‘네 나라를 떠나라’(1절). 1. 이 명령은 그가 고향 땅과 가장 사랑하는 벗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떠날 수 있는지를 시험했다. 고국은 우상을 섬기게 되었고, 친족과 아버지 집은 끊임없는 유혹이 되었다. 그들에게 물들 위험 없이 함께 머물 수 없었다. 그러므로 ‘떠나라’, 곧 ‘lk-lk—Vade tibi’, ‘어서 떠나 생명을 위해 달아나고 뒤돌아보지 말라’는 것이다(19:17). 명심하라. 죄악된 상태에 있는 사람은 할 수 있는 한 서둘러 벗어나야 한다. 어떤 이들은 ‘너 자신을 위해 떠나라’, 곧 자신의 유익을 위해 떠나라는 뜻으로 읽는다. 명심하라.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사람은 그 변화로 말할 수 없는 유익을 얻는다(잠 9:12).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이 명령은 믿음의 아브람의 모든 영적 후손을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이끄는 복음의 부르심과 거의 같다. (1) 자연적인 애정은 하나님의 은혜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고국이 귀하고 친족은 더 귀하며 아버지의 집은 가장 귀하다. 그래도 이 모두를 미워해야 한다(눅 14:26). 곧 그리스도보다 덜 사랑하고, 그분과 비교하면 미워하는 것처럼 여겨야 한다. 이것들이 그리스도와 경쟁할 때는 뒤로 미루고 주 예수의 뜻과 영광을 앞세워야 한다. (2) 죄와 죄를 짓게 하는 모든 계기, 특히 나쁜 교제를 버려야 한다. 마음에 세운 불의의 모든 우상을 버리고 유혹의 길에서 벗어나, 죄로 이끄는 오른눈이라도 빼어 버려야 한다(마 5:29). 정직함을 위태롭게 하지 않고는 간직할 수 없는 것이라면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기꺼이 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로 한 사람은 악행하는 자들의 무리를 떠나야 한다(시 119:115; 행 2:40). (3) 세상과 그 안의 모든 즐거움을 거룩한 무관심과 초연함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더는 세상을 고국이나 집으로 여기지 말고 여관으로 여겨, 거기에 매이지 않고 그 위에 사는 마음으로 애착에서 떠나야 한다. 2. 이 명령은 눈에 보이는 데를 넘어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지 시험했다. 자기 나라를 떠나 하나님이 보여 주실 땅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가 네게 줄 땅’이라 하지 않으시고, 단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이라고 하신다. 어느 땅인지, 어떤 땅인지도 알려 주지 않으신다. 고국을 떠나 하나님을 따른다고 손해 보지 않으리라는 구체적인 보장이 없어도, 온전히 믿고 따라가며 그분의 말씀을 전반적으로 신뢰해야 했다. 명심하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은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보이는 것을 떠나 보이지 않는 것을 택하고,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며 현재의 고난을 받아들여야 한다(롬 8:18).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요일 3:2). 하나님이 보여 주실 땅으로 아브람을 부르셨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나님은 늘 자신의 인도에 의지하며 항상 자신을 바라보고 살도록 가르치셨다. II. 격려하는 약속이다. 사실은 지극히 크고 귀한 여러 약속이 함께 주어졌다. 명심하라.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는 순종하는 이를 위한 약속이 따른다. 하나님은 상 주시는 분으로도 자신을 알리신다. 우리가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신다. 여섯 가지 약속이 있다. 1.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하나님은 그를 자기 백성에게서 떼어 내시면서 다른 백성의 머리로 삼겠다고 약속하셨다. 돌감람나무의 가지에서 잘라 좋은 감람나무의 뿌리로 삼으신 것이다. 이 약속은 (1) 아브람의 짐을 크게 덜어 주었다. 아직 자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명심하라. 하나님은 자녀들의 결핍과 필요에 맞게 은혜를 베푸실 줄 아신다. 모든 상처에 붙일 약을 가지신 분은 가장 아픈 상처에 먼저 약을 주실 것이다. (2) 아브람의 믿음에는 큰 시험이었다. 아내가 오래도록 임신하지 못했으므로, 믿으려면 소망을 거슬러 믿어야 했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를 일으키고 큰 민족으로 만드실 능력에만 믿음의 기초를 두어야 했다. 