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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23

창세기 23장 — John Gill

23:1

“사라는 127세였다.” 이 기록이 이삭을 바치는 이야기 바로 뒤에 나오므로, 많은 유대 저술가들은 당시 이삭이 서른일곱 살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어머니 사라가 아흔 살에 그를 낳았으니 127세일 때 이삭은 서른일곱 살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나이는 그런 계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어지는 말처럼 사라가 죽을 때까지 산 햇수를 합하여 알려 주려는 듯하다. “이것이 사라가 산 햇수다.” 많은 주석가들이 관찰하듯 사라는 성경에서 생애의 햇수가 계산되어 기록된 유일한 여성이다.

23:2

“사라는 기럇아르바에서 죽었다.” 야르키는 그곳에 살던 네 아낙 사람, 곧 거인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수 15:13). 또는 같은 저자의 다른 설명처럼 그곳에 묻힌 네 부부, 곧 아담과 하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 때문일 수 있다. 다만 그렇다면 후대의 이름을 미리 사용한 것이 된다. 오히려 아벤 에스라의 생각처럼 아낙 사람들 가운데 큰 인물이자 아낙의 아버지인 아르바에게서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수 14:15). 어떤 이들은 네 구역으로 이루어진 도시, 곧 테트라폴리스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여기 있었다. 브엘세바에서 언제 이곳으로 옮겼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곳은 가나안 땅 헤브론이다.” 후에 그렇게 불렸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오래전 여기서 살았고(창 13:18 참조), 다시 돌아와 이곳에서 생애를 마치고 묻혔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위해 애도하고 울려고 왔다.” 아벤 에스라는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이 다른 곳에 있었으므로 애도하러 왔다고 표현한다고 관찰한다. 요나단의 타르굼은 “아브라함이 예배의 산 모리아에서 와서 그녀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 앉아 사라를 위해 애도하며 울었다”고 한다. 다른 전승(u)은 이삭을 바쳤다는 말을 듣고 사라가 실신하여 죽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뜻은 아브라함이 자기 장막에서 사라의 시신이 있는 장막으로 와서(창 24:67 참조), 그녀를 향한 슬픔과 애통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절제된 슬픔은 정당하며, 자연적인 애정과 부부 관계가 요구하는 일이었다. 히브리 학자들(w)은 “울다”라는 단어의 글자 하나가 보통보다 작다는 점을 관찰하고, 그가 지나치게 울지 않고 조금 울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표현을 함께 보면 슬픔이 매우 컸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하나는 사적인 애도를, 다른 하나는 당시 관습에 따른 공적인 애도를 가리킬 수도 있다. 출처: (u) 『Pirke Eliezer』 32장; 해당 구절의 야르키. (w) 해당 구절의 바알 핫투림.

23:3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앞에서 일어났다.” 사라의 시신 곁에서 생각에 잠겨 슬퍼하다 일어났다는 뜻이다. 아마 애도자들의 관습처럼 땅에 앉았을 것이다(원문 참조: 욥 1:13; 땅에 앉아 애도하는 장면은 욥 2:13).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다가, 마땅히 해야 할 아내의 장례를 준비하려고 일어나 장막 밖으로 나갔다. “헷의 자손들에게 말했다.” 가나안의 아들 헷의 후손들이다(창 10:15 참조). 그들은 당시 아브라함이 있는 지역의 주민이자 땅의 소유자들이었다. 그가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23:4

“나는 여러분 가운데 사는 나그네이며 거류민입니다.” 그곳 태생이 아니라 한동안 그들 가운데 거류민으로 살았다는 뜻이다.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땅은 발 하나 놓을 만큼도 없었으므로, 죽은 이를 묻을 곳도 없었다. “여러분 가운데 매장지로 소유할 땅을 주십시오.” 거저 선물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를 묻을 땅을 구입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뜻이다. 요나단의 타르굼도 “소유지를 내게 파십시오”라고 한다(창 23:9). 이것을 더욱 원한 이유는 죽은 이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 인간애의 원칙과 모든 민족의 일반적인 관습에 맞아서만은 아니었다. 가나안 땅에 그런 목적의 장소를 가지면, 언젠가 그 땅을 소유하게 되리라는 자신과 후손들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소망과 기대를 북돋울 수 있었다. 그래서 후대의 족장들, 곧 야곱과 요셉도 자신의 뼈를 그곳에 두기를 바랐다. “내 눈앞의 죽은 아내를 장사하려 합니다.” 사라는 살아 있을 때 매우 아름답고 아브라함이 크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죽음은 얼굴을 바꾸고 몸을 썩게 하여, 바라보기 힘들고 점차 가까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전에는 그토록 기쁨을 주던 아내를 눈앞에서 옮겨야 했다. 죽음은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에게도 이런 변화를 가져온다.

