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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25

창세기 25장 — John Gill

25:1

“아브라함이 다시 아내를 맞았다.” 사라가 죽은 지 3년 뒤, 이삭이 결혼하여 혼자 남았을 때이며 이제 140세였다. “그녀의 이름은 그두라였다.” 누구이며 어느 집안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한 아랍 저술가(z)는 튀르크 왕의 딸, 다른 저술가(a)는 라마 왕의 딸, 또 다른 이(b)는 랍바 왕 팍토르의 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민족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아브라함의 집에서 태어났거나 돈으로 산 여종 가운데 하나이며, 가장 높은 지위의 여종이었을 것이다. 요나단과 예루살렘 타르굼 및 야르키는 하갈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아벤 에즈라는 이를 반대한다. 창세기 25:6이 아브라함의 ‘첩들’을 말하고, 하갈과 그두라 외에 다른 첩은 나타나지 않으므로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장은 두 사람의 자녀를 구별하여 센다. 비유대인 저술가 클레오데모스(c)도 그두라를 아브라함의 아내로 언급하며, 그에게서 많은 자녀를 얻었다고 하고 셋의 이름을 든다. 월터 롤리 경(d)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속한 겐 족속이 그두라에게서 이름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후손인 미디안에 속한 민족이었다는 것이다. (z) 아불 파라지, 『왕조사』 14쪽. (a) 엘마키누스 34쪽, 호팅거 『스메그마』 309쪽 인용. (b) 파트리키데스 19쪽, 같은 곳 인용. (c) 에우세비우스, 『복음의 준비』 9권 20장 422쪽 인용. (d) 『세계사』 2권 4장 2절, 157쪽.

25:2

“그녀가 그에게 시므란을 낳았다.” 그두라는 아마 젊은 여자였으므로 출산이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40년 전 이미 몸이 죽은 것 같았던 아브라함이 다시 자녀를 얻은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이삭을 낳을 때 받은 새로운 활력이 후손 번성의 약속을 이루도록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최근의 한 학식 있는 주교(e)의 견해가 옳다면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다. 사라와 결혼한 지 약 20년 뒤,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하갈을 맞기 훨씬 전에 그두라를 첩으로 맞았다는 견해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고 사라의 죽음 뒤에야 언급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점들이 있다. 그두라는 첩이라 불리는데(대상 1:32), 사라가 죽고 다른 아내가 없을 때 결혼했다면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 법하다. 아브라함은 죽기 전 그녀에게서 증손까지 보았고, 그 후손은 3대까지 기록된다. 반면 하갈 쪽은 2대만 나온다. 그러므로 하갈보다 먼저, 심지어 하란에 있을 때 맞았고 그녀의 자녀들이 그곳에서 얻은 ‘사람들’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40년 전에도 노인으로 여겨졌던 사람이 140세에 사라가 죽은 뒤 아내를 맞았다는 것은 그리 개연성이 높지 않다. 라이트풋 박사(f)도 이삭의 결혼이나 사라의 죽음보다 훨씬 전에 결혼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생식 능력을 설명하는 어려움은 사라진다. 그두라의 첫아들은 시므란이다. 플리니우스(g)가 말한 아라비아 펠릭스의 자마레니 사람들이 그에게서 나왔다. 그두라의 아들들은 아브라함이 당시 있던 곳의 동쪽, 곧 아라비아로 보내져 그 부근에 정착했다. 프톨레마이오스(h)가 아라비아 펠릭스의 일부인 키나이도콜피테스 지방에 둔 왕도 자브람, 또는 잠람도 이 사람에게서 이름이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 이어 다섯 아들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욕산을 아랍인들이 민족의 조상이라 부르는 카흐탄과 같다고 본다. 그러나 카흐탄은 오히려 에벨의 아들 욕단인 듯하다(창 10:25). 필로스토르기우스(i)는 자기 시대의 호메리테스라는 민족을 말한다. 그두라에게서 나와 아라비아 펠릭스에 살며 8일째 할례를 행했다는 것이다. 패트릭 주교는 9세기 연대기 저술가 테오파네스를 인용하여, 아라비아 내륙의 호메리테스가 옉탄에게서 나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를 욕산으로 읽어야 한다고 추측하지만, 앞서 말한 욕단일 수도 있다. 므단과 미디안에게서 성경에 자주 나오는 미디안 사람들이 나왔다. 같은 사람들이 므단 사람과 미디안 사람으로 불리므로 후손이 함께 섞여 불린 듯하다(창 37:28). 프톨레마이오스(k)의 모디아나와 마디아나 같은 아라비아 성읍도 이들에게서 이름을 얻었을 수 있다. 이스박의 이름은 어디서도 추적되지 않는다. 다만 패트릭 주교는 형제 시므란의 후손 자마레니 사람들의 성읍 바카스카미와 바클릴타이 사람들에게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둘 다 플리니우스(l)가 언급한다. 유니우스는 시리아 라오디케네의 스카비오사 라오디케아가 이스박에게서 이름을 얻었다고 보지만 가능성이 낮다. 수아 또는 수아흐는 프톨레마이오스(m)가 아라비아 펠릭스에 둔 소카키아·소아카·소케헤르라는 성읍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지리학자들이 사우키테스·사우카이·사카이라고 부르는, 아라비아 데세르타의 사람들이 그 후손이며 수아 사람 빌닷도 거기서 나왔다고 본다(욥 2:11). 가능성 있는 견해이다. 다른 이들은 플리니우스가 수아자라 부른 홍해 끝의 수에즈가 수아에게서 이름을 얻었다고 생각한다(n). (e) 클레이턴, 『히브리 성경 연대기』 83쪽 이하. (f) 『저작집』 1권 「창세기 관찰」 695쪽. (g) 『박물지』 6권 28장. (h) 『지리학』 6권 7장. (i) 『교회사』 3권 4절, 477쪽. (k) 위 (h). (l) 위 (g). (m) 위 (h). (n) 에그몬트와 헤이먼, 『여행기』 2권 184쪽 참조.

