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Genesis 12

창세기 12장 — John Gill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었다. 사도행전 7:2에서 보듯 하란에 와서 살기 전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하신 말씀이다. 아벤 에즈라도 이렇게 해석한다. 그러나 야르키와 다른 이들은 이어지는 말씀이 하란에서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더 문자적으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u)라고 옮길 수 있으며, 하란에서 데라가 죽은 뒤가 된다. 실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두 번 나타나셨고, 동일하거나 거의 같은 말씀을 서로 다른 두 때, 먼저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다음으로 하란에서 하셨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너의 땅을 떠나라.’ 갈대아 땅과 그 안의 우르 성읍, 또는 넓은 뜻에서 우르와 하란을 모두 포함하는 메소포타미아를 떠나라는 것이다. 이 나라는 이제 우상 숭배의 땅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르박삿 시대에 셈의 후손이 거주하고 채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된 종교에서 타락하여 우상 숭배에 빠졌다. 마이모니데스(w)는 이들을 사바인들이라고 부른다. 그는 아브람이 그들의 신앙과 종교 속에서 자랐으며, 그들이 태양과 달과 별 외에는 신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들의 책과 연대기에서 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사바인들 자신도 아브람이 쿠티아에서 교육받았으나 일반 사람들과 생각을 달리하여 태양 외에 또 다른 창조자가 있다고 주장했고, 사람들이 반대하여 이 문제로 논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제 우상 숭배의 잘못을 깨달은 아브람은 그들 가운데서 나와 더는 사귀지 말라는 부름을 받는다.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하면 ‘너를 위하여 너의 땅에서 나가라’(x)이다. 야르키의 해석대로 너의 유익과 복을 위해서라는 뜻이다. 그처럼 우상 숭배와 미신에 젖은 백성과의 모든 교제를 끊는 것은 분명 유익한 일이었다. ‘네 친족에게서 떠나라.’ 형제 나홀과 그 가족 같은 사람들이다. 데라와 아브람과 롯과 사래가 갈대아인의 우르를 나올 때 이들은 언급되지 않으므로 뒤에 남은 듯하다. 다만 나홀도 나중에 하란, 곧 밧단아람으로 따라온 것 같다. 둘은 같은 곳이며, 그가 계속 살았으므로 그의 성읍이라고 불린다. 창세기 24:10을 보라. 따라서 아브람이 땅뿐 아니라 친족도 떠나라는 두 번째 부름을 받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확실히 그는 갈대아인의 우르와 함께 하란, 곧 밧단아람도 자기 땅이라고 부르며 나홀과 그의 가족을 자기 친족이라고 부른다(창세기 24:4). ‘네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라.’ 곧 그의 가문이나 가족이다. 이것은 우르에서의 첫 부름보다 하란에서의 두 번째 부름에 더 잘 맞는다. 첫 부름 때는 데라와 그의 가족이 아브람과 함께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부름을 이야기하는 스데반은 이 구절을 생략한다(사도행전 7:3). 그러나 하란에서 데라가 죽자 그의 집안과 가족은 더 가지 않고 나홀과 함께 그곳에 남았다. 뒤의 이야기에서 보듯 두 번째 부름에 따라 아브람과 롯만 그곳을 떠났다. 이처럼 아브람은 명령받은 대로 아버지의 집과 가족을 떠나 다음에 나오는 곳으로 갔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언급되지는 않지만 가나안 땅을 뜻한다. 아브람의 믿음을 시험하려고 이름을 생략한 듯하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순종하여 떠났다’고 한다(히브리서 11:8). 그런데 그와 데라가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나올 때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났다’고 하며(창세기 11:31), 그와 롯이 처음 하란을 떠날 때도 같은 말이 나온다(창세기 12:5). 아마 사정은 이러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어느 땅으로 가야 할지 말씀이 없어서 길 떠날 준비를 할 때는 목적지를 몰랐지만, 나중에 가나안이 그 땅이라고 계시되어 그리로 향해 출발했다. 또 목적지 이름은 알았더라도 길이나 그 나라의 성질과 크기는 몰랐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길을 보여 주시고 바르게 인도하시며 그 땅을 보게 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실 나라가 어떤 곳이며 얼마나 넓은지 알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아브람의 이 부름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들이 세상과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불러냄을 받아,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세상을 본받지 않으며 자기 백성과 아버지의 집을 잊고 주께 붙어 그분이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디든 따르는 부름을 상징한다. (u) ‘et dixit’, ‘그리고 그가 말씀하셨다’: 파그니누스, 몬타누스, 코케이우스. (w) 『모레 네부킴』 3부 29장, 421쪽. (x) ‘vade tibi’, ‘너를 위하여 가라’: 파그니누스, 몬타누스, 바타블루스, 드루시우스 등.