23:5

“헷의 자손들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했다.” 매우 예의 바르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말했다. 그 말은 다음과 같다.

23:6

“내 주여, 우리 말을 들으십시오.” 그들 중 한 사람이 나머지를 대표해 말했으므로 아브라함을 “우리 주”가 아니라 “내 주”라고 부른다. 매우 존중하는 호칭을 사용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하는 말을 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우리 말을 들으십시오”는 일반 백성 전체보다 그들 가운데 지도자들, 곧 가문의 우두머리들을 대표하는 말이다. “당신은 우리 가운데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나그네와 거류민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그를 큰 재산과 소유, 큰 힘과 권위를 지닌 사람으로 높이 평가했다. 많은 종을 거느리고 지도자처럼 살았으며 영향력이 컸다. 또는 “하나님의 지도자”(x)라고 옮길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위엄과 존귀의 자리로 높이신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은총을 입어 그분께 기쁘고 받아들여질 만하며, 하나님께 친구로서 크게 존중받고 높이 평가되는 사람이다. “우리 무덤들 가운데 가장 좋은 곳에 고인을 장사하십시오.” 가족마다 별도의 무덤이 있어 무덤들이 많았으므로, 그중 가장 웅장하고 훌륭한 곳, 또는 아브라함이 원하는 어느 곳이든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매우 친절하고 너그러우며 존중이 담긴 제안이었다. “우리 중 누구도 당신이 고인을 장사하지 못하도록 자기 무덤을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을 존중하므로, 고인을 묻으려고 무덤을 쓰겠다고 하면 거절할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장 적절하고 편리하다고 판단되는 곳을 주저하지 않고 사용해도 된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대표하는 이들의 뜻을 분명히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출처: (x) princeps Dei, “하나님의 지도자”: 파그니누스, 몬타누스, 유니우스와 트레멜리우스, 피스카토르, 바타블루스, 드루시우스, 슈미트 등.

23:7

“아브라함이 일어났다.” 헷의 자손들에게 말한 뒤 앉아서 답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또는 그들이 이렇게 큰 인물에 대한 존경으로 앉기를 권했을 수 있다. 그들의 말이 끝나자 그가 일어났다. “그 땅의 백성에게 몸을 굽혔다.” 그들 중 지도자들에게 몸을 굽혀, 자신에게 베푼 영예와 큰 예의에 감사함을 나타냈다. “곧 헷의 자손들에게.” 일반 백성과 구별하고 앞 문장을 설명하려고 덧붙인 듯하다. 창세기 23:3의 길 주석을 보라.

23:8

“그가 그들과 이야기했다.” 앞의 주제에 관하여 대화를 이어 갔다. “내 눈앞의 죽은 아내를 장사하는 일을 여러분이 허락하신다면.” 그들에게 속한 어떤 장소에 묻는다는 뜻이다. 다른 곳에 아내를 묻는 일이라면 그들이 반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이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라 실제 뜻이며, 진실하고 진심으로 그들 가운데 매장지를 제공하여 호의를 베풀고 싶은 것이라면, 이제 부탁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제 말을 듣고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저를 위해 부탁해 주십시오.” 에브론은 헷 사람들 가운데 유력한 인물이었다. 아브라함의 거처 가까이에 밭과 굴이 있었고, 지금 생각하는 목적에 매우 적합했다. 창세기 23:10을 보면 에브론도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직접 요청하면 일이 그만큼 쉽게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직접 말을 거는 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헷 사람 지도자들이 함께 에브론에게 뒤에 나오는 호의를 요청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일에 진심이라면 그들도 주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에브론이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의 동료들을 통해 말하는 것은 아주 예의 바르고 존중하며 겸손한 접근이었다. 에브론도 공손함을 지키려면 쉽게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청은 다음과 같다.