25:3

“욕산이 스바와 드단을 낳았다.” 보카르(o)는 이 스바의 후손을 나바테아 사람들에서 멀지 않은 아라비아 펠릭스 입구의 사바 사람들과 같다고 본다. 스트라본(p)은 이들을 시리아 가까이에서 함께 언급하며 이웃을 약탈하곤 했다고 한다. 욥의 가축을 빼앗은 사람들과 같다고 보는 데에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욥 1:15). 드단에게서는 이사야 21:13에서 아라비아와 함께 나오는 드다님 또는 드단 사람들이 나왔다. 유니우스는 시리아 팔미레네의 아다다가 이 사람에게서 이름을 얻었다고 본다. 그 지역에는 알라단 또는 알라다단산도 있다. 보카르(q)는 더 그럴듯하게 이두매아의 드단 성읍이 그에게서 이름을 얻었다고 본다. 프톨레마이오스(r)가 말한 아라비아 펠릭스의 카사니테스 지방 아데디라는 마을에도 그 이름의 흔적이 보인다. “드단의 아들들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었다.” 복수형이므로 개인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거주지나 직업을 나타내는 일반 명칭으로 여겨진다. 온켈로스 타르굼은 야영지·장막·섬에 사는 사람들로, 요나단과 예루살렘 타르굼은 상인·장인·백성의 지도자로 옮긴다. 어쨌든 비유대인 역사가 클레오데모스(s)가 앗수르 족속을 아수르라 부르며 아시리아의 기원으로 삼은 것은 잘못이다. 아시리아와 아시리아인은 셈의 아들 앗수르에게서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창 10:22). (o) 『팔레그』 2권 9장, 227단. (p) 『지리학』 16권 536쪽. (q) 『팔레그』 4권 6장, 219단. (r) 『지리학』 6권 7장. (s) 에우세비우스, 『복음의 준비』 9권 20장 432쪽 인용.

25:4

“미디안의 아들들은.” 미디안은 그두라가 낳은 아브라함의 넷째 아들이다. 다음에 나오는 다섯 아들은 각각 미디안의 부족 또는 집안의 우두머리였다. 그래서 민수기 31:8에 미디안의 다섯 왕이 나온다.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 클레오데모스(t)는 처음 둘을 아프라와 아페르라고 하며, 실제로는 손자들인데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아들로 적었다. 그는 아프라 성읍과 아프리카 전체가 이들에게서 이름을 얻었고, 아프라의 딸과 결혼한 헤라클레스를 따라 리비아로 갔다고 한다. 에바는 이사야 60:6에서 미디안과 함께 나오지만 나머지는 성경에 따로 언급되지 않는다. 프톨레마이오스(u)는 아라비아 펠릭스의 마디아나 근처에 히포스라는 산과 마을을 언급하며, 아마 에바에게서 이름이 나왔을 수 있다. 에벨의 흔적은 필로스토르기우스(w)가 앞서 말한 호메리테스의 수도라 부른 타푸론에서 찾기도 한다. 패트릭 주교가 지적하듯 아리아노스는 호메리테스의 수도를 아파르라고 명시한다. 프톨레마이오스(x)도 호메리테스 근처의 타파리테스라는 사람들을 말한다. 하녹의 이름은 프톨레마이오스(y)가 아라비아 펠릭스의 아드라미테스 지방에 둔 무역항 카네, 또 플리니우스(z)의 아라비아 카나우나에서 흔적을 찾는다고 한다. 플리니우스는 카나우나 근처에 데바다이섬을 두며, 필로스토르기우스(a)는 이를 디부스라고 부른다. 마지막 두 음절을 뒤집으면 아비다의 이름이 남는다고 추정한다. 프톨레마이오스(b)가 아라비아 펠릭스의 사칼리테스 지방에 둔 아비사에도 흔적이 있을 수 있다. 엘다아에 관해 패트릭 주교는 엘라나 성읍—그 이름에서 엘라니테스만과 엘라니타이 사람들이 나왔다—외에는 남은 흔적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c)가 모두 아라비아 펠릭스에 둔 알라타·라타·레아타에도 흔적이 있어 보인다. “이들은 모두 그두라의 자녀들이었다.” 자녀와 손자들을 포함한다. (t) 에우세비우스, 『복음의 준비』 9권 20장 432쪽 인용. (u) 『지리학』 6권 7장. (w) 『교회사』 3권 4절, 478쪽. (x), (y) 위 (u). (z) 『박물지』 6권 28장. (a) 위 (w)의 3절. (b), (c) 위 (u).

25:5

“아브라함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 주었다.” 마지막 유언으로 주었다. 생전에 모든 것을 손에서 내놓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자신을 위한 것과 다른 자녀에게 줄 선물은 남겼다. 종은 리브가의 부모와 친족에게 이미 이 사실을 말했다(창 24:35).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미 주었었다’라고 옮긴다(d). 또는 그때에는 모든 것을 이삭에게 주기로 계획하고 약속했으며, 이제 실제로 실행했다는 뜻이다. (d) 유니우스와 트레멜리우스 및 피스카토르: ‘dederat’, 이미 주었었다.

