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3장 — Matthew Henry
23:1–2
1 사라는 127세를 살았다. 이것이 사라가 산 햇수다. 2 사라는 가나안 땅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죽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위해 애도하고 울려고 왔다. 여기에는 다음의 내용이 있다. 1. 사라의 나이(1절). 거의 40년 전에 그녀는 자신을 늙었다고 불렀다(창 18:12). 노인들이 자신을 늙었다고 여긴다고 더 빨리 죽는 것은 아니지만, 더 잘 죽을 준비를 할 수는 있다. 2. 사라의 죽음(2절). 가장 오래 사는 사람도 결국 죽어야 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오랜 세월 함께 평안하게 살았지만, 다른 무엇도 갈라놓을 수 없던 사람들을 죽음이 갈라놓는다. 하늘의 특별한 친구와 사랑받는 사람들도 죽음의 손길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사라는 60년 넘게 나그네로 지냈던 가나안 땅에서 죽었다. 3. 아브라함의 애도. 그는 진실하게 슬퍼했다. 거리를 다니는 곡하는 사람들처럼 당시의 관습에 따른 의식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좋은 아내를 잃은 큰 상실을 마음으로 슬퍼했다. 마지막까지 아내를 향한 애정이 한결같았음을 보여 준 것이다. “애도하다”와 “울다”라는 두 단어가 사용된다. 그의 슬픔은 꾸밈이 아니라 실제였다. 그는 사라의 장막으로 와서 시신 곁에 앉아 눈물로 마음을 바쳤다.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떠난 아내를 기억하며 더 큰 존경을 드리려는 것이었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허용될 뿐 아니라 의무다. 그렇게 울고 애도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응답하고, 마땅히 존경받을 이에게 존경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눈물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에게 바쳐야 할 마음의 예물이다. 몸이라는 씨앗을 심을 때에는 물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소망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은혜를 통해 떠난 이들에 대해서도,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좋은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3:3–15
3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앞에서 일어나 헷의 자손들에게 말했다. 4 “나는 여러분 가운데 사는 나그네이며 거류민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매장지로 소유할 땅을 주십시오. 내 눈앞의 죽은 아내를 장사하려 합니다.” 5 헷의 자손들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했다. 6 “내 주여, 우리 말을 들으십시오. 당신은 우리 가운데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우리 무덤 가운데 가장 좋은 곳에 고인을 장사하십시오. 우리 중 누구도 당신이 고인을 묻지 못하도록 자기 무덤을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7 아브라함은 일어나 그 땅의 백성, 곧 헷의 자손들에게 몸을 굽혔다. 8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 눈앞의 죽은 아내를 장사하는 일을 여러분이 허락하신다면, 제 말을 듣고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저를 위해 부탁해 주십시오. 9 자기 밭 끝에 있는 막벨라 굴을 제게 주도록 해 주십시오. 그 가치에 맞는 돈을 받고 여러분 가운데 매장지로 소유하도록 제게 주면 좋겠습니다.” 10 에브론은 헷의 자손들 가운데 살았다. 헷 사람 에브론은 헷의 자손들, 곧 자기 성읍의 문으로 드나드는 모든 사람이 듣는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했다. 11 “아닙니다, 내 주여. 제 말을 들으십시오.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안의 굴도 드리겠습니다. 내 백성의 자손들 앞에서 드리니 고인을 장사하십시오.” 12 아브라함은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혔다. 13 그가 그 땅의 백성이 듣는 가운데 에브론에게 말했다. “그러시다면 부디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밭값을 드리겠습니다. 제게서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곳에 제 아내를 장사하겠습니다.” 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했다. 15 “내 주여, 제 말을 들으십시오. 그 땅은 은 400세겔 값입니다.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큰일이겠습니까? 고인을 장사하십시오.” Ⅰ. 아브라함이 이웃인 헷 사람들에게 그들 가운데 매장지를 마련하게 해 달라고 겸손하게 요청한다(3–4절). 이제야 이 일을 해야 했다는 것은 이상해 보이지만, 그의 준비 부족보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나안에서 상속할 땅을 주지 않으셨다는 말씀에 나타난다(배포 원문의 참조는 행 6:5이나 해당 내용은 행 7:5). 죽은 뒤 몸이 묻힐 곳을 마련하는 모든 사람이 영혼의 안식처도 그만큼 주의 깊게 준비한다면 좋을 것이다. 1. 이 일은 당장의 슬픔에서 적절하게 주의를 돌릴 기회를 주었다. “그는 죽은 아내 앞에서 일어났다.” 가족의 죽음으로 지나치게 슬퍼할 위험에 빠지고 그 유혹에 들어가는 사람은, 상실만 곱씹으며 홀로 우울하게 앉아 있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죽은 이 앞에서 일어나 애도를 멈출 때도 있어야 한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행복은 어떤 피조물의 생명에 묶여 있지 않다. 장례를 준비하는 일은 죽음의 슬픔이 우리를 가장 강하게 지배하려는 초기 시기에, 여기서처럼 주의를 돌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울음이 씨 뿌리는 일을 막아서는 안 된다. 2. 