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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15

창세기 15장 — John Wesley

15:1

“이 일들 후에.” 아브람이 이웃들을 구출하는 너그러운 사랑의 행동을 한 뒤,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찾아오셨다. 네 왕을 이긴 승리에 지나치게 들뜨지 않도록,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그를 위해 준비해 두셨다고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했다.”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뜻이다. 아브람은 깨어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한다는 것을 감각으로 알아볼 만한 표지가 있었음을 전제한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패주시킨 네 왕이 다시 군대를 모아 덮칠까 두려웠을 수 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보복도 이웃의 시기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돌보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네 방패다.” 강조하여 옮기면 “내가 너에게 방패가 되어, 네 곁에서 실제로 너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 자신이 백성을 파괴하는 모든 악에서 보호하는 방패이시며, 언제나 준비되어 그들을 둘러 지키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을 어지럽히는 모든 두려움이 잠잠해져야 한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하나님은 상을 주시는 분일 뿐 아니라 상급 그 자체이시다. 하나님 자신이 거룩한 영혼들의 행복이며, 그들이 받을 기업과 잔의 몫이시다.

15:3

“보십시오. 주께서 제게 자손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들만 없는 것이 아니라 자손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딸이 있었다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약속된 메시아가 그 딸에게서 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는 아들도 딸도 없었다.

15:5

“그를 밖으로 이끄셨다.” 아마 이른 아침이었던 듯하다.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세어 보아라. 네 자손도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첫째, 셀 수 없이 많으리라는 뜻이다. 별들은 보통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 아브람은 자녀를 하나도 얻지 못할까 두려워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후손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질 것이라 하셨다. 둘째, 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존귀하리라는 뜻이다. 영광이 그들에게 속했기 때문이다(로마서 9:4). 육신에 따른 아브람의 자손은 땅의 티끌 같지만(창세기 13:16), 영적인 자손은 하늘의 별과 같다.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다.” 하나님께서 지금 하신 약속이 참됨을 믿고, 약속하신 분의 능력과 신실하심에 의지했다는 뜻이다. 사도가 이 믿음을 높이 평가하여 변함없는 본보기로 제시하는 것을 보라(로마서 4:19–21).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고 약속 앞에서 흔들리지 않았으며, 믿음으로 강해져 온전히 확신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도 이런 믿음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란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졌고, 믿음을 통해 의로운 사람이라는 증언을 얻었다는 뜻이다(히브리서 11:4). 신약은 이를 근거로 우리가 율법의 행위 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가르친다(로마서 4:3; 갈라디아서 3:6). 아브람은 아직 할례받지 않았을 때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한 행위가 그토록 풍성했던 아브람조차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우리는 더욱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 의로 여김을 받은 이 믿음은 조금 전까지 불신앙과 씨름하고 있었다(창세기 15:2). 그러나 이겨 냈기에 이처럼 관을 쓰고 존귀하게 되었다.

15:7

“나는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다.” 어떤 이들은 이를 ‘갈대아 사람들의 불에서’ 이끌어 냈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갈대아 사람들이 불을 숭배했으므로 그들의 우상 숭배에서 구하셨다는 뜻이거나, 그들의 박해에서 구하셨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유대인 저자들에게는 아브람이 우상 숭배를 거부하여 불타는 풀무에 던져졌다가 기적으로 구출되었다는 전승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르라는 지명을 뜻한다고 보는 편이 낫다. 하나님은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은혜의 강력한 이끄심으로 그를 그곳에서 데려오셨다. 타는 불에서 나무토막을 낚아채듯 건져 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점을 보라. “나는 너를 이끌어 낸 여호와다.” 능력과 은혜의 행위로서 이를 영광스럽게 여기신다. “이 땅을 네게 주어 유업으로 얻게 하려 함이다.” 단지 소유하는 것을 넘어, 가장 확실한 권리인 상속 재산으로 소유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여러 방식으로 역사하면서도 숨겨진 은혜로운 뜻을 품고 있다. 그 결과가 드러나기 전에는 섭리가 무엇을 이루려는지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다.