25:6

“아브라함에게 있던 첩들의 아들들에게는.” 하갈과 그두라를 뜻한다. 두 사람 모두 아내라고도 불리지만(창 16:3), 첩이었다. 그두라도 그렇게 불린다(대상 1:32). 어떤 이들의 번역으로는 ‘첩인 아내들’(e), 곧 부차적인 지위의 아내들이었다. 유대 저술가들은 혼인 관계를 맺었으나 정실처럼 문서로 맺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실이 있으면 그 아래에 있었고 집안의 상급 여종 같은 지위였으며, 자녀는 상속하지 못했다. 아브라함의 첩들에게서 난 아들은 하갈의 이스마엘과 앞서 나온 그두라의 여섯 아들이다. “아브라함이 선물을 주었다.” 넉넉히 가지고 있던 돈과 금과 은이다. 요나단 타르굼은 재산과 옮길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한다. 이스마엘을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이 보냈어도, 나중에는 기억하여 다른 첩의 자녀들과 함께 몫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아들 이삭에게서 떠나보냈다.” 이삭과 가족에게 어려움이 되지 않고, 그와 후손에게 주어진 가나안 땅의 상속을 두고 다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직 살아 있을 때.” 죽은 뒤에는 쉽게 분리할 수 없었겠지만, 살아 있을 때의 권위는 그들에게 무게가 있었다. “동쪽으로, 동쪽 땅으로.” 아브라함이 있던 곳의 동쪽인 아라비아와 주변 지역이다. 사사기 6:3에서 그두라의 후손 미디안 사람들과 함께 나오는 동방 사람들이다. (e) 유니우스와 트레멜리우스 및 피스카토르: ‘concubinarum uxorum’, 첩인 아내들.

25:7

“아브라함이 산 생애의 날들은 이러하다.” 죽음을 앞두고 나이를 기록한다. “175년.” [번역자 주: 길의 바로 다음 풀이 문장에는 ‘170년’으로 적혀 있으나, 인용한 본문과 이어지는 계산은 175년을 기준으로 한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태어났으므로 이제 75세였다. 야곱과 에서는 이삭이 60세에 태어났으므로(창 25:26) 이때 15세였다. 이스마엘은 89세였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왔으므로(창 12:4), 이 땅에서 정확히 100년을 나그네로 지냈다.

25:8

“아브라함이 숨을 거두었다.” 길은 앞선 질병이나 당시의 고통 없이, 노년의 자연스러운 쇠약으로 매우 편안하고 조용하게, 기꺼이 삶을 마친 것으로 이해한다. “복된 노년을 누리고 늙어 죽었다.” 길이로 보아 당시에는 그보다 오래 사는 사람이 드물었다. 삶의 질에서도 노년에 흔히 따라 그 시기를 괴롭다고 부르게 하는 불편과 불이익이 없었다. “햇수가 충만했다.” 원문에는 단지 ‘충만했다’라고 한다. 요나단 타르굼은 ‘모든 좋은 것으로’라고 덧붙인다. 물질적·영적 선으로 가득 차 만족했다는 뜻이다. 또는 삶을 충분히 누려 기꺼이 떠나고, 다른 더 좋은 세상을 향한 소망으로 충만했다는 뜻이다. “자기 백성에게로 모였다.” 매장을 뜻하지 않는다. 그가 묻힌 무덤에는 사라의 몸만 있었기 때문이다. 영혼이 몸과 분리되자 하늘의 상태로 들어가,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 즉시 함께하게 된 것을 뜻한다. 아랍 저술가들(f)은 세계 창조 후 3563년 니산월에 죽었다고 하며 다른 이들은 아달월이라 한다. 그러나 어셔 주교의 계산으로는 세계 창조 후 2183년, 그리스도 이전 1821년이다. (f) 엘마키누스 34쪽; 파트리키데스 21쪽; 호팅거, 『동방의 스메그마』 315쪽 인용.

25:9

“그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막벨라 굴에 그를 장사했다.” 이삭은 동생이지만 먼저 나온다. 아브라함의 정실인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태어났고, 이스마엘은 첩인 여종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이삭은 물질적 재산뿐 아니라 메시아에 관한 약속의 상속자였으며 이스마엘은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모든 면에서 더 높은 지위였다. 이스마엘과 이삭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전자가 후자를 박해했지만, 이제는 차이가 해소되고 화해한 듯하다. 적어도 아버지에게 마지막 공경을 드리는 일에서는 뜻을 모았다. 이스마엘은 집에서 쫓겨났어도 아주 멀리 살지는 않았고 아버지와 연락을 유지했다. 아버지도 그를 잊지 않았음은 6절에서 분명하다. 그 역시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사랑을 간직했다. 야르키는 여기서 그가 회개한 선한 사람이었다고 결론짓는다. 형제들이 장사한 장소는 막벨라 굴이었다. “마므레 맞은편, 헷 사람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 창세기 23:8 참조. 그러므로 길은 아브라함의 무덤이 메카에 있다는 이슬람 전승(g)을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한다. 저자가 인용한 설명에서는 그 무덤을 당시 메카의 성전에서 약 열두 걸음 떨어진, 철책으로 둘러싸인 곳이라고 보여 주었다. (g) 피츠, 『마호메트교의 종교에 관한 기록』 7장 93쪽.

25:10

“아브라함이 헷 자손에게서 산 밭.” 그들 중 에브론에게 샀고 나머지는 증인이었다(창 23:16). “그곳에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가 묻혔다.” 사라는 38년 전에 묻혔으며, 이것이 아들들이 아브라함도 그곳에 장사한 이유였다. 창세기 24:62를 보면 그가 브엘세바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곳에서 헤브론까지는 16마일이었으므로(h), 매장하려고 그만큼 운구했다. (h) 번팅, 『여행기』 57쪽.

