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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27

창세기 27장 — Matthew Henry

27:1–5

1 이삭이 늙어 눈이 어두워져 볼 수 없게 되자 맏아들 에서를 불러 “내 아들아” 하고 말했다. 그가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답했다. 2 이삭이 말했다. “보아라, 이제 나는 늙었고 내가 죽을 날을 알지 못한다. 3 그러니 네 무기,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로 나가 나를 위해 사냥감을 잡아 오너라. 4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너라. 내가 먹고 죽기 전에 내 영혼이 너를 축복하게 하여라.” 5 리브가는 이삭이 아들 에서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에서는 사냥감을 잡아 가져오려고 들로 나갔다. I. 이삭은 유언을 남기고 에서를 상속자로 선언하려 한다. 메시아와 가나안 땅에 관한 약속은 처음 아브라함에게 맡겨진 중대한 사명이었다. 그 약속은 영적이고 영원한 복을 포함하며 예표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를 이삭에게 넘겨주었다. 이제 늙은 이삭은 큰아들이 작은아들을 섬기리라는 두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약속에 담긴 모든 영예와 권세를 맏아들 에서에게 물려주기로 한다. 이 일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다면—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그는 마땅한 정도를 넘어 육친의 정과 일반적인 상속 관습에 이끌린 것이다. 기억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보다 자기 이성에 따라 판단하기 쉬우며, 그 때문에 자주 길을 잃는다. 지혜롭고 학식 있는 사람, 강하고 고귀한 사람이 약속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대로 보지 않으신다(삼상 16:6–7). II. 이삭은 이 계획에 따라 에서에게 지시한다. 그를 자기에게 부른다(1절). 에서는 결혼했지만 아직 이주하지 않았다. 결혼으로 부모에게 큰 근심을 끼쳤지만 부모는 내쫓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화해하고 상황을 좋게 받아들이려 했던 듯하다. 기억하자. 자녀에게 정당하게 화가 난 부모라도 자녀를 끝내 용납하지 않으려 해서는 안 된다. 1. 이삭은 왜 지금 이 일을 하기로 했는지 말한다(2절). “나는 늙었으니 곧 죽어야 한다. 그러나 죽을 날도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언젠가 해야 할 일을 지금 하겠다.” 기억하자. ① 나이 든 사람들은 점점 심해지는 노쇠함을 보며, 해야 할 일을 남은 작은 힘을 다해 서둘러 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수 13:1). ② 세상을 떠날 때가 불확실하다는 사실—하나님이 지혜롭게 우리에게 감추신 사실—은 오늘 할 일을 오늘 하도록 우리를 재촉해야 한다. 생각하지 못한 때에 인자가 오시므로 마음과 집안을 모두 정돈하고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죽을 날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삶의 일을 돌보아야 한다. 2. 이삭은 에서를 상속자로 삼으려는 마지막 유언을 엄숙하게 실행할 준비를 시킨다(3–4절). 에서는 사냥하여 고기를 가져와야 하고, 아버지는 먹은 뒤 그를 축복할 것이다. 흔히 생각하듯 자기 기운을 북돋워 힘차게 축복하려는 뜻보다는, 이 은혜를 주기 전에 아들의 효성과 애정을 새롭게 확인하려는 뜻이 더 컸다. 어쩌면 에서는 결혼한 뒤 사냥한 고기를 아내들에게 가져가고 예전처럼 아버지에게는 자주 가져오지 않았을 수 있다(25:28). 그래서 이삭은 축복하기 전에 이런 존경의 표시를 받고 싶었을 것이다. 기억하자. 작은 이가 큰 이에게 축복을 받는다면 작은 이가 큰 이를 섬기고 존경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삭은 “죽기 전에 내 영혼이 너를 축복하게 하여라”라고 말한다. 기억하자. ① 기도는 입술만이 아니라 영혼의 일이다. 하나님을 송축하는 데 영혼을 쏟아야 하듯이(시 103:1), 자신과 다른 사람의 복을 구할 때도 그래야 한다.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 축복은 마음에 이르지 못한다. ② 살아서 할 일은 죽기 전에 해야 한다. 죽은 뒤에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전 9:10). 죽음을 맞을 때 죽는 것 외에는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매우 바람직하다. 이삭은 이 일 뒤에도 40년 넘게 살았다. 그러므로 유언을 남기고 죽음을 준비한다고 더 빨리 죽게 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27:6–17