12:2

‘내가 너에게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문자적으로는 그에게서 나온 유대 민족이 그러하다. 영적으로는 모든 시대와 모든 민족에서 아브람의 믿음의 발자취를 따르는 신자들이다. 그들은 그의 자녀이며 그와 함께 복을 받는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현세의 복뿐 아니라 주로 영적인 복이다. 아브람 자신은 가나안 땅에서 몫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됨과 하나님과의 우정,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로 의롭다 함을 얻는 복이다. 이 복은 그가 할례받지 않았을 때 임했다. 또한 풍성한 믿음과 다른 모든 은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완전에 이를 때까지의 성장, 영원한 영광과 행복 및 그것을 누릴 권리와 자격과 합당함, 그리고 그것의 완전한 소유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네 이름을 크게 하겠다.’ 그를 조상으로 둔 것을 자랑한 유대 후손들 가운데서 그러했으며 세상의 여러 민족 가운데서도 그러했다. 그의 이름은 세속 역사에서도 유명하며 오늘날까지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 높이 존중된다. 특별히 모든 시대와 민족에서 그와 같이 귀한 믿음을 얻은 사람들 가운데 그의 이름은 크고 유명하며 그를 기억하는 일이 귀중하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그를 알고 사귀던 모든 사람에게 그러할 것이다. 그들은 그의 가르침을 통해 영적 빛과 지식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그의 믿음과 경건에 관해 듣고 읽는 모든 사람도 그의 본보기로 격려를 받을 것이다. 또는 ‘복 자체가 될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곧 가장 복된 자, 지극히 복된 자라는 뜻이다. 아주 악한 사람을 악 자체라고 부를 수 있듯이, 라틴인들이 ‘scelestus’, ‘악한 자’ 대신 ‘scelus’, ‘악’을 쓰듯이, 선한 사람도 복 자체, 지극히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12:3

‘너를 축복하는 사람들을 내가 축복하겠다.’ 요나단 타르굼처럼 그의 자녀인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할 제사장들만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에 그를 좋게 말하고 그의 믿음과 거룩함을 칭찬하며 그 발자취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믿음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갈라디아서 3:7).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 앞에서는 복수였으나 여기서는 단수로 수가 바뀐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를 축복하지만 저주하는 사람은 소수이며, 그를 저주하는 개개인은 누구나 자신이 저주받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요나단 타르굼은 이를 발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저주하려다 하나님께 저주받은 일로 잘못 한정한다. 마이모니데스(y)는 아브람이 함께 자란 우상 숭배 민족인 사바인들에게 반대했을 때 그들이 저주와 비난을 퍼부었음은 의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브람이 마땅히 해야 하듯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모든 것을 참았으므로 이 말씀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분명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관계되며, 모든 시대와 민족에서 아브람의 하나님과 믿음과 종교와 백성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배척하고 비난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땅의 모든 가족이 네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22:18처럼 그의 씨 안에서라는 뜻이며, 사도행전 3:25에서는 이를 그리스도로 해석한다. 땅의 모든 가족이나 민족에 속한 개개인이 빠짐없이 복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민족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마다 그분 안에서 복을 받으며, 그들 중 누구든 복을 받는 사람은 오직 그분 안에서만 복을 받고 그분 때문에 모든 영적 복을 누린다는 뜻이다. 에베소서 1:3을 보라. 그 복에는 구속, 칭의, 죄 사함, 성화, 양자 됨, 영원한 생명이 포함된다. (y) 앞의 『모레 네부킴』 3부 29장, 421쪽.

12:4

그래서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떠났다. 또는 코케이우스의 번역처럼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을 때’이다. 아버지 데라가 죽은 직후 하란에서 두 번째 부름을 받았을 때를 뜻한다. 앞서 기록된 말씀이 주어지자마자 그는 곧 여행을 준비하고 모든 것을 갖추어, 이전에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났듯 하란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갔다. 자발적으로 갔으며, 아내 사래와 종들 외에는 롯만 동행했다. 데라는 죽었고 나홀과 그 가족은 남았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는 칠십오 세였다. 앞서 관찰했듯 이로써 그가 데라가 70세에 낳은 맏아들이 아니었음이 드러난다(창세기 11:26). 그렇다면 이때 135세여야 하기 때문이다. 방금 죽은 아버지가 205세까지 살았으므로(창세기 11:32), 아브람은 데라의 생애 제130년에 태어났어야 한다. 이때보다 몇 년 전에 우상 숭배에서 돌이켰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유대 저자들의 기록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세 살에 창조자를 알았다고 하며, 다른 이들은 여덟 살, 열세 살, 좀 더 그럴듯하게는 마흔 살, 또는 쉰한 살, 쉰두 살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순 살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z). 어쨌든 모두 여기 언급된 나이 이전이라는 데에는 동의하며, 그렇게 결론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 (z) 『피르케 엘리에제르』 26장; 마이모니데스, 『힐코트 오베데 코카빔』 1장 3절 및 그 주해; 『유하신』 9장 뒷면; 『샬셸레트』 2장 뒷면 참조.