명심하라. [1] 민족을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단번에 태어나며(사 66:8), 그분은 민족을 세우고 심겠다고 말씀하신다(렘 18:9). [2] 민족이 부와 권력에서 크게 되면, 크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다. [3] 하나님은 마른 땅에서도 큰 민족을 일으키고 작은 자를 천 명으로 만드실 수 있다. 2.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아담과 노아에게 주셨듯 특별히 생육과 번성의 복을 뜻할 수도 있고, 일반적으로 ‘위의 샘과 아래의 샘에서 오는 온갖 복으로 복 주겠다. 아버지 집을 떠나라. 내가 네 조상들의 축복보다 더 좋은 아버지의 축복을 주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명심하라. 순종하는 신자는 반드시 복을 상속받는다. 3. ‘네 이름을 크게 하겠다.’ 고국을 떠나면 거기서의 이름을 잃는다. 하나님은 ‘그것을 염려하지 말고 나를 믿어라. 거기서 얻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큰 이름을 주겠다’고 하신다. 자녀가 없어 이름이 남지 않을까 두려웠으나, 하나님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드셔서 큰 이름을 얻게 하신다. 명심하라. (1) 하나님은 영예의 근원이시며 높아짐은 그분에게서 온다(삼상 2:8). (2) 순종하는 신자의 이름은 반드시 칭송받고 크게 된다. 가장 좋은 명성은 옛사람들이 믿음으로 얻은 증거다(히 11:2). 4. ‘너는 복이 될 것이다.’ 곧 (1) ‘네 행복이 행복의 본보기가 되어, 친구를 축복하려는 이들은 하나님이 그를 아브람처럼 만들어 주시기만을 구할 것이다.’ 룻 4:11과 같다. 명심하라. 하나님은 순종하는 신자를 너무도 인자하고 은혜롭게 대하시므로, 자신이나 친구가 그보다 더 잘 대우받기를 바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을 벗으로 모시는 것만으로 충분한 복이다. (2) ‘네 삶은 네가 머무는 곳에 복이 될 것이다.’ 명심하라. 선한 사람은 자기 나라의 복이며,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영예와 행복이다. 5. ‘너를 축복하는 이들을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 이로써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는 일종의 공수동맹이 성립했다. 아브람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자기 일로 받아들였고, 여기서 하나님은 아브람의 일을 자신이 돌보겠다고 약속하신다. (1) 그의 친구의 친구가 되시며, 그에게 베푼 친절을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받으시고 보답하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한 어떤 봉사도 마침내 손해로 돌아가지 않도록 돌보신다. 찬물 한 잔도 상을 받을 것이다. (2) 그의 원수들을 대적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아브람 자신까지 미워하고 저주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까닭 없는 그들의 저주는 아브람을 해칠 수 없고, 하나님의 의로운 저주는 반드시 그들에게 닥쳐 멸망시킬 것이다(민 24:9). 하나님이 그들을 저주하시는 것으로 충분하니, 이것이 우리가 우리를 저주하는 이들을 축복해야 할 좋은 이유다(시 38:13-15). 6. ‘땅의 모든 가족이 너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이는 다른 모든 약속의 절정이다. 모든 약속이 그 안에서 ‘예’와 ‘아멘’이 되는 메시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명심하라. (1)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큰 복, 세상이 이제껏 받은 가장 큰 복이다. 그분은 가정의 복이시며 그분을 통해 구원이 집에 이른다(눅 19:9). 가정의 복을 헤아릴 때 그리스도를 ‘imprimis’, 곧 맨 첫자리에, 복 중의 복으로 두자. 그러나 그토록 많은 이가 그분을 모르는데 어떻게 땅의 모든 가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받는가? 답하자면, [1] 복 받는 이는 모두 그분 안에서 복을 받는다(행 4:12). [2] 어느 가족에 속하든 믿는 이는 모두 그분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3] 땅의 모든 가족 가운데 일부가 그분 안에서 복을 받는다. [4] 땅의 모든 가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받는 복들도 있다. 복음의 구원은 공동의 구원이기 때문이다(유 3절). (2)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것은 큰 영예다. 아브람의 이름을 크게 한 것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보다도 메시아가 그의 몸에서 나신다는 사실이었다. 육신으로 그분의 조상이 된 것이 아브람의 영예였다면, 은혜로 그분의 형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영예일 것이다(마 12:50).