그가 헷의 자손들에게 제시한 이유는 이렇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사는 나그네이며 거류민이므로, 마련된 곳이 없어 매장지를 겸손히 청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기회에 자신이 땅 위의 나그네이자 순례자임을 고백했다.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히 11:13). 가족의 죽음은 이 세상이 우리의 집이 아님을 깊이 상기시켜야 한다. 그들이 떠났을 때 “우리도 가고 있다”고 말하자. 3. 일이 정리될 때까지 그의 마음이 편치 않았음은 “내 눈앞의 죽은 아내를 장사하려 합니다”라는 말에 암시된다. 살아 있을 때 눈에 기쁨이던 사람도 죽음이 오면 바라보기 힘든 모습이 된다. 생기 있던 얼굴이 창백하고 죽음의 기색으로 바뀌어 어둠의 땅으로 옮겨져야 한다. 아내가 눈앞에 있는 동안 슬픔이 새롭게 일어났으므로, 그는 이를 막으려 했다. Ⅱ. 헷의 자손들이 너그럽게 제안한다(5–6절). 그들은 두 가지로 그를 높인다. 1. 존경의 호칭. 원문의 표현은 “당신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지도자입니다”다. 위대할 뿐 아니라 선하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나그네와 거류민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위대한 지도자라고 부른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크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2. 자신들의 가장 좋은 매장지를 내어 주겠다는 제안. 자연적인 분별력만으로도 나그네와 거류민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예의 바르고 존중하는 태도로 대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이 가나안 사람들의 고귀한 너그러움은 스스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부르는 많은 이들의 인색함과 이기심과 심술궂음을 부끄럽게 하고 정죄한다. 이 가나안 사람들은 자신의 흙이 아브라함의 흙과 섞이고 마지막이 그와 같아지는 것을 기꺼워했음에 주목하자. Ⅲ. 아브라함의 구체적인 제안(7–9절). 그는 가능한 한 예의와 존중을 다하여 친절한 제안에 감사한다. 위대한 인물이자 노인이며 지금은 상을 당한 사람이지만, 일어나 그들 앞에 겸손히 몸을 굽힌다(7절). 신앙은 좋은 예절을 가르친다. 신앙을 무례함과 거친 태도로 여기는 사람은 그것을 오용한다. 이어서 가장 알맞다고 생각한 장소, 곧 막벨라 굴을 고른다. 아마 가까운 곳에 있었고 아직 매장지로 사용된 적이 없었을 것이다. 현재 주인은 에브론이었다. 아브라함은 그와의 친분을 주장할 수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활용하여 굴과 그 굴이 있는 밭을 살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랐다. 공정하고 정직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알맞은 것을 얻으려는 절제된 바람은 십계명의 열째 계명이 금하는 이웃의 것을 탐내는 행위가 아니다. Ⅳ. 에브론이 밭을 선물로 준다. “밭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10–11절). 아브라함은 팔도록 부탁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에브론은 처음 이야기를 듣자 간청도 없이 기꺼이 준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너그럽다. 아브라함은 틀림없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웃에게 호의를 베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봉사를 했을 것이다. 이제 그들도 친절을 돌려준다. 물을 주는 사람은 자신도 물을 받기 때문이다.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 모든 이를 향한 뛰어난 예의와 유익한 봉사로 자신의 고백을 아름답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뿐 아니라 자신의 위로와 유익으로도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된다. Ⅴ.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친절한 제안을 겸손하고 진실하게 거절한다(12–13절). 풍성한 감사를 전하고(12절), 그 땅의 백성 앞에서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존중을 보고 에브론을 더 존경하게 하려는 것이다(삼상 15:30). 그러나 밭값, 그것도 온전한 값을 주기로 결심한다. 선물을 거절한 것은 자존심 때문이거나 에브론에게 신세 지는 것을 업신여겼기 때문이 아니다. 1. 공정함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은과 금이 풍부했고(창 13:2) 밭값을 낼 수 있었으므로 에브론의 너그러움을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 명예뿐 아니라 정직함도 이웃에게 얹혀살며 후한 사람을 이용하는 일을 금한다. 욥은 가난해졌을 때에도 자기 땅의 소출을 대가 없이 먹지 않았음을 돌아보며 위로받았다(욥 31:39). 2. 신중함 때문이다. 에브론의 좋은 기분이 지나간 뒤 그 일을 들어 탓하며 “내가 아브라함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하지 못하도록 값을 내려고 했다(창 14:23). 또는 대가 없이 이루어진 증여였다는 이유로 다음 상속자가 아브라함의 권리에 이의를 제기하고 밭을 돌려 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후에 다윗도 같은 방식으로 아라우나의 제안을 거절했다(삼하 24:24). 지금 가장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에게서도 나중에 어떤 모욕을 받을지 우리는 모른다. Ⅵ. 에브론은 땅값을 정하지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그 땅은 은 400세겔 값이지만, 나와 당신 사이에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14–15절). 이는 헨리 시대의 돈으로 약 50파운드다. 에브론은 그만한 돈을 주머니에 넣기보다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다음을 드러낸다. 1. 세상의 재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음. “나와 당신 사이에 그것이 무엇입니까? 말할 가치도 없는 작은 일입니다.” 많은 사람은 “큰돈입니다. 