12:5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형제의 아들 롯을 데리고 갔다. 롯은 그의 형제 하란의 아들이다. 그들의 뜻을 거슬러 데려간 것이 아니라 온전한 동의를 얻었다. 사래는 아내로서 혼인법과 관계의 유대에 따른 의무 때문만이 아니라 신앙 때문에 기꺼이 함께 갔다. 롯도 선한 사람이었으므로 가까운 친족인 그와 신앙을 위해 기꺼이 동행했다. 그들이 모은 모든 재산도 데리고 갔다. 갈대아인의 우르나 하란에서, 실은 두 곳 모두에서 모은 재산이다. 자기 소유였으므로 가져갈 권리가 있었고, 가족 부양과 종교적 봉사를 위해 가져가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었다. 이를 보면 그들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했으며 하나님의 복으로 생업에서 성공했다.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도 데리고 갔다. ‘영혼들’이라는 말로 사람의 더 고귀한 부분을 들어 전체를 가리킨다. 일부가 옮기듯 그들에게서 ‘태어난’(a) 사람들을 뜻할 수 있다. 아브람에게는 자녀가 없었으나 롯에게는 있었으며, 하란에서 태어난 자녀도 있었을 것이다. 종들도 동료 종들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았을 수 있다. 아브람과 롯은 그들에게 권리가 있었으므로 함께 데려갔다. 또는 그곳에서 돈으로 사서 자기 소유로 얻거나 취득한 종들을 뜻하는 편이 더 타당하다. 어떤 이들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얻은 개종자들로 이해한다. 재산과 종을 늘리는 데 부지런했던 것처럼 참된 종교를 퍼뜨리고 전파하는 데도 틀림없이 부지런했을 것이다. 여러 갈대아 의역은 이런 뜻을 따른다. 온켈로스는 ‘하란에서 율법에 복종하게 한 영혼들’이라고 한다. 예루살렘과 요나단 타르굼은 ‘개종자들의 영혼들, 곧 하란에서 개종시킨 사람들’이라고 한다. 야르키의 설명도 이에 일치한다. ‘그들이 셰키나의 날개 아래로 데려온 사람들이다. 아브람은 남자들을, 사래는 여자들을 개종시켰다.’ 다만 그는 문자적 의미로는 남종과 여종을 얻은 것으로 이해한다. 두 부류, 곧 개종자들과 돈으로 산 종들이 모두 있었을 수 있으며, 이들이 창세기 14:14의 훈련된 종 318명을 이루었다. 아브람이 하란에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재산을 더 모으고 종들을 늘리고 개종자를 얻으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유대인들(b)은 일반적으로 5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났고,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마지막 구절은 매우 적절하게 덧붙여졌다. 우르를 나올 때도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났지만(창세기 11:31), 그때는 도착하지 못하고 도중에 하란에서 멈추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곳을 떠나 계속 여행하여 가나안 땅에 이를 때까지 어느 곳에도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두 곳 사이의 거리는 300마일로 계산되며, 어떤 이들은 세겜까지 400마일이라고 한다. 팔미라 사막과 레바논 및 헤르몬 산지를 통과하는 고된 길이었다(c). 우르와 같은 곳으로 보이는 우라에 관하여 플리니우스(d)는, 동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페트라 성읍과 행복한 아라비아라 불리는 지방에 속한 시리아의 팔미라 사막을 뒤로하게 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가나안 북부로 들어왔으므로 북쪽 경계인 레바논을 넘었어야 한다. (a) ‘procreaverant’, ‘그들이 낳았다’: 피스카토르. (b) 『세데르 올람 라바』; 간츠, 『체마흐 다비드』 1부 5장 뒷면. (c) 월터 롤리 경, 『세계사』 1부 2권 3절, 130쪽 및 번팅, 『여행기』 56쪽 참조. (d) 『박물지』 5권 24장.