6 리브가가 아들 야곱에게 말했다. “보아라,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7 ‘사냥감을 가져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다오. 내가 먹고 죽기 전에 주님 앞에서 너를 축복하겠다.’ 8 그러니 내 아들아, 이제 내가 명하는 대로 내 말을 따라라. 9 지금 가축 떼에게 가서 좋은 새끼 염소 두 마리를 가져오너라.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겠다. 10 네가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려 먹게 하여라. 그러면 돌아가시기 전에 너를 축복하실 것이다.” 11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에게 말했다. “보세요,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고 저는 피부가 매끈한 사람입니다. 12 혹시 아버지가 저를 만져 보시면 제가 속이는 사람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불러오게 됩니다.” 13 어머니가 말했다. “내 아들아, 네 저주는 내가 받으마. 다만 내 말을 듣고 가서 가져오너라.” 14 야곱은 가서 가져다가 어머니에게 주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15 리브가는 집 안에 보관하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옷을 가져다가 작은아들 야곱에게 입혔다. 16 그리고 새끼 염소 가죽을 그의 손과 매끈한 목에 둘렀다. 17 준비한 맛있는 음식과 빵을 아들 야곱의 손에 주었다. 여기서 리브가는 에서에게 주려던 축복을 야곱이 받도록 꾀한다. I. 목적은 좋았다. 그녀가 그런 의도를 품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두 아들을 향한 애정도 그 말씀에 따라 기울어져 있었다. 하나님은 큰아들이 작은아들을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리브가는 반드시 그렇게 되게 하겠다고 결심했고, 남편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려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II. 수단은 나빴으며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에서가 장자권을 팔아 스스로 축복받을 자격을 버렸으므로 축복을 빼앗는 일이 그에게 잘못이 아니었다 해도, 이삭의 약함을 이용해 속인 것은 이삭에게 잘못이었다. 야곱의 입에, 적어도 오른손에 거짓을 쥐여 주어 속이도록 가르친 것은 야곱에게도 잘못이었다. 그렇게 부정하게 얻은 축복이라면 자신이나 후손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지 끝없이 의심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특히 속임수가 밝혀져 아버지가 축복을 거두고, error personæ—사람을 잘못 안 착오—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한다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었다. 야곱 자신도 위험을 알았다(12절).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지만 축복을 받지 못하면, 무엇보다 두려워하던 아버지의 저주를 불러올 수 있었다. 더구나 눈먼 사람을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자에게 선언된 하나님의 저주에도 자신을 노출했다(신 27:18). 리브가가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약속하는 것을 듣고,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왔을 때 이삭에게 가서 하나님이 두 아들에 대해 하신 말씀을 겸손하고 진지하게 상기시켰다면 어땠을까? 에서가 장자권을 팔고 이방 아내들과 결혼함으로써 축복받을 자격을 잃었다는 점까지 보여 주었다면, 이삭은 아마 설득되어 자기가 누구를 축복하는지 분명히 알고 기꺼이 야곱에게 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속여서 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 길은 명예롭고 칭찬할 만했으며 역사에도 아름답게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를 자기 생각에 맡겨 이런 우회적인 길을 택하게 두셨다. 악에서 선을 이끌어 내고 인간의 죄와 어리석음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이었다. 또한 세상에 악과 속임수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이 자신의 뜻대로, 자신을 찬송하게 하는 방향으로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가 안심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욥 12:16을 보라. 능력과 지혜가 그분께 있으며,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모두 그분께 속해 있다. 이삭은 시력을 잃었다. 시력이 있었다면 이번 일에서는 속일 수 없었을 것이다. 섭리는 얼굴의 차이를 놀랍도록 잘 정해, 정확히 같은 얼굴이 둘도 없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성이 없다면 사람 사이의 대화와 교류도 거의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다른 감각을 속이려 한다. 1. 미각이다. 좋은 새끼 염소 고기를 골라 조리하고 양념하여 사냥 고기라고 믿도록 차렸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까다롭고 유별난 입맛을 자랑하며 그것을 맞추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보라. 그들이 멸시하고 싫어한다고 하는 것으로도 쉽게 속일 수 있다. 그토록 선호하는 것과 실제 차이가 거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진미가 속이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그것에 속는 방식이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잠 23:32). [번역 안내: 배포 원문은 잠 23:32를 제시하지만, ‘속이는 음식’이라는 표현은 잠 23:3에 있다.] 2. 