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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19

창세기 19장 — John Wesley

19:1

“두 천사가 왔다.” 아마 조금 전 아브라함과 함께 있던 세 존재 가운데 둘일 것이다. 이들은 소돔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도록 보내진, 피조물인 두 천사였다.

19:3

“롯이 그들을 간절히 권했다.” 소돔의 거리에서 묵다가 위험을 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과 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19:4

늙은이와 젊은이가 사방에서 모두 모였다. 나이 든 이들도 그런 악행을 그만두지 않았고, 젊은 이들도 벌써 거기에 가담했다. 평온하게 사는 사람을 보호할 관리가 없었거나, 관리들 자신이 악행을 돕고 부추기고 있었던 것이다.

19:8

“내게 두 딸이 있다.” 이것은 경솔하고 정당화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두 가지 해로운 일 가운데서는 덜 해로운 것을 택해야 한다는 말이 맞지만, 두 가지 죄 가운데서는 어느 것도 택해서는 안 된다. 좋은 결과를 얻겠다고 악을 행해서도 안 된다.

19:11

“그들이 그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 이는 그들의 시도를 끝내고, 다음 날 닥칠 완전한 멸망을 미리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19:13

“우리가 이곳을 멸할 것이다.” 거룩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고 구하는 자비의 일꾼일 뿐 아니라, 죄인들을 멸하는 하나님의 진노의 일꾼이기도 하다.

19:14

“일어나 이곳에서 나가라.”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이다. 멸망이 바로 문 앞에 닥쳤으니 장난할 때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 소돔 사람들이 조금 전 롯의 집을 습격한 일로 그가 정신이 혼란해지고 너무 겁에 질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모든 것을 농담거리로 삼던 사람들은 이 경고도 농담으로 여기다가 성이 무너질 때 함께 멸망했다. 이처럼 죄로 인해 위험에 처했다는 경고를 받고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런 이들은 자기 죽음의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된다.

19:16

롯은 사위들처럼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지체했다. 상황이 요구하는 만큼 서두르지 않은 것이다. 천사들이 손을 붙잡아 이끌어 내지 않았다면 그 지체가 목숨을 앗아 갔을 수 있다. 여기에 그를 향한 주님의 자비가 드러난다. 떠나기를 꺼렸으니 그대로 멸망하게 두셔도 불의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셨다면, 우리 역시 머뭇거리다가 멸망했을 것이다.

19:17

“뒤를 돌아보지 말라.” 도중에 꾸물거려서는 안 된다. “이 들 어디에도 머무르지 말라.” 그곳 전체가 하나의 죽음의 바다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해 주신 피난처에 이르기 전에는 멈추어서는 안 된다. “산으로 피하라.” 은혜로 죄의 상태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명령도 이와 같다. 죄와 사탄에게 돌아가지 말라. 그것이 소돔을 돌아보는 일이다. 세상에 안주하지 말라. 그것이 들에 머무르는 일이다. 그리스도와 하늘을 향해 나아가라. 그것이 산으로 피하는 일이며, 거기에 이르기 전에는 멈추어서는 안 된다.

19:22

“네가 그곳에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선한 사람들이 어떤 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심판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돌보시는지 보라!

19:24

“여호와께서 여호와로부터 비처럼 내리셨다.” 웨슬리는 이를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에게서 받아 심판을 내리신 것으로 해석한다. 아버지께서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구원자이신 그분은 구원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멸망을 가져오는 분이 되실 것이다.

19:25

“그 성들과 모든 주민과 온 들과 땅에 자라는 모든 것을 뒤엎으셨다.” 완전하고 회복할 수 없는 파멸이었다. 웨슬리는 그 비옥한 골짜기가 자신이 살던 시대까지 큰 호수, 곧 사해로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당시 여행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길이는 약 30마일, 너비는 약 10마일이라고 전한다. 또 그 안에는 생물이 없고, 바람에도 물이 움직이지 않으며, 냄새가 불쾌하고, 물건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서술한다. 그리스인들은 그곳에서 솟아 나오는 역청의 일종 때문에 이를 ‘아스팔티스’라고 부르며, 요단강은 그곳으로 흘러들어 더 나아가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웨슬리가 전하는 당시의 지리·자연에 관한 설명이다. 웨슬리는 이 심판이 그들의 죄에 상응하는 형벌이었다고 본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불타는 욕정이 자연을 넘어서는 불의 심판으로 정당하게 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19:26

“롯의 아내는 뒤에서 돌아보았다.” 이는 명백한 명령을 어긴 행동이었다. 아마 소돔에 있는 집과 재산을 그리워하며 떠나기를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녀의 죄가 소유물에 지나치게 마음을 둔 데 있었음을 시사하신다(누가복음 17:31–32). 뒤를 돌아본 행동에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러났다. 그래서 구주께서는 이를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백한 신앙을 저버리는 일에 대한 경고로 사용하신다. “그녀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웨슬리는 그녀가 그 자리에서 죽었지만 몸이 쓰러지지 않고 기둥이나 기념물처럼 곧게 서 있었다고 설명한다. 공기에 노출된 시신처럼 닳거나 썩지 않고, 영구히 남을 광물성 물질로 변화했다는 해석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우리가 은혜 안에서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도 은혜롭게 우리를 돌보시는 데 있다. 앞서 소돔에 관한 계획을 나누는 가운데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교제가 있었다면, 여기서는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교제가 나타난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정해진 예배와 신앙의 행위에서뿐 아니라,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도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19:27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자기 기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려고, 주님 앞에 서 있던 바로 그곳으로 갔다.

19:28

“그가 소돔 쪽을 바라보았다.” 롯의 아내처럼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에 속으로 이의를 품고 본 것이 아니라, 겸손히 경배하며 받아들였다. 여기에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호의가 드러난다(창세기 19:29). 웨슬리는 앞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이삭에 관해 응답하셨듯이, 이제 소돔을 위해 기도했을 때는 롯에 관해 응답하셨다고 설명한다.

19:29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그를 생각하여 롯을 멸망 가운데서 내보내셨다.” 하나님은 믿음의 기도에 반드시 평안의 응답을 주신다. 다만 그분 자신의 방식과 때를 따라 응답하신다.

19:30

“그가 소알에 살기를 두려워했다.” 구출된 뒤에도 롯이 큰 불안과 곤경에 빠진 모습을 보여 준다(창세기 19:29). 그는 겁이 나서 소알에 감히 머물지 못했다. 자신이 고른 피난처이며, 어리석게도 하나님께 자기 뜻을 요구해 얻은 곳이라는 자각 때문에 그 안전을 믿지 못했을 수 있다. 아마 그곳도 소돔만큼 악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소돔보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는 화재 뒤에 들을 덮기 시작한 물이 점점 불어나 폐허와 뒤섞이면서 차츰 사해를 이루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웨슬리는 추측한다. 소알도 같은 평지에 있으므로 불은 피했더라도 그 물에는 잠기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하나님이 처음 피난처로 정해 주셨던 산으로 기꺼이 갔다. 세속적인 이익 때문에 성도들과의 교제를 버리는 사람이 결국 어떤 처지에 이르는지 롯을 통해 보라.