12:6

아브람은 그 땅을 지나갔다. 창세기 12:9에서 남쪽으로 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북부로 들어온 뒤 계속 나아간 것이다. 세겜 지역, 모레 평지에 이르렀다. 그곳은 뒤에 야곱 시대의 한 통치자 이름을 따라 세겜이라고 불렸다. 모세가 기록할 때도 그 이름이었으므로 여기서 미리 그 이름을 사용한다. 가나안 땅의 대략 중앙에 있었으며, 그리스도 시대 사마리아의 성읍 수가와 같은 곳이다(요한복음 4:5). 모레는 사람 이름으로, 세겜 근처의 평지가 그의 이름을 따랐다. 어떤 이들은 모레의 상수리나무(e)라고 옮기는데, 아마 창세기 35:4의 나무와 같거나 그 이름으로 불린 상수리나무 숲일 것이다. 시리아역과 아랍어역은 잘못하여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라고 옮긴다. 그때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있었다. 야곱 시대에도 그들이 있던 그 지역을 말한다. 창세기 34:30을 보라. 이 땅은 셈의 후손에게 속했으나 가나안의 자손이 점령하여 차지했다. 모세 시대에도 그랬지만, 그때는 곧 쫓겨날 참이었다. 그러나 아브람 시대인 지금 그들은 정착해 있었다. 이는 그 땅을 자기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에 대한 아브람의 믿음을 시험하는 일이었다. 또한 그처럼 악하고 불경건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있는 것 자체가 괴롭고 위험한 일이었다. (e) ‘quercetum More’, ‘모레의 상수리나무 숲’: 취리히역. ‘quercum Moreh’, ‘모레의 상수리나무’: 파그니누스, 몬타누스.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 아마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셨을 것이며,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이전 경륜에서 신적 위격이 눈에 보이게 나타날 때마다, 그것은 장차 성육신하시고 분명한 음성으로 말씀하신 본질적 말씀이신 분의 나타나심이었던 듯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가나안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 거주하는 땅 전체이다. 아브람이 갈대아에서 가나안으로 부름받은 주된 목적은 그 땅을 보고 후손을 위한 증여의 약속을 받는 데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에 제단을 쌓았다. 친절하고 은혜롭게 나타나신 일과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신 일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뒤 그랬듯 아브람도 틀림없이 이 제단에서 감사의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12:8

그는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갔다. 벧엘은 뒤에 야곱이 붙인 이름이며 이전과 이 당시에는 루스라고 했다(창세기 28:19). 그곳 동쪽에 산이 있었고 아브람은 세겜에서 그곳으로 장막을 옮겼다. 월터 롤리 경(f)에 따르면 거리는 약 20마일이고, 어떤 이들은 28마일이라고 한다(g). 장막을 쳤다. 이전에는 평지에, 이제는 산 위에 쳤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지내는 하나님의 백성의 처지를 잘 나타낸다. 그들은 아브람처럼 천막과 장막에 살며 영구한 거처가 없다. 서쪽에는 벧엘이 있었다. 또는 ‘바다 쪽에’(h)이다. 지중해를 말하며 아벤 에즈라는 이를 스페인의 바다라고 부른다. 그 바다는 가나안 땅 서쪽에 있었다. 동쪽에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라고 불리며 벧엘 동쪽에 있다고 한 바로 그곳이다(여호수아 7:2). 라우볼프(i)는 이곳 바로 근처에 오래된 돌로 된 옛 폐허가 아직 남아 있으며, 창세기 12:8에서 읽듯 족장 아브라함이 처음 장막을 세운 곳이라고 한다. 그는 벧엘이 오늘날까지 베티셀라라고 불리며, 서쪽으로 반 리그 더 가서 언덕 기슭의 매우 비옥한 지방에 있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세겜에서 한 것처럼 했다. 어디로 가든 하나님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지나간 은혜에 감사할 뿐 아니라 새로운 은혜를 구하며 기도했다. 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렀다’(k)이다. 그에게 나타나셨고 그가 그날을 보고 기뻐했던 영광스러운 중보자, 곧 성자의 이름으로 성부 여호와께 간구한 것이다. (f) 『세계사』 1부 2권 3절, 132쪽. (g) 번팅, 『여행기』 56쪽. (h) ‘a mari’, ‘바다 쪽에’: 몬타누스, 피스카토르, 슈미트. (i) 『여행기』 3부 21장, 317쪽, 레이 편. (k) ‘et invocavit in nomine Domini’, ‘그가 주의 이름으로 간구했다’: 몬타누스, 취리히역.

12:9

아브람은 계속 이동했다. 벧엘과 아이 사이의 산에 오래 머물지 않고 그곳을 떠나 가나안 땅에서 여행을 계속했다. 줄곧 남쪽으로 나아갔다. 가나안 땅의 남부는 이집트에 가장 가까웠다. 다음에는 그가 이집트로 갔다고 하며 그 계기는 이어지는 구절에 나온다.