12:4–5
4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떠났고 롯도 함께 갔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칠십오 세였다. 5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 모아 둔 모든 재산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출발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I.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고국을 떠났다. 먼저 우르를, 그 뒤에는 하란을 떠났다. ‘아브람이 떠났다.’ 하늘의 환상에 불순종하지 않고 명령받은 대로 행했으며,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갈 1:15, 16). 그의 순종은 지체 없이 신속했고, 다투지 않고 복종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나섰으나(히 11:8), 누구를 따르는지, 누구의 인도 아래 가는지는 알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를 자기 발 앞으로 부르셨다(사 41:2). II. 떠날 때의 나이는 칠십오 세였다. 이제는 쉬며 정착할 나이였지만, 하나님이 노년에 새로 삶을 시작하게 하시면 순종하려 했다. 이는 노년에 회심한 사람의 한 사례다. III. 그가 데려간 일행과 가져간 짐이다. 1. 아내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갔다. 그들의 뜻을 거슬러 강제로 데려간 것이 아니라 설득해서 데려갔다. 아내 사래는 틀림없이 함께 가려 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두 사람을 결합하셨으니 아무것도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따르려고 모두 떠난다면, 사래는 아브람을 따르려고 모두 떠날 것이다. 둘 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다. 여행에 이런 동반자, 자신에게 알맞은 돕는 이를 얻은 것은 아브람에게 자비였다. 명심하라. 부부가 하늘로 가는 길을 함께 걷기로 뜻을 모으는 것은 큰 위로다. 친족 롯도 아브람의 좋은 본에 영향을 받았다. 아브람은 롯의 아버지가 죽은 뒤 보호자였을 수 있다. 롯도 기꺼이 동행하려 했다. 명심하라. 가나안으로 가는 사람은 혼자 갈 필요가 없다. 좁은 문을 찾는 사람이 적어도, 하나님을 찬송하리니 찾는 이들은 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들과 그들이 어디로 가든 동행하는 것이 지혜다(슥 8:23). 2. 모든 소유, 곧 모은 재산과 옮길 수 있는 물품을 가지고 갔다. (1) 자신과 더불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려 했다. 대금의 일부를 감추지 않고, 배가 안전함을 알아 모든 것을 한 배에 실었다. (2) 목적지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가족의 필요를 채우는 데 필요한 것을 마련하려 했다. 하나님이 복 주시겠다고 하셨다는 이유로 재산을 내버리는 것은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3)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받지 않으려 했다. 남긴 것이 떠나온 나라를 생각나게 하지 않도록 발굽 하나도 뒤에 두지 않았다. 3. 그들이 얻은 사람들, 곧 영혼들을 데리고 갔다. 이는 (1) 구입한 종들이다. 재산의 일부였지만 ‘영혼들’이라 불리는 것은 주인들에게 가난한 종에게도 귀한 영혼이 있으며, 그것을 돌보고 적절한 양식을 공급해야 함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2) 그들이 얻은 개종자들이다. 참 하나님을 예배하고 함께 가나안으로 가도록 설득한 사람들이다. 어느 랍비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위엄의 날개 아래 모은 영혼들’이다. 명심하라.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영혼들을 그들이 ‘얻었다’고 한다. 영혼을 그리스도께 이끌 수 있다면 참으로 이익을 얻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IV. 그들은 여행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출발했다.’ 전에도 그랬지만(11:31) 도중에 멈췄다. 이번에는 길을 계속 갔고,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함께하셔서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거기서 새로운 계시를 통해 이곳이 하나님이 보여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임을 알게 되었다. 길에서 만난 어려움에 낙심하지도, 즐거움에 곁길로 빠지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명심하라. 1. 하늘을 향해 출발한 사람은 앞에 있는 것을 향해 계속 손을 뻗으며 끝까지 견뎌야 한다. 2.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겸손히 그 섭리를 따르며 시작한 일은 반드시 성공하여 마침내 위로로 끝난다.