촉각과 후각이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의 옷, 가장 좋은 옷을 입혔다. 에서가 축복받으러 갈 때 기쁨과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려고 입을 법한 옷이었다. 이삭은 옷감과 모양과 냄새로 그것이 에서의 것임을 알았다. 하늘 아버지께 복을 받으려면 우리도 맏형의 옷을 입고 나아가야 한다. 많은 형제 가운데 맏아들이신 그분의 의를 입어야 한다. 야곱의 손과 목이 매끈하고 부드러운 탓에 정체가 드러날까 봐, 리브가는 그것들과 아마 얼굴 일부까지 갓 잡은 새끼 염소 가죽으로 덮었다(16절). 이 정도는 해야 야곱을 에서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다니 에서는 참으로 털이 많고 거칠었다. 행동거지를 일부러 거칠고 험하게 보이려는 사람은 사람 위에 짐승의 모습을 입히는 것이다. 그런 위장으로 실제로는 자신에게 수치를 준다. 마지막으로, 야곱이 저주의 위험을 말했을 때 리브가가 “내 아들아, 네 저주는 내가 받으마”라고 한 것은 매우 경솔한 말이었다(13절). 감당할 능력이 크시기에 구원할 능력도 크신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저주는 내가 받으니, 다만 내 목소리에 순종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명령의 멍에, 곧 복음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위해 저주의 짐, 율법의 저주를 지셨다. 그러나 어떤 피조물이라도 “저주는 내가 받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대담하다. 우리가 오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이유 없는 저주를 말하는 경우는 예외다(잠 26:2).

27:18–29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하고 말했다. 아버지가 “여기 있다. 아들아, 너는 누구냐?” 하고 물었다. 19 야곱이 말했다. “저는 맏아들 에서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일어나 앉아서 제가 사냥한 것을 드시고, 아버지의 영혼으로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20 이삭이 물었다. “아들아, 어떻게 그토록 빨리 찾았느냐?” 그가 말했다. “아버지의 하나님 주님께서 제게 가져다주셨기 때문입니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말했다. “아들아, 가까이 오너라. 내가 만져 보고 정말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알아보겠다.” 22 야곱이 가까이 가자 아버지 이삭이 만져 보고 말했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구나.” 23 그의 손에 형 에서의 손처럼 털이 있었으므로 이삭은 알아보지 못하고 축복했다. 24 그가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 하고 묻자 야곱은 “그렇습니다” 하고 말했다. 25 이삭이 말했다. “내게 가까이 가져오너라. 내 아들이 사냥한 것을 먹고 내 영혼이 너를 축복하겠다.” 야곱이 가져오자 이삭이 먹었다. 포도주를 가져오자 마셨다. 26 아버지 이삭이 말했다. “아들아, 이제 가까이 와서 내게 입을 맞추어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자 이삭은 옷 냄새를 맡고 축복하며 말했다. “보아라, 내 아들의 냄새가 주님께서 복 주신 들의 냄새와 같구나. 28 하나님이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29 백성들이 너를 섬기고 민족들이 네게 절하기를. 네 형제들의 주인이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절하기를. 너를 저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저주받고, 너를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기를.” I. 야곱이 얼마나 능숙하고 뻔뻔하게 이 계략을 실행했는지 주목하자. 이 소박한 사람이 이런 계획에서 자기 역할을 이토록 잘 해낼 줄 누가 생각했겠는가? 어머니가 그 길로 이끌고 용기를 북돋우자, 그는 익숙하지도 않았고 늘 혐오하던 방법을 재빠르게 익혀 사용했다. 기억하자. 거짓말은 금방 배운다. 시편 기자는 태어나자마자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시 58:3; 렘 9:5). 정직한 야곱이 어떻게 그리 쉽게 혀를 돌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라고 했는지 놀랍다(19절). 어떤 이들은 이를 “제가 아버지의 맏아들이 되었습니다”, 곧 매입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장난으로 변호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 하고 물었을 때(24절), 야곱은 “그렇습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아무 명령도 받지 않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어떻게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들이 아니라 우리에서 가져온 것인 줄 알면서 어떻게 “제가 사냥한 것을 드십시오”라고 했을까? 무엇보다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럽게 하나님께 그 일을 돌리고 속임수에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했는지 놀랍다. “아버지의 하나님 주님께서 제게 가져다주셨습니다”(20절). 이 사람이 야곱인가?