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 — John Wesley
12:1
여기에는 아브람을 태어난 땅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끄신 부르심이 나온다. 이 부르심은 그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위해 그를 따로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의 정황은 스데반의 설교(사도행전 7:2)를 통해 좀 더 알 수 있다. 첫째, 영광의 하나님께서 나타나 그를 부르셨다. 아브람이 의심할 여지가 없도록 영광을 드러내며 나타나신 것이다. 이후 하나님은 여러 방식으로 그에게 말씀하셨지만, 처음 관계를 맺으실 때에는 영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말씀하셨다. 둘째, 이 부르심은 그가 하란에 거주하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주어졌다. 그는 순종하여 갈대아 땅을 떠나 하란, 곧 카란에서 약 5년을 살았다. 그 후 아버지가 죽자, 새로 주어진 명령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옮겨 갔다. 어떤 이들은 하란도 갈대아에 속했으므로 여전히 아브람의 고향 땅 일부였다고 생각한다. 또는 그가 5년 동안 머물면서 그곳을 고향처럼 여기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그곳이 목적지가 아님을 알려 주셨을 수도 있다. “너의 고향을 떠나라.” 이 명령은 그가 태어난 땅과 가장 사랑하는 벗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하나님과 함께 가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떠날 수 있는지를 시험했다. 고향은 우상을 섬기는 곳이 되었고, 친족과 아버지의 집은 끊임없는 유혹이었다. 함께 머물면 그들의 영향을 받을 위험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떠나라는 것이다. 웨슬리는 이 히브리어 명령을 라틴어 ‘vade tibi’로 풀이하며, “속히 떠나라. 목숨을 위해 피하라. 뒤돌아보지 말라”는 뜻으로 설명한다. 또한 이 명령은 눈에 보이는 범위를 넘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시험했다. 그는 자기 땅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땅으로 가야 했다. 이때 하나님은 “내가 네게 줄 땅”이라고도, 그 땅이 어디인지 또는 어떤 땅인지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아브람은 조건을 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야 했다. 고향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른다고 해서 손해 보지 않으리라는 구체적인 보장은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신뢰해야 했다.
12:2
여기에는 격려의 약속, 더 정확히는 여러 약속이 함께 덧붙는다. “내가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자기 민족에게서 떠나게 하시면서 다른 민족의 시조로 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자녀가 없던 아브람의 근심을 크게 덜어 주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의 믿음에는 큰 시험이었다. 아내가 오랫동안 임신하지 못했으므로, 그는 바랄 수 없는 가운데서도 믿어야 했다. 그의 믿음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일으키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만 기초해야 했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특별히 아담과 노아에게 주신 것처럼 자손이 번성하는 복을 뜻할 수 있다. 또는 위의 샘과 아래의 샘에서 오는 온갖 복, 곧 모든 종류의 복을 뜻할 수 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 조상에게 받는 것보다 더 좋은 아버지의 복을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것이다. “네 이름을 크게 하겠다.” 고향을 떠나면 그곳에서의 명성을 잃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셈이다. “그것을 걱정하지 말고 나를 신뢰하라. 그곳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큰 이름을 주겠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그가 머무는 곳마다 그의 삶이 복이 된다는 뜻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겠다.” 이는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일종의 공수 동맹과 같았다. 아브람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편에 섰고, 하나님은 아브람의 일을 자신의 일로 돌보겠다고 약속하셨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나머지 모든 약속의 정점이다. 모든 약속이 ‘예’와 ‘아멘’이 되는 메시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12:4
“이에 아브람이 떠났다.” 그는 하늘에서 주어진 환상에 불순종하지 않았다. 지체 없이 신속하게, 따지거나 다투지 않고 겸손히 순종했다.
12:5
“그들이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 웨슬리는 이것을 그들이 참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이끌고 가나안에 함께 가도록 설득한 개종자들로 이해한다. 한 랍비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이 하나님의 위엄 어린 날개 아래로 모아들인 영혼들이었다.
12:6
“그때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있었다.” 아브람이 도착했을 때 그 땅은 가나안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좋은 이웃이 되어 줄 것 같지 않았다. 기록으로 보아, 그들의 허락 없이는 장막을 칠 땅조차 얻지 못했던 듯하다.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 아마 환상 가운데 나타나 위로의 말씀을 주셨을 것이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 어떤 장소나 형편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방문을 가로막지 못한다. 아브람은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정착하지 못한 나그네였지만, 그곳에서도 살아 계시며 자신을 보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원수들은 우리를 장막이나 제단에서 떼어 놓을 수는 있어도, 우리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을 수는 없다.
12:8
“그는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를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보라. 첫째, 특별한 계기에 드린 예배였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바로 그때, 바로 그곳에서, 아브람은 자신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제단을 쌓았다. 은혜롭게 찾아와 약속해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감사로 인정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신뢰하고 의지함을 드러냈다. 둘째, 이것은 어디로 옮기든 계속한 습관이었다. 아브람은 가나안에 도착하자마자, 비록 낯선 나그네였지만 자기 가정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세우고 이어 갔다. 그의 장막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제단이 있었고, 그 제단은 기도로 거룩하게 구별되었다.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이는 가나안 사람들의 죄악을 벌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아브람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자신을 가나안으로 데려오신 하나님이 그곳에서도 먹여 살리실 것을 신뢰할 수 있는지,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지 않아도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지를 시험받았다.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갔다.” 한 곳이 부족할 때 다른 곳에는 풍족함이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돌보심을 보라. 우리는 큰 몸의 지체들처럼 서로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12:13
“당신은 내 누이라고 말해 주시오.” 아브람에게 가장 두드러진 은혜의 열매는 믿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두 번이나 나타나셨는데도, 그는 불신앙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불신으로 이처럼 넘어졌다. 아, 백향목조차 이렇게 흔들린다면 버드나무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12:17
“여호와께서 바로와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다.” 특히 사래를 바로에게 칭찬한 고관들에게 재앙이 임했을 것이다. 어떤 재앙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재앙 자체에, 또는 그와 함께 주어진 설명에, 사래 때문에 재앙을 받았음을 확신하게 할 만한 무엇인가가 있었음은 틀림없다.
12:18
“당신이 나에게 한 이 일이 무엇이오?” 얼마나 잘못된 일이며, 지혜롭고 선한 사람에게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행동인가! [영어 배포본의 ‘wife and good man’은 문맥상 ‘wise and good man’의 오자로 보고 옮겼다.] “왜 그 여인이 당신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소?” 알았다면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근거 이상으로 남을 의심하는 잘못은 흔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서 예상보다 더 큰 덕과 명예심과 양심을 발견하곤 한다. 그런 예상이 빗나가는 것은 기뻐할 일이다. 여기서 아브람도 바로가 자기 생각보다 더 나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12:20
“바로가 자기 사람들에게 아브람에 관해 명령했다.” 어떤 일에서도 그를 해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뜻이다. 또한 기근이 지난 뒤 아브람이 돌아가고자 할 때, 호위하여 그 나라 밖까지 안전하게 인도하도록 사람들을 정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