12:6–9
6 아브람은 그 땅을 지나 세겜 지역, 모레 평야까지 갔다. 그때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있었다.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람은 그곳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 8 그는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서쪽에는 벧엘을, 동쪽에는 아이를 두고 장막을 쳤다. 거기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9 아브람은 계속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그토록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에 왔으니, 도착하자 큰 사건이 뒤따르고 온갖 존경과 영예를 받으며 소개되어, 가나안 왕들이 곧 왕관을 바치고 경의를 표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의 도착은 눈길을 끌지 않았고 사람들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가 믿음으로 살고, 가나안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약속의 땅으로 바라보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살펴보자. I. 그가 도착한 땅에서 얻은 위안은 얼마나 적었는가. 1. 그 땅은 그 혼자 쓰는 곳이 아니었다. ‘그때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있었다.’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며 차지한 땅이었다. 그들은 나쁜 이웃이고 더욱 나쁜 지주가 되었을 법하다. 기록상으로는 그들의 허락 없이는 장막 칠 자리조차 얻을 수 없었던 듯하다. 이처럼 저주받은 가나안 사람이 복 받은 아브람보다 더 좋은 처지로 보였다. 명심하라. 이 세상의 자녀들은 대체로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세상의 것을 더 많이 갖는다. 2. 정착할 곳이 없었다. 그는 땅을 지나갔고(6절), 산으로 옮겼으며(8절), 계속 길을 떠났다(9절). 살펴보자. (1) 선한 사람이 정처 없이 자주 거처를 옮겨야 하는 때가 있다. 거룩한 다윗도 떠돌고 옮겨 다녔다(시 56:8). (2) 이 세상에서 옮겨 다닐 때 우리는 흔히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다. 아브람은 먼저 평야에(6절), 다음에는 산에(8절) 머물렀다. 하나님은 이쪽과 저쪽을 서로 마주 놓으셨다. (3) 모든 선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여기고, 믿음으로 세상을 낯선 나라처럼 여겨 매이지 않아야 한다. 아브람이 그랬다(히 11:8-14). (4) 현재 상태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아직 이르지 못한 사람으로서 계속 여행하며 힘을 더해 나아가야 한다. II. 그가 따르던 하나님 안에서 누린 위로는 얼마나 컸는가. 그곳 가나안 사람들과의 사귐에서는 만족이 적었지만, 그를 그리로 이끄시고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과의 교통에서는 풍성한 기쁨을 누렸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말씀과 기도로 유지된다. 아브람도 그 시대에 정하신 방식에 따라 말씀과 기도로 순례의 땅에서 하나님과 교통했다. 1. 하나님은 아마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선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을 주셨다.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겠다.’ 명심하라. (1) 어떤 장소나 삶의 형편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찾아오심이 주는 위로에서 우리를 차단할 수 없다. 아브람은 가나안 사람들 사이에 정착하지 못한 나그네였지만, 여기서도 살아 계셔서 자신을 보시는 분을 만난다. 원수들이 우리를 장막과 제단에서 떼어 놓을 수는 있어도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지는 못한다. (2) 의무의 길에서 하나님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을 친구들로부터 멀리 이끄실지라도, 친히 은혜롭게 나타나셔서 그 손실을 메우신다. (3) 하나님의 명령을 양심적으로 지키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약속은 확실하고 흡족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소중한 것을 떠나거나 잃는 사람은 그 대신 훨씬 더 좋은 다른 것을 틀림없이 받는다. 아브람은 태어난 땅을 떠났다. 하나님은 ‘그러면 내가 이 땅을 네게 주겠다’고 하신다(마 19:29). (4) 하나님은 자신과 은혜를 백성에게 점차 드러내신다. 전에는 땅을 보여 주겠다고 하셨고 이제는 주겠다고 하신다. 은혜가 자라듯 위로도 자란다. (5) 섭리로만 아니라 약속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갖는 것은 위로가 된다. (6) 자녀에게 베푸신 자비는 부모에게 베푸신 자비다. ‘네가 아니라 네 후손에게 주겠다.’ 후손이 장래에 받을 증여였다. 그러나 아브람은 이를 자신에게도 장차 주어질 더 좋은 땅의 증여로 이해한 듯하며, 가나안은 그 땅의 모형이었다. 그가 하늘의 본향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히 11:16). 2. 아브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예식으로 그분을 섬겼다.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7, 8절). 이를 생각해 보자. (1) 특별한 계기에 한 일이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제단을 쌓았다. 이로써 하나님의 방문에 응답하고, 자기 쪽에서 하늘과의 교통을 끊지 않겠다는 사람처럼 그 관계를 유지했다. 은혜로운 방문과 약속을 주신 하나님의 친절을 감사로 인정하고, 그 말씀에 대한 확신과 의지를 나타냈다. 명심하라. 살아 움직이는 믿음을 지닌 사람은 성취를 아직 보지 못한 약속에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송한다. 하나님이 아직 자신을 위해 행동하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자신에게 나타나셨으므로 그 영광을 위해 제단을 세울 수 있다. (2) 어디로 옮기든 지키던 일상적인 실천이었다. 가나안에 이르자마자 낯선 거류민에 불과했어도 가정에서 하나님 예배를 세우고 유지했다. 그의 장막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제단이 있었고, 기도로 거룩하게 된 제단이었다. 그는 제사를 드리는 의식적인 부분만 살피지 않았다. 자기 하나님을 찾고 그 이름을 부르는 본래의 의무,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제사를 양심적으로 행했다.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했다. 곧 가족과 이웃에게 참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신앙을 가르쳤다. 하란에서 얻어 제자가 된 영혼들은 더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명심하라. 믿음의 아브람의 자녀임을 나타내고 아브람의 복을 상속받으려는 사람은, 그의 본을 따라 특히 가정에서 엄숙한 하나님 예배를 계속 지키는 데 마음을 써야 한다. 가정예배는 새 발명이 아니라 모든 성도의 오래된 관행인 선한 옛길이다. 아브람은 매우 부유하고 식솔이 많았으며, 정착하지 못하고 원수들 한가운데 있었지만 장막을 치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어디로 가든 우리의 신앙도 반드시 가지고 가자.