15:8

“제가 이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약속을 불신해서 나온 말이 아니다. 아브람이 표징을 원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자기 믿음이 더 굳세어지기를 바랐다. 그는 믿었지만(창세기 15:6), 여기서는 “주님, 제 불신앙을 이기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셈이다. 지금은 믿고 있으나 시험의 때를 대비해 간직할 표징을 원했다. 둘째, 후손들도 그 약속을 믿도록 확증해 주기를 바랐다.

15:9

“나를 위해 암소를 가져오너라.” 아브람은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희생 제물 위에서 표징을 주신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확신을 얻으려는 사람은 그분이 정하신 예식에 참여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은 제사에 쓸 짐승들을 각각 3년 된 것으로 정하셨다. 충분히 자라 힘이 왕성한 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제물을 어떻게 다룰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세세하게 지시하셨다는 기록은 없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제사 관습에 익숙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이것들이 어떻게 표징이 될지 아직 몰랐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가져왔다. 그는 언약을 맺거나 확증할 때의 관습에 따라 짐승들을 가운데로 갈랐다. 예레미야 34:18–19에는 송아지를 둘로 가르고 그 조각 사이로 지나갔다고 되어 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준비한 후, 이를 통해 어떤 표징을 주실지 기다렸다.

15:12

“해가 질 무렵.” 저녁 제사를 드리는 때쯤이었다. 별이 아직 보이던 이른 아침에 하나님은 희생 제물에 관한 지시를 주셨다(창세기 15:5). 적어도 오전 동안에는 제물들을 준비하고 배열하는 일이 이어졌을 것이다. 일을 마친 아브람은 곁에 머물러 기도하며 저녁이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깊은 잠이 아브람에게 임했다.” 피곤하거나 방심해서 드는 보통 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황홀경이었다. 감각으로 접하는 것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영적인 일을 묵상하는 데 온전히 몰두하게 된 것이다. 몸의 문들이 닫혀 영혼이 고요히 물러나 더 자유롭게 활동하게 된 셈이다. “보라, 큰 어둠의 두려움이 그에게 임했다.” 이는 아브람의 마음에 경외심을 일으켜 거룩한 공경으로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거룩한 두려움은 영혼이 거룩한 기쁨을 누릴 준비를 하게 한다. 하나님은 먼저 낮추시고 그다음 높이신다.

15:13

“네 자손이 나그네가 될 것이다.” 그들은 먼저 가나안에서(시편 105:11–12), 그 후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았다. 자기 땅의 주인이 되기 전에 낯선 땅의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정착하지 못한 삶의 불편은 행복한 정착을 더욱 반갑게 한다. 이처럼 하늘나라를 상속할 사람들도 먼저 땅에서 나그네로 산다. “그들이 그 나라 사람들을 섬길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애굽 사람들을 섬겼다(출애굽기 1:13). 가나안 사람들에게 선고된 운명(창세기 9:25)이 아브람의 후손에게도 고통이 된 것을 보라. 그들도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가나안 사람들은 저주 아래서 섬겼지만 히브리인들은 복 아래서 섬겼다. “그들이 네 자손을 괴롭힐 것이다.” 출애굽기 1:11을 보라. 하나님의 복과 사랑을 받는 사람들도 악인들에게 자주 고난을 당한다. 웨슬리는 이 박해가 애굽 여인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창세기 21:9). 마침내는 갓 태어난 아기들을 죽이는 가장 비열한 살인에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고난이 400년 동안 이어졌다는 것이다.