12:10

그 땅에 기근이 있었다. 가나안 땅은 매우 비옥하여 평소 온갖 식량이 풍부했으나 이제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이는 주민들의 죄 때문인 동시에 아브람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먹을 것이 넉넉하고도 남는 자기 나라에서 나와 기근이 든 나라로 인도되었다. 이것은 그에게 온 곳으로 되돌아가고 자신에게 주어진 나라를 업신여기고 멸시하도록 유혹할 수 있었다. 아브람은 이집트로 내려가 잠시 머물고자 했다. 정착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근이 끝날 때까지만 머물려 했다. 이집트는 가나안 땅보다 낮으므로 내려갔다고 하는 것이 옳다. 잠시 체류하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올 생각으로 간 것은 약속에 대한 그의 믿음이 강했음을 보여 준다. 그는 떠나온 고국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정반대 방향으로 갔다. 갈대아는 가나안의 북동쪽, 이집트는 남서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본문은 이 나라를 함의 둘째 아들을 따라 미스라임이라고 부른다. 창세기 10:6을 보라. 이집트라는 이름은 어떤 이들(l)의 말처럼 왕들 중 하나인 아이깁토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토양과 나일강과 주민들의 거무스름한 색에서 왔다. 그리스인들은 그 색깔의 새인 독수리를 뜻하는 ‘아이깁스’에서 이 색을 ‘아이깁티오스’라고 부른다. 남쪽 경계는 에티오피아 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센나르 왕국과 나일강 폭포이며, 북쪽은 지중해, 동쪽은 아라비아만 곧 홍해와 수에즈 지협, 서쪽은 마르모리카라고 하는 리비아 지방이다(m). 그 땅의 기근이 심했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의 기근이며 아마 다른 곳에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한 나라가 부족할 때 다른 나라에는 식량이 풍부하도록 지혜로운 섭리로 정하셔서 나라들이 서로 돕게 하신다. 이교 저자들도 이 기근과 그 때문에 아브람이 이집트로 내려간 일을 언급한다. 다마스쿠스의 니콜라오스(n)는 아브람이 갈대아에서 나와 지금 유대라고 불리는 가나안에 왔으나, 심한 기근이 들었고 이집트에는 풍족하다는 것을 알아 기꺼이 그곳으로 갔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 풍요를 함께 누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사장들이 신들에 관하여 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폴뤼히스토르는 에우폴레모스(o)를 인용하여 아브람이 고향 카마리네, 일부가 우리에라고 부르는 곳을 떠나 페니키아에 정착했다가 기근이 들자 온 가족과 이집트로 가서 살았다고 전한다. (l) 아폴로도로스, 2권 첫머리. (m) 『세계사』 1권, 391쪽 참조. (n) 에우세비우스, 『복음의 준비』 9권 16장, 417쪽에 인용. (o) 같은 책 17장, 418–419쪽에 인용.

12:11

그가 이집트에 들어가려고 가까이 이르렀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벧엘과 아이 사이의 산에서 240마일을 여행하여(p) 막 들어가려는 때였다. 또는 그가 ‘가까이 오게 했을 때’(q)라고 할 수 있는데, 아벤 에즈라가 보충하듯 그의 진영을, 또는 다른 이들처럼 그의 장막이나 가족을 가까이 오게 했을 때이다. 그는 아내 사래에게 ‘보시오, 나는 그대가 보기에 아름다운 여인인 줄 아오’라고 말했다. 사래는 남편보다 열 살 아래였으므로(창세기 17:17) 당시 75세인 아브람에 비해(창세기 12:4) 65세였다. 그러나 좋은 안색과 고운 용모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 여전히 될 수 있었다. (p) 『거룩한 족장들의 여행기』 등, 56쪽. (q) ‘quum admoveret, sub tentorium’, ‘그가 가까이 옮겼을 때, 곧 장막을’: 바타블루스에 인용된 일부 학자들. ‘familiam’, ‘가족을’: 뮌스터.