12:10–13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기근이 심하여 아브람은 이집트에 잠시 머물려고 내려갔다. 11 이집트에 들어갈 무렵, 그가 아내 사래에게 말했다. ‘보시오, 나는 당신이 보기에 아름다운 여인인 줄 아오. 12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보면 “이 사람의 아내다”라고 하고, 나를 죽이고 당신은 살려 둘 것이오. 13 부탁이니 당신이 내 누이라고 말해 주시오. 그러면 당신 덕분에 내가 잘 지내고, 당신으로 말미암아 내 목숨을 보전할 것이오.’ I. 가나안 땅에 심한 기근이 들었다. 비옥한 땅이 황무지로 바뀐 것은 그곳 가나안 사람들의 죄를 벌할 뿐 아니라, 거기 머무는 아브람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서였다. 참으로 혹독한 시험이었다. 이는 그가 다음을 어떻게 생각할지 시험했다. 1. 그곳으로 데려오신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뒤에 원망한 그의 후손들처럼 굶겨 죽이려고 데려오셨다고 말하려 하지는 않을까(출 16:3)? 이런 섭리 아래서 하나님에 관한 좋은 생각을 지키는 데는 강한 믿음이 필요했다. 2. 약속의 땅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지금 보이는 형편으로는 주민을 삼키는 땅인데, 그 선물을 받을 만하고 자기 고국을 버린 데 대한 가치 있는 보상이라고 여길 것인가? 가나안으로 이끄신 하나님이 거기서도 먹여 살리시리라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지킬 수 있는지,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지 않아도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지가 시험되었다(합 3:17, 18). 명심하라. (1) 강한 믿음은 대체로 여러 시험을 통해 연단되어 칭찬과 존귀와 영광에 이르게 된다(벧전 1:6, 7). (2) 하나님은 때로 신앙에 막 들어선 초심자를 큰 고난으로 시험하기를 기뻐하신다. (3) 사람이 의무의 길과 행복으로 가는 길에 있으면서도 큰 곤경과 실망을 만날 수 있다. II. 이 기근 때문에 아브람은 이집트로 옮겼다. 한 곳이 부족할 때 다른 곳에는 풍족하게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라. 우리는 큰 몸의 지체들로서 서로 ‘너는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집트에 공급이 있도록 돌보셨고, 아브람의 분별은 그 기회를 이용했다. 곤경 중에 하나님이 은혜로 마련하신 생존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기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브람을 칭찬할 특별한 점은, 이 기회에 떠나온 나라로 돌아가려 하거나 그쪽으로 향하기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향은 가나안의 북동쪽이었다. 따라서 잠시 가나안을 떠나야 했을 때, 뒤를 돌아보는 듯한 모습조차 보이지 않으려고 정반대인 남서쪽 이집트를 택했다(히 11:15, 16). 또 살펴보라. 그는 이집트에 정착하려고가 아니라 잠시 머물려고 내려갔다. 명심하라. 1. 섭리가 한동안 나쁜 곳에 우리를 두더라도 필요한 시간보다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착해서는 안 될 곳에도 잠시 체류할 수는 있다. 2. 선한 사람은 하늘에 이르기 전까지 어디에 있든 나그네일 뿐이다. III. 아브람이 아내를 부인하고 누이라고 꾸며 댄 큰 잘못이다. 성경은 가장 이름난 성도들의 잘못도 공정하게 기록한다. 본받으라고가 아니라 경계하라고 기록하여,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넘어질까 조심하게 한다. 1. 잘못은 사래와의 관계를 숨기고 애매하게 말했으며, 아내와 아마 모든 수행원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친 데 있다. 그의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참이었지만(20:12) 속이려는 목적이었다. 더 온전한 진실을 감춘 것은 사실상 그것을 부인하는 일이었고, 그 때문에 아내와 이집트 사람들 모두를 죄의 위험에 빠뜨렸다. 2. 그 밑바탕에는 의심 많고 겁에 질린 상상이 있었다. 이집트에는 사래 같은 미인이 드물었으므로 누군가 그녀의 미모에 반해, 그가 남편인 것을 알면 그녀와 결혼하려고 무슨 수로든 그를 없앨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그들이 간음보다 차라리 살인을 택하리라고 짐작했다. 당시 간음은 그만큼 흉악한 죄로 여겨졌고 혼인 관계는 그만큼 신성하게 존중되었다. 거기서 그는 별 근거 없이 ‘그들이 나를 죽일 것이다’라는 결론을 냈다. 명심하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고, 많은 사람이 죽음의 공포에 떠밀려 죄를 짓는다(눅 12:4, 5). 아브람에게 가장 두드러진 은혜는 믿음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두 번이나 나타나신 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불신과 의심으로 이렇게 넘어졌다. 아, 백향목도 이렇게 흔들리는데 버드나무는 어찌 되겠는가!