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인가? 이것은 분명 본받으라는 기록이 아니라 우리를 경고하는 기록이다.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선한 사람도 때로 자신이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 주던 은혜의 덕목을 실천하는 데 실패한다. II. 이 계략의 성공. 야곱은 얼마간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목적을 이루고 축복을 얻었다. 1. 이삭은 처음에는 미심쩍어했다. 자기 귀를 믿었더라면 속임수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목소리가 야곱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22절). 섭리는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에도 놀라운 다양성을 두셨다. 이것 역시 우리가 속지 않게 하는 데 유익하다. 목소리는 쉽게 위장하거나 흉내 낼 수 없다. 이것으로 위선자의 성격을 설명할 수 있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지만 손은 에서의 손이다. 성도의 언어로 말하지만 죄인의 일을 한다. 그러나 판단은 여기서처럼 손, 곧 행동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2. 마침내 이삭은 손에 털이 있다는 이유로 속임수에 넘어갔다(23절). 그 특징을 얼마나 쉽게 꾸밀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야곱은 이제 능숙하게 일을 이어 간다. 아버지 앞에 사냥 고기를 차리고 매우 부지런히 시중들었다. 식사가 끝나고 이 엄숙한 잔치의 마무리로 축복이 선언될 때까지 그랬다. 리브가와 야곱의 죄를 아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하는 점은, 속임수의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앞당기기보다는 그것이 좌절되는 것을 막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축복이 막 잘못된 사람의 머리 위에 놓이려 했고, 그들은 이제 행동할 때라고 생각했다. 이제 이삭이 어떻게 야곱을 축복했는지 보자(26–29절). ① 그는 특별한 애정을 표시하며 껴안았다.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은 그분의 입맞춤을 받으며, 사랑과 충성으로 아들에게 입 맞춘다(시 2:12). ② 그는 야곱을 칭찬했다. 옷 냄새를 맡고 “보아라, 내 아들의 냄새가 주님께서 복 주신 들의 냄새와 같구나”라고 말했다. 가장 향기로운 꽃과 향료 같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복 주신 듯 보였으므로 이삭도 그를 축복하려 했다. ③ 그는 야곱을 위해 기도하며 그에 관해 예언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다. 자녀의 세례뿐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도, 가문 안에 언약의 계승을 보존하고 이어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은 특별한 축복이었다. 섭리는 이삭이 모르고 착각한 채 야곱에게 주도록 하셨다. 야곱이 이삭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축복을 빚졌음이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야곱은 여기서 세 가지 복을 받는다. 첫째, 풍요다(28절). 하늘과 땅이 함께 그를 부유하게 한다. 둘째, 권세다(29절). 특히 형제들, 곧 에서와 그 후손을 다스리는 권세다. 셋째,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하늘의 큰 호의를 누리는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저주받고 너를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기를. 하나님이 네 모든 친구의 친구가 되고 네 모든 원수의 원수가 되시기를.” 이 축복에는 prima facie, 곧 첫눈에 보이는 것보다 분명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그것은 메시아와 교회에 관한 약속을 물려주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족장들의 언어에서 ‘그 축복’은 바로 그것이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영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 땅에서 최고 통치권을 가지실 메시아가 야곱에게서 나오실 것이다. 백성들이 섬기고 민족들이 절할 대상은 그의 가문에서 가장 높이 솟은 이 가지였다. 민 24:19을 보라. ‘다스릴 이가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다.’ 그분은 별과 홀이다(17절). 야곱이 에서를 다스리는 것은 이것의 예표일 뿐이다(창 49:10). 둘째, 하늘이 특별히 자기 것으로 인정하고 은혜를 베푸는 교회가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다. 아브라함이 처음 믿는 이들의 아버지로 부름받았을 때 받은 복에도 ‘너를 축복하는 이들을 내가 축복하겠다’라는 말씀이 있었다(창 12:3). 그래서 이삭은 뒤에 야곱의 축복을 확증할 때 이를 ‘아브라함의 복’이라고 불렀다(창 28:4). 발람도 이것을 설명한다(민 24:9). 기억하자.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속하고, 그리스도의 권능과 교회에 베푸시는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좋고 가장 바랄 만한 복이다.