25:11

“아브라함이 죽은 뒤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 물질적인 복과 영적인 복을 더욱 풍성히 주셨다. 아브라함이 죽어도 이삭과 세우실 언약을 잊지 않으셨음을 보여 준다(창 17:19). “이삭은 라해로이 우물 곁에 살았다.” 브엘세바 광야와 이스마엘이 살던 바란 근처였으므로 둘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창 16:14 참조).

25:12

“이것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계보다.” 후손의 족보이다. 여호와께서 후손을 많게 하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잊지 않으셨음을 보여 주려고 기록한다(창 16:10). “사라의 여종인 이집트 사람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 창세기 16:1 참조.

25:13

“이것은 이스마엘 아들들의 이름이다.” 다음에 나오는 이름들이다. “그 이름과 태어난 순서대로.” 출생 때 붙인 이름을 태어난 순서에 따라 나열한다. “이스마엘의 맏아들 느바욧.” 이사야 60:7에 나오며, 아랍의 나바테아 사람들과 그 나라 나바테아가 여기서 이름을 얻었다. 요세푸스(i)는 유프라테스에서 홍해까지의 모든 땅을 나바테네라 부른다고 한다. 후손은 아라비아 데세르타와 페트라이아 일부에서 아라비아 펠릭스 입구까지 살았다. 스트라본(k)은 나바테아인을 아랍인에 포함하고, 아라비아 페트라이아의 수도 페트라를 나바테아 페트라 또는 아랍 나바테아인의 페트라라고 부른다. 그들은 시리아 근처에 살며 자주 침입했다고 한다. 또한 나라에 인구와 목초지가 풍부했다고 하므로 이사야 60:7의 ‘느바욧의 숫양’이 이해된다. 플리니우스(l)도 그들을 아라비아에 두고 페트라 성읍에 살며 시리아와 경계를 이룬다고 한다. “게달.”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이다. 이사야는 그 후손과 나라를 아라비아에 포함한다(사 21:13). 아랍인이라는 사실이 너무 잘 알려져 유대 문헌에서 아랍어를 흔히 ‘게달의 언어’라고 부른다. 플리니우스(m)의 케드레이이며, 나바테아인과 가까이 있는 민족으로 함께 언급된다. 실제로 같은 아라비아 페트라이아에서 장막 생활을 하며 목축으로 살았기에 때로 스케니테스라 불렸다. 아가 1:5은 게달의 장막을 언급한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n)가 사라센이라 부른 장막 거주 아랍인들이다. “아드브엘과 밉삼.”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으며 이름의 흔적도 없다. 다만 프톨레마이오스(o)가 아라비아 펠릭스 근처에 둔 아구베니가 관련될 수 있다. (i) 『유대 고대사』 1권 12장 4절. (k) 『지리학』 16권 528, 534, 536쪽. (l) 『박물지』 5권 11장; 6권 28장; 12권 17장. (m) 같은 책 5권 11장. (n) 22권 228쪽; 23권 250쪽, 발레시우스 판. (o) 『지리학』 5권 19장.

25:14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 미스마와 맛사 및 그 후손에 관한 다른 기록은 없다. 다만 프톨레마이오스(p)가 아라비아 펠릭스 근처에 둔 마사니가 맛사에게서 나왔을 수 있다. 두마는 이사야가 말한 두마와 같은 듯하다. [번역자 주: 원문 연결은 ‘창 21:11’이나 이사야 21:11을 뜻한다.] 이스마엘 후손 일부가 정착한 아라비아 데세르타에는 프톨레마이오스(q)의 두마이타라는 곳이 있으며, 이 아들에게서 이름을 얻었을 수 있다. 요나단 타르굼은 세 이름을 ‘듣기, 침묵, 인내’로 옮긴다. 유대인들은 어떤 일은 듣되 말하지 않고 참아야 한다는 격언으로 사용한다. 이스마엘이 자녀의 이름으로 이런 교훈을 가르치려 했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p) 원문 표기: 『지리학』 16권 528, 534, 536쪽. (q) 같은 책.

25:15

“하달과 데마.” 프톨레마이오스(r)의 아라비아 페트라이아의 아드라와 아라비아 데세르타의 템마가 각각 이들에게서 이름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아라비아 펠릭스의 아다리 성읍과 아트리타이 사람들(s)이 관련될 수 있다. 데마 땅 주민들은 아랍인으로 언급된다(사 21:13). 플리니우스(t)는 고대인들이 나바테아인과 함께 분류한 티마네아 사람들을 말한다. 욥기의 데마 대상들이 이 민족이었다(욥 6:19). 어떤 이들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도(욥 2:11) 에서의 손자 데만의 후손이 아니라 이 사람의 민족과 나라에 속했다고 본다. “여두르와 나비스와 게드마.” 마지막 세 아들이다. 처음 둘은 이스마엘 사람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하갈 사람들 가운데 포함된다(대상 5:19). 여두르에게서 이두래 사람들이 나왔고, 플리니우스(u)는 그들을 코일레시리아에 둔다. 스트라본(w)은 이두래아를 아라비아와 함께 말한다. 베르길리우스(x)의 이튀레아 사람들은 활로 유명하다. 이스마엘과 그 후손이 모든 시대에, 저자 당시까지도 활쏘기로 유명한 것과 같다. 창세기 21:20의 길 주석 참조. 나비스와 게드마의 후손에 관한 다른 기록이나 이름의 흔적은 없다. 다만 예레미야 49:28의 동방 사람들, 곧 게뎀 사람들이 게드마의 후손일 수 있다.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 게달의 후손과 함께 나오므로 가능성이 있다. 레바논 근처 누바이 사람들은 나비스에게서 나왔을 수도 있다. (r) 『지리학』 5권 17, 19장. (s) 같은 책 6권 7장. (t) 『박물지』 6권 28장. (u) 같은 책 5권 23장. (w) 『지리학』 16권 520쪽. (x) 『농경시』 2권 448행.