12:12

‘그러므로 이집트인들이 그대를 보면 이런 일이 생길 것이오.’ 그들은 정욕에 빠진 백성이어서 곧 사래의 아름다움에 시선이 고정되고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이 여인은 그의 아내라고 말할 것이오.’ 이 아름다운 여인이 저 사람의 아내라고 할 것이다. ‘나를 죽이고 그대는 살려 둘 것이오.’ 당시에는 이교 나라에서도 혼인법을 매우 중히 여겨, 정욕에 빠진 백성인데도 간음보다는 살인을 범하기를 택했다. 그러므로 아브람이 두려워했듯이, 그들은 자유롭고 합법적으로 사래와 결혼할 수 있도록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12:13

‘부탁이오. 그대가 나의 누이라고 말하시오.’ 창세기 20:12에서 보듯 사래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누이였으므로, 이것이 입에 직접 거짓말을 넣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진실을 숨기고 이집트인들을 속이려는 일이었으며, 아내의 정절을 위험에 빠뜨리는 경향이 있었고, 그에게 큰 두려움과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에 대한 불신이 있음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는 그의 죄 있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가장 선한 사람도 죄를 지을 수 있고 가장 강한 신자도 넘어질 수 있으며, 성도는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은혜를 실행하는 데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아브람은 믿음으로 유명했으나 불신앙에 빠졌고, 그것을 통하여 다른 죄들에도 빠졌다.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며, 필요하다고 느끼는 경우에 그렇게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대 덕분에 내가 잘 지내게 하시오.’ 이어지는 말처럼 그의 목숨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그대로 말미암아 내 생명이 살아남을 것이오.’ 사래의 오라비로 여겨져 그 덕분에 목숨이 안전하게 보전될 것이라는 뜻이다. 반면 그가 자기 아내임이 알려지면 생명이 극도로 위험해질까 두려워했다.

12:14

아브람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곧 헬리오폴리스 성읍으로 들어갔다. 에우폴레모스(r)에 따르면 기근 때문에 이집트에 갔을 때 그곳에 거주했으며, 이집트 제사장들과 대화하고 점성술과 그에 속한 다른 지식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교 저자 아르타파누스(s)도 아브람이 이집트로 내려가 점성술을 가르쳤다고 말한다. 그는 아브람이 점성술을 배운 뒤 먼저 페니키아로 가서 페니키아인들에게 가르쳤고, 뒤에 이집트로 가서 그곳에서도 가르쳤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이 그 여인을 보고 매우 아름답다고 여겼다. 아브람은 사래가 아름다운 여인임을 알았지만, 이집트인들의 눈에는 매우 아름답고 지극히 고왔다. 그들은 아주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는 데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r) 앞의 에우세비우스, 『복음의 준비』 17장, 418–419쪽에 인용. (s) 같은 책 18장, 420쪽에 인용.

12: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했다. 바로는 이집트 왕이다. 이로 보아 아브람과 사래는 궁정이 있는 곳에 있었던 듯하다. 아랍 저자들(t)은 왕국의 수도 메스르, 곧 멤피스였다고 한다. 이 고관들은 왕의 신하들로, 사래를 주목하고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왕에게 칭찬하며 그의 아내나 첩들 가운데 하나로 데려가라고 권했다. 그들은 사래가 미혼이며 아브람의 누이라고 이해했다. 왕을 기쁘게 하고 호의를 얻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 여인이 바로의 집으로 들어갔다. 예루살렘 타르굼은 궁전이라고, 요나단 타르굼은 왕궁이라고 한다. 아마 왕의 여인들이 머무는 궁전의 구역이나, 왕을 위하여 정결하게 하고 준비시키는 방으로 갔을 것이다. 이 일에는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이것이 그가 노출된 위험에서 보존되는 수단이 되었다. 에스더 2:8을 보라. 유대와 아랍 저자들(u)에 따르면 이집트 왕국은 아브람이 이곳에 오기 약 300년 전 르우 시대에 세워졌다. 첫 왕은 함의 아들 미스라임으로, 헤로도토스의 메네스와 같은 사람이다. 헤로도토스는 페론(w)이라는 이집트 왕도 언급하는데, 이 왕의 이름과 어느 정도 닮아 보인다. 아르타파누스(x)는 이 왕을 파레토네라고 부르며 아브람이 그에게 점성술을 가르쳤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바로는 이집트 왕들에게 공통으로 쓰이던 이름이며 에스겔 시대까지 계속되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뒤의 프톨레마이오스나 로마인들의 카이사르와 같다. 이 왕이 그 이름을 쓴 최초의 인물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가능성은 있다. 어떤 이들(y)에 따르면 그는 힉소스, 곧 목자 왕들 중 하나였다. 베드퍼드(z)는 그를 그들의 다섯째 왕 야니아스라고 부르며, 이때는 창조 후 약 2084년, 그리스도 이전 1920년이었다고 한다. 한 유대 연대기 저자(a)는 아브람 시대의 그가 최초의 바로였으며 이름이 토티스라고 주장한다. 아랍 저자들(b)은 투티스라고 한다. 그들 중 하나(c)는 스룩 시대에 이집트 왕 아피파누스가 살았다고 한다. 그는 아포피스와 같은 사람이며, 어셔 주교(d)에 따르면 이 바로가 바로 그이다. 그 후에는 상크스의 아들 바로가 있었고, 그에게서 이집트 왕들이 바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들(e)은 바로라는 이름을 자유롭다는 뜻과 복수한다는 뜻을 모두 가진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왕들은 스스로 법에서 자유롭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보응하므로 그렇게 불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높이 있어 그들을 다스린다는 아랍어 단어(f)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편이 더 그럴듯하다. 따라서 사람의 고유 이름이 아니라 호칭이나 직함, 다시 말해 왕을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창세기 41:44를 보라. 그렇다면 이 말이 나오는 곳에서는 언제나 그렇게 옮길 수 있다. 여기서도 왕의 신하들이 그를 보고 왕에게 칭찬했으며 그가 왕의 집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바로를 때로 ‘이집트 왕 바로’라고 부르므로 그렇게 하면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는 반론이 있다. 그러므로 아마 앞의 의미로 취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t) 『세계사』 2권, 115쪽. (u) 『샬셸레트 하카발라』 76장 앞면; 엘마키누스, 29쪽; 호팅거, 『스메그마』 274쪽에 인용. (w) 『에우테르페』, 곧 2권 111장. (x) 앞의 에우세비우스, 『복음의 준비』 9권 16장, 417쪽에 인용. (y) 롤랭, 『고대사』 1권, 68쪽 참조. (z) 『성경 연대기』 314쪽. (a) 『유하신』 135장 앞면. (b) 『세계사』 2권, 115쪽. (c) 아불파라지우스, 『왕조사』 19쪽. (d) 『구약 연대기』 7쪽. (e) 말벤다, 에인즈워스 등. (f) ‘in summo fuit, summumque cepit vel tenuit’, ‘가장 높은 곳에 있었고 최고 지위를 얻거나 유지했다’: 골리우스, 1787열; 카스텔, 3077열.