27:30–40

30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기를 마치고 야곱이 아버지 이삭 앞에서 막 나갔을 때 형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왔다. 31 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리며 말했다. “아버지, 일어나 아들이 사냥한 것을 드시고 아버지의 영혼으로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32 아버지 이삭이 “너는 누구냐?” 하고 묻자 그가 말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 맏아들 에서입니다.” 33 이삭이 몹시 크게 떨며 말했다. “그러면 사냥감을 잡아 내게 가져온 사람이 누구며 어디 있느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축복했다. 그렇다, 그는 복을 받을 것이다.” 34 아버지의 말을 들은 에서는 몹시 크고 쓰라린 소리로 부르짖으며 말했다. “아버지, 저도, 저도 축복해 주십시오!” 35 이삭이 말했다. “네 아우가 속임수로 와서 네 축복을 가져갔다.” 36 에서가 말했다. “그의 이름이 야곱인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가 두 번이나 저를 밀어냈습니다. 제 장자권을 빼앗더니 이제 제 축복까지 빼앗았습니다.” 또 말했다. “저를 위한 축복은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했다. “보아라, 나는 그를 네 주인으로 삼았고 그의 모든 형제를 종으로 주었다. 곡식과 포도주로 그를 뒷받침했다. 아들아, 이제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38 에서가 말했다. “아버지에게 축복이 하나뿐입니까? 아버지, 저도, 저도 축복해 주십시오!” 에서는 소리를 높여 울었다. 39 아버지 이삭이 대답했다. “보아라, 네 거처는 땅의 기름짐과 위 하늘의 이슬을 누릴 것이다. 40 너는 칼로 살며 아우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네가 지배권을 얻을 때에는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깨뜨릴 것이다.” I. 에서에게는 언약의 축복이 거절된다. 장자권을 그렇게 가볍게 여겼던 사람이 이제 축복을 이어받으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눈물로 간절히 구했어도 아버지의 마음을 돌이킬 자리를 찾지 못했다(히 12:17). 1. 에서가 얼마나 간절히 구했는지 보라. 아버지가 지시한 대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아버지가 기대하도록 했던 축복을 청했다(31절). 야곱이 몰래 그것을 얻었음을 알고는 매우 크고 쓰라린 소리로 울부짖었다(34절). 누구도 그보다 더 깊이 실망을 마음에 새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슬픔으로 아버지의 천막을 울렸고, 다시 목소리를 높여 울었다(38절). 기억하자. 지금 언약의 복을 가볍게 여기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그 권리를 팔아 버리는 사람들이 헛되이 그것을 간청할 날이 온다. 지금은 구하거나 찾으려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머지않아 문을 두드리며 “주님, 주님!” 하고 외칠 것이다. 그리스도를 업신여기는 자들이 그때는 겸손히 간청하는 자가 될 것이다. 2. 어떻게 거절당했는지 보라. 이삭은 속임을 당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 몹시 크게 떨었다(33절). 하나님의 뜻이 명하는 것보다 자기 애정의 선택을 따르는 사람은 이런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곧 정신을 가다듬고 야곱에게 준 축복을 확증한다. “내가 그를 축복했다. 그는 복을 받을 것이다.” 매우 그럴듯한 근거로 축복을 거둘 수도 있었지만, 이제야 그것을 에서에게 주려던 일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다시 기억했거나, 더 가능성 있게는 야곱을 축복할 때 평소보다 훨씬 충만하게 성령으로 채워졌음을 느껴, 하나님이 말하자면 그 축복에 “아멘” 하신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① 이로써 야곱이 축복을 소유함이 확증되었고, 비록 속임수로 얻었더라도 그 효력을 충분히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이 은혜로 자신의 잘못을 지나쳐 주시고 용서하셨으리라고 소망할 근거도 얻었다. ② 이삭은 자기 기대와 애정에 반대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에서에게 축복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이 다름을 알고 복종했다. 앞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위해 간청하다가 그랬듯, 이삭도 믿음으로 그렇게 했다(히 11:20). 