23:9

“그의 밭 끝에 있는 막벨라 굴을 제게 주도록 해 주십시오.” 요나단의 타르굼은 “이중 굴”이라고 옮기며 칠십인역과 라틴어 불가타도 같다. 아벤 에스라와 벤 멜렉은 굴 안에 또 굴이 있어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야르키는 아래 거처와 그 위의 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나(y), 부부가 들어가 두 시신을 놓기에 알맞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유대인들(z)은 아담과 하와가 여기에 묻혔으므로 아브라함이 이곳을 매장지로 얻기를 그토록 원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벨라는 장소의 고유명사, 더 정확하게는 그 밭과 밭 모퉁이의 굴이 있는 일대의 이름으로 보인다. 모두 에브론의 소유였다. 창세기 23:17은 밭과 그 안의 굴을, 그것들이 자리한 막벨라와 구별하고 막벨라도 그것들과 구별하기 때문이다. 이 굴은 아브라함이 지금 원하는 목적, 곧 매장지로는 이전에 사용된 적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브라함이 기존 무덤 중 아무 곳이나 쓰라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다. 그는 죽은 아내가 그들 가운데 있되 그들과 함께 누워 있지 않고 별도의 장소에 있기를 원했다. 길은 그들이 이교도이자 우상 숭배자로서 죽은 자의 부활을 알지 못하고, 아브라함이 믿고 바랐던 첫째 부활에도 참여하지 못할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 가치에 맞는 돈을 받고 여러분 가운데 매장지로 소유하도록 제게 주게 해 주십시오.” 또는 “온전한 은값으로”(a)라고 옮긴다. 온전한 무게의 은이라는 뜻이다. 창세기 23:16에서 보듯 당시 돈은 무게를 달아 지불했다. 또는 그 물건의 가치에 맞는 전액을 뜻한다. 아브라함은 거저 받기를 바라지 않았듯 싼값으로 얻으려 하지도 않았다. 기꺼이 온전한 값을 내고자 했다. 탐욕스러운 목적이나 남의 것을 침해하려는 마음으로 요청한 것이 아니다. 출처: (y) 바빌로니아 탈무드 Erubin 53a도 같은 설명. (z) 『Pirke Eliezer』 20, 36장. (a) in vel pro argento pleno, “온전한 은으로”: 파그니누스, 몬타누스, 슈미트.

23:10

“에브론은 헷의 자손들 가운데 살고 있었다.” 또는 현재의 모임에서 그들 가운데 “앉아 있었다”(b)라고 옮긴다. 야르키에 따르면 이번 모임의 의장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그에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어쨌든 뒤의 내용을 보면 그는 현장에 있었다. “헷 사람 에브론은 헷의 자손들이 듣는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했다.” 자기 이름이 나오자 모임에서 일어나 다른 지도자들이 듣는 가운데 아브라함의 요청에 직접 답했다. “곧 자기 성읍의 문으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듣는 가운데.” 그 성읍은 후에 헤브론이라고 불린 기럇아르바다(창 23:2). 그가 태어난 곳, 적어도 당시 살던 곳이다. 아마 성읍 전체나 대부분이 그의 소유였을 수도 있다. 지도자들의 모임은 이 성읍의 성문 중 하나에서 열리고 있었다. 여러 일에 관한 회의나 재판을 그런 장소에서 여는 것이 관례였다. 공적인 장소여서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계속 오갔으므로, 말을 듣고 증인이 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출처: (b) 칠십인역; sedens, “앉아 있는”: 몬타누스; sedebat, “앉아 있었다”: 유니우스와 트레멜리우스, 피스카토르, 드루시우스, 슈미트.

23:11

“아닙니다, 내 주여. 제 말을 들으십시오.” 아벤 에스라의 풀이처럼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내 주여”라는 뜻이다. 요청 전체를 거절하거나 어떤 값에도 굴을 내주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사지 말고 선물로 받으라는 뜻이다. 그래서 더 할 말을 들어 달라고 청한다.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안의 굴도 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려고 요청한 것보다 많다. 그는 밭 한쪽의 굴만 원했지만 에브론은 굴뿐 아니라 밭도 주겠다고 한다. “내 백성의 자손들 앞에서 당신께 드립니다.” 밭과 굴 모두를 뜻한다. “당신께 드립니다”를 세 번 말하여 기꺼이 주며 아브라함이 받아도 좋음을 나타내고 양도를 확증한다. “고인을 장사하십시오.” 더 복잡하게 하지 말고 즉시 굴에 장사하라는 뜻이다.

23:12

“아브라함은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혔다.” 이 행동으로 그들과 에브론 모두에게 큰 존중과 영예를 드린다. 또한 자신에게 할 말이 있으니 들어 달라는 뜻을 전하고, 자신이 하려는 말을 겸손히 그들 앞에 내놓는다.