12:14–20
14 아브람이 이집트에 들어가자 이집트 사람들은 그 여인이 매우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 15 파라오의 고관들도 그녀를 보고 파라오 앞에서 칭찬하였고, 그 여인은 파라오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16 파라오는 그녀 때문에 아브람을 잘 대우하여, 그에게 양과 소와 수나귀와 남종과 여종과 암나귀와 낙타가 생겼다.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 때문에 파라오와 그의 집을 큰 재앙으로 치셨다. 18 파라오가 아브람을 불러 말했다. ‘네가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왜 그 여인이 네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19 왜 “내 누이다”라고 하여 내가 아내로 삼을 뻔하게 했느냐? 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데리고 떠나라.’ 20 파라오는 부하들에게 아브람에 관해 명령했고, 그들은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를 함께 보냈다. I. 사래는 이집트 왕에게 정절을 침해당할 위험에 있었다. 우리가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의심할 바 없이 죄의 위험이다. 파라오의 고관들—차라리 뚜쟁이라 해야 하겠다—은 사래를 보고 아름다움을 알아차려 파라오 앞에서 칭찬했다. 정말 칭찬할 만한 덕과 정숙함, 믿음과 경건을 칭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에는 그런 것이 장점이 아니었다. 한 신하의 품에 있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여긴 미모를 칭찬했다. 왕에게 추천하자 그녀는 왕의 침상에 들게 될 목적으로 즉시 파라오의 집으로 옮겨졌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의 후궁 처소에 들어간 것과 같다(에 2:8). 사래를 출세할 좋은 기회를 얻은 사람으로 보지 말고 유혹에 들어가는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그 계기는 많은 사람에게 올무가 되는 자신의 미모와, 흔히 더 많은 죄의 입구가 되는 아브람의 모호한 말이었다. 사래가 이런 위험에 있는 동안 아브람은 그녀 덕분에 더 잘 지냈다. 파라오는 그의 동의를 얻어 누이라고 여긴 여인을 더 쉽게 설득하게 하려고 양과 소 등을 주었다(16절). 아브람이 이집트에 내려올 때 이를 예상했다고 생각할 수 없으며, 아내를 부인할 때 이것을 노렸다고는 더욱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에서 선을 이끌어 내셨다. 이렇게 죄인의 재물이 어떤 방식으로든 의인을 위해 쌓인 것으로 드러난다. II. 사래가 이 위험에서 구출된 일이다. 우리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으로 자초하여 약속에 따른 구원을 기대할 수도 없는 궁지와 고통에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자주 건져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곧 망했을 것이며, 아니 이미 오래전에 망했을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받아 마땅한 대로 다루지 않으신다. 1. 하나님은 파라오를 징계하여 죄가 더 진행되는 것을 막으셨다. 명심하라. 죄악된 길을 막고 의무로, 특히 부당하게 빼앗아 붙들고 있던 것을 돌려주는 의무로 확실히 이끄는 징계는 복된 징계다. 살펴보라. 파라오뿐 아니라 집안도 재앙을 당했으며, 특히 사래를 추천한 고관들이 그랬을 것이다. 명심하라. 죄에 동참한 자들이 형벌에도 동참하는 것은 정당하다. 남의 욕정을 돕는 이들은 그 재앙도 함께 받을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재앙이었는지 자세히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재앙 자체나 덧붙여진 설명 가운데, 사래 때문에 재앙을 당한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에 충분한 것이 있었음은 틀림없다. 2. 