15:14

“그들이 섬길 나라를 내가 심판하겠다.” 곧 애굽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는 애굽의 재앙들을 내다본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 재앙으로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놓아주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가한 모든 가혹한 일을 벌하셨다. 박해자를 벌하시는 것은 그들을 심판하시는 일이다. 자기 백성을 괴롭힌 자들에게 환난으로 갚으시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한 의로운 일이며 특별한 정의의 실행이다. 또한 아브람의 후손이 애굽에서 구출될 것이 예고된다. “그 후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400년의 고난 뒤에, 또는 애굽 사람들이 심판과 재앙을 받은 뒤에 나오리라는 뜻이다.

15:15

“너는 네 조상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죽을 때 우리는 앞서 죽음의 세계로 간 모든 조상에게로 간다. 또한 먼저 복된 상태에 들어간 경건한 조상들에게로 간다. 앞의 생각은 죽음의 두려움을 덜어 주고, 뒤의 생각은 죽음 가운데 위로를 준다. “너는 복된 노년을 누리다가 장사될 것이다.” 가나안 땅을 약속하는 이 대목에서 장례를 언급하는 것은, 아브람이 그 땅에서 처음 소유한 것이 매장지였기 때문일 수 있다. 노년은 좋은 노년일 때 복이다. 늙어서도 건강하여 삶에 지치게 하는 질병에 짓눌리지 않는 사람, 늙어서도 거룩하며 의로운 길에서 백발을 맞는 사람, 나이가 들어도 유익한 일을 하고 경건의 본이 되는 사람의 노년을 좋은 노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참으로 복된 노년이다.

15:16

“그들이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브람이 지금 있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넷째 세대가 되기까지 약속의 땅을 차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모리 사람들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그들의 악이 정해진 정도에 이르기 전에는 끊어 버리지 않기로 하셨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아브람의 후손도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15:17

해가 진 뒤 표징이 주어졌다. 1. 연기 나는 화덕은 그의 후손이 애굽에서 당할 고난을 나타냈다. 그들은 고난의 풀무 안에서, 바로 불 속에서 수고하게 될 것이었다. 연기 속에 있어 눈앞이 어두워 고난의 끝을 내다볼 수 없을 것이었다. 2. 타오르는 횃불은 그 고난 가운데 주어질 위로를 말한다. 하나님은 연기 나는 화덕과 동시에 이것을 아브람에게 보여 주셨다. 횃불은 연기 속에서 길을 밝혀 주는 인도를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등불,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이었다. 이 횃불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미리 나타냈을 수도 있다. 3. 이것들이 쪼갠 제물 사이를 지나간 것은 하나님이 이제 아브람과 맺으시는 언약을 확증하는 행위였다. 그 화덕과 횃불이 제물 사이를 지나며 제물을 태워, 제사를 완성하고 하나님이 받으셨음을 증언했을 가능성이 있다. 기드온의 제사(사사기 6:21), 마노아의 제사(사사기 13:19–20), 솔로몬의 제사(역대하 7:1)처럼 말이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이 희생 제사로 맺어지며(시편 50:5), 궁극적으로 위대한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제사를 받으시는 것은 은총의 표징이자 더 큰 은혜를 주시겠다는 보증이다.

15:18

“그날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었다.” 앞에서는 “주겠다”고 하셨지만 여기서는 “주었다”고 하신다. 약속을 주셨고, 권리를 보장하는 문서에 인장을 찍어 넘겨주셨으므로 취소될 수 없다는 뜻이다. 정해진 때에 그들이 소유하게 될 일은 지금 실제로 넘겨받은 것만큼 확실하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그들의 통치권은 여기 제시된 경계의 끝까지 미쳤다(역대하 9:26). 이 모든 영토를 더 일찍, 더 오래 차지하지 못한 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이었다. 죄로 권리를 잃었고, 게으름과 비겁함 때문에 스스로 그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 현재 그 땅을 차지한 민족들의 이름이 나열된다. 그들의 수와 힘, 오랫동안 거주해 왔다는 권리 주장도 때가 되면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함을 보여 준다. 또한 여러 민족의 땅을 한 민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곧 아브람과 그 후손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