25: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다.” 13절 이하에서 말한 열두 아들이다. “그들의 마을과 요새에 따른 이름이다.” 마을과 요새도 그 이름으로 불렸다. 앞의 주석처럼 일부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추적할 수 있다. “민족에 따른 열두 지도자.” 부족의 지도자 또는 우두머리 열둘이며, 이후에도 그렇게 이어졌다. 창세기 17:20에 예언이 있고 여기 성취가 있다.

25:17

“이스마엘이 산 햇수는 137년이었다.” 137세였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죽은 뒤 48년을 더 살았다(창 25:8). 아버지만큼 오래 살지는 못했으나 상당한 나이에 이르렀다. 창세기 25:7의 길 주석 참조. “그가 숨을 거두고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모였다.” 아버지에게 쓴 것과 같은 표현들(25:8) 때문에, 어떤 이들은 회개한 선한 사람으로 죽어 같은 백성에게 합류했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에게 쓰인다.

25:18

“그들은 하윌라에서 수르까지 살았다.” 이스마엘의 후손의 나라가 한 곳에서 다른 곳까지 이어졌다는 뜻이다. 요나단과 예루살렘 타르굼처럼 인도에서 칼루자까지가 아니다. 동쪽은 하윌라 광야, 서쪽은 수르 광야라 불리는 광대한 아라비아 사막을 동서로 차지했다. “이집트 앞쪽이며 아시리아로 가는 길에 있는 곳.” 마지막 장소인 수르는 이집트 맞은편에 있고 아시리아로 가는 길이 놓인 지역과 접했다. “그가 모든 형제들 앞에서 죽었다.” 형제들이 임종에 함께 있었거나, 그들과 평화롭고 번영하는 가운데 죽었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은 앞에서 말했고 여기서는 후손의 거주지를 설명하므로 ‘그 몫이 형제들 앞에 떨어졌다’라고 읽을 수 있다(y). 그의 몫 또는 후손의 거처가 한쪽의 형제 이집트인과 다른 쪽의 이스라엘인 사이에 배정되었다는 것이다. 또는 동쪽 그두라의 아들들과 서쪽 이삭의 후손 사이였다는 뜻이다. (y) 슈미트 ‘그에게 거처가 떨어졌다’; 아벤 에즈라·킴히·벤 게르솜·벤 멜렉 ‘그의 몫이 떨어졌다’.

25:19

“이것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계보다.” 모세는 이스마엘과 그 후손의 계보를 제시한 뒤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 이삭에게 돌아온다. 이후의 역사는 전부는 아니어도 주로 이삭과 그 자녀들에 관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 이삭이 그의 참된 적법한 아들임을 더욱 확증하려고 덧붙인 말이다.

25:20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맞을 때 40세였다.” 어머니가 죽은 지 3년 뒤였다. 사라가 90세에 그를 낳았으므로 사라가 죽을 때 그는 37세였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리브가가 14세였다고 하지만 더 나이가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밧단아람의 아람 사람 브두엘의 딸.” 다마스쿠스의 아람 등 다른 아람과 구별하려고 밧단아람이라 부른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사이의 아람 나하라임, 곧 메소포타미아와 같은 듯하다. 야르키는 타르굼을 근거로 밧단이 ‘둘’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와 아벤 에즈라 등이 말하듯 아랍어에서는 ‘들’을 뜻한다는 편이 더 낫다. 여기서는 호세아 12:12처럼 시리아의 들이나 지방을 가리킨다. 브두엘과 라반이 살던 곳은 시리아 또는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이었다(창 28:5). 프톨레마이오스(z)가 메소포타미아에 둔 아파다나와 아파다나라는 성읍들에 밧단의 이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람 사람 라반의 누이.” 라반은 브두엘의 아들이다. 두 사람이 아람 사람이라 불리는 것은 그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본래는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후손인 갈대아 사람들이며, 두 형제는 모두 갈대아 우르 출신이었다. 야곱도 같은 곳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람 사람이라 불린다(신 26:5). (z) 『지리학』 5권 18장.

25:21

“이삭이 아내를 위해 여호와께 간구했다.” 야르키가 지적하듯 이 단어는 매우 간절하고 끈기 있게 구했다는 뜻이다. 또는 ‘아내 앞에서’(a), 아내가 함께하며 같이 기도했다는 뜻일 수 있다. “그녀가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거의 20년이 지났으므로 분명해졌다(25:26). 유대 저술가들(b)은 20년 뒤 이삭이 아내를 데리고 자신이 결박되었던 모리아산으로 가서 임신하도록 기도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여호와께 아뢰었다는 것이다(22:17).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 주셨다.” 요청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계획하고 약속하셨지만, 그들이 이를 이루어 달라고 구하기를 원하신다. “아내 리브가가 임신했다.” 이어지는 내용처럼 한 번에 두 아들을 품었다. (a) 뮌스터와 파기우스: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b) 『피르케 엘리에제르』 32장; 해당 구절의 요나단 타르굼; 『샬셸레트 하카발라』 3쪽 앞면.