파라오는 아브람을 책망한 뒤 존중하여 보냈다. (1) 책망은 차분했으나 매우 정당했다. ‘네가 무슨 일을 한 것이냐?’ 얼마나 부적절하며, 지혜롭고 선한 사람에게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일인가! 명심하라.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 공정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않은 일을, 특히 거짓말에 가까운 말을 하면 책망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하며, 지적해 주는 사람에게 감사할 이유가 있다. 주님의 예언자도 이방인 선장에게 정당한 책망과 질책을 받았다(욘 1:6). 파라오는 따져 묻는다. ‘왜 그 여인이 네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알았다면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명심하라. 근거 이상으로 남을 의심하는 것은 선한 사람들 사이에도 너무 흔한 잘못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사람에게서 예상보다 더 많은 덕과 명예와 양심을 발견한다. 아브람이 여기서 파라오가 예상보다 나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듯, 이런 식으로 예상이 빗나가면 기뻐해야 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서 가장 좋은 것을 기대하도록 가르친다. (2) 보내는 태도는 친절하고 매우 관대했다. 아내의 명예를 손상하지 않고 돌려주었다.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데려가라’(19절). 명심하라. 죄를 막으려는 사람은 유혹을 제거하거나 그 길을 벗어나야 한다. 또 평안히 보냈고, 아브람이 두려워한 것처럼 죽일 뜻은 전혀 없이 특별히 돌보았다. 명심하라. 우리는 곧 전혀 근거 없었음이 드러나는 두려움으로 스스로 괴로워하며 올무에 빠지는 일이 많다. 두려워할 것이 없는 곳에서 두려워한다. 실제로 위험이 없는데도 압제자가 곧 파괴하려는 것처럼 그의 분노를 두려워한다(사 51:13). 처음부터 진실을 말했다면 아브람의 명예와 마음의 평안에 더 좋았을 것이다. 결국 정직이 가장 좋은 방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20절은 ‘파라오가 부하들에게 아브람에 관해 명령했다’고 한다. 이는 [1] 어떤 일로도 그를 해치지 말라고 명했다는 뜻일 수 있다. 명심하라. 권위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인과 주변 사람들도 해치지 못하게 제지해야 한다. 또는 [2] 기근 뒤 아브람이 돌아가려 할 때 호위대가 되어 안전하게 국외로 안내하도록 지정했다는 뜻일 수 있다. 아마 그는 재앙에 놀라(17절), 아브람이 하늘의 특별한 은총을 받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재앙이 다시 올까 두려워 자기 나라에서 아무 해도 입지 않게 특별히 주의한 것이다. 명심하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해치면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심으로써, 자주 그들을 위한 친구를 일으키셨다. 그리스도의 작은 자들을 실족시키는 것은 위험하다(마 18:6). 시편 기자는 이 사건 등을 가리켜 ‘그들을 위해 왕들을 꾸짖어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을 건드리지 말라” 하셨다’고 말한다(시 105:13-15). 파라오가 보내지 않았다면 아브람은 이집트에 머물며 약속의 땅을 잊으려는 유혹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명심하라. 하나님은 때로 자기 백성의 원수들을 사용하여, 이 세상이 쉴 곳이 아니고 떠날 생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하게 하신다. 마지막으로,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구출된 일과 그의 후손이 거기서 구출된 일의 유사성을 보라. 아브람이 기근 때문에 이집트로 간 지 사백삼십 년 뒤, 그들도 기근 때문에 그곳으로 갔다. 그는 파라오에게 내린 큰 재앙과 함께 이끌려 나왔고 그들도 그랬다. 아브람이 파라오에게 보내어져 이집트 사람들의 재물로 부유해졌듯 그들도 그랬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일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