하나님이 자신의 것으로 원하시는 일을 하실 수 없겠는가? ③ 에서는 장자권을 팔면서도 자기 것으로 남겨 두었다고 생각한 특별한 축복에 대한 기대에서 끊어졌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다음을 가르친다. 첫째, 원하는 사람이나 달리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롬 9:16). 사도는 이 이야기를 암시하는 듯하다. 에서는 축복을 원했고 그것을 위해 달렸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은 선택에 따른 자신의 목적이 서도록 야곱에게 그것을 정하셨다(롬 9:11). 유대인들은 에서처럼 의의 법을 좇았으나(31절), 율법의 행위로 구했으므로 의의 복을 얻지 못했다(32절). 반면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구한 이방인들은 하늘나라를 힘써 붙드는 그 힘으로 그것을 얻었다(마 11:12). 둘째, 영적 장자권을 낮게 평가하여 한 입 음식에 팔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영적 복을 잃는다. 그들이 소홀히 한 은혜를 하나님이 거절하시는 것은 정당하다. 세상의 영예와 부와 쾌락을 위해 지혜와 은혜, 믿음과 선한 양심을 내놓으려는 사람들은 아무리 축복에 열심인 척해도 이미 자신이 그 복에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셈이다. 그들의 판결도 그렇게 내려질 것이다. 셋째, 분노하며 손을 드는 사람은 헛되이 든다. 에서는 자기 어리석음을 회개하는 대신 아우를 비난했다. 자기가 정당하게 팔았던 장자권을 빼앗았다고 부당하게 몰아붙였고(36절), 아우가 이번에 한 일 때문에 악의를 품었다(41절). 자신에게 돌려야 할 원망을 형제에게 돌리고,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실패를 남의 탓으로 하는 사람은 기도에서 응답받기 어렵다. 넷째, 너무 늦어서야 구하는 사람은 거절당한다. 에서는 제때 오지 않은 것이 파멸이 되었다. 은혜를 받을 때, 하나님을 만날 때가 있듯이, 정해진 때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으실 때가 있다(잠 1:28).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우리의 시험 기간은 영원하지 않다. 은혜의 날은 끝나고 문은 닫힐 것이다. 그때 지금 축복을 멸시하는 많은 사람이 간절히 구할 것이다. 그때야 그 가치를 알고, 그것이 없으면 자신이 망하고 영원히 망함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눅 13:25–27). 그러므로 이 우리의 날에 평화에 속한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II. 에서에게는 일반적인 복이 주어진다. 1. 그가 바란 것이다. “저도 축복해 주십시오”(34절). “저를 위한 축복은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36절). 기억하자. ① 가장 악한 사람도 자신이 잘되기를 바랄 줄 안다. 장자권을 불경하게 파는 사람조차 축복은 경건하게 갈망하는 듯 보인다. 목적을 바르게 선택하고 수단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서 행복을 막연히 바라는 마음은 많은 사람을 속여 파멸로 이끈다. 수많은 사람이 입에 좋은 소망을 가득 담은 채 지옥으로 간다. 게으르고 믿지 않는 사람의 욕망이 그들을 죽인다. 에서처럼 들어가기를 구해도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 많다. 힘쓰지 않기 때문이다(눅 13:24). ②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 좋은 것이나 받으려 한다는 점에서 어리석다(시 4:6). 여기의 에서도 장자권과 분리된 이류의 축복만을 바랐다. 불경한 마음은 어떤 축복이든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축복만큼 좋다고 생각한다. “하나뿐입니까?”라는 말은 마치 “아무것이나 받겠습니다. 교회의 축복은 얻지 못해도 어떤 축복이라도 주십시오”라는 뜻과 같다. 2. 에서는 이것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39–40절). ① 그것은 좋은 것이며 그의 자격보다 나았다. 첫째, 살기에 충분한 생계, 곧 땅의 기름짐과 하늘의 이슬이 약속되었다. 기억하자. 언약의 복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도 외적인 복은 많이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언약을 거절하고 그 안에 아무 몫도 없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땅과 좋은 날씨를 주신다. 둘째, 차츰 자유를 되찾으리라고 약속되었다. 야곱이 다스려야 한다면(29절) 에서는 섬겨야 한다. 그러나 칼로 살 것이라는 위로가 있다. 섬기기는 해도 굶지는 않을 것이다. 마침내 많은 싸움 뒤에는 속박의 멍에를 깨뜨리고 자유의 표지를 지닐 것이다. 이것은 에돔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루어졌다(왕하 8:20, 22). ② 그래도 야곱의 축복에는 훨씬 못 미쳤다. 