25:22

“아이들이 태 안에서 서로 다투었다.” 태동을 느낄 때로, 출산보다 얼마 전이었다. 임신한 여자가 보통 느끼는 움직임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었다. 두 아이가 주도권을 잡거나 제때가 되기 전에 먼저 나오려는 듯 서로 다투었다. 마음의 불안뿐 아니라 몸의 통증도 크게 주었다. 이는 에서와 야곱의 장래 차이와 후손들의 다툼, 모든 시대의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사이의 적대와 싸움, 모든 선한 사람 안의 육체와 성령의 충돌을 상징했다. “그녀가 ‘이렇다면 나는 왜 이런가?’라고 말했다.” 같은 처지의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면 왜 자신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가라는 뜻일 수 있다. 아벤 에즈라는 리브가가 다른 여자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 물었으나 없다고 답했다고 추정한다. 또는 아이들이 다투다가 서로 죽이거나 유산되어 자신까지 죽게 한다면 왜 임신을 그렇게 원하고 기도했느냐는 뜻일 수 있다. 야르키도 그렇게 풀이한다. ‘이럴 것이라면 나는 왜 이런가?’(c). 왜 이렇게 불행한 상태에서 아무 소득 없이 큰 고통을 겪는가? 왜 임신하여 오래 짐을 지고도 끝내 해산하지 못하거나 살아 있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가? 모든 기도와 수고가 헛되었다는 탄식이다. “그녀가 여호와께 물으러 갔다.” 요나단과 예루살렘 타르굼 및 야르키는 위대한 셈의 학교로 갔다고 한다. 아랍 저술가들(d)은 멜기세덱에게 물었다고 한다. 아벤 에즈라는 어떤 예언자 또는 이 사건 뒤 15년 더 살았던 아브라함에게 물었다고 본다. 경건함과 예언자로서의 명성 때문에 특정인을 찾아갔다면, 하나님의 친구로 친밀히 교제하고 비밀을 계시받은 아브라함이 가장 그럴듯하다. 그러나 단지 적절하고 조용한 곳에 가서 일어난 일의 이유를 알려 달라고 기도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또는 사람들이 기도하던 공적 예배 장소로 가서, 그 일을 맡은 이들을 통해 물었을 수도 있다(시 73:17 참조). (c) 티구리나역·몬타누스·파기우스: ‘왜 내가 이런가?’ (d) 파트리키데스, 호팅거 『동방의 스메그마』 335쪽 인용; 아불 파라지, 『왕조사』 15쪽.

25:23

“여호와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 가운데 리브가가 사정을 알리고 대신 구해 달라고 부탁한 사람을 통해, 또는 그녀의 마음에 직접 감동을 주어 말씀하셨을 것이다. “두 민족이 네 태 안에 있다.” 두 민족이 나올 두 사람을 뜻한다. 에서에게서 에돔, 야곱에게서 이스라엘이 나온다. “두 종류의 백성이 네 몸에서 나와 갈라질 것이다.” 몸과 피부빛, 생활 방식과 종교, 거주지가 다를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에서의 후손 에돔은 매우 강했고 지도자와 왕들이 잇달아 있었다.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전,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때부터 그랬다(창 36장 참조). 그러나 뒤에는 이스라엘이 더 강해졌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다.” 맏아들 에서의 후손이 작은아들 야곱의 후손에게 조공을 바칠 것이다. 다윗이 에돔을 복속시켰을 때 이루어졌다(삼하 8:14). 히르카누스 때에는 더 크게 이루어졌다. 에돔 또는 이두매아 사람들이 나라에서 쫓겨나느니 유대교를 받아들여 유대인과 하나의 민족이 되었기 때문이다(e). 마지막 날 오바댜 1:18 이하의 예언이 이루어질 때 더 성취될 것이다. 사도 바울의 이 구절 사용에 관해서는 로마서 9:11-12의 길 주석을 보라. (e)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3권 9장 1절.

25:24

“해산할 날들이 찼을 때.” 임신부터 아홉 달이 지났다는 뜻이다. 요나단 타르굼은 임신한 270일이 완료되었을 때라고 한다. “보라, 태 안에 쌍둥이가 있었다.” 산파가 이를 알았다. 두 배의 은혜, 구한 것보다 많은 것을 받았다. 아마 한 아이를 구했지만 둘을 받은 것이다.

25:25

“먼저 나온 아이는 붉었다.” 몸이 붉었거나, 오히려 몸을 덮은 털이 붉었다는 뜻이다. 야르키는 이를 피를 흘리게 하는 사납고 잔인한 사람이 될 표시로 보며, 길도 에서와 후손이 그랬다고 설명한다. “온몸이 털옷 같았다.” 털로 만든 옷처럼 빽빽하게 온몸에 털이 있었다. 육체의 힘뿐 아니라 거친 성향의 표시였다. “그들이 이름을 에서라 했다.” 부모와 출생 때 함께 있었던 이들, 털로 덮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이름은 몸이나 털의 색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 말은 ‘붉다’가 아니라 ‘만들다’와 관련되며 ‘만드는 자’를 뜻한다. 형제보다 먼저 길을 만들어 나왔거나, 훗날 활동적인 사람이었거나, 털 때문에 아이보다 성인에 가깝게 ‘만들어져’ 태어났다는 것이다. 타르굼은 ‘머리털과 수염과 치아와 어금니까지 모두 완전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주된 이유는 털이 많음이다. 아랍어에서 에서는 ‘덮였다’를 뜻하며(f), 그는 털로 덮였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 언어에 낙타털로 만든 털옷을 뜻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g). (f) 카스텔, 2930단: ‘덮다, 가리다’. (g) 슈토크, 923쪽 참조.