23:13

“아브라함은 그 땅의 백성이 듣는 가운데 에브론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한 에브론을 향해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시다면 부디 제 말을 들으십시오.” 표현은 매우 짧고 원문에는 “만일 당신이”만 있으므로, 번역자들이 서로 다르게 보충한다. 어떤 이들은 “당신이 그분이라면”(c), 곧 에브론이라면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이 그의 얼굴을 모르거나 그 자리에 있는지 몰랐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지역에서 자신이 널리 알려질 만큼 살았으니 이웃들을 알았을 것이다. 전에도 이곳에 살았으므로, 자신이 거주한 성읍의 에브론 같은 큰 지도자를 몰랐을 리 없다. 따라서 이 해석은 그럴듯하지 않다. 요나단의 타르굼은 “제게 친절을 베푸실 뜻이 있다면 제 말을 들으십시오”라고 한다. 한 번 더 말하게 해 주고 요청을 들어 주면 호의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다른 이들은 “제 말을 들으시려 한다면”, “부디 제 말을 들으십시오”, 또는 “당신이, 그러니까 당신이 제 말을 들으신다면”(d)으로 읽는다. 이어 제안이 나온다. “밭값을 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과 후손의 소유가 확실해지도록 거저 받지 않고 구입하려 했다. 에브론이 지금은 너그러운 기분이지만 마음을 바꾸거나, 후에 다투게 되면 이를 들어 아브라함을 탓할 수 있었다. 그의 후손들이 되돌려 달라며 소유권을 다툴 수도 있었다. “제게서 받으십시오.” 구입 대금, 곧 밭의 온전한 값을 받으라는 뜻이다. “그곳에 제 아내를 장사하겠습니다.” 또는 “그제야 장사하겠습니다”(e), 곧 그 전에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출처: (c) si tu is es, “당신이 그분이라면”: 유니우스와 트레멜리우스, 피스카토르; 에인즈워스도 같음. (d) Auscultares, “들어 주신다면”: 취리히 역본; si tu, “만일 당신이”: 슈미트. (e) et tum sepeliam, “그러면 내가 장사하겠습니다”: 취리히 역본, 유니우스와 트레멜리우스, 피스카토르; tunc, “그때”: 슈미트.

23: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했다.”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23:15

“내 주여, 제 말을 들으십시오.” 선물로 받지 않고 사려는 뜻이라면 이제 땅값에 관한 말을 들으라는 뜻이다. “그 땅은 은 400세겔 값입니다.” 한 세겔을 2실링 6펜스로 계산하면 길 당시의 돈으로 50파운드다. “나와 당신 사이에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처럼 부유한 두 사람 사이에서는 한 사람이 내고 다른 사람이 받든 그렇지 않든 그 액수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이다. 또는 이런 두 친구 사이에서는 말할 가치가 없으므로 지불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 수 있다. 또 다른 뜻은 이렇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 정직하게 따지면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좋은 거래이니 그렇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액수도 작고 그만한 가치도 명백하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고인을 장사하십시오.” 그 땅에 묻고, 이 일로 더 이상 수고하거나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23:16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말을 들었다.” 사람 사이에 적당한 값이라고 판단하여 제안한 액수를 주는 데 즉시 동의했다. 만족했고 기꺼이 돈을 내고자 했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에게 은을 달아 주었다.” 당시 돈에는 가치를 나타내는 표지나 각인이 없었으므로 조각 수를 세지 않고 무게를 달아 온전한 가치를 알았다. 에브론이 요구한 전액을 정확하게 받도록 은을 달아 준 것이다. “그가 헷의 자손들이 듣는 가운데 말한 은.” 그들은 거래와 에브론이 제시한 값, 아브라함이 대금을 낸 사실의 증인이었다. “은 400세겔.” 앞서 언급한 액수다(창 23:15). “상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상인들이 사고팔 때 사용하는, 그들이 받아 줄 만한 은이다. 상인들은 은의 가치를 알고 나쁜 것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므로, 그들에게 통하는 은이라면 어디서든 통용되었다. 이 모든 내용이 스데반의 말과 어떻게 조화되는지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7:16의 길 주석을 보라.