자녀에게 줄 몫에 큰 도움이 됩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에브론은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라고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재산을 작고 하찮게 보는 마음은 훌륭하다. 재물은 없어질 것이며, 사람이 소유를 풍성히 가진 데 생명이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눅 12:15). 2. 친구와 이웃을 향한 큰 예의와 호의. 에브론은 아브라함이 거주 외국인이라고 경계하지 않았고, 번영하고 부유해질 사람이라고 시기하지도 않았다. 신앙이 남다르다고 악의를 품지 않았으며, 오늘날 대다수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친절했다. “나와 당신 사이에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진정한 친구 사이에서는 작은 일이 머뭇거림과 불화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모욕에 격분하거나, 권리를 강하게 요구하거나, 친절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싶은 유혹이 올 때에는 이 질문으로 답해야 한다. “나와 내 친구 사이에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23:16–20
16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말을 듣고, 헷의 자손들이 듣는 가운데 그가 말한 은을 달아 주었다. 상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은 400세겔이었다.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그 밭과 그 안의 굴, 밭 안과 사방 경계 안에 있는 모든 나무가 18 헷의 자손들, 곧 그 성읍 문으로 드나드는 모든 사람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었다. 19 그 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마므레 앞 막벨라 밭의 굴에 장사했다. 그곳은 가나안 땅 헤브론이다. 20 밭과 그 안의 굴은 헷의 자손들로부터 아브라함에게 매장지의 소유로 확정되었다. 여기서는 매장지를 둘러싼 아브라함과 에브론의 협상이 마무리된다. 거래는 모든 이웃 앞에서, 헷의 자손들이 보고 듣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16–17절). 공정함뿐 아니라 신중함도 거래에서 공평하고 공개적이며 숨김없이 행동하도록 이끈다. 사기성 계약은 빛을 싫어하고 은밀함을 택한다. 그러나 정직하게 거래하려는 사람은 누가 증인이 되든 개의치 않는다. 헨리는 자신이 살던 사회의 법도 공개된 시장에서 이루어진 매매와 등록된 증서에 따른 매매를 인정한다고 말한다. 1. 아브라함은 사기나 공모나 더 이상의 지체 없이 돈을 낸다(16절).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내며, 깎지 않고 전액을 내며, 속임없이 상인들이 쓰는 표준에 따라 무게를 달아 낸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거래를 돕기 위해 돈이 사용되었는지 보라. 또한 지불할 돈은 얼마나 정직하게 내야 하는지도 보라. 약속에 따르면 온 가나안 땅이 아브라함의 것이었지만, 실제로 소유할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사서 값을 치렀다. 지배권이나 소유권은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성도들이 영원한 유산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해서 이 세상의 재산을 차지할 권리가 생기거나, 잘못을 행하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2. 에브론은 정직하고 공정하게 아브라함에게 땅에 대한 확실한 권리를 넘긴다(17–18, 20절). 밭과 그에 딸린 모든 것이 공개된 법정에서 아브라함과 그 상속자들에게 영구히 양도된다. 글로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글이 사용되었는지는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증인들 앞에서 양도를 성립시키기에 충분한 공개적이고 엄숙한 선언을 했다. 산 것의 값을 정직하게 내야 하듯, 판 것도 정직하게 넘겨주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3. 그러자 아브라함은 소유권을 행사하여 구입한 밭의 굴 또는 지하 무덤에 사라를 장사한다. 그것이 자연적으로 생겼는지 사람이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가나안에 온 뒤 가족에 속한 종들을 이미 장사한 적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들에게는 일반 백성의 무덤이면 충분했을 것이다(왕하 23:6). 이제 사라가 죽었으므로 그녀의 유해를 위한 특별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1) 매장지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처음 소유한 땅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세상에 들어올 때 세상을 떠날 일도 생각하는 것이 좋다.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2) 장차 온 나라가 그의 것이 될 것이었지만, 이것은 그가 실제로 소유한 유일한 땅이었다. 이 땅에서 가장 적게 가진 사람도 그 안에 무덤을 얻는다. 아브라함은 가인이나 니므롯처럼 도시를 마련하지 않고 무덤을 마련했다. [1] 자신과 후손에게 죽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매일 죽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무덤은 밭 끝에 있었다고 한다(9절). 우리의 소유가 무엇이든 그 끝에는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2] 부활에 대한 믿음과 기대의 표지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몸이 영원히 버려져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 왜 그토록 돌보겠는가? 이 일을 통해 아브라함은 더 나은 고향, 곧 하늘의 고향을 찾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옮겨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죽을 때에는 자신의 육체가 소망 가운데 쉴 장소를 확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