25:26

“그 뒤에 동생이 나왔다.” 스스로 힘을 쓰거나 산파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의 태에서 나왔다.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았다.” 뒤로 끌어당기고 먼저 나오려는 모습이었다. 우연이 아니라 섭리로 정해졌으며 의미와 신비가 담겼다. “그 이름을 야곱이라 했다.” 부모와 다른 이들이 그렇게 불렀다.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는 이유이며 이름에 그 뜻이 있다. 에서도 창세기 27:36에서 이를 염두에 둔다.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 이삭은 60세였다.” 결혼한 지 20년 뒤였다. 자신에게서 나올 약속의 자손에 관해 그토록 오래 믿음이 시험받고 훈련되었다.

25:27

“아이들이 자랐다.” 키가 자라고 힘이 생겨 일할 만해지자 서로 다른 일을 택했다.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인 들사람이었다.” 때때로 이삭도 하던 밭 갈고 씨 뿌리는 일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들을 돌아다니며 짐승과 새를 사냥하기를 택했다는 뜻이다. 매우 능숙하여 덫과 올무를 고안했다. 활동적이고 사납고 거친 기질에 가장 맞는 생활이었다. 요나단 타르굼에 따르면 니므롯과 그 아들 헤녹 같은 사람도 사냥하여 죽였다. “야곱은 평온한 사람이었다.” 마음과 말이 일치하는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 남을 괴롭히지 않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경건하고 진실하며 올바르고 온전했다. 참된 은혜와 거룩함이 그 안에 있고 구속주의 완전한 의가 그를 덮었다. “장막에 살았다.” 집에 머물며 집안일을 돌보았다는 뜻일 수 있다. 뒤에서 죽을 끓이는 모습도 나온다(25:29). 그러나 오히려 목자로서 목초지를 따라 옮길 수 있는 장막에 살았다는 목축 생활을 뜻할 것이다. 야르키는 ‘셈의 장막과 에벨의 장막에서’라고 풀이한다. 요나단 타르굼도 ‘셈의 학교에서 섬기며 주님께 가르침을 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진리와 의의 교훈을 배우려고 한동안 머물던 학생이었다는 뜻이다.

25:28

“이삭은 에서가 잡은 고기를 먹었으므로 그를 사랑했다.” 야곱보다 더 사랑했다. 맏아들이라서뿐 아니라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가져와 요리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문은 ‘사냥한 것이 그의 입에 있었기 때문에’(h)이며, 입에 넣은 고기가 입맛에 매우 맞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 집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고 성품이 온화했으므로 에서보다 더 사랑했다. 특히 선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했고, 신탁을 통해 복과 약속이 그에게 속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h) 파그니누스와 몬타누스: ‘quia venatio in ore ejus’, 사냥한 것이 그의 입에 있었기 때문에.

25:29

“야곱이 죽을 끓였다.” 국을 끓였다는 뜻이다. 늘 하던 일이 아니라 어느 때 이렇게 했다. 요나단 타르굼은 아브라함이 죽은 날이었다고 한다. 34절에 따르면 렌즈콩으로 만들었는데, 유대 저술가들(i)은 이것을 상중인 사람의 음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때 야곱이 렌즈콩 죽을 끓인 이유가 설명된다. 또한 그들은 이때 야곱과 에서가 15세였다고 계산한다(k).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얻었고 이삭은 60세에 아들들을 얻었으며,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았으므로 죽을 때 두 아이는 15세였다.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 기진맥진했다.” 먹지 못하고 사냥으로 지쳤다. 애쓰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면 더 그랬을 것이다. (i) 『피르케 엘리에제르』 35장. (k) 『세데르 올람 라바』 3쪽; 『샬셸레트 하카발라』 5쪽 앞면.

25:30

“에서가 야곱에게 ‘부탁하니 저 붉은 죽을 먹여 다오’라고 말했다.” 또는 ‘저 붉은 것, 저 붉은 것’(l)이다. 무엇이며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몰라 색으로만 불렀다. 단어를 반복한 것은 매우 붉다는 뜻일 수도 있고, 배고파 탐내며 급히 짧게 되풀이한 것일 수도 있다. 34절에 따르면 렌즈콩 죽이었다. 렌즈콩이 풍부한 이집트에서 널리 먹던 음식이다. 특히 알렉산드리아가 유명하여 다른 나라로 수출했다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전한다(m). 베르길리우스(n)와 마르티알리스(o)는 이집트의 펠루시움 렌즈콩을 언급한다. 세르비우스(p)에 따르면 그곳에서 처음 발견되었거나 가장 잘 자랐기 때문에 유명했다. 미슈나(q)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이집트 렌즈콩을 말한다. 플리니우스(r)는 이집트의 두 종류를 언급하고, 이것을 먹으면 성품이 차분하고 온화하고 인내심 있게 된다는 기록을 다른 저자들에게서 읽었다고 한다. 또 붉은 흙이나 적토·황토가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고 지적한다(s). 거기서 붉은빛을 받아 죽도 그런 색이 될 수 있다. 쇼 박사(t)는 렌즈콩이 쉽게 풀어져 초콜릿색의 죽이나 국이 되며 동방에서 많이 먹는다고 한다. 쇼이히처(u)는 커피도 콩의 한 종류로 렌즈콩과 비슷하고 붉은 달인 물을 만든다고 관찰한다. 아테나이오스(w)가 전하듯 달고 맛있는 데다 색도 에서의 마음에 들었다. 특히 배고프고 지쳤기에 동생에게 조금 주고 직접 먹여 달라고 했다. “나는 기진맥진하다.” 스스로 먹을 수 없을 만큼 지쳤거나, 적어도 즉시 먹을 것이 필요하여 평소 먹던 음식을 조리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에돔이라 불렀다.” 붉은 털이 아니라 붉은 죽에서 나온 이름이다. 에돔은 ‘붉다’라는 뜻으로 피루스와 루푸스 같은 이름이다. (l) 파그니누스·몬타누스·드루시우스, 피스카토르·슈미트도 같은 뜻. (m) 『시편 46편 주석』, 저작집 8권 174쪽. (n) 『농경시』 1권 228행. (o) 13권 경구 9편. (p) 위 베르길리우스 구절 주석. (q) 미슈나 「켈림」 17장 8절. (r) 『박물지』 18권 12장. (s) 같은 책 17장. (t) 『여행기』 제2판 140쪽. (u) 『성서 자연학』 1권 78쪽. (w) 『현자들의 식탁』 4권 14–15장.