23:17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이는 막벨라가 장소나 일정한 지역의 고유명사이지, “이중 굴”이라고 옮겨야 하는 보통명사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 준다. 밭이 굴 안에 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타블루스가 지적하듯 어떤 번역자들은 “이중 굴 안에 있는 에브론의 밭”이라고 옮기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실제로는 반대로 굴이 그 밭 안에 있었다. 불가타는 히브리어 본문과 정확히 맞지는 않지만, “그 안에 이중 굴이 있는 에브론의 밭”이라고 하여 뜻은 더 낫다. “마므레 앞에 있는.” 마므레 맞은편이라는 뜻이다. 마므레는 헤브론에 있는 아브라함의 거처였다(창 13:18). “밭과 그 안의 굴과, 밭 안 사방의 모든 경계 안에 있는 모든 나무가 확정되었다.” 또는 “일어섰다”, “섰다”(f)라고 옮긴다. 야르키는 밭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이 더 위대한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썼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손에서 왕의 손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몇 이교 저술가들(g)은 아브라함을 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벤 에스라와 벤 멜렉이 “확증되어 확고히 섰다”라고 설명한 것이 훨씬 낫다. 곧 밭과 그 둘레 전체의 모든 것이 그에게 보장되어 그의 소유로 남게 되었다는 뜻이다. 출처: (f) 히브리어를 surrexit, “일어났다”로 옮김: 뮌스터, 바타블루스, 피스카토르; stetit, “섰다”: 몬타누스, 슈미트. (g) 다마스쿠스의 니콜라우스, 에우세비오스 『복음의 준비』 9권 6장, 417쪽에 인용; 트로구스를 요약한 유스티누스, 38권 2장.

23:18

“아브라함의 소유로.” 자신의 돈으로 샀으므로 자신과 가족이 영원히 자기 재산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헷의 자손들 앞에서.” 그들은 거래, 아브라함의 대금 지불, 자신의 용도로 쓰도록 밭이 그에게 넘겨진 사실의 증인이었다. “그 성읍의 문으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 앞에서.” 아브라함에게는 성읍이 없었으므로 그의 성읍이 아니라 에브론의 성읍 헤브론이다(창 23:10 참조). 이 사람들은 헷의 자손들과 같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앞의 말을 설명하여 그곳의 모든 주민을 포함한다. 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다. 앞의 말은 아브라함이 요청한 모임을 이룬 지도자들이고, 뒤의 말은 일반 백성과 주민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아벤 에스라는 성문을 오가는 여행자들로 본다. 어느 쪽이든 이 표현의 목적은 이 일이 얼마나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고, 밭이 가능한 한 확실하게 아브라함의 소유가 되었는지 보여 주는 데 있다. 그처럼 이른 시대에는 이런 일에 문서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3:19

“그 뒤에.” 협상이 끝나고 계약이 맺어지며 돈을 내고 소유권이 확보된 뒤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마므레 앞 막벨라 밭의 굴에 장사했다.” 아브라함 자신도 여기 묻혔고,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도 묻혔다(창 25:9). 12세기 후반에 살았던 투델라의 벤야민(h)은 자기 시대에 막벨라 밭에 도시 또는 마을이 있고, 그 안에 성 아브라함이라고 불리는 큰 성전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곳에서는 앞서 말한 여섯 사람의 무덤을 보여 주었으며, 각각 누구의 것인지 알리는 명문이 있었다. 밭 끝에는 아브라함의 집이 있었고 집 앞에는 샘이 있었으며, 아브라함을 기리기 위해 다른 것은 그곳에 세우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곳은 가나안 땅 헤브론이다.” 곧 마므레는 후에 헤브론이라고 불린 곳이다. 가나안 땅 유다 지파에 속한 도시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22마일 떨어져 있었고 도피성 중 하나였다. 아랍인들은 헤브론을 “선택된 자” 또는 “사랑받는 자”라는 뜻의 할레아라고 부른다. 그곳에서는 마므레 또는 막벨라 굴인 마가렐 마므라를 여전히 보여 준다. 길이 인용하는 여행 기록에 따르면 그곳은 늘 등불로 밝히고 무슬림들이 매우 특별하게 공경한다(i). 출처: (h) 『여행기』, 48–49쪽. (i) Shaw, 『Travels』 2판, 339쪽 난외주.

23:20

“밭과 그 안의 굴이 헷의 자손들에 의해 아브라함에게 매장지의 소유로 확정되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에브론 사이 거래의 증인이었다. 사라를 그곳에 묻음으로써 소유는 더욱 확실해졌다. 구입한 목적대로 사용하여 실제 점유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 땅을 소유할 일의 보증과 선금이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후손이 가나안에서 처음 소유한 땅이었다. 그것을 매장지의 소유라고 부른 사실은 이 기록과 스데반의 말 사이에 모순이 없음을 보여 준다(행 7:5). 그에게는 묻을 땅은 있었지만, 생활의 터전이 되는 땅은 없었다. 경작하고 씨를 뿌리거나 집을 지을 자기 땅이 없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