12:16

그는 그 여인 때문에 아브람을 잘 대우했다. 바로는 아브람에게 매우 친절했고 큰 존경을 보이며 많은 호의를 베풀었다. 사래를 그의 누이라고 여겼으며, 아브람이 사래를 자기 아내로 주는 데 동의하도록 그렇게 했다. 아브람에게 양과 소와 수나귀와 남종과 여종과 암나귀와 낙타가 있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부는 바로가 그에게 준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언급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유대인들(g)은 바로가 사래를 사랑하여 은이나 금이나 종이나 농장 등 자기의 모든 재산과 고센 땅까지 유산으로 준다는 문서를 써 주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고센 땅에 거주했는데, 그들 말로는 그것이 우리 어머니 사래의 땅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g) 『피르케 엘리에제르』 26장.

12:17

여호와께서 바로와 그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아마 비슷한 이유로 아비멜렉과 그의 종들이 당했던 것과 같은 종류였을 것이다(창세기 20:17). 유대인들(h)은 종기가 났다고 한다. 바로뿐 아니라 사래를 그의 집으로 데려오는 데 가담한 집안사람들, 신하들과 종들도 재앙을 당했다. 이 모든 일은, 아브람의 아내 사래 때문이었다. 또는 직역하면 ‘사래의 말 때문에’(i)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천사가 손에 채찍을 들고 사래 곁에 서 있다가 사래가 바로를 치라고 하면 쳤다는 생각을 품는다(k). 그러나 이 단어는 말뿐 아니라 사물, 사정, 일도 뜻한다. 온켈로스는 여기서 그렇게 옮긴다. 뜻은 바로와 신하들이 사래의 일 때문에 재앙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래를 데려와 바로의 집에 붙잡아 두고 그의 아내나 첩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악한 의도 때문에 형벌이 내려졌으므로 실행에 옮기지 않은 악한 계획도 처벌받을 수 있다. 다만 ‘사래의 말’은 그가 말하도록 요청받아 실제로 말한 것을 뜻할 수도 있다. (h) 야르키의 이 구절 주해; 『베레시트 라바』 41절, 35장 4열. (i) ‘propter verbum Sarai’, ‘사래의 말 때문에’: 몬타누스. ‘super verbo’, ‘그 말로 인하여’: 뮌스터, 피스카토르. (k) 야르키의 이 구절 주해; 앞의 『베레시트 라바』 41절, 35장 4열.