25:31

“야곱이 ‘오늘 형의 장자권을 내게 파시오’라고 말했다.” 장자권에는 많은 특권이 따랐다. 집안에서 부모 다음의 명예와 권위, 유산의 두 몫, 어떤 이들이 말하지만 논쟁이 있는 제사장직의 수행, 부모의 축복이 있었다. 특히 여기서는 메시아에 관한 약속과, 하늘의 상속을 예표하는 가나안 땅의 상속 약속이 포함되었다. 리브가는 신탁을 통해 이것들이 야곱을 위해 정해졌음을 알았고, 틀림없이 야곱에게도 알려 기회가 있으면 형과 장자권을 넘기는 일을 의논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아마 전에 에둘러 이야기한 적이 있었고, 에서는 자기 권리에 무관심하며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그것을 넘길 마음이 들게 할 기회가 오자 야곱은 붙잡았다. 더 미루지 말고 지금 즉시, 죽을 먹기 전부터 팔라고 요구했다. 형의 절박한 필요를 이용한 것이다. 또는 야르키처럼 ‘낮처럼 내게 파시오’(x), 곧 거래를 대낮처럼 분명하게 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조건을 명백하고 완전하게 정하여 나중에 다투거나 취소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표현을 쓰는 33절을 보면 앞의 ‘오늘’이라는 해석이 더 낫다. (x) 파기우스와 드루시우스: ‘이 날에 맞추어’.

25:32

“에서가 ‘보라, 나는 죽을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또는 ‘죽으러 가고 있다’(y), 모든 육체가 가는 길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연약함과 죽을 운명, 짧은 생애를 두고 한 말일 수 있다. 아벤 에즈라의 제안처럼 사냥하며 늘 생명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현재의 배고픔과 탈진을 즉시 해결하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라이트풋 박사(z)는 다음 장의 기근이 이미 있던 때로 본다(26:1). “장자권이 내게 무슨 이익인가?” 죽어 가는 사람이나 죽은 뒤의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다. 그런 경우 그 특권은 자연히 야곱에게 돌아갈 것이다. 아브라함과 후손에게 주신 메시아와 가나안 땅의 약속은 너무 먼 일로 보였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누리지 못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래를 믿기보다 현재의 이익을 챙기고 손에 잡히는 것을 얻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 말은 제안된 조건으로 장자권을 넘길 뜻이 전적으로 있음을 나타냈다. (y) 몬타누스: ‘죽으러 가는’. (z) 『저작집』 1권 15, 696쪽.

25:33

“야곱이 ‘오늘 내게 맹세하시오’라고 말했다.” 거래를 더 확실히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맹세로 장자권을 평온하게 누리도록 보장하고, 취소하거나 다투거나 소유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 “그가 야곱에게 맹세했다.” 거래를 지키고 그 문제로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로써 가능한 한 확실하게 야곱에게 넘겼다. 장자권과 복과 약속이 야곱에게 돌아가기를 뜻하신 하나님 자신을 증인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그가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았다.” 모든 특권과 부속 권리를, 히브리서 12:16처럼 한 입의 음식을 위해 팔았다.

25:34

“야곱이 에서에게 빵과 렌즈콩 죽을 주었다.” 죽의 재료를 밝혀 준다. 30절 참조. 또한 죽뿐 아니라 빵도 주어 요청하고 거래한 것보다 더 주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거래와 맹세를 마치고 장자권을 확보하기 전에는 어느 것도 주지 않았다. 에서는 영리하고 야곱은 순박하고 평온했지만, 이번에는 야곱의 꾀가 에서를 앞섰다. “그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 자기 길로 갔다.” 양심의 가책이나 반성이나 회개 없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훗날 내준 복을 눈물로 간절히 구했지만, 아버지가 임종에 가까웠다고 여길 때에야 그랬다(히 12:17). “이처럼 에서는 장자권을 멸시했다.” 너무 낮은 값을 매겼고 그 뒤에도 회개하지 않았다. 특히 영적인 복과 메시아, 그리스도를 통한 하늘의 상속과 영원한 영광과 행복을 돌아보지 않았다. 예루살렘 타르굼은 ‘오는 세상에서 자기 몫을 멸시하고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했다’라고 덧붙인다. 창세기 25:29의 요나단 타르굼은 ‘그날 다섯 가지 죄를 범했다. 이방 예배, 곧 우상 숭배를 하고, 무죄한 피를 흘리고, 약혼한 처녀와 동침하고, 오는 세상의 생명 곧 내세를 부인하고, 장자권을 멸시했다’라고 한다. 길은 이를 음행하는 자이며 속된 사람이라는 사도의 묘사를 뒷받침하는 전승으로 제시한다(히 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