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8장 — Jamieson–Fausset–Brown
28:1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축복했다. 이삭은 리브가의 마음에 온전히 공감했다. 떠나는 아들에게 준 조언의 핵심은 메소포타미아에 사는 친족의 갈래 외에는 누구와도 혼인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이었다. 동시에 엄숙한 축복을 주었다. 전에는 모르고 선언했지만 이제는 의도적으로 진심을 다해 주었다. 축복은 더 분명하고 충만하게 표현되었고, 이로써 야곱은 ‘약속의 상속자’로 인정받았다.
28:6–9
6–9. 에서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것을 보고. 에서는 부모의 마음에 들고 가능하다면 마지막 유언을 거두게 하고 싶어, 너무 늦어서야 지혜롭게 행동했다(마 25:10 참조). 한 가지 일에서 부모를 기쁘게 하면 이전의 모든 잘못을 만회할 수 있으리라고 바랐다. 그러나 사정만 더 나쁘게 만들었다. ‘가나안의 딸’과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물리치신 가문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분적인 개선은 보여 주지만 회개는 아니다. 형제에게 복수하려는 뜻이 누그러졌거나 아버지를 기쁘게 할 경건한 마음을 품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미가와 같았다(삿 17:13 참조).
28:10
10. 야곱이 떠났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일은 수치스러운 도피였다. 복수심에 찬 형이 뒤쫓거나 매복할까 두려워 보통의 길 대신 외지고 사람이 드문 길로 갔다. 그래서 여행의 거리와 위험이 늘었다.
28:11
11. 한 곳에 이르렀다. 무리한 행군 끝에 브엘세바에서 약 48마일 떨어진 벧엘에 도착했고 들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돌을 가져다가. “그곳의 토양 자체가 야곱이 누웠던 돌 많은 지역에 관한 기록을 오늘도 설명해 준다”[클라크의 여행기].
28:12
12. 꿈을 꾸었는데 사닥다리가 있었다. 어떤 저자들은 이것이 문자 그대로의 사닥다리는 아니었다고 본다. 땅에 밑부분을 두고 꼭대기는 하늘에 이르면서도 위 끝을 기댈 아무것도 없는 사닥다리보다 더 이상하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은 야곱이 머리를 베고 누운 작은 돌무더기가 상상 속에 나타난 대상의 축소 모형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대상은 거대한 산 덩어리였고, 옆면의 바위에 홈이 파여 있어 오르는 사닥다리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초기 히브리인들이 원어를 이런 뜻으로 흔히 사용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요세푸스는 프톨레마이스, 곧 아크레를 묘사하며 그 옆으로 돌출된 모양 때문에 ‘사닥다리’라 불린 산이 경계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또 성읍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바위 옆면에 깎은 층계일 뿐이지만 원문에서는 사닥다리라는 말로 표현된다(느 3:15). 그러나 야곱의 마음의 눈에 나타난 것이 보통 사닥다리였든 앞서 설명한 산 덩어리였든, 환상의 목적은 외로운 도망자에게 현재 형편과 미래 전망 모두에 대해 위로와 격려와 확신을 주는 것이었다. 낮 동안 그의 생각은 괴로웠을 것이다. 스스로 타향살이와 결핍을 불러왔다고 자책했을 것이며, 무엇보다 아버지의 용서는 받았어도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셨을까 두려워할 이유가 많았다. 고독은 성찰할 시간을 준다. 바로 이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신앙의 가르침과 훈련을 시작하셨다. 자기에게서 하늘까지 이어지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하나님 자신에게서 선한 심부름을 받아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거대한 사닥다리의 환상보다 두려움을 없애고 마음속 동요를 잠재우기에 더 알맞은 것은 없었다(요 1:51).
28:13
13.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야곱이 환상의 뜻을 분명히 알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알리시고 언약을 새롭게 하며 개인적인 보호를 확약하신 일은, 즉시 야곱의 마음을 매우 엄숙하게 하면서 동시에 힘을 북돋웠다.
28:16
16. 야곱이 잠에서 깨어났다. 말과 행동 모두 엄숙한 경외, 뜨거운 경건, 생생한 감사가 마음에 가득한 사람의 것이었다(렘 31:36). [번역 안내: 원문 참조는 렘 31:36이다. 잠에서 깨어남을 직접 언급하는 인접 구절은 렘 31:26이다.]
28:18–19
18–19. 야곱이 돌을 세웠다. 돌을 세우는 행위 자체는 훗날을 위해 장소를 표시하는 기념일 수 있다. 종교적 서원이나 약속을 기억하려는 이런 관습은 동방에서 여전히 흔하다. 그러나 그 위에 기름을 붓는 것은 성별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호 12:4). 더운 나라에서 돌 옆이나 위에 앉아 야외에서 지내는 흔한 관습을 생각하면, 돌을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억지스럽거나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곳의 돌들은 “넓게 드러난 판 모양의 바위이며, 일부는 드루이드 유적의 고인돌처럼 서 있다”[스탠리].
28:20
20. 야곱이 서원했다. 그의 말을 의심을 품은 표현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 헌신할 조건이나 거래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는 더욱 보아서는 안 된다. ‘만일’을 ‘~하시므로’로 바꾸면 야곱의 믿음을 적절히 표현한 말, 곧 그가 약속을 참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된다. 벧엘의 야곱을 자주 묵상하는 것은 얼마나 신앙에 유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