하나님은 야곱을 위해 더 좋은 것을 남겨 두셨다. 첫째, 야곱의 축복에는 그가 가장 귀히 여기고 바라며 의지한 하늘의 이슬이 먼저 나온다. 에서의 축복에는 그가 우선적이고 주된 관심을 둔 땅의 기름짐이 먼저 나온다. 둘째, 에서도 이것들을 얻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손에서 얻는다. “하나님이 하늘의 이슬을 네게 주시기를”(28절). 에서는 소유하면 충분했지만 야곱은 약속에 따라, 언약의 사랑에서 받기를 원했다. 셋째, 야곱은 형제들을 다스릴 것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에돔을 자주 다스렸다. 에서도 지배권, 곧 어느 정도의 권세와 영향력을 얻을 것이지만 아우를 다스리지는 못할 것이었다. 유대인이 에돔의 손에 팔렸거나 에돔에게 압제당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에서의 축복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없으며, 에서나 후손을 하나님의 교회와 언약 안으로 이끄는 것이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이 없다면 땅의 기름짐과 들의 약탈물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처럼 이삭은 믿음으로 두 아들이 받을 몫에 따라 축복했다. 어떤 이들은 야곱은 입맞춤과 함께 축복받았지만(27절) 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한다.

27:41–46

41 에서는 아버지가 야곱에게 준 축복 때문에 야곱을 미워했다. 에서는 속으로 말했다. “아버지를 위해 애도할 날이 가까웠다. 그때 내 아우 야곱을 죽이겠다.” 42 맏아들 에서의 말이 리브가에게 전해졌다. 리브가는 사람을 보내 작은아들 야곱을 불러 말했다. “보아라, 네 형 에서는 너를 죽일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43 그러니 내 아들아, 이제 내 말을 듣고 일어나 하란에 있는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라. 44 네 형의 격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며칠 동안 그와 함께 머물러라. 45 네 형이 너에게 품은 분노가 가라앉고 네가 한 일을 잊으면 내가 사람을 보내 너를 데려오겠다. 어찌 내가 하루에 너희 둘을 모두 잃어야 하겠느냐?” 46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했다. “헷의 딸들 때문에 사는 데 지쳤습니다. 야곱마저 이 땅의 딸들인 저 여자들처럼 헷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으면 제 삶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I. 에서는 야곱이 얻은 축복 때문에 악의를 품는다(41절). 이처럼 그는 가인의 길로 갔다. 가인은 자신이 합당하지 못하게 된 하나님의 인정을 동생이 얻었다는 이유로 동생을 죽였다. 에서가 야곱에게 품은 미움은 다음과 같았다. 1. 이유 없는 미움이었다. 아버지가 야곱을 축복하고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신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기억하자. 성도의 행복은 죄인의 시샘을 산다. 하늘이 축복하는 사람을 지옥은 저주한다. 2. 잔인한 미움이었다. 아우를 죽이는 것보다 못한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박해자들이 목말라하는 것은 성도의 피다. “내 아우를 죽이겠다.” 어떻게 두려움도 없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형제라고 부르면서도 죽이겠다고 맹세할 수 있었을까? 기억하자. 박해자의 분노는 어떤 유대에도 매이지 않는다. 가장 강하고 거룩한 유대에도 매이지 않는다. 3. 계산적인 미움이었다. 에서는 아버지가 곧 죽으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면 형제 사이에 권리를 판가름하고 이해관계를 다투어야 하므로 복수할 좋은 기회가 생길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칼로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40절), 아우도 그 칼로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아 계신 아버지를 슬프게 하기는 싫어서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살인을 미뤘다. 그때 살아남은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슬픔을 줄지는 개의하지 않았다. 기억하자. ① 선한 부모를 짐으로 여기고 어떤 이유로든 그 부모를 애도할 날을 기다리는 자녀는 악한 자녀다. ② 악한 사람들은 외적인 제약 때문에 원하는 악행을 오랫동안 하지 못하고, 그렇게 악한 목적이 무산되기도 한다. ③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려는 사람은 틀림없이 자기 자신이 좌절한다. 