12: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 말했다. 그는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라는 사정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들이 말하듯 내려진 재앙 때문에 제사장들과 점술가들에게 물어서 알았거나, 더 가능성 있게는 재앙의 성격을 보고 사래 때문이라고 의심하여 그를 불러 이 일을 물었고 사래가 모든 사정을 고백했을 것이다. 또는 비슷한 경우의 아비멜렉처럼 꿈에서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아브람을 불러 부드럽지만 정당하게 책망했다. ‘그대가 내게 한 이 일은 무엇이오?’ 사래가 아내인데 누이라고 알려 나를 이렇게 속이고 기만했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나는 그를 아내로 맞을 준비를 하게 되었고 나와 가족에게 재앙을 불러왔지 않은가? 이렇게 바로는 자신에게 가해진 해로 받아들여 분개했으며, 충분히 그럴 만했다. ‘왜 그가 그대의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를 처음 집으로 데려왔을 때 말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다. 아브람은 틀림없이 그때 함께 있었으며, 이후에도 자주 바로와 만나 대화했을 것이다. 바로는 아브람의 누이라고 여긴 사래 때문에 그를 존중했지만, 아브람은 끝내 그가 아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12:19

‘왜 그가 그대의 누이라고 말했소?’ 바로는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무엇이 그를 그런 이야기를 하게 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아브람이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렇게 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상당 부분 근거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로가 이유를 짐작했을 것이다. 또는 참된 이유를 확실히 알고 싶어서 이렇게 물었을 수 있다. ‘내가 그를 아내로 삼을 뻔했소.’ 그가 자유로운 여인이라고 생각하여 사실을 모른 채 아무 거리낌 없이 그랬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하고 그에게서 빼앗는 죄를 지었을 것이다. 바로에게 이것은 범하고 싶지 않은 죄였다. 다만 일부다처는 죄로 여기지 않았다. 사래를 아내로 맞으려 할 때 이미 아내가 한 명 또는 여럿 있었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시오, 그대의 아내요. 데리고 떠나시오.’ 사래는 이 대면의 자리에 함께 있었던 듯하다. 그는 손대지 않은 채 남편에게 그의 고유한 소유로 돌려보내졌으며, 남편은 그 나라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왕이나 신하나 백성 가운데 누구도 아내의 정절을 범하여 아브람을 해치려는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교 역사가 에우폴레모스(l)는 이 일 전체를 몇 마디로 전하는데 이 기록과 크게 일치한다. 다만 사래가 이집트 왕과 결혼했다고 묘사한다. 그는 아브람이 기근 때문에 온 가족과 이집트로 가서 살았으며,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했으므로 이집트 왕이 그와 결혼했다고 한다. 그를 인용한 알렉산드로스 폴뤼히스토르에 따르면, 이어 더 자세히 왕이 그를 향유하지 못했고 백성과 집안이 재앙에 감염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왕은 점술가나 예언자들을 불러 모았는데, 그들은 그 여인이 과부가 아니라고 했다. 이집트 왕은 그가 아브람의 아내임을 알게 되자 남편에게 돌려주었다. (l) 앞의 에우세비우스, 『복음의 준비』 9권 18장, 420쪽에 인용.

12:20

바로는 사람들에게 아브람에 관하여 명령했다. 신하들과 종들에게 그의 몸이나 재산에 손해나 해를 입히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왕과 자신들이 어떻게 속고 기만당했는지 들으면 그들이 격분하리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어지는 말에서 보듯, 그가 머무는 동안 경호대를 두고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영토 밖으로 안전하게 인도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라이트풋 박사(m)는 이집트인들에게 장래를 위한 일종의 법처럼 명령하여, 히브리인이나 외국 목자들과 함께 먹고 마실 정도로 가까이 사귀지 말라고 했다고 생각한다. 이집트인들은 이후 이를 엄격히 지켰다(창세기 43:32). 그들은 아브람과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를 보내 주었다. 강제로 또는 불명예스럽게 쫓아낸 것이 아니다. 왕이 임명한 경호대에 맡겨져 가족과 모든 소유를 가지고 그 땅에서 안전하게 나왔다. 가져온 모든 것, 그곳에서 불린 모든 것, 왕에게 받은 모든 선물이 포함되었다. 유대인들(n)은 이를 바로가 사래에게 준 문서와 선물로 해석한다. 그들(o)은 또한 아브람이 이집트로 내려가 머물다 떠난 일과 후대에 그의 자손이 겪은 일 사이에 큰 유사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양쪽 모두 기근 때문에 갔고, 잠시 머물려고 내려갔으며, 많은 재산을 가지고 나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 밖에도 여러 세부적인 공통점을 관찰한다. (m) 그의 『전집』 1권, 694쪽 참조. (n) 『피르케 엘리에제르』 26장. (o) 『베레시트 라바』 40절, 35장 3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