에서는 야곱이 결혼하기 전에 죽여 야곱이나 후손이 지배권을 얻지 못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누가 무효로 만들 수 있는가?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에 분개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바꿀 수는 없다. II. 리브가가 재앙을 막기 위해 취한 방법. 1. 리브가는 야곱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잠시 물러나 안전을 도모하라고 권했다. 에서의 계획에 관해 들은 것, 곧 아우를 죽일 기회를 얻으리라는 소망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42절). 이처럼 피비린내 나고 야만적인 생각이 사람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니 누가 생각하겠는가? 에서가 계획을 혼자 간직했다면 어머니는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죄를 뻔뻔하게 드러내는 것이 흔히 사람 자신의 어리석은 파멸이 된다. 분노가 너무 격렬하여 감출 수 없고,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옮기므로 악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서 주목하자. ① 리브가가 두려워한 것. 하루에 두 아들을 모두 잃는 일이었다(45절). 살해당한 아들뿐 아니라 살인자가 된 아들까지 잃는 것이다. 살인자는 관헌에게든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에든 공의의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리브가 자신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고 방해해서는 안 되었다.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이후 그 아들에게서 얻는 모든 기쁨과 위로를 잃게 될 것이었다. 덕을 잃은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친구에게도 잃어버린 사람이 된다. 마귀의 자녀로밖에 볼 수 없는 자녀를 무슨 기쁨으로 바라보겠는가? ② 리브가가 바란 것. 야곱이 잠시 눈에 띄지 않으면 형이 그렇게 분노한 모욕도 차츰 마음에서 사라지리라는 것이었다. 격정의 힘은 시간과 장소의 거리가 생기면 약해지고 사라진다. 그녀는 형의 분노가 가라앉으리라고 기대했다. 기억하자. 양보는 큰 허물을 진정시킨다. 정당한 이유가 있고 하나님이 자기 편이시더라도, 자기 보호를 위해 다른 신중한 방책과 함께 이 방법도 사용해야 한다. 2. 리브가는 다른 이유, 곧 아내를 구한다는 이유로 야곱이 자기 친족들에게 가야 할 필요를 이삭에게 느끼게 했다(46절). 이삭이 괴로워할까 봐 에서가 야곱의 목숨을 노리는 악한 계획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신중하게 다른 길로 목적을 이루었다. 에서가 헷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혼인의 멍에를 맨 일에 그녀 역시 이삭만큼 불편해하고 있음을 이삭은 알았다. [번역 안내: 배포 원문의 이 문장은 일부 문법이 훼손되어 있어 앞뒤 의미에 맞게 옮겼다.] 그래서 매우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워 야곱은 더 바른 신앙 원칙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기억하자. 한 번의 실패는 다음 실패를 막는 경고가 되어야 한다. 같은 돌에 두 번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참으로 부주의하다. 그렇지만 리브가가 “야곱이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면 내 삶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은 다소 지나치게 격한 표현인 듯하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모든 위로가 한 손에만 달려 있지는 않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친족들이 모든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삶의 일을 하고 삶의 위로를 누릴 수 있다. 어쩌면 리브가는 이삭을 움직여 이 일에 신속한 지시를 내리게 하려면 이런 절박한 말이 필요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주목하자. 야곱 자신은 매우 순종적이고 신앙도 확고했지만 여전히 유혹의 길에서 벗어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조차 형의 나쁜 본을 따르거나 그 본 때문에 올무에 끌려들 위험이 있었다. 가장 희망적이고 장래성 있는 자녀라 해도 그 지혜와 결심을 지나치게 믿어서는 안 된다. 해를 입을 길에서 벗어나 있도록 돌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